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신경질 내지 않고 정중하게 / 타인과 함께 한다는 것
호인과 호구의 차이
재미있는 사실은 가장 성공한 이들 역시 기버라는 거였다.
기버는 좋은 평판과 사회적 기반 위에서
성공을 극대화하고 가속화할 수 있었고,
다른 사람들도 기버의 성공을 기뻐하기에
이들의 성공에는 지속성이 있었다.
그럼 성공한 호인형 기버는 어떤게 달랐을까?
그건 바로 테이커를 상종하지 않는 것.
그리고 자신을 돌보는 걸 잊지 않는 것이었다.
착하다고 손해를 보는게 아니라,
아무에게나 착했기에 손해를 본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지나친 경계심도, 분별없는 이타심도 아닌
세상의 양면을 함께 바라보는 힘이자 테이커를 걸러낼 수 있는
안목일 뿐이다.
기꺼이 당신을 만난 것을 행운이게 하라.
단, 그럴 자격이 있는 이들에게.
불편이 불편합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종종 "나만 이상한 거야?"라며
타인의 생각을 확인하려 하는데
이건 "너는 어떻게 생각해?"라고 상대의 의견을 묻는 걸 넘어
마치 정답을 확인하려는 듯, 자신의 행동이 사회와 집단의 잣대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 검증하는 과정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하나의 가치관만을 정답처럼 여기게 된다면
타인에게 허용할 수 있는 범위가 좁아질 수밖에 없고
개인의 다양성과 다른 생각을 억압하는 결과를 만든다.
타인의 평가에 대한 불안과 타인의 시선에 대한 공포를
조금씩 나눠 갖게 된다.
누군가는 불편함과 부조리에 예민하게 반응했기 때문이다.
그런 불편함은 익숙했던 문제들을 개선하며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고정된 자신의 가치관을 기준으로 쏟아내는
개인을 향한 비난은 그저 한순간의 통쾌함을 바라는 폭력이자
정의, 예의,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억압이다.
그러니,
우리 서로 좀 내버려 두자.
그래야, 나 자신도 그 공포에서 해방될 수 있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코로나19에 대한 이야기..
저는 너무 괴로워 귀를 막아 버렸습니다.
저는 타인의 삶이 궁금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고 단지 코로나19라는 지독한 바이러스에 걸린것 뿐입니다.
코로나19가 전국적으로 퍼진 현 상황에서 누가 코로나19에 걸릴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타인에 대한 관심이 순간 그 모든 화살이 나 자신에게로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할 것입니다.
어쨌거나
똥은 피하고 봅시다
정서적인 거리를 지키는 건 언제나 중요하다.
그들이 침묵하는 이유를 추측하려 애써서도 안된다.
칭찬과 비난, 침묵 모두에 거리를 두고,
그들로부터 관심 밖 사람이 되는 걸
목표로 하는게 좋다.
멀리서 바라보면 그저 작은 집단에서의 작은 지배자일 뿐.
그러니 한걸음 물러나자.
+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은
누구도 이길 수 없다.
둔감함이라는 위로
그런데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순간,
상대가 '그럴 수도 있지'라고 이해해준다면
'네가 나쁜 마음으로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해준다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될까.
상처에 대한 너그러움이 없다면,
우리는 모두 상처투성이가 된다.
상대의 행동에 의도를 찾지 않는 둔감함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