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리만자로의 눈꽃 박범신 문학전집 16
박범신 지음 / 세계사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실종된 작가 정영화. 그는 무엇을 위하여 스스로 실종을 선택하는가?  

"언제까지나 죽은 고기나 찾아다니는 삶을 온몸으로 거부하라. 무리에서 떨어져 결국 죽음을 만날지라도 일상의 탐욕이나 쫓아가는 그 무리를 버리라. 더 넓고 깊은 세계를 가기 위해 온갖 인정의 사슬에서 참으로 자유로워지라..."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내고 작가로서 명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더이상 그의 소설에서 느낄 수 없는 어떤 것을 찾아 간다. 그의 소설은 갈수록 새로울 것도 없이 기교만 늘어났을 뿐 영혼의 무게가 실리지 못한 작품들일 뿐이다. 그는 더 넓고 더 깊은 영혼의 길로 나아가는 문, 자유의 바다로 나아가는 문을 찾아간다. 그는 세상의 바깥으로 나아가는 문을 찾아서 길을 떠난다. "모든 고정관념과 집단적 이데올로기와 체제로부터, 욕망으로부터, 소외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세상의 '바깥' 어디에 사는 '미스 김'을 찾아"...  

그는 마침내 돌아갈 것인가? 그는 다시 글을 쓸 준비가 되었는가?  "내가 만약 자유로운 상상력의 바다에 닿아 있다면, 그리하여 체제와 반체제, 순수주의와 민족문학적 참여주의, 개인과 집단, 주관과 객관의 거친 단층을 자신있게 깨고 나갈 만큼 싱싱하게 회복되었다면, 나는 돌아가야 한다. 돌아가 자유로운 신명으로 나의 묵은 원고지들을 바쁘게 채워야 한다. 그러나, 돌아가 다시 온갖 이분법적 속박과 편견의 사슬에 여전히 내 상상력이 묶여 자기연민에 사로잡히게 된다면, 그것은 죽음일 뿐이었다. 살아있어도 죽은 작가일 것이므로." 참된 작가의 자유는 정치적인 민주화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보다 더 근원적인 실존의 그늘을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그는 항상 혼자였고, 그래서 고독했다.  

실존의 고민으로 아프리카에서 자취를 감춘 한 작가와, 작가의 실종으로 인해 자신의 존재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 작가의 부인 민혜원... 그 어떤 세계도, 그 어떤 사랑도 '고유명사로서의 자기 세계'가 확보되지 않는다면 "해뜨는 아침녘의 목련나무 그늘에 매달린 이슬방울 같은 것. 삶의 한낮이 되고 나면 이슬방울은 형체조차 없을 터인데도 그 허상이 '지고지순하다' 믿으며 우리는 다만 사랑이라는 포장지로 싼 '짐'이 되어 누군가의 어깨에 얹혀 있는" 것이다.  

자신을 탐욕스럽게 만드는 '무리의 세계'에서 벗어나 '독립적 삶의 섬'을 찾아서 그 무엇도 그를 억압하지 않는 자유롭고 평화스러운 곳을 향해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결국 무엇인가에서, 또 누군가에서 떠난다는 것은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그렇지만 한번 떠나고 보면 얼마나 너른 세상이 눈앞에 펼쳐지는지"를 우리는 알 수 있으리라....   

나도 킬리만자로로 가고 싶다. 작가가 아름답게 묘사한 아프리카의 들판, 야생동물들, 원주민들, 그리고 눈덮인 산을 가보고 싶다. 나를 구속하는 온갖 규범과 질서, 욕망과 편견에서 벗어나고 싶다. 야생의 모습이 살아있는 자연의 아프리카에서 원시의 정신, 원래의 자유로운 나 자신을 찾아 가고 싶다.

작가의 책을 이어서 여러 권 읽었는데, 다른 책과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도 여전히 작가 자신의 모습이 많이 투영되어 있으며, 작가의 사고, 열정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제 잠시 다른 작가의 책으로 시선을 돌리고 싶다... 보편적인 한국사회의 남녀관계와 역할 구분이 그대로 나타난 모습이 조금 식상한 느낌이다. 물론 작가가 그런 역할 관계를 옹호하거나 묘사할 의도인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작가의 연령, 이 책이 출판된 연대, 그리고 아직도 여전한 한국의 남녀간의 역할관계 등이 소설 속에 그대로 반영된 탓이 아닐까 싶다. 이제 다른 새로운 남녀관계, 새로운 역할 구분을 다루고 있는 그런 책을 읽고 싶다. 그리고, 특히 여성작가들이 쓴 책을 읽어보고 싶다. 새로운 시각으로 여성의 시각으로 남녀관계를 그린 그런 소설을 읽고 싶다. 그런 다음에 다시 작가의 책으로 돌아오고 싶다.  

누군가가 지적한 것처럼, 이 책에는 유달리 오자가 많아 출판사의 역할이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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