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의 집 청소
김완 지음 / 김영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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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특수청소업이라는 것이 있다. 죽은 사람이 남긴 흔적을 잘 치우는 일이다. <죽은 자의 집 청소>는 한 특수청소업 종사자가 일을 하면서 겪은 것을 기록해놓은 책이다. 요즘 시대에 사람은 사고가 아닌 이상 대부분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집에서 사람이 죽는 경우란 고독사, 자살, 살인범죄가 아닐까. 이 사인은 그대로 이 책에 등장하는 '고객'들의 사인이 된다. 인체는 죽는 순간부터 체내의 미생물에 의해 분해된다. 상온에서 며칠만 지나도 냄새가 나고 모양은 흐트러진다. 피가 새어나오고 근육이 풀려 변을 포함한 여러 분비물이 나온다.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구더기도 들끓는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시체의 모습은 살아있을 때의 모습에서 단지 눈감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작가의 임무는 이런 흔적들을 말끔하게 치워주는 것이다.


나는 죽음에 관한 책에 잘 끌리는 편이다. 보통 죽음에 대한 우리의 감정은 크게 두려움과 호기심 두 가지가 아닐까. 죽음은 불가역적이다. 한번 죽었던 사람은 되살아날 수 없다. 따라서 사후세계에 대해 말해 줄 수 있는 산 사람이란 없는 것이다. 이런 최고의 무지는 최고의 두려움을 야기한다. 또한 죽음은 그만큼 미지의 영역이기에 오랜세월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아내는 소재가 되어왔다. 모든 사람이 피하고 싶은 주제이지만 동시에 누구나 언젠가 한번은 맞딱드려야 하는 대상이기에 호기심의 대상이기도 하다.


두려움의 척력과 호기심의 인력이 만들어 내는 묘한 감정의 밀당 때문에, 나는 죽음에 관한 책을 좋아한다. 기존에 내가 접했던 죽음에 대한 책이란, 호스피스 병동에서 시한부 선고를 받고 삶의 마지막을 기다리는 환자들의 수기나, 그들을 보살피는 의료진의 기록, 또는 종교 지도자들이나 영적 스승들이 쓴 책들 정도였다. 몇 년전 부검을 전문으로 하는 법의관이 자신의 경험을 기록한 책도 죽음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조명하여 신선했던 기억이 난다. 마침 그(유성호 교수)가 남긴 짧은 평이 이 책의 뒷 표지에 실려 있었다. 죽은 자들이 남긴 흔적을 청소하는 사람이 바라 본 죽음이라는 기존에 없던 참신한 관점 때문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의 구성은 내용에 따라 크게 두 장으로 구분된다. '특수청소업'의 '특수'라는 단어 뒤에 숨어있는 '죽음'과 '청소'라는 단어가 가지는 '치우는 업', 이 두 키워드에 따라 내용을 구분하였다. '1장 홀로 떠난 곳을 청소하며'는 그가 만났던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있고, '2장 조금은 특별한 일을 합니다'는 그가 하고 있는 '직업'에 대한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이 작가가 어떻게 이런 일을 하게 되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저자는 시를 전공했고 출판과 트렌드 산업에 종사하다가 전업작가의 꿈을 위해 산골생활을 한다. 그리고 취재와 집필을 위해 일본에 살면서 죽은 이가 남긴 것과 그 자리를 수습하는 일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했다. 그의 특수청소업에 대한 인연은 일본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 와서 특수청소 서비스회사를 설립하여 현재 종사하고 있다. 책에 소개된 저자의 과거로는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이유로 이 일에 뛰어들게 되었는지 알기 어렵다. 나에게 의미있게 보이는 것은 그가 '시'를 전공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여러번 놀랐다. 바로, 저자의 작문실력 때문이었다. 특히 그가 구사하는 어휘는 다양하고 세련되었다. 그의 문학적 구사력의 절정은 '왜소한 밤의 피아니즘'이라는 글에서였다. 글을 읽는데, 화면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피상적으로 보면 동떨어진 이야기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동안 서로 절묘하게 이어진다. 현실과 과거 기억 사이의 장면 전환이 기묘하게 시간의 간격을 널뛰기 한다. 작가가 영화 시나리오를 써도 잘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잘 못쓰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대표적인 팁으로 "문장 호흡을 짧게 하라"는 것이 있다. 한 문장이 길어지면 주어나 서술어의 일치가 깨지거나 비문이 생길 가능성이 커진다. 하지만 그의 문장은 짧으면 짧은대로 길면 긴대로 읽는 사람이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사진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특히 현장에서 그가 하는 작업에 대해 서술한 글에서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다.


이런 이유로 나는 그가 과거에도 책을 냈던 적이 있었는지 찾아보았다. 동명의 다른 작가가 쓴 책은 있었으나 그가 쓴 것으로 보이는 책은 없었다. 조심스럽게 장담하건데, 그는 분명히 또 책을 낼 것이다. 이런 필력을 가진 사람을 출판사 직원들이 가만히 둘 리가 없다. 에필로그에 아내에게 감사를 전하는 말에서 그의 아내 또한 글쓰는 사람임을 알수 있었다. 표현에 능한, 글쓰는 작가 부부의 부부 싸움은 얼마나 고상하고 문학적일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도 잠시 해본다. 이런 이유로 그의 프로필에서 '시'를 전공했다는 부분이 나에게 무게감 있게 보인 것이다.


우선 그가 만났던 죽음들을 통해 그의 일이 어떤 것인지 소개해본다. 시체는 장의사들의 영역이고 그에게는 시체를 수습한 후 연락이 간다. 그래서 그가 직접 시체를 마주할 일은 잘 없는 것 같다. 대신 죽은 사람의 마지막 흔적들을 마주한다. 한 건이 얼마나 힘들지 아닐지는 '죽은지 얼마만에 발견되었는가'에 달렸다. 원룸의 고독사나 자살의 경우 죽은지 한참 지나서야 발견되는데, 이 일로 경험이 충분히 쌓인 저자는 문 앞에만 가도 그 냄새를 알수 있다고 했다. 의뢰인의 요청을 받고 찾아간 '현장'의 문 앞에서, 그 문을 열기 전 항상 한숨을 고른다는 말 익숙해질 수 있는 일과 익숙해질 수 없는 일은 분명 따로 있음을 느끼게 한다.



현장의 모습은 다양하다. 이 책에 나오는 자살의 경우 대부분이 목을 매는 것 또는 착화탄을 피워 죽는 것이다. 줄을 거는 대상은 가스배관, 냉장고, 벽걸이 못 등이 나온다. 목을 맬 줄로는 빨랫줄, 인터넷 랜선 같은 것도 있었다. 착화탄의 경우는 온 집안의 틈이 다 테이프로 막혀있다. 사람이 침대에 누운 채 죽은지 오래 지나 발견되면 피는 아래로 흘러 굳어져 매트리스 안에서 덩어리가 되어있고, 썩으면서 뿜어낸 기름기는 주변 가구에 뭍어 난다고 한다. 특히나 이 책에 나왔던 것 중 끔찍한 장면은 사람과 침대가 맞붙은 자리에 썩어 녹아내린 사람의 피부조직이 그대로 말라 붙어 있어, 마치 스타킹을 벗어놓은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길가에 죽은 동물을 치우는 것도 비위가 걸리는데, 사람의 형상을 간직한 채 눌러 붙어 있는 시체 조각을 처리하는 것은 얼마나 고역이겠나. 고독사를 그린 장면 중에 기억에 남은 것도 있었다. 죽은 사람이 얼마나 괴롭게 기침을 하며 죽어갔던지, 침실 천장에 산란된 피의 흔적이 그 고통을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치우고 싶지 않은 것이 사람의 썩은 시체가 아닐까. 이미 마지막 단계까지 갔기에 세상 못 치울 것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죽은 사람의 집을 치우는 것 외에도 일반사람들은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는 청소의뢰가 들어오기도 한다. 그 중 하나는 썩은 고양이 치우기였다. 아파트 집 안에 열마리의 고양이가 폐사해 썩어있었다. 고양이의 사체라고 알아보기도 힘든 모양, 복부가 파여진 사체도 나온다. 그는 사체가 만들어 내는 악취와 가스를 막기 위해 방독마스크를 쓰고 청소를 한다.


또 인상적인 케이스 하나는 고시원이었는데 믿기 힘든 화장실이 있었다. 휴지와 똥으로 처음 변이 막혔을 때 뚫지 않고, 그 위에도 또 볼일을 본 것이다. 그렇게 쌓고 쌓여 변기가 가득 차자, 그 후로 공용 화장실을 쓰고 있었던 의뢰인은 퇴실할 때가 되어서야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그를 부른 것이다. 역시나 방독마스크를 하고 고무장갑을 낀채 똥을 손으로 걷어 비닐에 담는 장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오래된 상부의 똥들이 이미 딱딱하게 굳어져 있고 손으로 부서트려 퍼내자 아래쪽엔 축축한 변들이 있다. 아랫쪽에 있는 변을 손으로 끄집어 낼 때는 똥이 미끌거려 잘 안꺼내 지는 것까지 묘사하고 있었다. 그는 이 일을 해오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죽은 사람의 뒷정리를 한다는 그의 직업이 가지는 특수성 때문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다. 일을 배우겠다고 오거나, 언론이나 학교에서 인터뷰가 들어오기도 한다. 아직 공식적인 직종 분류를 가지지 못해 관공서에서 협조요청도 온다. 위에서 언급한 그의 필력으로 저자는 인터넷에 글도 올리는 것 같은데, 한번은 그것을 보고 모르는 사람이 연락이 온다. 척화탄으로 자살을 하려면 몇개가 있어야 하냐는 물음이었다. 그의 기지로 경찰의 도움을 받아 그녀를 찾아내 자살을 말렸던 에피소드도 있다.



죽음의 흔적을 접하다보니 자살하는 이들의 공통점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것은 자살하는 도구가 그의 직업과 연관이 되더라는 것이다. 화학약품을 납품했던 어떤 사람은 자신의 몸에 독극물을 주입하여 자살했고, IT회사에 다니던 어떤 사람은 랜선에 목을 매 자살했다. 농촌 사람들이 주로 선택하는 자살도구는 농약이였다. 생계를 위해, 살기 위해 배운 직업능력이 종국에는 죽기 위해 사용되는 아이러니함이 조명되어 있다.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소위 직업병이라는 것이 있다. 작가가 일하러 갔을 때 가장 먼저 현장을 감지하는 감각은 후각이라 한다. 문을 열면 시체와 배변이 만들어 낸 악취가 제일 먼저 작가를 맞이하는 것이다. 하루는 까페에서 차를 마시는데, '그 냄새'를 감지한다. "아, 여기 천장 덕트 어딘가에 고양이가 죽어있겠구나."라는 생각에 주인에게 말을 하자니 이상한 사람 취급받을 것 같고, 안하자니 직업의식이 가민있질 못한다. 로스팅 냄새가 판치는 가운데, 공조기에서 나오는 공기에서 '그 냄새'를 먼저 맡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직업병이라 했다. 또 죽음의 현장을 자주 보다보니 묘하게 그 쪽 방면으로 촉도 좋아지는데, 때론 너무 과할 때가 있는 것이다. 옆집 대문 앞에 배달된 물건이 며칠동안 고스란히 있는 것을 보고, 아무래도 무슨 일이 생긴 것 아닐까, 경비실에 알려서 문을 따야하나 말아야하나 심각하게 고민한다. 하지만 결국 며칠후 옆집 사람의 귀가로 상상속의 자살사건은 일단락된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그의 말처럼, 하도 죽음을 많이 겪다보니 어떤 상황에서도 죽음의 가능성이 먼저 떠오르게 되는 직업병이 생긴 것이다.


아쉽게도 이 책에는 그가 일본에서 죽은 이가 남긴 것과 그 자리를 수습하는 일에 관심을 두게되었다는 정도만 언급되어 있다. 솔직히 그의 일은 평범한 일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무슨 사연이 있길래, 죽은 이의 뒷정리를 하는 일을 하기로 결심하게 되었을까. 이에 대한 답은 나와 있지 않다. 말없이 죽은 사람들의 사연을 그가 알수 없듯, 이런 일을 하게 된 그의 사연을 우리는 알수 없다. 무엇이든 반복되면 익숙해지고 덤덤해지기 마련이다. 그도 죽음에 익숙해질 법도 한데, 유독 그의 글에서는 울었다는 이야기가 많이 보였다. 형의 죽음에 정돈된 방 속에서 소리없이 우는 동생의 들썩이는 어깨가 애처로와 그는 눈물을 흘린다. 그 소리가 행여 동생에게 방해가 될까 시끄러운 장비를 틀어 소음 속으로 숨긴다. 글을 읽다보면 그가 참 마음이 여리고, 따뜻하고, 정 많은 사람이란 것이 느껴진다. 그런 사람이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을 하게되었을까. 다시한번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이 책을 읽고 아는 지인에게 이런 직업이 있다고 이야기 했더니 그런 일도 있냐며 깜짝 놀란다. 처음에는 장의사를 말하는 줄 알았단다. '시체' 자체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시체가 남긴 '흔적'을 다루는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런데 그걸 왜 다른 사람이 치우냐고, 가족들이 치우면 되지 않느냐는 물음이 되돌아 왔다. 화목한 가정이 있고, 죽음을 잘 목격하지 못한 평범한 사람이기에 충분히 그런 말을 할 법하다. 나는 치울 가족이나 친척이 있어도 접근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사람이 죽고 바로 사망사실을 알면 그나마 보통 사람이 뒷정리 할수 있는데, 시간이 좀 지나고 나면 썩어서 가족이라도 쉽게 근처에 갈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말을 해주니 이해를 한다. 그럼 이런 반문이 떠오를 것도 같다. "일반청소부들이 치우면 안되나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번째는 비위의 문제였다. 아무리 더러운 것을 치우지만 사람 핏자국이나 살점을 치우지는 못하겠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정말 드물게 그것을 치울 일반청소부가 있다하더라도 기술적인 문제로 치워진 자리에 다시 구더기가 나오고 썩은 냄새가 사라지지 않아 도로 특수청소업을 찾는다는 것이다. 나는 과거 서양권 영화였던 것으로 얼핏 기억나는데, 거기서 주인공의 직업이 특수청소부였기에 이런 직업이 앞의 지인 만큼 생소하지는 않았다.



죽은 이가 목 매달았던 끈을 자신이 푼다는 글을 읽었을 때 나에게도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과거 우리 어머니는 숙박업을 하셨다. 하루는 손님이 나오지 않아 들어가보니, 재난시 건물탈출을 돕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설치된 간이완강기에 젊은 여인이 목을 매단채 죽어있었다. 자살현장을 제일 먼저 발견한 어머니가 얼마나 놀래셨을까. 하지만 어머니는 프로였다. 곧바로 신고를 하고 줄을 풀어 시체를 내렸다. 당국이 시신을 수습해가고 나서 방안을 청소하신 것도 어머니셨다. 어머니가 프로로 보였던 주요한 이유는 한동안 그 방에 들어가지 못했던 청소 아주머니와 아버지의 상반된 모습 때문이었다. 물론 작가처럼 시간이 한참 지난 흔적을 치우는 것은 아니었지만, 죽음이라는 것이 주는 거부감도 있었을 텐데, 어머니는 담담하게 뒷정리를 하셨다. 어머니는 죽은 여인이 참 예뻤는데, 그런 창창한 아가씨가 도대체 어떤 사연이 있길래, 저런 선택을 했을까 굉장히 안타까워 하셨던 기억이 난다.


죽음의 흔적을 정리한다는 이야기에서 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우리 외삼촌은 장의사를 하신다. 내 사촌인 그의 두 아들도 장의사의 길을 가고 있다. 살인사건이 발생하면 경찰에서는 공공서비스 차원에서 뒷정리를 해주는 것이 있나보다. 그럴 때 경찰이나 검찰은 작가를 찾는다고 한다. 우리 삼촌도 경찰에서 의뢰를 받는다. 도로에서 사상사고가 나면 끔찍한 경우에는 사람의 '파편'이 사방에 튄다. 로드킬을 당해 죽은 동물도 비위 약한 사람은 잘 보지도 못한다. 그런데 사람이 죽어서, 특히 살점이 여기저기 튀어있으면 경찰이나 구급대원도 치우기 분명 꺼려질 것이다. 그럴 때 외삼촌에게 연락이 온다. 장갑을 끼고 살점 하나하나를 주워모아 챙겨주고 핏자국을 지워주면 임무가 끝나는 것이다.


남방불교에서는 삶의 무상함을 깨닫기 위해 '부정관'이라는 수행법을 한다. 시체를 두고 보면서 수행하는 것이다. 죽은 이의 육체를 보면서 삶이 얼마나 무상한 것인지, 나라할 것이 본래 없으며, 나라고 여기는 이 육체 또한 영원할 수 없음을 머리의 알음알이가 아닌 직접 체험을 하게 하는 것이다. 장의사나 특수청소부들은 생계를 위해 늘 죽음을 가까이 하는 사람들이다보니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늘 부정관 수행을 하는 셈이 된다. 그래서일까, 죽음에 가까운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서는 수행자의 향기가 난다. 작가의 글에서 이런 문장이 있었다. "내가 이곳에 있는 진짜 이유는 무엇이고, 지금 나는 무엇을 발견하려고 하는가?" 그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화두'는 불교에서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궁극적인 공안이다. 불교의 화두를 연상하지 않더라도, 인류의 문명이 발달되 온 이래, 수 많은 철학자들이 고민했왔던 저 질문을 특수청소부가 현장에서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는 것이다, 죽음이 주는 무상의 지혜가 작가에게 구도자나 철학자의 향기를 베게하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죽음에 관한 책을 읽으면 살아 있음에 감사하게 된다. 또 당연한 것들이 소중하게 여겨진다. 그것만으로도 죽음에 관한 책의 소용은 충분하다. 이 책은 거기에 작가의 '특수한' 직업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역할도 한다. 또 문학적 감수성 짙은 작가가 처첨한 현장에서 얻은 깨달음도 전하고 있다. 무엇보다 작가의 훌륭한 필력 덕에 참 잘 읽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작가가 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도 알게 되었고, 우리가 죽은 후에 어떤 모습이 되는지 실감나게 알게 되었다. 작가가 죽은 이들의 말라 붙은 살점과 까맣게 굳어버린 피를 치우며 망자에게 동정을 느낄 때 나도 함께 애도했다. 자살하려는 일면식도 없는 어느 여인을 구해주고 비록 '나쁜새끼'라 욕을 듣지만, 죽지 않았기에 욕도 할수 있는 것이 아닌가라며 기뻐하는 그의 모습에서 인간미도 느껴졌다. 다른 죽음에 관한 기록들이 죽음의 발생에서 끝이 나지만 이 책은 죽음의 발생에서 시작한다는 것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우리가 그동안 잘몰랐고 알기 어려웠던 죽음의 현실적인 모습에 대해 이 책을 통해 가늠해보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작가가 이 책의 의미에 대해 언급한 문장을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죽음에 대해 경도되고 그 엄숙함에 자니치게 몰입한 탓에 죽음에 관한 언급 자체를 불경한 일로 여겼습니다. 어쩌면 이 기록도 그런 면에서는 급진적이라고 할 만한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죽음을 돌아보고 그 의미를 되묻는 행위, 인간이 죽은 곳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삶과 존재에 관한 면밀한 진술은 오히려 항바이러스가 되어 비록 잠시나마 발열하지만 결국 우리 삶을 더 가치 있고 굳세게 만드는 데 참고할 기전이 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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