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먼저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은 관중과 포숙아의 관계다. 책에서는 이들의 우정을 통해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의 가치를 다룬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말은 듣기만 해도 좋다. 내 사정까지 헤아려 주고, 당장 드러난 모습만으로 판단하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이 한 명쯤 있으면 꽤 든든하겠다. 그런데 이 관계를 생각하다 보면 자꾸 내 쪽으로 질문이 돌아온다.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인가.
사람을 판단할 때는 생각보다 기다림이 부족하다. 답이 늦으면 성의가 없다고 여기고, 말수가 적으면 관심이 없다고 짐작한다. 내 행동에는 사정이 많으면서 상대의 행동은 간단하게 결론 내린다. 바빴을 수도 있고, 아직 생각을 정리하는 중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매번 모든 사정을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확인하기 전에 마음속으로 판결부터 내리는 일은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함께 일하는 상황을 떠올려 봐도 그렇다. 회의에서 말을 잘하는 사람은 금방 눈에 들어온다. 뒤에서 문제를 정리하거나 빠진 부분을 챙기는 사람은 조용히 지나가기 쉽다. 일을 맡길 때 무엇을 잘하는 사람인지 보려면 눈에 띄는 장면 몇 개로는 부족하다. 사람 보는 눈이 좋다는 말에는 그렇게 지켜보는 시간도 들어 있을 것 같다. 알아주는 사람을 기다리는 마음과 별개로, 내가 놓치고 있는 사람도 있겠다 싶다.
범저와 채택의 이야기에 붙은 ‘절정에서 멈출 줄 아는 지혜’라는 주제도 마음이 간다. 멈춰야 한다는 말은 참 쉽다. 이미 충분히 얻은 것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왜 더 욕심을 냈느냐고 말하는 것도 쉽다. 그런데 내 일로 가져오면 그 충분하다는 기준부터 흐려진다. 조금만 더 하면 성과가 나올 것 같고, 여기서 그만두면 지금까지 쓴 시간이 아깝다. 그러다 보면 멈추는 시점은 계속 뒤로 밀린다.
특히 억울한 마음이 섞이면 일이 복잡해질 것 같다. 잘해 내고 싶은 마음에 나를 무시했던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까지 더해진다. 처음 세웠던 목표를 이뤄도 끝났다는 기분이 들지 않을 수 있다. 상대가 인정하지 않으면 아직 부족한 것 같을 테니까. 누군가의 반응에 내 만족을 맡겨 놓는 셈이다. 이쯤 생각하니 욕심이 많다는 말을 남에게만 쉽게 할 수는 없겠다.
잘될 때 멈추는 일은 자신이 있어서 가능한 선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더 붙잡고 있지 않아도 지금까지 한 일이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믿음이 있어야 하니까. 실제로는 손에 쥔 것을 놓는 순간 뒤처질 것 같은 불안이 먼저 들 것 같다. 나는 어느 쪽일까. 선뜻 자신 있게 대답하기는 어렵다.
춘신군의 이야기는 또 다른 방향으로 불편하다. 뛰어난 지략을 가진 사람도 가까운 이의 야심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가까운 관계에서는 오히려 확인을 생략하기 쉽다. 오래 알았으니까, 그럴 사람이 아니니까. 평소라면 물어봤을 일도 그냥 넘긴다. 신뢰가 쌓인 만큼 서로 말하지 않아도 알 거라는 기대도 커진다.
그런데 아는 기간이 길어도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는 모를 수 있다. 처지가 달라지고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바뀐다. 예전에 잘 맞았다는 이유만으로 현재의 생각까지 같다고 믿으면 대화할 기회를 놓치겠다. 가까운 사람에게 새삼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묻는 일이 어색할 때가 있지만, 익숙한 관계에도 그런 질문은 필요해 보인다.
백이와 숙제의 이야기에 닿으면 마음이 조금 복잡해진다. 원칙을 지킨 사람이 마땅한 보답을 받는가 하는 질문 때문이다. 성실하게 살면 잘될 거라는 말은 위로가 되지만, 그 말을 그대로 믿기에는 현실에 설명되지 않는 일이 많다. 누군가는 약속을 지키다가 손해를 보고, 누군가는 책임을 피하면서도 별 탈 없이 지낸다. 그런 모습을 보면 내 기준을 계속 지키는 게 맞는지 흔들릴 법하다.
그렇다고 결과가 좋지 않았으니 그 선택은 틀렸다고 정리하기도 어렵다. 내가 끝까지 지키고 싶은 것이 있다면 손해를 감수하는 순간도 생길 것이다. 다만 어디까지 감수할 수 있는지는 사람마다 다를 테다. 남의 선택을 보며 의리가 없다거나 융통성이 없다고 말하기 전에, 그 사람이 무엇을 걸고 있었는지부터 살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게는 사소한 일이 누군가에게는 오래 버텨 온 이유일 수 있으니 말이다.
한편으로는 이런 이야기를 읽으며 교훈을 너무 빨리 뽑아내고 싶어 하는 마음도 경계하게 된다. 누가 몰락하면 욕심 때문이라고 하고, 누가 살아남으면 처세가 좋았다고 하면 설명은 편하다. 하지만 결과를 알고 붙이는 설명에는 빠지는 사정도 많을 것이다. 당시에는 알 수 없었던 일, 선택할 여지가 적었던 상황까지 생각하면 자신 있게 평가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이 책의 인물들을 지금의 인간관계에 그대로 대입하는 데는 조심스러워진다. 누구를 만나면 어떻게 대응하라는 식으로 받아들이면 사람을 더 빨리 분류하게 될 것 같다. 내게 필요한 것은 판단하기 전에 하나쯤 더 물어보는 습관에 가깝다. 저 사람은 왜 저랬을까. 내가 모르는 사정은 없을까. 물론 생각만 많아지고 결정을 못 해도 곤란하겠지만, 결론을 너무 쉽게 내리는 때에는 도움이 되겠다.
서평을 마치며 -
이 책에서 다시 찾아보고 싶은 부분은 관중과 포숙아의 관계, 그리고 범저와 채택의 이야기다. 하나는 사람을 대하는 내 태도 때문에, 다른 하나는 일을 붙잡고 있는 내 마음 때문에 그렇다. 관계가 불편해질 때는 상대를 이미 다 안다고 여기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고 싶다. 무언가를 더 얻고 싶어질 때는 처음 원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도 한번 확인해 보고 싶고.
나이를 먹으면 사람을 좀 더 잘 알게 될 줄 알았는데, 경험이 쌓인 만큼 짐작도 늘어날 수 있겠다. 예전에 비슷한 사람을 봤다는 이유로 눈앞의 사람까지 안다고 여기는 식이다. 다음에 누군가의 말이 이해되지 않을 때는 바로 속으로 결론부터 내리지 말아야겠다. 일단 한 번 더 물어보는 정도부터 해 볼 생각이다. 그 정도도 막상 하려면 연습이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