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전한 사회 - 범우사상신서 33 범우사상신서 33
에리히 프롬 지음 / 범우사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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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자유로부터의 도피의 후속편으로 전작에서 심리적 관점에서 자유의 개념을 중점적으로 논의했다면, 이 저서에서는 구성원들을 심리적으로 건전하게 하는 사회의 요건에 대해 더 비중을 두고 논하였다.

 

 이 책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언급된 바 있는 대상관계적 관점을 인류에 적용한 인류의 개체화 과정에서부터 시작한다. 인류는 자연에 내사된 상태에서 역사가 진행됨에 따라 조금씩 분화되었다. 그 과정에서 인류는 자의식을 갖기 시작했고, 이윽고 자연과 자신(인류)을 구별할 능력을 갖게 되었다.

 

 자연과 자신을 구별함에 따라 자연은 이용의 대상으로 변화하였다. 하지만 이는 자연과이 애착관계의 단절을 의미한다. 다만 이전 시기까지만 하더라도 애착은 종교적 가르침 혹은 중세의 장원에 대한 예속에서 다른 형태로 존재할 수 있었기에 불안은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시민사회에 들어서면서 기존의 전통적인 권위는 해체되고 인간은 다양한 속박으로부터의 자유를 얻게 되었다. 기존 체제들과의 애착이 끊긴 것이다. 애착이 끊기면 다가오는 것은 죽음, 고독, 무의미 같은 실존적 조건에 대한 직면과 그로 인한 불안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시간이 갈수록 우리에게 많은 불안을 주었다. 거대 국가, 거대 기업 등, 그리고 경제구조에서의 분화는 개인이 자신이 마주하는 것의 전체를 파악할 수 없도록 가렸다. 전체를 파악할 수 없고, 자신이 마주하는 것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막연한 어떤 것이라는 생각에 개인의 불안은 가중되었다. 인류는 겉으로 드러나는 자유는 쟁취하였으나 그 자유를 누리기 위한 홀로서기를 할 준비는 되지 않았기에 불안에 직면하지 않고 불안을 회피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자유로부터의 도피의 중심을 이루는 세 가지의 도피 기제다.

 

 프롬의 이론 중에서 하나의 핵심 개념은 바로 사회적 성격이다. 인간의 본성에 대해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생리적 욕구다. 수면, 성욕, 식욕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 기본 욕구들을 충족하려는 구체적인 방식은 그 사회적 여건의 영향을 받는다. 가령 식욕을 채우기 위해선 음식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음식을 구하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을 주고 구입해야 한다. 그럼 자연히 돈을 버는 방법에 따라 개인은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이와 같이 기본적 욕구를 추구하는 과정에 작용하는 사회적 요인으로 인해 특정 시기, 특정 사회의 구성원들에게서는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사회적 성격이 형성된다. 프롬은 그 사회가 심리적으로 건전한지 건전하지 않은지를 판단하려면 이 사회적 성격을 분석해야 한다고 보았다. 앞서 언급한 도피 기제들이 나타나는 이유는 그 사회가 조장하는 사회적 성격이 인간이 자신의 조건에 직면하고 홀로서기를 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다. 그렇기에 프롬은 건전한 사회란 인간이 자신의 가능성을 실현하는 것을 방해받지 않는 사회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 자본주의와 같이 인간이 수단이 되는 사회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관심이 중심에 있는 사회인 인본주의적 사회가 프롬의 지향점이다.

 

 인본주의적 사회를 위해 프롬은 경제, 정치, 문화적 측면에서 몇몇 제안점을 던진다. 경제적 측면에서는 사회주의적 형태를 지향해야 할 것을 제시한다. 하지만 여기서 의미하는 사회주의는 마르크스-레닌주의적 사회주의가 아니다. 프롬은 마르크스의 사회주의의 토대는 생산수단의 사회화와 중앙집권적 계획경제에 있다고 보았다. 그가 보기에 경제적 효율이든 보수 분배의 평등이든, 사회주의의 본질은 인간 존재를 고려한 사회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경우 하부구조를 지나치게 강조했고, 하부구조의 개선을 필요조건이 아니라 충분조건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구성원의 의식의 각성을 도외시하였다. 프롬은 이 점이 가장 우선시되어야 하며 경제적 효과는 부수적이어야 한다고 보았다.

 

 정치적 측면에서는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민주주의는 개인이 소외되지 않고 자신의 견해를 가질 수 있는 것이 필요조건이다. 하지만 기존의 사회에서는 대표적 도피기제인 자동적 동조가 나타내는 것과 같이 개인의 의견은 없으며 모두는 자동인형과 같은 존재였다. 이 상황에서는 민주주의가 의미가 없다는 것이 프롬의 진단이다. 그렇기에 민주주의가 이루어지려면 선거권의 보장으론 충분하지 못하며 중앙집권보다 지방분권을 통해 각 구성원 모두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이 과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최저생계는 국가적 차원에서 보장되어야 한다.

 

 문화적 측면에서는 교육, 예술, 종교 에 대한 제언을 하였다. 교육은 자신의 내면을 길러내는 성장관적인 교육관을 제시하였다. 이는 자신의 실존을 자각하고 존재의 성숙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예술은 집단 예술을 주장하였는데, 내가 보기엔 존 듀이의 경험으로서의 예술과 비슷한 맥락이 아닌가 한다. 예술이 소수 엘리트의 것이 아니고, 생활 속에서의 공동 활동에서 생겨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으로 나는 이해하였다. 아마도 예술이란 어떠한 일을 하던 자신과의 연관성을 자각하고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아닌가 하며 이는 노동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종교와 관련해서는 프롬은 종교 문제는 신에 관한 논쟁에 초점이 이루어져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종교의 핵심은 신의 증명이 아니라 물질적인 것에서 정신적인 것을 추구하도록 하는 것에 있다. 각 종교나 다른 모습의 신들은 정신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의 다른 형태일 뿐이다. 또 종교가 비판해야 하는 우상숭배란 일신 이외의 이교도 신들이 아니라 당시 사회적 성격을 조장하는 권위주의나 물신주의의 신을 섬기는 것이라고 보았다.

 

 프롬의 설명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다만 아쉬운 점은 당시 시대적 한계일 수 있겠으나 프롬의 관점이 정신분석적 관점에 입각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정신분석적 관점은 특정 상황에 대한 깊은 설명을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실증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단호하게 거짓이라고 할 순 없으나 또한 진실이라고도 쉽게 말할 수 없다. 프롬을 접할 때는 이 점을 유념하면서 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부분을 감안하고서도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수많은 비판 중에서 프롬의 비판이 특별한 점은 심리학적 관점을 도입하여 성격적 차원에서 자본주의를 비판하였다는 점이다. 윤리학적 정당성에 근거하여 비판을 전개하는 것도 의미는 있겠지만, 성격적 차원에서 접근한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궁금한 점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부터 뉘앙스를 풍기는 인간 본연의 모습에 대한 근거다. 이 책에서 프롬의 설명은 설득력이 있지만 인간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을 설명할 뿐, 인간 본연의 모습이 어떻다는 것을 설명한다는 느낌은 받지 못하였다. 앞으로도 이 점에 유의하며 프롬의 저서를 읽어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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