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기행
후지와라 신야 지음, 김욱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꽤 오래 전 아마 10년, 20년 전 쯤에 그의 '인도방랑'을 읽고서 푹 빠진 적이 있었다. 그의 쓸쓸하면서도 황량한 기분이 느껴지는 글과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의 글과 아주 잘 어울리는 사진들. 나는 가슴 한 켠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며 그의 글 속을 방랑했었다.  

잠시 책장을 찾아보니 그의 책이 그대로 꽂혀 있다. 인도방랑. 한양출판. 1993년 펴냄. 8,800원. 지금 책의 구체적인 내용은 별로 생각나는 것이 없다. 하지만 약간 누렇게 변하고 모서리가 조금씩 닳은 책을 보는 순간 그 옛날의 느낌과 분위기가 그대로 살아날 것만 같다. 그의 황량한 글과 사진에 반해서 나는 여러번의 이사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버리지 않고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었나 보다.

그리고 나서 이번에 읽은 아메리카기행. 처음에 책의 앞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사진을 보았을 때 나는 그의 의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현란하고 화려하게 꾸민 수많은 여행기에 그동안 단련이 된 탓인지도 모르겠다. 다른 여행기의 선명하고 아름다운 여행사진과 비교하여 그의 사진은 크게 매력을 끄는 점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나서 다시 그 사진들을 살펴보았을 때 나는 그의 사진들이 그의 글과 아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미국의 아름다운 경치나 사람들을 담기 위해 사진을 찍은 것은 아니리라. 진정 아름다운 사진은 그의 느낌과 감정이 그대로 투사된 사진일 것이다. 그리고 그의 글에 표현된 그의 생각과 사상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는 사진일 것이다.  

그의 글은 때로는 가볍게 때로는 깊이있게 미국사회의 속성을 파헤친다. 맥도널드에서, 디즈니랜드에서,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사막에서, 도시에서 곳곳에 스며있는 미국사회의 철학과 이상을 읽는다. 스치고 지나가는 사람들과 나누는 한 마디 대화에서 미국사회의 모습을 예리하게 관찰한다. 맥도널드, 미키마우스, 대중스타는 미국사회의 가치관과 이상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들이다. 그의 '인도방랑'에서 그랬던 것처럼, 미국식 자본주의와 판타지, 현대문명 속에서 그가 느끼는 쓸쓸함, 황량함이 그의 글에는 물씬 풍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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