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수사관 내전 - 검찰수사관의 “13년 만에 쓰는 편지”
김태욱 지음 / 바이북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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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년 조국사태를 시작으로 검찰개혁 필요에 대한 범국민적 요구는 서초동 촛불집회에 1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을 운집시키며 그 절정으로 치달았다. 당시 조국사태로 인해 검경수사권조정과 공수처 설치에 대해 많은 국민적 관심과 공감이 집중되었다. 나는 법에 대해서도 검찰에 대해서도 문외한인지라 관련 이슈에 대해 잘 몰랐고, 보도되는 용어 자체도 낯설어 개략적인 이해만 하고 넘어갔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온 나라가 '조국'과 '검찰'이란 두 키워드로 연일 도배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도대체 무슨 일인가'하고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보통 사람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웬만해선 송사에 휘말일 일이 없다. 죄를 짓지않는 한 검찰에 기소되고 법정에 설일도 잘없다. 그러나 작년에 들었던 말 중 섬뜩한 말이 있었다. 검찰이 마음만 먹으면 광화문 거리 앞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라도 감옥에 보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조국사태를 보면서 그것이 불가능 한 것이 아니겠다라는 불안의식이 생겼다. 검찰에 대해, 법에 대해 잘 모르는 평범한 사람인 나에게 작년 사태에 관한 보도 중 크게 눈에 띄는 것은 '과잉'이라는 단어였다.


검찰은 막대한 인력을 투입하여 100여건에 달하는 대대적인 영장청구를 통해 조국과 관련된 모든 것을 수색하였고 언론은 엄청난 양의 의혹 기사를 쏟아냈다.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이미 검찰과, 언론은 조국을 유죄확정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로부터 반년이 넘게 지났다. 도대체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무엇일까. 오히려 몇일전 보도된 조국관련 권력형 비리혐의의 가장 핵심인물인 5촌 조카의 1심 재판부 판결문에는 조카 개인의 횡령, 배임으로 인한 유죄를 선고하나 검찰이 주장했던 조국의 권력형 범죄의 증거는 없다고 명시되어 있다한다. 그토록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조국의 혐의란 반년이 지난 지금도 그 실체가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온 나라가 '홀렸다'고 표현했다. 누가 국민을 홀리게 했을까.


최근 근현대사 영화에서나 볼 법한 '공작'이 보도되어 가슴을 쓸어 내리게 했다. 암울한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그 공작의 타겟은 유시민 전 장관이었다. 검찰의 고위 간부와 한 언론사의 기자가 모의했다 의혹받는 이 사건을, 세상은 '검언유착'이라 불렀다. 그리고 최근 언론에서는 법무부 장관의 검찰총장에 대한 합법적인 지휘권발동이 장관과 총장의 대결구도로 연일 보도되고 있다. 검찰은 법무부의 외청으로 법무부의 소속이다. 마치 행안부의 외청으로 경찰청, 소방청이 있는 것이나 기재부의 외청으로 국세청과 관세청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 정부조직법에 따라 17개의 청이 있다고 하는데, 그 중 한 청에 불과한 검찰에 대한 보도의 비중과 우리의 인식 속에 자리잡은 그 이미지는 분명 다른 '청'들의 그것과는 다르다. 무엇이 그들을 특별하게 만들었을까.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공권력의 발현은 법원의 형 집행 선고가 아닐까. 그러나 잘못을 했다고 다 재판을 받는 것이 아니다. 형을 때릴 수 있는 형사사건은 반드시 기소가 되어야만 재판도 가능한 것이다.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검찰은 '기소편의주의'로 범죄혐의자를 법정에 세울수도 세우지 않을수도 있는 막대한 권한이 있다. 하지만 기소권이 검찰에만 독점되어 있다보니 검찰이 저지른 잘못도 검찰의 기소권으로 기소해야되는 상황, 허나 팔은 안으로 굽는 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 그래서 공수처가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겠지. 또한 검찰이 독점하고 있는 것은 영장청구권도 대단한 권한이었다. 대표적인 사례로 대구, 경북지역의 신천지 교회에 대해 경찰이 신청한 영장이 검찰에서 막히는 것을 보며 경찰의 수사를 지연시키거나 막을수 있는 힘도 보았다. 그당시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감염의심자 명단확보가 초를 다투던 시기, 법의 상식이 일반의 상식과 다르다는 영화의 대사를 감안하더라도 경찰의 압수수색 영장이 두번이나 반려되는 것은 국민의 법 감정으로 볼 땐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검찰의 강력한 독점된 힘에 대한 견제의 필요성이 전 국민들에게 공감되었다는 것이 작년부터 올해까지 이어져 오는 검찰관련 이슈들의 가장 큰 의의라 하겠다.


장관의 법무부도, 대통령의 청와대도 어찌할 수 없는 무소불위의 검찰, 정계도 함부로 건들지 못하고, 언론도 눈치보기 바쁜 검찰, 이것이 작년과 올해 검찰에 대한 보도가 내게 주는 인상이다. 여기서 느끼는 감정은 한마디로 두려움이다. 국민을 지키기 위해 있는 공권력이 제대로 작동, 통제되지 못하다고 인식될 때 그것은 오히려 국민에게 두려움을 준다. 기존 검사가 등장하는 영화에서 나오던 비리 검사의 모습을 단순히 영화는 영화라 생각했으나 드러나는 현실을 지켜보며 허구 속에 상당한 진실도 있는 것 아닐까 하는 불안마저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라 촛불혁명과 같은 사례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국민의 성숙한 민주의식에 비해 검찰이 민주검찰의 보조를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서두가 참으로 길다. 이미 앞서 거듭 밝혔지만 공대 출신으로 법에 대해서, 검찰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관심도 없던 내가 기소편의주의니 기소독점권, 영장청구권이니 하는 개념들을 찾아 볼 정도로 작년과 올해 검찰이 보여준 영향력은 엄청났다. 그 이슈들 때문에 그렇게 온 나라가 난리인데, 도대체 무슨일이 난 것이며, 뭐 때문에 그러는 것인지, 사회구성원으로서의 호기심과 의문이 검찰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그러던차에 오늘 이야기할 책 <검찰수사관 내전>도 내 눈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아마 검찰이 이렇게 이슈가 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나는 이 책을 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검찰에서 근 30년의 세월동안 검사가 아나 '검찰수사관'으로 일했던 작가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영화나 드라마, 언론 같은 외부에서 보이는 검찰의 모습이 아닌 내부인이 보는 검찰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책에서도 언급되지만 몇년전 <검사 내전>이라는 검사가 쓴 검찰에 대한 에세이가 있었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검찰수사관 내전>을 먼저 만난 것이 반갑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검찰 조직하면 먼저 떠올려지는 '검사'보다는 '수사관'들의 이야기가 조금은 더 진솔할 것 같다는 개인적인 선입견 때문이다. 회사 내부가 돌아가는 사정은 사장보다는 오래 근무했던 직원이 더 속속히 알고 있는 그런 느낌이랄까. 핵심 수뇌부로 갈수록 필연적으로 조직과의 이해가 많이 겹칠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상대적으로 검사보다는 지위가 낮은 수사관들이 상대적으로 제3자의 입장에서 조직을 객관화하여 말하기 쉽지 않을까. 입장상 말이다. 특히나 정년을 바라보는 수사관이라면 떠나는 마당이라 더 초연히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혹시 검사를 사장으로, 수사관을 직원으로 표현해서 불편할 분들이 계실까 조심스럽다. 그 어떤 누구도 폄하하고 무시하려는 의도는 없음을 밝힌다. 하지만 대중의 인식이 그런 것은 실튼 좋든 현실인 것 같다. 저자가 검찰 조직에서 검사를 제외한 공무원들이 마치 이름없는 '아무개' 같다고 언급한 부분에서도 드러나듯 말이다.


검찰에 있는 공무원은 크게 4 종류로 나뉜다. 가장 잘 알려진 검사, 그리고 수사관, 실무관, 행정관이다. 검사가 약 2000명, 수사관이 6000명, 실무관, 행정관이 2000명이라 한다. 그러니 검사로 대표되는 검찰에서 검사의 비중은 20%, 그 외의 공무원들이 80%인 것이다. 나는 검찰조직이 이렇게 큰지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물론 검사와 그를 보조하는 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은 했었지만, 구체적 숫자를 접하게 되니 또 느낌이 사뭇 다르다. 저자의 말처럼 경찰 순경도 세월지나면 지서장이라도 하고, 행정직 공무원도 면장, 동장은 하는데, 검찰직 공무원은 퇴직할 때까지 작은 장자리 하나 해보지 못하는 것이 숙명이라, 20% 주연을 퇴직할 때까지 보좌해야하는 숙명인 80% 조연의 이야기에 더 마음이 끌리는 것은 세상의 소수보다는 다수에 속할 일 많은 나의 묘한 동질감 때문이었을까.


이 책의 서술방식이 독특하다. 이미 세상을 떠난 저자의 직장 선배에게 지난날을 회고하듯 써내려가고 있다. 그래, 이 책은 에세이 중에서도 회고록에 가깝다. 이 책의 구성을 보면 크게 5 장으로 나뉜다. 1장 '가벼운 수다'에서는 검찰수사관으로서 개인적인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 2장 '대장놀이'에서는 제목에서 느껴지듯 수사관의 눈에 비친 '대장'인 검사들의 이야기다. 권위적인 검사에서 소신있는 검사까지 그가 경험했던 검사들의 이야기가 소개된다. 3장 '수사일지'는 수사관으로서 검찰청에서 근무하며 겪은 업무적인 에피소드가 소개된다. 4장 '검찰청사에도 꽃은 피어난다'는 검찰청의 미담이 소개되는데, 여기도 사람사는 곳이다는 메세지를 던져주는 것 같았다. 5장 '이제는 나를 찾아'에서는 30년 검찰 생활의 마지막을 앞두고 그간의 세월을 돌아보고 이제는 더이상 조직의 조연이 아닌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인생 제 2막을 준비하는 설레임이 담겨있다. 수사관인 저자에게 검찰하면 당연 수사관과 검사가 핵심이기에 수사관을 다룬 1장, 검사를 다룬 2장이 분량상으로도 가장 비중이 컸다.



<1장 가벼운 수다>

먼저 1장의 이야기를 해보자. 수사관들이 검사에 대해 갖는 감정에 대해 참 잘 와닿는 표현이 있다. "수사관들은 사법시험을 통과하여 들어온 검사들에게, 자신은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열등감, 또는 자신을 뛰어넘은 능력에 대한 존경심. 그리고 자신도 법학공부를 했었다는 근자감에 따른 경쟁심 등 복합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공부의 결과가 그렇게 실감나게 와닿는 곳도 드물 것 같다. 같은 법대를 나왔지만 사법고시를 통과 못한 선배는 수사관으로, 통과한 후배는 검사가 되어 만나는 곳이다. 물론 학창시절 반에서 공부 잘했던 아이가 소위 '사'자 붙은 직업을 가지고 나머지 아이들은 고만고만한 직업으로 사회적 지위가 갈리는 것은 현실에서 흔한 일이지만, 그래도 그들이 한 직장에서 같이 일할 확률은 낮아 체감할 일은 다소 드물지만, 법대에서 같이 공부하던 선후배가 시험공부 결과로 사실상 '신분'이 갈려 한 조직 안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다. 꼭 같은 학교가 아니더라도 같은 시험을 준비했던 사람인데, 누구는 붙고 누구는 떨어져 직위가 갈리니 '존경심', '열등감', '경쟁심' 같은 '복합적인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 인간적으로 이해는 된다.


이름처럼 수사관은 수사를 소임으로 하는 관리다. 모든 수사 내용은 서류로 만들어야 증거가 되는데, 이를 '조서'라고 한다. 검사는 조서를 근거로 기소와 불기소를 판단하게 된다. 따라서 수사의 핵심은 조서를 만드는 데 있다. 중요한 것은 조서 작성 대부분은 수사관이 하는데, 정작 명의는 검사의 명의가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검사를 국민으로 부터 일을 받은 '원도급자'이고, 수사관은 '하도급자'라는 비유가 나온다. 일은 수사관이 다 하는데, 정작 드러나는 것은 검사 명의 뿐이니 기운이 빠질 법도 하다. 현실적으로 검사실에서 수사의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지만 대외적으로는 수사의 '보조자'로 되어있으며 '검찰수사관'이라는 호칭도 법에도 없는 것이어서, 검사도, 경찰도 아닌 애매한 정체성에 아쉬움을 드러내며 명확한 신분규정이 필요하다는 푸념이었다.


실제로 어떻게 되어 있는지 궁금하여, 생전 처음 '검찰청법'을 찾아보았다. 54조까지 있는 검찰청법에서 45조에 이르러 검찰청 직원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하지만 검찰이라는 조직 자체가 검사를 중심으로 한 조직이라 어쩔수 없는 것도 현실인 것 같다. 또한 검찰수사관에 대해 경찰과 동일하게 '사법경찰관리'라는 형사소송법상 신분이 정해져 있고, 검사의 지휘를 받는다는 직무도 명문화되어 있기에 정체성의 혼란을 언급하며 그렇게까지 아쉬워할 필요가 있겠나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저자의 하소연은 단지 법에 나온 호칭이나 직무가 아닌 평생 검찰청에서 근무하며 보이게, 또는 보이지 않게 느꼈던 신분 차이로 인한 불편함과 서러움의 토로이리라. 이야기가 새지만, 덕분에 법을 찾아보면서 몰랐던 것을 알게되었는데, '사법경찰리'라는 말이 있었다. '사법경찰관'은 경찰관이겠거니 해도, '사법경찰리'는 생소했다. 형사소송법에서는 경찰 계급 순경, 경장, 경사까지는 '사법경찰리'로, 그 이상은 '사법경찰관'이며, 사법경찰리는 수사의 보조를 한다고 되어 있었다. '관리'라는 말이 '관'과 '리'라는 별도의 직책이 합쳐 생긴 집합명사였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이 책 덕분에 다시 보게된 영화가 3편 있었는데, <아델라인:멈춰진 시간>, <부당거래>, <아수라>이다. <아델라인>은 2장에서 나오는데, 기왕 영화 이야기를 시작했으니 미리 같이 언급한다. <아델라인>은 부제에서도 알수 있듯이 늙지 않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인데, 시간이 흘러 세상이 변하면 어떤 존재라도 그에 맞추어 변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검찰도 시대에 맞게 변해야한다는 것을 언급하고자 소개된 영화이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뒤의 두 영화이다. <부당거래>에 나오는 배우 류승범이 연기한 검사는 비리가 드러나도 힘있는 장인이 끌어주고 당겨주는 소위 빽있고 줄있는 검사이고, <아수라>에 나오는 배우 곽도원이 연기한 검사는 야망은 있지만 지방대 법대 출신으로 라인을 잡기 위해서 '발악'할 수 밖에 없는 빽없는 검사다. 이 두 검사가 나오는 영화에 공통점이 있는데 두 영화 모두 배우 '정만식'이 수사관을 연기했다는 것이다.


같은 배우, 같은 역할이지만, 각 영화에서 보여주는 수사관의 모습은 너무도 다르다. <부당거래>에 나오는 수사관은 저자가 듣기 민망하고 자괴감을 느꼈다는 '검사 시다바리', '검사 따까리'라는 말을 부인할 수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말 그대로 검사의 개인비서처럼 나오기 때문이다. 검사 미용샵까지 따라가서 일일이 보고하고, 사람들 앞에서 검사에게 모욕과 핀잔을 듣기도 일쑤다. 수사관들을 향해 검사는 화가 나면 서류 뭉치를 던지고 소리를 지르니 화풀이 대상같기도 하다. 급기야 수사관의 직속검사에게 화가난 부장검사가 차마 검사에게 화를 다 못 풀자, 봉건시대 주인 대신 몸종이 매를 대신 맞듯, 옆에 있던 수사관에게 대신 조인트를 날리기도 하니, 듣는 수사관님들 기분 나쁘시겠지만 이쯤되면 적어도 영화 상으로 본다면 '시다바리', '따까리'가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저자는 이런 수사관의 모습이 현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수사관을 이렇게 그리는 영화가 나오는 것은 대중의 인식이 현실의 차이에 기인한 것일테고, 영화로 말미암아 그 차이가 더 벌어지는 악순환을 안타깝게 보고 있었다.


<부당거래>의 정만식 수사관이 개인비서같았다면, 책에서는 언급되지 않은 영화이지만 <아수라>의 정만식 수사관은 '폭력배'처럼 나온다. 수사를 위해 검찰청이 아닌 사적인 공간에 범죄자를 결박하고 검사의 지시에 따라 고문한다. 얼굴에 천을 씌우고 장갑을 낀 주먹으로 가격하니, 금새 천에 핏불이 스며든다. <부당거래>에서는 검사가 소리를 질러도, 종이를 던져도, 발로 차도 '예이, 예이'하는 환관같은 느낌이 있었다면, <아수라>에서는 때로는 검사의 부당한 지시에 거부도 하는 훨씬 거친 느낌이었다. 영화에서 때로는 개인비서로, 때로는 깡패처럼 그려지는 검찰수사관의 모습으로 일반 대중들에게 인식되겠지만, 저자는 그렇지 않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책 덕분에 코로나로 바깥 출입도 자제되는 요즘 같은 시기, 지나간 영화들을 다시 보는 계기는 책이 주는 덤, 별책부록쯤 되지 않을까. 그냥 지나쳤던 조연인 수사관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관점으로 보니 영화가 다르게 느껴진다. 역시 책이란 저자의 관점을 빌어, 같은 세상도 내가 보지 못했던 방향으로 다르게 볼 수있는 즐거움을 준다는 걸 다시한번 생각하게 된다.


수사관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현직자가 본 현실과 얼마나 많이 동떨어졌는지 지적했던 것에 덧붙여, 이 장에서 저자는 이 책을 쓴 이유를 밝히고 있다. 한번 치뤘다하면 수십만의 공시생(공무원 시험 준비생)이 몰리는 기사를 보는 것이 어렵지 않은 요즘, 당연 검찰직 공무원에 대한 관심도 높다. 행정직 공무원, 경찰, 소방관 같은 공무원들은 일상적으로도 간간히 볼일도 있고, 어떤 일을 하는지 상대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검찰직 공무원에 대해서는 홍보가 부족한 것이 사실, 그래서 영화에 나온 것처럼 검사비서로만 알려져 아쉬움이 많았다고 한다. 특히 검사에게 수사관이 쪼인트 까이는 영화 장면을 가족들과 같이 시청했던 수사관은 그 순간 자식들의 눈치를 보았고, 그런 수사관을 조심스레 살피는 아내의 모습이 책에서 그려지는데, 평생을 바쳐 일한 자신의 직업에 대해서 자식들 앞에 당당하고 떳떳하기 위해서라도 본인이 무슨 일을 하는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도 한 몫 했던 것이다. 나 또한 그 모르던 사람 중 한명이었지만, 저자의 목적대로 수사관이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구나 하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이렇게 글도 쓰고 있으니, 저자의 계획이 잘 먹히고 있는 것이리라.



<2장 대장놀이>

2장에서는 수사관이 바라본 검사에 대한 이야기다. 모든 상사가 나쁜 것은 아니겠지만, 상사치고 아랫사람에게 뒤에서 욕 안 듣기도 어려운 법, 검사를 상관으로 둔 수사관의 입장이기에 칭찬보다는 그 반대가 더 많이 담겨있다. 하기사, 사람 심리란 것이 간사하여 찬사보다는 흉에 귀가 솔깃해지니, 읽는 사람 입장에서 '뒷다마'가 나쁠리는 없다.


사소하게는 인사 안 받아주는 검사. 가운데 자리에 목매는 검사에 대해 꼬집는 것을 시작으로, 술자리에서 남녀직원 할 것없이 돌려 마시는 '사발주'를 고집하던 검사의 이야기도 있었다. 검사라고 말했지만, 상사라고 바꿔 써놓아도 어색할 것 없는 어느 조직에서나 있을 법한 상사의 이야기였다. 해당 청의 모든 직원들이 열외없이 돌아가며 아침 일찍 출근해서 방송 멘트를 하라고 '명령'한 검사도 있었고, 검사는 혼자서도 30평대 '관사'에 거주하면서도 수사관은 여러명이서 10평 이하 '숙소'에서 지내는 것에 대해 개선건의를 요청하자 "억울하면 검사로 들어오시지"라며 날카로운 팩폭을 날리던 검사의 이야기도 있었다. 여기까지는 뭐 무난하다.


인상깊었던, 그리고 대조되었던 두 검사의 이야기가 있었다. 한 검사는 증거를 조작했다. 그것도 저자가 썼던 조서를 조작해서 졸지에 죄가 없다는 조서가 죄가 있다는 조서가 되어버린다. 그 사건은 결국 피고의 유죄로 판결나고, 다행이라 해야할지, 벌금형에 그쳐 피고는 항소없이 넘어갔다한다. 세상사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없고, 크고 작고의 문제이지 평생토록 죄 한번 안짓고 사는 사람 없다지만, 검사가 증거 조작을 했다는 것을 검찰 내부자를 통해 들으니 섬뜩하긴 했다. 차라리 심증은 강하나, 물증이 부족해, 정의를 실현하기에 현실 여건이 따라주지 못하니 불가피하게 그랬던 것이라 믿고 싶었다.


다른 검사의 이야기는 부전지를 붙인 검사다. '부전지'라는 용어가 낯설어 찾아보았다. 간단한 내용으로 지시를 내릴때 작성하는 문서라고 되어있다. 지금은 전산화되어 결재 문서를 전자로 처리하지만, 과거 서면으로 할 당시, 반려라던가 내용 추가, 보완 필요시에 요구사항을 간략하게 적은 서류가 되겠다. 나는 보고서 앞에 붙이는 포스트잇 메모가 떠올랐다. 회사에도 부장님이 계시듯, 검사들 위에도 검사들의 부장님인 부장검사가 있다. 한번은 검사가 사건에 벌금처분을 해서 보고를 했는데, 부장검사로부터 벌금 액수를 낮추라는 부전지가 붙어 반려가 되었다고 한다. 외부 청탁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이 되는 상황, 강단있는 검사는 다시 부전지를 붙여 원래의 액수 그대로 기재하여 부장검사에게 올린다. 그리고 그의 부전지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한다, '본직의 소관임'. 멋지다. 이런 검사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램이지만, 저자의 말대로라면 제도적으로 이젠 그런 검사는 더 귀해질 것으로 보인다. 부장검사의 지휘감독권한이 더 강화되어 검사의 의로운 '항명'이 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대단할 것은 없지만, 흥미로운 내용이 있었다. 검찰청과 법원에 대한 것인데, 항상 검찰청과 법원은 붙어있다는 것. 물론 업무적 효율을 위해서 가까우면 좋겠지만 부지상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붙어있다고 한다. 그것도 들어가는 입구에서 왼쪽은 검찰청, 오른쪽은 법원으로 거의 굳어져 있고, 더 재밌는 것은 건물의 높이까지 맞춰져 있다고 했다. 높이에 대해서는 검찰과 법원의 묘한 경쟁심의 발로로 높이가 안맞을 경우 벽돌을 조금 더 쌓아서라도 맞추고, 건축구조상 도저히 맞출수 없는 경우 상대쪽에 양해를 구할 정도라고 한다. 건물의 높이가 높다고 지위가 높은 거라면 청와대는 63빌딩(이제는 더 높은데도 많지만)에 있어야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스운 생각도 든다.


궁금하면 또 찾아봐야 하는 성격이라 내가 살고 있는 부산지역의 검찰청을 찾아 보았다. 부산에는 연제구의 지방검찰청, 해운대구의 동부지청, 강서구의 서부지청 3군데가 있었다. 정말 신기하게 지방검찰청 옆에 지방법원, 동부지청 옆에 동부지원, 서부지청 옆에 서부지원이 검찰청이 왼쪽, 법원이 오른쪽으로 자로 잰듯 정확하게 대칭을 이루고 있었다. 거기다 로드뷰를 통해서 건물의 높이도 보았는데, 사진상 확인했지만 분명 높이도 비슷했다. 심심할 때 한번 지도로 자기지역의 검찰청을 검색해봐도 재밌을 것 같다. 나는 검찰청과 법원이 바늘 가는데 실 가듯 같이 있다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되었다. 앞서 검찰청 직원의 신분에 대한 이야기에서 검찰청법을 찾아보다 검찰청법 3조에 법원에 대응해서 검찰청의 위치를 선정해야한다는 내용이 있었으니, 이는 법에서부터 근거한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위치야 업무상 편의를 위해 그렇다 하더라도 저자의 말처럼 건물 높이로 양해까지 구한다는 부분은 조금 많이 간 게 아닐까.


<3장 수사일지>

30년 가까이 검찰에서 수사를 하다보니 얼마나 많은 사건을 저자는 경험했겠는가. 자신의 아내와 외도한 친구를 살해한 이야기는 딱했고, 죄의식으로 고통 받는 범죄자의 이야기에서도 죄인은 응당 죄값을 치뤄야 하겠지만 인간적인 연민이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 오늘도 TV에서 부모로부터 방치된 유아가 구조된 이야기가 나오던데, 7개월 된 아기가 방치되어 굶어 죽은 일이 생겨 저자가 검사와 함께 검시를 나갔던 이야기에도 마음이 착찹해졌다. 듣기만 해도 안타까운 일인데, 직접 아이의 차가운 시신을 본인의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했던 저자는 오죽했을까. 마음이 아팠던 저자가 3일을 제대로 못잤다고 하니 죽은 사람도 안되었고, 직업상 사건으로 인한 시신을 마주해야하는 종사자들의 고생도 생각해보게 된다.


분위기를 잠깐 돌려서 '신문'과 '심문'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 이것도 상식삼아 언급해본다. 신문은 물을 신(訊)에 물을 문(問)으로 묻고 또 묻는다는 의미로서, 캐내서 묻는다는 말이다. 따라서 수사를 하는 검찰이나 경찰에서 주로 사용된다. 반면 심문은 살필 심(審)에 물을 문(問)으로 살피어 묻는다는 의미로서, 판단을 위해서 묻는다는 말이다. 따라서 법원에서 주로 사용된다. 관련 분야에 일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사실 궁금할 일도, 자세히 알아볼 일도 없는 용어이지만 또 이런 책 덕분에 알게된다.



<4장 검찰청사에도 꽃은 피어난다>

이 장에서는 차가울 것 같은 검찰청도 훈훈하고 따뜻한, 사람 사는 곳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자신이 구속한 비행청소년을 정기적으로 검사실로 불러 멘토가 되어준 검사, 재소자들을 위해 검정고시 책을 선물하는 검사의 이야기를 통해 주변과 이웃을 살피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에 가슴이 따뜻해진다. 검사의 미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여성 검찰수사관은 과거 작성했던 조혈모세포 기증서약을 했었다. 그리고 10년 후 백혈병으로 투병 중인 12세 소녀에게 서약을 이행한 아름다운 사례도 있었다. 또 한 남자 검찰수사관은 늦은 시간 자상으로 피를 흘리며 살려달라는 소리에 흉기를 든 범인과 정면으로 맞서며 죽을 위기에 처한 목숨도 살리고 범인도 검거한 이야기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 검찰 공무원들의 사명의식에 든든함과 감사함을 느끼게 했다.


그렇다, 검찰에서 일할 일 없는 나같은 사람에게 이 책의 '쓸모'란 어쩌면 이런 부분에 있을 것 같다. 앞서 서두에 나는 검찰에 대해 부정적이고 실망한 기색을 드러냈다. 정치검사, 비리검사, 언론과 유착하여 부정한 사익을 꾀하는 검사, 사건을 부당하게 조작하는 검사가 분명 존재하고, 그들로 인해 검찰이 욕을 먹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들은 소수이고 대다수의 검찰청 직원들은 자신의 주어진 임무에 충실하고 공무원으로서 국민을 위해 늘 봉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리검사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린 영화 <더 킹>의 마지막 부분에 조인성은 이런 나래이션을 한다. "그 평범한 샐러리맨 같던 선배 검사는 묵묵히 자기 일을 해내어 결국 부장검사가 되었고, 차기 검사장에 유력한 후보로 올랐으며, 안희연 검사(좌천을 감수하며 검찰 내부 비리를 밝히려던 검사)는 여성 검사 최초의 감찰부장이 되었다." 권력, 비리와 연루되지 않고도 자신의 직무에 충실하다면 비록 화려한 스타처럼 세간의 이목을 끌지 않더라도 묵묵히 성실하게 맡은 역할을 해내면서도 충분히 성공할수 있고,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작년 일본의 무역도발에서 현명한 우리 국민들은 '노 재팬'이 아닌 '노 아베'를 외쳤다. 대다수의 선량한 일본 국민과 극우 아베 정권을 분리한 것은 신의 한수였다. 그 덕분에 아베 정권의 잘못된 행동에 공감한 상당수의 일본 국민들도 한국을 지지하여 국제사회에 우리의 정당성을 제대로 알리고 아베 정권에 대한 압박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었다. 그것처럼 검찰도 너무 싸잡아서 비난하면 성실하게 일하고 있던 이들도 사기가 저하되고 의욕이 상실될 것이다. 그러니 잘못된 검사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본분에 충실한 대다수가 있다는 인식 위에서 비판도 해야 훨씬 개선의 폭도 커지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5장 이제는 나를 찾아>

이 장에서는 30년의 검찰 생활의 종점을 향해가는 저자가 은퇴 후 자신의 계획을 이야기한다. 은퇴 후의 계획이라는 것이 저자의 사적인 영역이라 가볍게 읽고 넘어가면서도, 나는 내용 자체 보다 평생을 한 직장 조직에 바친 사람이 그곳을 떠나올 때의 마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문득 아버지가 떠올랐다. 나의 아버지도 한 직장에서 40년을 근무한 분이다. 큰 조직은 아니지만 공채 평직원으로 입사해서 조직의 최고 결정권자까지 올랐다. 아버지로서 시시콜콜하게 직장에서 있었던 일을 집에 일일히 그것도 자식들에게 이야기하진 않을 것이나, 내가 어머니를 통해 듣거나, 아버지의 약주 기운을 통해 들었던 아버지의 직장생활은 굉장히 파란만장했었다. 하기야 누구의 인생이든 평생을 펼쳐놓고 보면 파란만장하지 않기가 드물고, 복받은 것이리라. 그래서 저자가 그랬던 것처럼, 한번은 아버지도 자신의 평생 직장의 이야기를 써보시면 어떻겠냐 말씀드렸더니 전화기 너머의 정적이 느껴졌다. "아버지 회사생활도 파란만장했잖아요, 억울하게 좌천도 당했었고, 보란 듯이 다시 복귀도 했었잖아요." "...그렇지, 내 이야기도 한 파란만장하지, 하하하." 아버지도 나의 제안을 가볍게 지나가는 이야기로만 듣지는 않으시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도 정년퇴직을 하신 분들을 보면 여러 생각이 든다. 어떤 분은 믿는 것이 있으신지 당당하고, 얼굴에서는 묘한 설레임 마저 느껴지는가 하면, 어떤 분은 굉장히 우울해하셔서 보는 내가 안타깝던 적도 있었다. 저자처럼 글쓰는 재능을 발견해서 글을 쓰는 것도 좋고, 저자처럼 전원주택을 가꾸며 소소하게 밭을 일구는 재미를 느끼는 것도 좋고, 저자처럼 자신만의 독특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할 꿈을 꾸는 것도 좋아보인다. 무엇이든 평생을 나 자신 보다도 가정의 누구, 조직의 누군가로 살아오며 충분히 수고하셨으니, 가정도, 회사도 이젠 내려놓고 자신의 꿈, 자신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고, 응원하고 싶다. 나의 부모님도, 다른이의 부모님도 말이다. 저자처럼 분명한 버킷리스트 같은 것이 확실하게 정해져 있으면 좋겠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글을 통해 지난 날을 회고해보는 것도 하나의 좋은 선택지라는 말을 하고 싶다. 꼭 책을 내지 않아도 되니까, 나의 한 생의 기록으로도 그 일의 의미는 충분하지 않겠는가. 혹시 누가 아는가, 그 과정 속에서 평생을 모르고 살았던 숨은 재능을 발견할지도 말이다. 검찰 이야기에서 또 잠시 샜다.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사랑'을 이야기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화나고 짜증나고 속상하지 않을 무언가가 내 아내, 내 남편이 될 때는 화나기도 하고, 짜증도 나고, 속도 상한 것은 바로 그것이 '나의 무엇'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참 공감가는 말이다. 그에게 검찰도 그랬다. 앞서 검찰에 대해서 여러 이야기를 하고, 그 중에서는 좋은 이야기도 때로는 따가운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기본적인 밑 마음은 그곳이 '나의 검찰'이라는 애정이 깔려있었다는 것이다. 남자들이 군대를 그렇게 싫어하고 욕할지라도, 전역할 때는 묘하게 서운하고 아쉬운 마음이 든다. 2년의 정도 참 무서운데, 30년의 정은 더 말해 뭐할까. 비판의 글에서 조차도 애정이 느껴지는 것은 이런 이유때문일 것이다. 검찰의 좋지 못한 모습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저자이기에 검찰에 대한 비판을 하면서도 뉴스에 '검찰'이라는 이야기만 나오면 눈과 마음이 가고 귀가 쫑긋해진다고 하니, '어쩌면 사랑일까'라는 저자의 말은 내가 보기에도 분명 사랑이리라.


이 책을 통해 검찰 수사관의 검찰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진득하게 들을 수 있었다. 딱딱하고 공식적인 언론이나 매체보도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그 내부인의 솔직한 글을 통해 한 걸음더 깊이 알게 되었고, 검찰 조직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검찰에 대한 외부인의 고발이나 문제제기는 있었지만 내부인의 글은 드물었기에 그의 용기있는 고백에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검찰하면 검사가 아닌 검찰 수사관도 있음을 사람들이 떠올리는데 이 책이 큰 역할 할 것이라 기대도 해본다. 저자의 말처럼 그동안 검찰이라는 단어로 검찰수사관을 떠올리는 사람은 아마 가족 외에는 없었을 테니까. 잘 드러나지 않더라도 묵묵하게 소임을 다하는 이들을 사람들이 기억하고 알아줄 때 세상은 한층 더 살만해진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여러 의혹과 문제제기로 검찰의 신뢰가 많이 떨어졌지만, 분명 그 속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맡은 일에 충실하고 있을 것이다. 앞서 이야기 했지만 몇몇 소수의 사람, 세력에 의해 검찰 전체가 이룩한 신뢰와 명예가 망가지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구조적으로 잘못된 부분들은 법과 제도로 보완되어야 하며, 잘못된 관행에 대해서는 조직 내부의 인식개선을 통해 변화하여, 검찰이 다시 국민들에게 신뢰와 명예를 되찾기를 바라며, 검찰을 위한 검찰, 소수 기득권을 위한 검찰이 아닌,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의 검찰'로 거듭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마친다. 대한민국 검찰 화이팅, 검찰수사관, 검찰실무관, 검찰행정관, 그리고 검사들도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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