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자본
김상은 지음 / 좋은땅 / 2026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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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을 시작하기 전 잡담 -

공감도 자본이 될 수 있다니 처음에는 조금 묘한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자본이라고 하면 돈이나 건물, 주식 같은 것부터 떠올리게 된다. 요즘에는 지식 자본이니 인적 자본이니 여러 표현이 사용되긴 하지만 공감까지 자본이라는 이름을 붙여야 하나 싶기도 했다. 사람의 마음마저 돈으로 계산하는 책은 아닐까 하는 약간의 의심도 있었고 말이다.

그런데 책을 펼쳐보니 여기에서 말하는 공감 자본은 단순히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기술과는 조금 달랐다. 내가 가진 이야기와 태도가 다른 사람의 기억 속에 남고, 그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신뢰와 관계로 쌓이는 과정에 가까웠다.

특히 예술가와 크리에이터를 위한 책이라는 설명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예술가도 아니고 뭔가 대단한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도 아니지만, 요즘은 누구나 자신을 보여주며 살아가는 시대이니 완전히 남의 이야기 같지는 않았다. SNS에 사진 한 장을 올리는 일도 어떻게 보면 아주 작은 전시일 수 있으니 말이다.

책 설명 -

책은 168페이지 정도이고 일반적인 자기계발서보다 얇은 편이다. 크기도 148mm×210mm라 손에 들고 읽기에 크게 부담이 없다. 무선 제본으로 되어 있어서 고급스러운 양장본의 느낌보다는 필요한 내용을 빠르게 찾아 읽는 실용서에 가깝다.

표지는 하늘색과 노란색이 강하게 나뉘어 있고 제목이 아주 크게 들어가 있다. 공감이라는 말에서는 따뜻하고 잔잔한 색을 먼저 떠올렸는데, 의외로 꽤 선명하고 현대적인 느낌이다. 서점에 여러 책과 함께 놓여 있어도 제목만큼은 확실히 눈에 들어오지 않을까 싶다.

책은 예술가의 세계관과 서사에서 시작해 브랜딩, 스토리텔링, 체험 마케팅, 로컬 콘텐츠, 굿즈, 디지털 포트폴리오와 인터뷰까지 다룬다. 각 장의 끝에는 자신의 작업과 방향을 점검해 볼 수 있는 워크북도 들어가 있어 그냥 읽고 고개만 끄덕이는 것으로 끝나지 않게 구성되어 있다.

내용에 비해 분량은 얇지만 다루는 범위는 꽤 넓다. 그래서 한 주제를 아주 깊게 파고드는 전문서라기보다는 창작자로 살아가기 위해 어떤 부분을 생각해야 하는지 전체적인 지도를 보여주는 책이라고 보면 될 듯 하다.


서평 -

책의 중심에는 “기술은 감탄을 만들고, 서사는 공감을 만든다”는 문장이 있다. 실력이 좋은 사람을 보면 감탄할 수는 있지만, 그 사람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마음이 움직인다는 의미이다.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다. 노래를 아주 잘하는 가수는 많고 그림을 잘 그리는 작가도 많다. 그런데 유독 오래 기억되는 사람은 따로 있다. 그 사람이 왜 그런 노래를 부르는지, 왜 계속 같은 대상을 그리는지, 어떤 시간을 지나 지금의 작업을 하게 되었는지를 알게 되면 작품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진다.

예전에는 실력만 있으면 언젠가 알아주는 사람이 나타날 것이라는 말을 꽤 쉽게 믿었다. 골방에서 열심히 만들다 보면 세상이 어느 순간 천재를 발견해 줄 것이라는 이야기 말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세상도 꽤나 바쁘다. 누군가 골방 안에서 열심히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굳이 찾아다니며 발견해 줄 만큼 한가하지는 않다.

책의 프롤로그에도 골방의 천재가 왜 재고가 되는지 묻는 내용이 나온다. 조금 냉정한 표현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와닿았다. 좋은 것을 만드는 일과 그것이 사람들에게 도달하게 만드는 일은 전혀 다른 능력이다. 그런데 창작자 입장에서는 알리는 일을 괜히 속된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나만 잘하면 되지 굳이 나를 포장해야 하나 싶은 것이다.

나 역시 홍보나 브랜딩이라는 말을 들으면 약간의 거부감부터 생기곤 했다. 내용보다 포장만 요란한 물건을 너무 많이 봐서 그런 듯 하다. 실제로 형편없는 것을 그럴듯하게 꾸미는 일도 브랜딩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곤 하니 말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브랜딩은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 사람을 속이는 작업이 아니다. 자신이 왜 이 일을 시작했고 무엇을 반복해서 말하고 싶은지 정리하는 과정에 가깝다. 흩어져 있던 작업들을 하나의 방향으로 연결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바꾸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며 회사에서 했던 여러 일들이 떠올랐다. 분명 열심히 했는데 막상 누군가 무엇을 했느냐고 물으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할 때가 있다. 결과물은 남아 있지만 그 일을 왜 했고 어떤 문제를 해결했는지는 머릿속에서 뒤죽박죽이다. 아무리 많은 일을 했어도 설명할 수 없다면 다른 사람에게는 그냥 없었던 일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서사는 예술가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닌 듯 하다. 직장인에게는 경력이 되고, 자영업자에게는 가게의 이야기가 되며, 평범한 개인에게는 내가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 된다. 꼭 거창한 고난과 극복이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매일 비슷한 일을 꾸준히 하는 사람에게는 그 꾸준함 자체가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책에서 흥미로웠던 또 하나는 완벽함보다 진솔함이 중요하다는 부분이다. 요즘은 기술적으로 완벽한 이미지와 영상이 너무 많다. AI를 이용하면 웬만한 글이나 그림도 금방 만들어낼 수 있다. 예전에는 완성도가 높은 결과물만으로도 시선을 끌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것만으로 오래 기억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듯 하다.

오히려 조금 서툴더라도 그 사람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담긴 작업에 마음이 갈 때가 있다. 반듯하게 만들어진 광고보다 가게 주인이 직접 적은 삐뚤빼뚤한 안내문이 더 기억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서툴기만 하면 안 되겠지만, 완벽한 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는 공감이 갔다.

다만 진정성까지 하나의 전략으로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약간 복잡한 마음도 들었다. 진정성이 잘 팔리기 때문에 진정한 모습을 보여준다면 과연 그것도 진정성일까. 솔직한 실패담이나 아픈 기억이 사람들의 반응을 끌어내기 위한 콘텐츠가 되는 순간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보다 왜 보여주는지를 스스로 아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관심을 얻기 위해 계속 더 강한 이야기를 꺼내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의 삶까지 홍보 재료처럼 느껴질 수 있다. 공감을 얻는 일도 중요하지만 모든 것을 공개해야 공감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로컬 콘텐츠에 관한 내용도 인상적이었다. 지역의 오래된 공간과 역사에 예술을 더하고, 예술가의 작업이 골목과 상점에 새로운 이미지를 입히는 과정이 소개된다. 예술이 미술관 안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도시와 생활 속으로 들어올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근래에는 오래된 시장이나 낡은 공장이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바뀌는 경우가 많다. 처음에는 보기 좋게 꾸며놓은 관광지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그곳의 원래 이야기와 새로 들어온 창작자의 시선이 잘 연결되면 공간을 바라보는 느낌 자체가 달라지기도 한다.

반대로 지역의 역사와는 아무 상관없이 유명한 카페와 기념품 가게만 잔뜩 들어오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거리가 되어버린다. 결국 로컬 브랜딩도 멋진 간판을 만드는 일보다 그 장소에 이미 존재하던 이야기를 발견하는 일이 먼저이지 않을까 싶다.

책의 후반부에서 다루는 포트폴리오와 인터뷰 부분은 꽤 현실적이다. 작업을 잘 만드는 능력과 자신의 작업을 설명하는 능력은 다르며, 준비된 소개 자료와 일관된 메시지가 작가의 첫인상을 결정한다는 내용이다.

뭔가를 오래 해온 사람일수록 “보면 알지 않나”라는 생각을 하기 쉽다. 하지만 보는 사람은 대부분 모른다. 왜 이런 색을 사용했는지, 왜 같은 형태를 반복하는지 친절하게 말해주지 않으면 그냥 취향이 특이한 사람 정도로 끝날 수도 있다. 설명한다고 해서 작품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괜히 말없이 알아주기를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암튼 이 책을 읽고 나니 공감 자본이라는 말이 처음보다 덜 낯설게 느껴졌다. 공감은 순간적인 좋아요의 숫자라기보다 한 사람이 계속 보여준 태도에서 생기는 신뢰에 가까웠다. 한 번의 화려한 홍보보다 오래 같은 이야기를 해온 사람이 더 믿음직한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서평을 마치며 -

책을 덮고 가장 오래 남은 생각은 나에게도 설명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는가라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잘하느냐는 질문에는 그럭저럭 답했지만, 왜 그것을 계속하느냐는 질문에는 제대로 답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냥 하다 보니 오래했고, 먹고살아야 하니 계속했다는 말도 틀린 답은 아니지만 그것만으로는 조금 아쉽다.

그렇다고 당장 멋진 인생의 문장을 만들어낼 생각은 없다. 억지로 세계관을 만들고 평범한 경험을 대단한 서사처럼 꾸미다 보면 오히려 이상해질 듯 하다. 우선은 내가 반복해서 선택하는 것과 자주 마음이 가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천천히 살펴보면 되지 않을까.

예술가나 크리에이터라면 자신의 작업을 세상에 어떻게 보여줄지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될 책이다. 꼭 창작자가 아니더라도 자신이 해온 일들을 하나의 흐름으로 정리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읽어볼 만하다.

공감은 달라고 요청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고, 단기간에 만들어지는 것도 아닌 듯 하다. 결국 평소에 어떤 태도로 무엇을 계속 보여주었는지가 조금씩 쌓여 만들어진다. 그러고 보면 자본이라는 표현이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다.

다만 통장 잔액처럼 숫자로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이 문제이긴 하다. 뭐, 그래서 더 오래 쌓아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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