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교육학 - 민주주의와 윤리 그리고 시민적 용기
파울로 프레이리 지음, 사람대사람 옮김 / 아침이슬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드디어 프레이리의 마지막 저서인 자유의 교육학까지 읽었다. 프레이리의 사상은 그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일관성이 있다. 하지만 일관성을 유지하면서도 시기별로 사용하고 강조하는 언어가 다른 점이 보이기도 한다.

 

 70년대의 페다고지는 프레이리의 저서 중 가장 유명한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룬 내용이 그의 교육사상의 토대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프락시스, 은행적금식 교육과 문제제기식 교육이 이 책에서 강조를 두는 내용일 것이다.

 

 프레이리는 80년대의 교육과 정치의식에서는 교육의 정치성개념에 주목하기 시작하였다. 이 책에서도 프락시스가 강조되면서 거듭 서술되고 있지만, 교육은 본질적으로 정치성을 띤다는 점 또한 새롭게 강조하였다.

 

 「페다고지를 회고하면서 쓴 90년대의 희망의 교육학에서는 민주주의개념을 강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물론 권위를 부정하고, 민중 속으로 들어가 함께 대화하며 세상의 모순점을 찾아내고자 하는 기존 프레이리의 교육관은 민주주의적 요소가 많았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민주주의를 강조하며 언급한 적은 없었다. 여기서도 물론 기존의 프락시스는 중요하다. 하지만 희망의 교육학한정으로 비중있게 다뤄지진 않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프레이리의 마지막 저서로 알려진 이 자유의 교육학에서는 민주주의를 강조함과 동시에 윤리를 강조한다. 조금씩 조금씩 첨가되어 온 것이지만, 70년대와 90년대의 프레이리는 제법 다른 점을 강조하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내가 이해한 프레이리의 관점은 다음과 같다. 먼저 기존 저서들에서 보여왔던 프레이리의 지식관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프레이리의 지식관은 비고츠키와 같은 사회적 구성주의에 가깝다. 지식이란,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언어를 매개로 한 상호작용을 통해 구성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시대, 상황에 따른 역사성을 띠며, 민중이 목소리를 내도록 한다는 교육목표는 역사적 과정에 참여하여 주체가 된다는 의미를 갖는다. 지식이 그러하듯, 인간 또한 완성된 존재가 아니다. 인간 또한 역사적 과정에 참여하여 스스로를 구성해나가야 하는 미완성된 존재다. 미완성된 존재이기에 인간에 대한 교육 가능성이 보장된다. 여기서의 교육은 인간이 스스로를 구성해나갈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스스로를 구성해 나간다는 것은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윤리적 문제에 대한 답을 찾는 것과 동일한 의미이며 교육은 결국 윤리적 맥락과 떨어질 수 없는 활동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또한 교육은 가치론적 문제에 대한 사회적 활동이기에 본질적으로 정치적 성향을 띨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교육이 중립적이라는 것은 불가능한 소리다. 이렇게 보면, 프레이리가 말하는 윤리란 실존주의적 윤리관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내가 생각하기로는, 이것 역시 프레이리의 지식관과 인간관에서 도출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지식은 구성원들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구성되는 것이며 역사성을 갖는다. 자신을 구성하는 것 또한 스스로 고립되어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 속에서 자신을 구성해나간다. 이 상호작용(대표적으로 교육)에서 프레이리는 정답을 정해 두는 온갖 종류의 권위주의, 기계론적 운명론을 거부한다. 왜냐하면 그런 입장을 전제한다면 그것은 상호작용이 아니라 일방적인 주입, 교화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레이리는 겸손, 오류에 대한 개방성 등의 자질을 갖출 것을(특히 교사가) 말한다. 이로 미루어 볼 때, 프레이리가 말하는 민주주의란 우리가 지식을 구성하고, 자신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이 올바른 대화의 형태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 어떠한 정치체제로서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삶의 양식으로서의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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