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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동화는 어른을 위한 것 2 - 지친 영혼을 위한 동심 처방 ㅣ 어쩌면 동화는 어른을 위한 것 2
이서희 지음 / 리텍콘텐츠 / 2026년 7월
평점 :
서평을 시작하기 전 잡담 -
동화책을 마지막으로 제대로 읽었던 때가 언제인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릴 때에는 책장에 꽂힌 동화책을 별생각 없이 꺼내 읽었는데, 어른이 되고 나서는 동화라는 말만 들어도 자연스럽게 어린이용이라는 생각부터 하게 된다. 이제 와서 피터팬이나 피노키오를 읽고 있으면 괜히 누가 볼까 조금 민망할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데 제목부터 대놓고 동화는 어른을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것도 2편이다. 1편에서 미처 다 하지 못한 이야기가 꽤나 많았던 모양이다.
지친 영혼을 위한 동심 처방이라는 부제도 눈에 들어왔다. 요즘은 몸보다 마음이 지쳤다는 말을 더 자주 듣는 세상인데, 약도 아니고 동화로 처방을 한다니 조금 궁금해졌다. 암튼 어릴 때 읽었던 이야기가 지금은 어떻게 다르게 보일지 생각하며 책을 펼쳐본다.
책 설명 -
책은 228페이지이고 128×188mm의 B6 크기라 손에 들고 읽기 편한 편이다. 너무 크지도 않고 무겁지도 않아서 가방에 넣어 다니며 한두 편씩 읽기에 괜찮다. 동화를 다룬 책이라 두껍고 커다란 그림책을 예상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일반적인 에세이에 가까운 모습이다.
책은 함께할 때 빛나는 우정과 사랑, 진심의 아름다움, 자유로운 상상, 모험, 성장이라는 다섯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그 안에 행복한 왕자, 피터 래빗, 정글북, 소공녀, 벨벳 토끼, 피터팬, 삐삐 롱스타킹, 피노키오, 은하철도의 밤 등 모두 22편의 동화가 담겨 있다.
한 편의 동화를 길게 분석하는 방식은 아니다. 동화의 줄거리를 간단히 되짚고 그 안에서 지금의 어른이 생각해볼 만한 의미를 꺼내 보여주는 구성이다. 한 장씩 끊어 읽어도 흐름이 어색하지 않아 처음부터 차례대로 읽어야 한다는 부담도 없다.
서평 -
어릴 때 읽었던 동화는 대체로 착한 사람은 행복해지고 나쁜 사람은 벌을 받는 이야기로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동화 속 인물들은 생각보다 고생을 많이 한다. 집을 떠나고, 길을 잃고, 가진 것을 빼앗기고, 누군가와 헤어지기도 한다. 어린 시절에는 결말만 기억했지만 어른이 되어 보니 그 과정이 먼저 보인다. 행복해지기 전에 이렇게까지 고생해야 하나 싶은 이야기도 꽤 많다.
책의 첫 부분에 등장하는 행복한 왕자는 특히 그랬다. 왕자는 자신의 몸을 장식하던 보석과 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 아름답고 화려했던 동상은 점점 볼품없이 변하지만, 그제야 누군가의 삶은 조금 나아진다.
어릴 때에는 착한 왕자와 착한 제비의 슬픈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 지금 읽으니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이 결국 내가 가진 무언가를 내어주는 일이라는 점이 먼저 느껴졌다. 마음으로 걱정해주는 것은 쉽지만 내 시간이나 돈, 편안함을 실제로 나누는 것은 꽤나 어렵다.
나이를 먹을수록 손해를 보지 않는 방법은 빨리 배우는데, 기꺼이 손해를 감수하는 마음은 점점 잊는 듯 하다. 물론 무조건 희생하며 살라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그렇게 살다가는 행복한 왕자가 되기 전에 그냥 지친 왕자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다만 내가 지키려는 것 중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벨벳 토끼의 이야기도 마음에 오래 남았다.
사랑을 많이 받은 장난감 토끼가 시간이 지나며 낡아지고 초라해지지만, 그 사랑을 통해 진짜가 되어가는 이야기다. 요즘은 새것과 완벽한 모습을 너무 쉽게 좋은 것이라 생각한다. 물건도 조금 낡으면 바꾸고, 관계도 불편해지면 멀리하고, 사람도 부족한 부분이 보이면 실망한다.
하지만 오래 곁에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흠집이 생겼다는 뜻이기도 하다. 흠집 하나 없는 관계는 어쩌면 아직 아무 일도 겪지 않은 관계일 수 있다. 서로의 부족한 모습을 보고도 남아준 시간 덕에 비로소 진짜가 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공녀에서는 상황이 변해도 잃지 않는 태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가진 것이 많을 때 친절하고 여유로운 것은 비교적 쉬운 일이다. 문제는 내 형편이 어려워졌을 때다. 마음이 힘들면 다른 사람에게 건넬 친절부터 줄어든다. 나 하나 버티기도 힘든데 남의 사정을 살필 여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힘든 순간에도 스스로를 완전히 잃지 않는 사람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언제나 밝고 착하게 살라는 말은 현실적으로 조금 부담스럽지만, 적어도 힘든 상황이 나를 전혀 다른 사람으로 만들게 두지는 말자는 정도라면 기억해볼 만하다.
피터팬이나 삐삐 롱스타킹을 다룬 부분에서는 상상력이 단순히 어린아이에게만 필요한 능력이 아니라는 점도 흥미로웠다.
어른이 되면 현실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현실을 알아야 한다는 말 자체는 틀리지 않지만, 그 말이 어느 순간부터 새로운 생각을 하지 말라는 뜻처럼 사용되기도 한다. 안 될 이유를 먼저 찾고, 괜히 했다가 실패할까 걱정하며 익숙한 자리에 머문다.
나 역시 예전보다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 계산부터 많이 한다. 시간은 있는지, 돈은 얼마나 드는지, 실패하면 손해는 무엇인지부터 따진다. 그러고 나면 처음에 재미있어 보였던 일도 금세 귀찮아진다. 뭐 아주 철저한 현실주의자가 된 것 같지만 사실은 겁이 많아진 것일지도 모른다.
책에서 말하는 동심은 세상 물정을 모르는 순진함과는 조금 달랐다. 손해를 계산하기 전에 누군가를 믿어보는 마음, 결과를 확신하지 못해도 한 걸음을 내딛는 용기, 이미 굳어버린 일상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는 상상력에 가까웠다. 아이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라 어른이 되면서 버린 것 중 다시 주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자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은하철도의 밤은 행복에 대한 생각을 남긴다.
행복은 보통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모습으로 떠올리기 쉽다. 더 좋은 집, 더 많은 돈, 편안한 생활 같은 것들 말이다. 물론 그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돈이 없어도 행복하다는 말은 대체로 돈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이 쉽게 하기도 하니 말이다.
그럼에도 내가 얻는 것만으로 행복을 설명하기에는 조금 부족하다. 누구와 함께 가는지, 무엇을 지키며 사는지, 내 선택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흔적으로 남는지도 행복의 일부가 아닐까 싶다. 동화는 이런 질문을 어렵고 거창한 말 대신 익숙한 이야기로 건넨다. 그래서 부담 없이 읽다가도 가끔 책장을 멈추게 된다.
서평을 마치며 -
동화를 다시 읽는다고 해서 갑자기 어린 시절의 순수함이 돌아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미 세상일을 너무 많이 알게 되었고, 계산하는 습관도 꽤 단단하게 자리 잡았다. 피터팬처럼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을 수도 없고 삐삐처럼 하고 싶은 대로만 살 수도 없다.
그래도 모든 것을 현실이라는 말로 정리하며 살 필요는 없지 않을까.
조금 낡아도 소중한 것을 버리지 않는 마음, 두려워도 한 걸음 움직이는 용기, 누군가에게 작은 친절을 건네는 태도 정도는 어른이 된 뒤에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예전에 읽었던 동화 몇 권을 다시 찾아보고 싶어졌다. 어린 시절의 내가 보았던 이야기와 지금의 내가 보는 이야기는 분명 다를 것이다.
책장 어딘가에 오래된 동화책이 남아 있는지 한번 찾아봐야겠다. 없다면 도서관 어린이 코너에 가야 할 텐데, 괜히 직원이 이상하게 보지는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