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3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6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김연경 옮김 / 민음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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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편 소년들>은 퇴역한 2등 대위의 아들-알료샤의 손가락을 깨문 소년이죠-인 일류샤 스네기료프의 친한 친구였으며 2등 대위를 수세미라고 놀리다가 일류샤에게 자상을 입고 말았던 콜랴 크라소트킨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집을 보고 있는 그는 하녀가 얼른 돌아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디 갈 데가 있었던 것이지요. 

그녀가 돌아오자 콜랴는 곧 스무로프를 데리고 일류샤의 집으로 향합니다, 그의 개 페레즈본을 데리고 말이죠. 정작 집 앞에 다다른 콜랴는 스무로프를 들여보내 알료샤를 불러냅니다. 두 사람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우정을 쌓아갑니다. 어쨌거나 일류샤가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콜랴는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콜랴는 일류샤가 죽였으리라고 추측되는 개와 똑같은 개를 데리고서, 일류샤가 핀을 먹인 그 개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거짓말로) 알려줍니다. 비록 그런다고 해서 다 죽어가는 일류샤가 회복될 수는 없었지만, 일류샤로서는 마음의 짐도 덜고 무엇보다도 그리웠던 친구를 되찾게 된 것에 커다란 기쁨을 느낍니다. 이들이 흥겹게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의사 하나가 이들을 방문합니다. 그는 매우 거들먹거리는 인물로서 카체리나 이바노브나가 이리로 보낸 것이었지요. 그런 캐릭터답게 매우 허황된 소견만 내리고는 도망치듯 그곳을 떠납다. 콜랴도 집으로 돌아갔고, 

<11편 이반 표도로비치 형제>가 시작하자마자, 얄료샤도 서둘러 그루셴카의 집으로 갔습니다. 그녀가 그를 불렀던 것이지요. 그녀는 그 날도 미챠와 싸우고 왔다면서 골을 내고 있었습니다. 다른 이야기를 떠나 얄료샤는 이반이 미챠를 방문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라고 맙니다. 만약 그가 그들의 비밀을 알게 된다면 그녀에게도 알려주리라고 약속하고서 알료샤는 급하게 호흘라코바 부인의 집으로 향합니다. 

그녀는 발에 병이 났지요. 그 발을 예찬하는 시를 썼다가 라키친은 그녀의 집에 출입할 수 없는 신세가 되었고, 반면 페르호친은 그녀의 숭배를 받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히스테릭한 숱한 말 중에서 알료샤를 놀랍게 한 것은 이반이 리즈를 방문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페르호친이 오자 알료샤는 그녀에게서 놓여나 리즈에게 갑니다. 리즈도 반은 정신이 나가서 온갖 헛소리로 듣는 사람을 괴롭히더니만 알료샤의 손에 이반에게 줄 쪽지를 건네줍니다. 결국 알료샤를 메신저로 삼은 셈이었지요. 

알료샤는 미챠에게 도착했을 때 라키친은 막 감옥에서 떠나는 길이었습니다. 미챠는 애기에 대한 이야기를 비롯해 내밀한 이야기를 한 후 이반이 자신을 탈출시키려는 계획을 짜고 있으며 제안도 아니고 명령의 수준으로 그에게 강요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려줍니다. 그리고 이반은 자신이 살인했다는 사실을 믿고 있다는 말도 덧붙이면서 미챠는 알료샤에게 자신이 아버지를 죽였다고 생각하느냐고 묻습니다. 알료샤는 한 순간도 그를 살인자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말로 답하지요. 

알료샤는 미챠와 헤어지고 이반에게 가는 길에 카체리나 이바노브나의 집에 들릅니다. 그런데 이반 역시 그녀의 집에서 막 나오는 길이었지요. 세 사람은 같이 집으로 들어갑니다. 카체리나와 이반은 여전히 싸우고 있었고, 알료샤가 없는 사이 퍽 가까운 사이가 된 듯도 했습니다. 알료샤는 집에서 나가는 이반을 따라 나섭니다. 

냉담한 이반은 리즈의 추파에 혐오감을 드러내고, 사랑하지도 않는 카체리나 때문에 지겨워합니다. 자신이 그녀를 떠나면 그녀가 공판에서 미챠를 끝장낼 것이 틀림없었던 탓에 그는 그녀를 거절할 수가 없었지요. 두 사람의 대화는 살인자가 누구냐 하는 대목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알료샤는 이반에게 ‘형은 살인자가 아니야’라고 말해주는데, 이 형은 미챠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알료샤는 자기도 모르게 이반이 자신을 살인자로 여겨 괴로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이반이 살인자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해줍니다. 이반의 알쏭달쏭한 반항과 알료샤의 수도사 놀이에 지긋지긋해진 그들은 헤어져 각자의 집으로 갑니다. 

집 앞에 이르러서 이반은 곧 길을 틀어 스메르쟈코프의 집으로 가기로 합니다. 

이반은 모스크바에서 돌아와 스메르쟈코프가 있는 병원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의사는 그가 정신이 이상하다고도 했고, 간질이 거짓으로 일어날 수 있느냐는 이반의 물음에 그는 간질이 확실하며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는 말까지 합니다. 이반은 스메르쟈코프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눕니다. 스메르쟈코프는 놀랍게도 ‘그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도, 또 자신이 그렇게나 암시를 줬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죽음을 바랐다는 듯이 떠나버렸다’면서 이반에게 화살을 돌립니다. 자신은 이반이 ‘아버지의 죽음을 기대하고 있었다,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았을 뿐이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뜻을 전합니다. 

병원에서 나와 헤매며 이반은 알료샤를 만나 ‘자신이 아버지의 죽음을 기대하고 있는 거 같더냐’고 묻습니다. 알료샤는 그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했다고 고백합니다. 다시 스메르쟈코프를 찾아간 이반은 다소 굴욕적인 대접을 받으면서 다시금 ‘그저 입이나 다물고 있는 게 낫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거고, 자신을 무고하는 것일 뿐이며, 결국 웃음거리가 되는 것은 이반이다’라는 말로 설득당해 나옵니다. 이반은 ‘만약 스메르쟈코프가 아버지를 죽였다면, 자신도 공범으로 살인자가 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카체리나의 집으로 가 이 생각을 고백하자 그녀는 서랍에 두었던 미챠의 편지 -돈을 못 구하면 아버지의 머리를 깨고서 돈을 훔쳐 오겠다는 말이 적혀 있는 편지, 자신은 도둑이 아니라 살인자라고 말하고 있던 그 편지-를 보여줍니다. 이 편지 덕분에 이반은 마음의 평화를 찾습니다. 미챠가 살인자라면 자신은 살인자가 아니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스메르쟈코프가 말한 대로 미챠가 죽고 나면 받을 유산이 늘어난다는 점이 찜찜했고 그래서 미챠를 구해내기로 작정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이반이 알료샤와 (영원히) 헤어져 집으로 가려다가 스메르쟈코프의 집으로 향하기 전까지의, 두 사람이 관련된 사연이었습니다. 세 번째로 만난 스메르쟈코프는 병으로 매우 약해져 있었습니다. 그의 방으로 간 이반 역시도 건강한 상황은 아니었는데, 어쨌거나 두 사람은 다시 한 번 그 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됩니다. 여기에서 스메르쟈코프는 자신이 <이반의 사주를 받아> 표도르 파블로비치를 살해했고, 드미트리에게 그 혐의가 가도록 만들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그로서는 이 모든 것들을 이반이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그가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느낍니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다 뒤집어씌우려 한다면서, 이 살인 사건에 있어 결정적인 주범은 이반이라는 사실을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스메르쟈코프의 집에서 나와 자신의 방으로 간 이반은 섬망증의 증상에 시달립니다. 악마가 등장해 매력적이고 귀여운, 작가로서의 장래가 유망한 이반을 얻기 위해 끊임없는 말로 그를 농락하고, 이반은 그가 자신의 꿈일 뿐이라며 발버둥을 칩니다. (여기에서 다시금 이반의 사상이 확실하게 드러납니다. 그 사상이란 아래 <‘모든 것이 허용된다’ - 인물들을 사로잡는 단 하나의 문장>에 인용해 놓은 이반의 일화에 나와 있습니다. 그 사상이 대심문관과 지질학적 변동으로 심화되고 있습니다. 악마의 말도 이 사상을 대변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때 누군가가 그의 집 창문을 두드립니다. 미망에 사로잡힌 가운데서도 이반은 그것이 알료샤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과연 그 방문자는 알료샤였고, 그는 스메르쟈코프가 목을 매 죽었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이반은 알료샤에게 그 사실을 알고 있다고 말하면서 ‘그놈’에 대한 이야기를 정신없이 합니다. 그가 자기를 비웃었고, 그가 자기는 칭찬받고 싶은 욕구 때문에 내일 법정에 가서 자신이 아버지를 죽였다고 증언할 것이라고 거짓말 했다면서 괴로워합니다. 그러다가는 이내 쓰러져서 잠이 들고 맙니다. 그를 침대에 눕히고 자신도 소파에 누워 알료샤는 그가 어떤 병에 걸렸는지 알게 되었다면서, ‘그는 빛 속에서 부활하든지 아니면 증오 속에서 파멸할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12편 오심>은 드미트리의 공판을 보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부인들, 법조인들, 부인의 남편들 등-이 모여 있는 놀라운 장면을 보여주면서 시작됩니다. 네 사람의 주요 증인(미우소프, 막시모프, 호흘라코바 부인, 고 스메르쟈코프)를 제외한 사람들이 모였고 공판이 시작됩니다. 

검사 측 증인들은 모두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미챠에게 불리한 온갖 증거들과 증언들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 공고한 증언들에 대해 미챠의 변호사 페츄코비치는 도덕적이거나 증인에 대한 의혹을 제기함으로써 증언의 신빙성을 떨어뜨리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들의 증언이 끝나고 의사들은 나와서 미차에 대한 정신감정을 증언합니다만, 세 사람의 의사가 모두 제각각의 의견을 내놓았기 때문에 검사 측도 변호사 측도 별다른 영향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어 알료샤가 증인으로 등장해서는 그가 가슴께-그것도 특이할 만큼 목에서 가까운 부분-을 두드리면서 '절반의 치욕'을 토로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기억해 냅니다. 이 증언은 미챠의 주장-가슴에 1500을 숨겨두었고, 그것으로 마지막 파티를 열었다-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증거는 없었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이 분위기를 이어 카체리나 이바노브나가 증인으로 등장합니다. 그녀는 그가 얼마나 고귀한 심성을 가진 사람인가를, 자신의 치욕을 드러내면서까지 증언합니다. 비록 이들의 증언은 결정적인 것은 되지 못했지만 재판의 분위기를 바꾸는 데에는 충분한 영향을 끼치는 듯 했습니다. 카체리나 다음에 등장한 그루셴카는 이렇다 할 이야기를 내놓지 못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반 표도로비치가 증인으로 나옵니다. 그는 일단 병색이 완연해 보였는데요, 나와서는 차갑게 '특별한 것이 없다'고 말하더니, 갑자기 태도를 바꿔서는, 스메르쟈코프가 주었던 3000을 내밀면서, 진짜 범인은 스메르쟈코프이고 자신이 아버지의 살해를 교사했다고 말합니다. 그는 증인으로서 자신을 방문하는 악마를 댔으며, 미망에 사로잡혀 소동을 부리다가 실려나갑니다. 이 꼴을 본 카체리나는 자신이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깨달으며, 미챠에게 결정적으로 불리한 증거-아버지를 살해하겠다는 편지-를 재판정에 제출합니다. 그러고 나서는 히스테리를 부리다가 쓰러져 나갑니다. 분위기는 급반전 되었습니다. 미챠는 꼼짝없이 죄를 뒤집어써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검사인 이폴리트 키릴로비치는 자신의 심리학적인 특성에 따라서 어째서 미챠가 아버지를 살해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또한 어째서 스메르쟈코프가 범인일 수 없는지를 또한 (매우 사실적인 부분까지도 지목해가면서도 결정적으로는 어긋나게) 논리적으로 증명합니다.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훗날 키릴로비치의 이 논고는 비웃음을 사고 맙니다. 

변호사 페츄코비치는 이폴리트 키릴로비치의 심리학적 분석을 그대로 뒤집어 어째서 미챠가 살인자가 아닌지를 조목조목 반박합니다. 그렇게 검사의 논리가 소설에 가까울 만큼 허점이 많다는 사실 - 정황증거는 수북하지만 그 무엇도 결정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게다가 피해자라는 이름에 갇혀 있던 표도로 파블로비치가 어떤 아버지였는지, 그에게 미챠가 어떤 대우를 받고 자랐는지를 설명하면서 미챠의 고통과 증오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 사람들은 완전히 감동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죄가 선고될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미챠에게는 유죄 선고가 내려졌습니다.  

<에필로그>는 재판 후 병이 나 병원으로 옮겨진 미챠를 수송 과정에서 탈출시키기 위한 (이반), 알료샤, 카체리나 이바노브나의 계획이 드러납니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의식불명에 빠져든 이반을 대신해 카챠가 미챠의 탈출 계획을 진두지휘 합니다. 알료샤도, 심지어는 알료샤도 그들을 적극적으로 돕고 미챠를 설득해 탈출에 동의하도록 설득하기 위해 애씁니다. 

한편 스네기료프의 아들 일류샤는 결국 재판이 끝나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죽고 말았습니다. 바쁘게 뛰어다니느라고(그러고 보면 알료샤는 1권 처음부터 3권 마지막까지 정말 바쁘게 뛰어다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부르고 그를 필요로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장례식에 늦기는 했지만 참여할 수는 있었습니다. 일류샤를 묻고 스네기료프와 가족들이 슬픔을 털어내기를 기다리면서 알료샤와 초등학생들-콜랴를 비롯한 소년들-은 일류사가 묻히길 원했던 바위 앞에서 처음에는 돌을 던졌지만 곧 무척 사랑하게 된 소년 일류샤를, 그리고 그 때 그들이 나눠가졌던 따뜻한 마음을 잊지 않기로 맹세합니다. 

소년들은 이 따뜻한 맹세에 감격해 '카라마조프 만세'를 외치며 일류사의 추도식에 참석하러 갑니다. 


♨ 동물적인 격정과 함께 드높고 고결한 양심이. 


드미트는 그가 해온 행위에 대한 평판과 상관없이 고결하고 과민한 양심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애기’를 위해서라면 그가 비록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애기들을 위해서, 시베리아로 유형 가야 한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조시마 장로가 대단한 혜안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드미트리의 말대로라면, 그는 비록 격정을 다스릴 수 없어서 비열한 짓거리를 하게 되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그는, ‘대속’하는 자, 즉 그리스도에 가까운 자가 되니까 말입니다. 놀랍게도 조시마는 그 지경에 처한 드미트리 속에서도 생생하게 살아 있는 그리스도다운 면모, 그러니까 그의 강렬하고 과민하리만큼 예민한 양심을 보았던 것입니다. 

냉철하고 관념적인 이반 역시도 카라마조프이기는 해서, 과민한 양심 때문에 고뇌합니다. 그 자신은 아버지가 죽을 때 비록 모스크바에 있었지만, 아버지가 살해될 것을 알고 있었고, 또 어느 정도 기대하고 있었고, 게다가 누군가(스메르쟈코프)에게 사주한 것만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살인자처럼 여기고 있었고, 그런 까닭으로 알료샤는 그에게 ‘형은 살인자가 아니야!’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그저 아버지의 장례식에 늦게 온 냉담한 아들일 뿐이었지만, 그 속에서 그 자신은 아버지의 피를 바라고 피를 손에 묻힌 자가 되어 고통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놀라울 만큼의 양심인 것이지요. 

비록 이 두 카라마조프가 ‘모든 것이 허용된다.’라고 말하고 다닐지언정 그들은 정작 스스로에게 ‘모든 것을 허용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그런 말을 하지 않고 신 앞에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보다도 이 카라마조프들은 지독하게 양심적이고 지독하게 종교적이며 그래서 격정적으로 방황할 수밖에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 ‘모든 것이 허용된다’ - 인물들을 사로잡은 단 하나의 문장.

조시마 장로의 암자에서 카라마조프들이 모였을 때 누군가 이반 표도로비치에 대한 일화를 전하면서 그의 생각을 간략하게 정리합니다. 옮겨보면 이렇습니다. 

“이반 표도로비치는 마치 괄호를 치듯, 바로 여기에 자연법칙의 핵심이 들어 있으므로 인류에게서 불멸에 대한 믿음을 없애 버린다면 그 즉시 사랑뿐만 아니라 세상의 삶을 지속시키기 위한 온갖 생명력이 고갈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뿐입니까. 그렇게 되면 이미 부도덕인 것이란 개념 자체가 없어져서 모든 것이, 심지어 식인마저도 허용될 거랍니다. 하지만 이것으로도 부족하여 그는 결론 삼아 주장하길, 각각의 개인, 예를 들어 우리처럼 신도, 자신의 불멸도 믿지 않은 인물들에게 있어서 자연의 도덕법칙은 예전의 종교적인 것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것으로 즉각 바뀌어야 하며, 악행에 가까운 이기주의조차도 인간에게 허용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런 상태에서는 가장 이성적이고 불가피하면서도 거의 가장 고귀한 귀결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여기에서 도출되어 끊임없이 인물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명제는 그야말로 인물들을 사로잡아 버립니다. 대다수의 주요 인물들은 하나 같이 이 명제의 포로가 되어 있는데 다만 이 명제를 해석하는 방식에 따라 크게 두 분류로 나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일단 카라마조프들(드미트리, 이반, 알료샤)에게 이 명제는 ‘양심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잠재적으로 알료샤까지 포함한 카라마조프들은 그 이름의 의미 그대로 악의 구렁텅이에 빠진 자들로 동물적이고 비열한 욕망에 대한 열정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이 인물들은 다른 인물들과는 다른 고결함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매우 두드러지는 양심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카라마조프들은 ‘모든 것이 허용되’지만 양심에 반하는 그 무엇도 하지 못하거나(알료샤), 설사 양심에 반하는 행동을 하게 되었다고 할지라도 그로 인한 극심한 고뇌에 시달리거나(이반), 육체적․사회적․심리적으로 수난을 당하는(드미트리) 사람들입니다. 얄료샤에서부터 이반, 드미트리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양심은 과민할 정도로 예민해서 그들의 행동을 다른 인물들의 것과 확연하게 다른 것으로 만들어줍니다. 알료샤는 양심과 혼연일체가 되어 대내외적으로 양심을 지키기 위한 투쟁의 선두에 서 있습니다. 이반은 자신이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지만 아버지가 죽기를 기대했다는 그 생각 하나만으로도 스스로를 살인자로 여겨서 거의 미치기 직전까지 이릅니다. 광적이고 불한당이기까지 한 드미트리조차도 그 자신이 흘리지 않은 피라고 할지라도, 배가 고프고 가난한 ‘애기들’ 그러니까 그 순수하고 순결한 존재들을 위해서라면, 시베리아로 유형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지경입니다. 아버지를 죽인 패륜아로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고 있지만, 기실 그는 그리스도적인 인물에 가까운 것입니다. 

이에 대립되는 축에 스메르쟈코프가 있습니다. 스메르쟈코프는 아버지가 표도로 파블로비치로 추정되는 한편 그의 집에서 오랫동안 하인노릇을 해왔습니다. 똑똑하면서도 비열한 심성을 갖고 있는 스메르쟈코프는 이반을 거의 숭배합니다. 그는 이반의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였는데, 그것도 아주 ‘심각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이반의 말 속에 담겨 있는 (양심의) 고뇌를 읽지 못했고 그의 사상의 저변에 얼마나 많은 고통이 깔려 있는지, 또 그 고통이야말로 그 사상을 지지해주는 유일하고도 정당한 근거라는 사실을 전해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하여 그는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이 문구로부터 어떤 자유를 읽어냅니다. 카라마조프들에게 있어 이 문구는 양심의 문제로 귀결되고 양심의 문제는 곧 책임에 대한 물음이기도 해서 상당히 무거워지는 것이었음에 반해 스메르쟈코프는 모든 것을 -특히 그에게 결핍된 양심이라든지 도덕이라든지 고상한 형이상학 같은 것- 뛰어넘어 책임으로부터의 자유, 도덕과 양심으로부터의 자유를 읽어낸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그는 표도로 파블로비치와 같은 유형의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에서 매우 아이러니한 점은 카라마조프들의 아버지인 표도로 파블로비치는 매우 동물적이고 부도덕하며 물질적이어서 쾌락을 위해서라면 양심 따위는 똥통에 기꺼이 쳐 넣을 인물인데 반해서 아들들은 하나 같이 자신들에게서 그러한 속성을 발견하고 그 속성 때문에라도 더욱 혐오스럽게 양심의 문제에 골몰하게 되는 특성을 보인다는 점입니다. 

여기에서 또 반대로 스메르쟈코프의 어머니인 스메르쟈쉬야는 유로지브이라고 할 만큼 순수하고 성스러우며 속세나 물질적인 욕구로부터 완전히 초월한 인물임에 반해 그의 아들은 물질적인 욕망이 매우 강하고 속세에서 어둡게 살아남는 데에도 기가 막힌 재주를 가진 비열하고도 부정적인 인물이라는 점입니다. 아버지와 아들들, 어머니와 아들이 보여주는 상반되는 특성은 매우 아이러니한 한편 ‘그렇기 때문에 더욱 발버둥 치게 되는 인간의 비극적이고 처절한 노력’을 연상시켜서 머릿속을 다시 한 번 복잡하게 만들어줍니다. 

♨ 아버지와 아버지, 아들과 아들.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문구를 두고 카라마조프와 스메르쟈코프가 대립을 이룬 것처럼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관계를 두고서 이번에는 카라마조프와 스네기료프가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표도로 파블로비치와 카라마조프들의 관계는 생물학적으로는 아버지와 아들이 분명하지만 그들이 맺고 있는 관계는 이보다 더 파렴치하게 파탄나기도 어려울 만큼 산산조각이 나 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들을 키우지도 않았고 숫제 귀찮아하며 오로지 자신의 쾌락을 채우는 데에만 급급합니다. 아들들은 이러한 아버지를 보면서 혐오감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거나 다스리지 못해서 고통에 빠집니다. 하여 이 카라마조프들은 몰락과 파멸을 피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부자 관계에 있어 알료샤는 제외된다고 하겠습니다. 그는 어디에 있든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재주를 갖고 태어났으니까 말입니다.) 

이에 반해 스네기료프 부자가 보여주는 사랑은 가히 대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선 아들은 치욕과 모욕으로 더러워진 아버지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반의 모든 아이들과 싸우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고, 그 자신이 돌을 맞고 외톨이가 되는 지경에 이른다고 하더라도 결코 아버지를 배신하지 않고 아버지를 불쌍하게 여기며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버지의 괴로움을 헤아려) 괴로워합니다. 조숙한 이 아들은 남들이 아버지를 바라보는 시선이 어떻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알았기 때문에 괴로웠고, 또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를 더욱 아끼고 사랑했습니다. 그가 이렇게 된 것은 그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뜨거운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아들을 위해서라면, 그러니까 자신의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아들을 위해서라면 아들의 병을 낫게 해줄 수 있는 돈, 그러니까 너무나 절실하게 필요한 돈까지도 울면서 웃으면서 실성한 것처럼 꼬깃꼬깃 버릴 수 있을 만큼 아들을 사랑했습니다. 이런 극적인 장면이 아니더라도 아들과 함께 제방을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이란 가슴을 뜨겁게 해주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카라마조프가 '일류샤를 사랑했던 순간을 잊지 말자'고 맹세하는 장면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것 같습니다. 미챠나 이반과 같은 비극적인 인물들이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인간다운 따뜻한 마음씨와 자긍심'이 필요한데, 이 마음씨와 자긍심은 특히 어렸을 때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또 그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그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는 데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적어도 알료샤의 입을 빌린 작가의 생각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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