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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셰익스피어 4대 비극 (1577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금장 양장 에디션) - 햄릿, 오셀로, 맥베스, 리어왕 ㅣ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김민애.한우리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4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 그의 작품을 한편도 읽어보지 못한 사람은 있어도 그의 이름을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영국에는 "셰익스피어는 인도와도 바꿀수 없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에 대한 영국인들의 자부심과 찬사는 대단하다. 알게 모르게 그의 작품은 우리에게 영향을 미쳤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 이야기'하면 대표적으로 떠올리는 커플, '로미오'와 '줄리엣'도 셰익스피어가 쓴 희극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왔다. 나는 그간 귀동냥한 이야기로 추측을 섞어 그의 작품을 대강 줄거리만 알고 있었을 뿐이었지, 작품을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었다.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면 아는 척 고개만 끄덕이는 상태로, 유명한 고전을 읽지 않은 어떤 부채의식 같은 것도 느끼곤 하던 차, 이 책 <초판본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을 만나게 되었다.
셰익스피어(1564~1616)와 그의 작품은 지난 400년 간 전세계인들에게 읽혀져 왔다. <햄릿>만 하더라도 국내에 무려100여 종이 넘는 책이 존재한다. 그래서 막상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으려 할 때 어떤 책을 고를지 고민에 빠지게 될 것이다. '원작'이 존재하기에 사실상 선택의 차이는 '번역'과 '디자인'에 달렸을 것이다.
이 책의 '번역'은 김민애 번역가와 한우리 번역가가 했다. 두 사람 모두 영문학전공 박사과정과 꾸준한 번역활동으로 전문성을 인정받은 사람들이다. 김민애 번역가는 드라마와 연극을 공부한 경험이 있어 극작품 번역에 최적화된 조건을 갖추고 있다. 또 한우리 번역가는 셰익스피어의 여러 작품을 번역했던 경험이 있어 원작가에 대한 이해가 깊다는 강점이 있다. 누가 어떤 번역을 맡았는지 책에서는 뚜렷하게 구분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두 사람이 각 작품을 이미 번역출판 했던 이력을 볼 때, <오셀로>는 김민애 번역가가, <햄릿>, <리어왕>, <맥베스>는 한우리 번역가가 맡았을 것이다. 전문성과 경험을 겸비한 번역가들이기에 신뢰가 간다.
나는 이 책의 최고 강점은 '디자인'에 있다고 생각한다. 방송에 어떤 전문가가 나와 인터뷰하는 장면에 유독 내 눈을 잡아 끄는 것이 있다. 전문가 뒷쪽으로 보이는 책들이다. 병원에 진료를 보러가도 의사 선생님 뒤쪽 책들은 내 시선을 당긴다. 그런 책들은 대게 언어는 영어가 찍혀있고, 두께도 상당하다. '외국어'가 있고 '두꺼운' 두께에 '양장'된 책은 지적인 이미지를 풍긴다. 허영이라 꼬집을 수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지적으로 보이고 싶은 욕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그런 이미지가 고객의 신뢰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한 지인이 사무실에 '소품책'을 비치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
이런 사람들의 마음이 반영된 탓일까, 요즘 출판업계에서는 적당한 높이에 두꺼운 양장, 소위 '벽돌책'이 유행하고 있다. 특히 고전들을 중심으로 '특별 에디션'이란 이름하에 나오는 것 같다. 경우에 따라 두꺼운 두께를 맞추기 위해 여려 작품이 묶이기도 한다. 이 책도 그렇다. 본래 개별로 나온 비극이 '4대 비극'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한 권의 두꺼운 책이 되었다. 거기다 1577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으로 고전 특유의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표지를 싸고 있는 겉지만 걷어내면 마치 16세기 당시 셰익스피어 원본을 소장한 기분이다.
디자인의 화룡정점은 화려한 '금장'에 있지 않을까. 금장은 멋스러움을 넘어 신성한 분위기까지 낸다. 정말로 이 책을 읽고 있는데 "갑자기 성경은 왜 읽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과거 경험에 비추어보면, 금장된 책의 대표적인 단점은 금장이 조금씩 손에 묻어난다는 것이다. 이 책도 그럴 것 같아, 피부가 예민한 나는 살짝 조심스러운 감도 있었다. 하지만 그간 인쇄업계의 금장기술이 발달했는지 몰라도, 이 책의 금장된 부분을 일부러 문질러 봤는데, 묻어나오는 것이 없었다. 책을 '거칠게'대하는 편이라 읽는 동안 금장된 부분이 찍히고 긁히긴 했지만 과거의 경험처럼 손에 금색 반짝이가 묻어나지 않았다. 오래 지켜봐야 확실히 드러나겠지만, 현재까로 볼 때 금장 처리의 완성도는 높은 것으로 평가한다.
고백하건데 평생 안 읽던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갑자기 읽게 된 것은 이 책의 '겉모습'이 풍기는 고상한 이미지 때문이었다. 이렇듯 책은 지식의 전달 수단이라는 기능적인 부분 외에 디자인도 상당히 중요함을 다시 한번 느낀다. 내용만으로 충분했다면 값싸고 편리한 디지털 책에 벌써 종이 책은 멸종당했을 것이다. 이 책의 디자인은 이 책을 매우 특별하게 한다. 고상함에 돈을 이야기하면 뭔가 격이 떨어지는 감이 있다. 그래서일까, 책 정가는 겉지에만 적혀있을 뿐, 책 자체에는 어디에도 가격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세세한 '기분'의 영역까지 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신경 쓴 걸까.
구성에 대해 살펴보면 4대 비극은 <햄릿>, <오셀로>, <리어왕>, <맥베스> 순으로 실려있고, 모든 비극은 5막으로 되어 있다. 비극 제일 앞부분에는 등장인물 이름과 역할이 정리되어 있어, 익숙치 않은 어려운 외국 이름들이 여럿 등장하여 혼란스러울 때마다 참고하니 좋았다. 소설과 달리 극작품이기 때문에 인물의 이름과 대사가 나오고 괄호를 사용하여 상황묘사가 되어있어 머릿 속으로 나만의 극을 연출하며 읽는 맛도 있었다. 지금부터는 내용을 살펴본다.
<햄릿>
햄릿은 덴마크의 왕자다. 왕인 아버지는 숙부(클로디어스)에게 독살당한다. 어머니(거트루드)는 아버지가 독살당하고 며칠이 안되 숙부와 재혼한다. 클로디어스는 햄릿에게 '숙부'이자, 어머니와의 재혼으로 의붓'아버지'이자, 아버지를 죽인 '원수'다. 원래는 아버지가 독살 당한 것은 몰랐으나 아버지 유령이 등장해서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진실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와 재혼한 숙부인 왕은 햄릿에게 태자의 신분을 보장하여 자신의 후계 왕임을 공언하나 이미 부친의 억울한 죽음의 비밀을 알게 된 이상, 햄릿은 복수의 칼날을 간다. 그는 일부러 미친척을 하여 광기 뒤어 숨어 왕과 왕비 싫어할만한 일을 하며 애를 태우고, 숙부에게 달라 붙은 간신배들을 뼈 있는 말로 꾸짖기도 하며, 왕을 죽일 기회를 엿본다.
왕에게는 아첨과 간교에 능한 재상(플로니어스)이 었었다. 재상은 현란한 말재간으로 왕에게 큰 신임을 얻고, 왕은 국사와 더불어 왕실의 문제까지 그에게 의논한다. 햄릿의 이상한 행동에 불안한 왕과 왕비는 그에게 자문을 구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꾀에 자기가 당하게 된다. 왕비의 침실에 숨어 왕비와 햄릿의 이야기를 엿듣다가 햄릿이 왕으로 착각하여 찌른 칼에 죽게 된다.
재상에게는 딸과 아들이 있었는데, 딸(오필리어)를 한때 햄릿이 사랑했지만 아버지의 복수 때문에 멀리하게 되고, 재상인 아버지의 죽음으로 오필리어는 정신이 나가 결국 익사한다. 재상의 아들(레어티즈)은 햄릿에게 복수를 결심하고 왕과 함께 햄릿을 제거할 모의를 한다.
햄릿을 제거하기위해 레어티즈는 그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레어티즈는 칼애 독을 묻히고, 왕은 햄릿의 잔에 독을 타서 햄릿을 죽이기 위한 이중 함정을 만든다. 그러나 레어티즈의 칼은 치열한 결투 중 햄릿의 칼과 바뀌게 되고 둘다 독이 든 칼에 상처를 입게 된다. 또 왕비는 모르고 햄릿의 독잔을 마셔 제일 먼저 죽고, 레어티즈는 죽는 마당에 햄릿에게 왕이 독을 썼음을 알려준다. 햄릿은 왕을 독 묻은 칼로 찌르고, 독이 든 술까지 억지로 먹여 죽인다. 햄릿을 죽이기 위해 왕이 이중으로 준비한 것에 도리어 자신이 당한 것이다. 이후 상처의 중독으로 레어티즈도 햄릿도 죽는다. 결국 어부지리로 엉뚱하게 노르웨이 왕자(포틴브라스)가 왕위를 물려받게 되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비극답게 다 죽는다. 다 죽으니 비극이겠지. 의붓아버지 클로디어스에 대한 원망으로 일부러 미친척 행동하는 태자 햄릿은 아버지 태종에 대한 원망으로 일부러 기이한 행동을 하는 세자 양녕대군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의붓이냐, 친이냐, 복수가 있냐, 없냐의 차이는 있지만 후계를 받은 왕자가 왕에 대한 불만을 고의적 광기로 표출하는 면에서는 비슷해 보였다.
햄릿하면 떠오르는 가장 유명한 대사를 꼽으라면 바로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3막1장)가 아닐까. 너무 유명한 저 대사를 직접 작품 속에서 눈으로 보게 되니 '성지순례(유명한 게시글을 찾아 보러가거나 그 글에 댓글을 다는 일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를 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학창시절 영문학을 전공한 영어 선생님이 "아직 햄릿도 안 읽어봤냐"면서 언급했던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로다."(1막2장)는 아직도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데, 그 대사도 만났다. 이외에도 "친절하되 천박하게 굴지는 마라."(1막3장), "모든 이에 귀를 기울이되 네 말은 삼가야 한다."(1막3장),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 충실해라."(1막3장), "젊은이는 분별심이 없어 탈이지만, 늙은이는 지나치게 걱정해 탈이다."(2막1장), "간결은 지혜의 핵심이며, 장황함은 겉치레에 불과하니."(2막2장), "세상엔 좋고 나쁜 것이 없어, 다만 생각이 그렇게 정해 줄 뿐이야."(2막2장), "신은 여자들에게 하나의 얼굴을 주었지만, 여자는 또 하나의 얼굴을 만들어 낸다네."(3막2장), "우리의 생각은 우리의 것이지만 그 결과는 아니라오."(3막2장)와 같은 대사들은 눈길을 끌었다. 때로는 적절한 비유로 웃음짓게 하고, 때로는 깊은 삶의 지혜를 느낄 수 있게 하는 명대사들이었다.
<오셀로>
오셀로는 베니스의 장군이다. '무어인'으로 소개되어 있는데, 북아프리카에 살았던 이슬람교도를 뜻하는 말이라 한다. 그래서 영화화 된 <오셀로>에서 오셀로 역은 흑인 배우들이 맡는다. 그의 인종적 특징을 언급하는 것은 그에 대한 사회적 멸시와 차별이 상당했음과 동시에 그 모든 부정적 요인들을 극복하고 장군이 될수 있었던 그의 탁월한 능력을 말하기 위함이다. 오셀로는 사랑의 힘으로 출신(흑인)의 벽을 뛰어넘고 정치적 영향력이 막강한 베니스 의원(브러밴쇼)의 딸 데스데모나와 결혼한다.
오셀로에게는 충직한 부관(캐시오)과 그 아래 기수(이아고)가 있다. <오셀로>에서 최고의 악역으로 주인공 만큼 중요한 역이 바로 '이아고'다. 그는 자신이 부관이 되지 못한 것에 원한을 품고 캐시오와 오셀로 사이를 이간질하여 부관자리를 꿰차려는 모략을 꾸민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고 악은 악을 부른다. 이아고의 잔꾀에 속아 오셀로는 사랑하는 아내 데스데모나가 부관 캐시오와 간통한 것으로 오해하고, 결백을 주장하는 그녀를 목졸라 살해한다. 진실을 알고 있는 이아고의 아내(에밀리아)는 사람들에게 진실을 폭로하다 남편 이아고의 칼에 죽는다. 모든 것을 알게 된 오셀로는 이아고를 죽이려 하지만 실패하고 하루 아침에 나라를 구한 덕망있는 영웅에서 아내를 죽인 파렴치범이 된 그는 명예도 잃고 사랑도 잃어 아내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자결한다.
이아고가 저지른 악행으로 비롯된 결과는 참으로 비극적이지만 그가 영리한 것도 사실이다. 그는 기수라는 낮은 신분이지만 상관인 부관과 장군을 포함해 여러 인물들을 언변과 잔꾀로 마음대로 조종한다. 한 개인의 입장에서만 보자면 주어진 제한된 조건을 잘 활용해서 불리한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끌어가는 '능력있는' 인물인 것이다. 씁쓸하게도 세상은 우리에게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나쁜 사람은 벌을 받는다는 교과서가 틀렸다는 사례를 너무도 많이 보여주었다. 힘있고 배우고 가진 사람들은 옳은 곳에 힘을 쓰는 것이 아니라 사리사욕만 채우기 바빴다. 어떤 사람들은 '법꾸라지'가 되어 온갖 나쁜 짓을 하고도 법망의 허점을 찾아 죄를 피하며, 어떤 사람들은 하지도 않은 죄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는 일이 세상에선 벌어진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그러니 거짓말이나 아첨은 잘하는 것이 오히려 미덕이 되고, 그것을 못하는 놈이 바보가 되는 씁쓸한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서 악당은 훌륭한 '처세가'로 불리게 된다.
옮긴이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많은 현대인들이 이아고를 비난하기보다 그의 입장에 공감하거나 그를 변호하리라는 불길한 느낌을 떨칠 수 없다." 나 역시 그녀의 말에 공감하면서도, 동시에 이아고가 영리하고 처세술 좋은 사람으로 보였기에 그녀가 말한 '많은 현대인'에 나도 포함되는 것이 아닌가 풍진에 물들어버린 내 인식이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그녀의 '불길한 느낌'은 '정확한 예상'으로 받아들여져 씁쓸해진다.
술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 소개한다. 나는 체질상의 이유로 술을 못 마시는데, 16세기의 글에서 내가 했던 생각이 담긴 대사가 있어 반가워 소개한다. "술을 마시면 정신이 아득해지고 기분도 안 좋아지는 편이라. 예법에 오락을 즐기는 다른 관습이 생겼으면 하고 얼마나 바라는지 모르겠어."(2막3장) 과거 술을 못마셔서 고민이 컸던 적이 있다. 모든 모임 장소에는 어김없이 술이 등장하는데, 술 못마시면 실망과 비난, 원샷은 미덕인 분위기 속에서 술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은 술자리의 분위기 깨는 '공공의 적'이 되어버린다. 지금은 술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분위기도 많이 바뀌어, 남자들도 술집 외에 까페에서도 만나고, 술을 강요하는 문화는 많이 사라졌다. 술 외에는 오락거리도 별로없고 지금처럼 다양한 가게도 없던 시절, 저 대사를 하는 인물의 고민이 남일 같지 않게 읽혔다.
셰익스피어는 영국의 작가이다 보니 아무래도 영국 중심의 인식을 드러내는 대사도 보인다. "덴마크 사람도, 독일 사람도, 배불뚝이 네덜란드 사람도 영국 사람들에 비하면 새발의 피지요."(2막3장)에서 영국인에 대한 자부심이 돋보인다. 그리고 "무지한 인도인처럼"(5장2절)에서는 타민족인 인도인에 대한 멸시도 보인다. 셰익스피어는 16세기 말 사람으로 17세기 초까지 살았다. 그 시기는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 국가로 만들기 위해 서서히 사전작업을 해가던 때이다. 그러다 17세기 중반에 동인도 회사 설립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인도진출이 시작된다. 인도를 집어 삼키려는 그 시절 영국인들의 우월의식은 제국주의의 토대가 되었으리라.
수명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는 대사가 있어 소개한다. "아, 사내 인생 살아봤자 삼만육천 일. 술 한잔 마신들 어떠하리."(2막3장)에 나온 것으로 보아 16세기를 살았던 셰익스피어는 사람의 생을 100년으로 보고 있음을 알수 있다. 같은 시기 16세기 일본에는 '오다 노부나가'라는 다이묘(지방영주)는 '인생 오십년'이라는 시를 남겼다. 참고로 이 인물은 자신보다 자신의 신하(가신)가 우리에게 더 잘 알려져 있다. 바로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다. 같은 시기 '동양'에서는 '인생 오십'을 노래했고, '서양'에서는 '인생 백년'을 노래했다는 것이 흥미롭다. 실제는 어떨까. 셰익스피어 당시 영국의 통치자는 엘리자베스 1세로 그녀는 70세에 죽었다. 셰익스피어 본인은 52세에 죽었다. 오다 노부나가는 48세에 죽었으나, 살해당한 것이므로 제 수명으로 보긴 어렵다. 당시 일본의 통치자였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61세에 죽었다. 같은 시기 조선의 통치자는 선조임금으로 56세에 죽었다. 통계적 의미를 가지기 어려운 표본수이지만 현재까지 나열한 것만 보면 서양이 동양보다는 오래 살은 것으로 보이나, 100과 50의 두배 차이를 낼 만큼은 아닌 것 같지 않은가. 갑자기 '오십보, 백보'라는 속담이 떠오른다.
<오셀로> '공식적 주인공'은 '오셀로' 장군이지만, 극적인 효과, 문학적 갈등, 전개의 긴장감을 주면서 관객들을 잡아끄는 역할은 사실상 '이아고'이기에 <오셀로>에 '오셀로'는 없어도 되지만 '이아고'는 없어서는 안된다 할 정도로 이아고의 비중은 크다. 그런데 나는 동명의 다른 '이아고'를 안다. 유명한 디즈니 만화영화 <알라딘>의 악당 두목은 '자파', 그의 부관이자 최측근인 앵무새가 있는데, 그의 이름이 바로 '이아고'다. 영리하지만 교활하고, 거짓, 배신을 밥먹듯 하며, 속임수와 이간질에 능하고, 앞에서는 말못하고 뒤에서 욕하는 비굴한 성격을 가진 <알라딘>의 '이아고'는 <오셀로>의 '이아고'와 많이 닮아있다. 어쩌면 <알라딘>의 작가가 셰익스피어에 대한 '오마주'로 '이아고'의 이름을 끌어다 쓴 것은 아닐까.
<리어왕>
리어왕에게는 세 딸이 있었다. 늙은 그는 이제 상왕으로 은퇴를 하고 싶었다. 딸들에게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하도록 경쟁을 붙여 그에 따라 유산을 물려준다고 선포한다. 첫째(거너릴)와 둘째(리건) 모두 화려한 수사와 과장된 표현으로 얼마나 아버지 리어왕을 사랑하는지 장황한 말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정직한 셋째(코딜리어)만은 담백하게 있는 그대로 아버지를 사랑하고 존경하고 있음을 말한다. 언니들만큼 거창한 아첨이 없는 그녀의 말에 리어왕은 진노하고, 셋째를 내쫒고 두 언니에게 전 재산을 나누어 준다. 셋째의 억울한 상황을 안타깝게 여긴 프랑스 왕자는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여 프랑스로 데려간다.
리어왕에게는 두 명의 충신이 있었다. 한 충신(켄트 백작)은 그가 셋째 딸을 쫒아낼 때 위험을 무릅쓰고 부당한 처사에 대해 직언했다가 변절자로 낙인 찍혀 추방당한다. 비록 왕은 자신을 버렸지만 왕에 대한 충심은 전혀 꺽이지 않고 고귀했던 출신 마저 버리고 낮은 신분으로 변장하여 후 왕에게 접근, 자신을 종으로 기용해 줄 것을 요청한다. 추호도 그가 켄트 백작인 것을 모른 채 왕은 그가 시중을 들게한다.
한편 또 다른 충신(글로스터 백작)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한 명은 적자(에드거)였고 또 다른 한 명은 서자(에드먼드)였다. 서자는 야망이 크고 영리했지만 성품이 좋지 못했다. 적자인 형이 아버지의 후계자가 되는 순리를 거스르고 순진한 형을 모함하여 아버지와 원수가 되게 만든 후 쫒아낸다. 적자에게는 수배령이 떨어지고 그는 미친 거지 흉내를 내며 자신의 정체를 숨겨 살아남는다.
첫째 공주(거너릴)의 남편은 올버니 공작이고, 둘째 공주(리건)의 남편은 콘웰 공작이다. 탐욕 많은 콘웰에 비해 올버니는 충직하다. 두 공주는 리어왕의 전 재산을 다 상속받고는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고, 빈껍데기만 남은 왕을 쫒아낸다. 심지어 왕을 죽일 음모마저 꾸민다. 쫒겨난 왕은 딸들에게 배신당한 충격으로 서서히 미쳐간다. 두 공주의 욕심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언니와 동생은 서로의 재산을 독차지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충신 글로스터 백작은 쫒겨난 왕을 도우려다 공주의 미움을 사서 성을 뻬앗긴다. 셋째 공주는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프랑스에서 출병하는데, 그 소식을 글로스터 백작에게 알린다. 백작의 서자(에드먼드)는 아버지가 프랑스와 내통했다고 둘째 공주 부부에게 일러바치고, 공주의 남편(콘웰)은 글로스터 백작을 잡아다가 두 눈알을 뽑아버린다. 덕망있던 글러스터 백작이 처참히 당하는 것을 더이상 지켜볼수 없던 하인들이 목숨을 내걸고 저항한 덕분에 백작은 실명된 채 목숨만 간신히 건진다. 하인들의 저항 중 콘웰 공작은 치명상을 입고 결국 죽게 된다. 모함으로 형을 내쫒고, 밀고로 아버지를 쫒아낸 서자(에드먼드)는 드디어 자신이 글로스터 백작의 지위를 차지하게 된다.
첫째 공주는 남편(올버니)이 정의롭고 야망이 없어 불만이었고, 둘째 공주는 콘웰이 죽자 과부가 되었다. 그런 두 공주는 글로스터 백작이 된 서자(에드먼드)를 마음에 품는다. 두 욕심 많은 공주는 아버지의 유산을 독차지하려 서로 경쟁하다가 이제는 한 남자를 두고 경쟁하는 상황에 이른다. 에드먼드는 두 여자 모두에게 양다리를 걸친다. 여인에 대한 욕망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그녀 둘이 가진 재산과 권력을 합치면 사실상 왕이 될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셋째 공주는 아버지 리어왕을 찾아내고 모녀는 눈물 겨운 재회를 한다. 리어왕의 정신은 돌아오고, 딸에게 지난 날의 어리석음에 대한 용서를 구한다. 훈훈한 모녀간의 상봉도 잠시, 안타깝게도 셋째 공주의 프랑스군은 두 언니의 군대에게 패하고 셋째 공주와 리어왕은 포로가 된다. 첫째 공주의 남편(올버니)은 에드먼드가 아내와와 불륜을 저지른 것을 포함해서 그동안 에드먼드가 저지른 만행을 알게 되고 그의 군대를 해산시킨다. 이때 형 에드거가 등장하여 서자 에드먼드와 결투를 신청하고 치열한 싸움 끝에 에드거가 에드먼드를 죽인다. 그 사이 첫째 공주는 둘째 공주를 독살하고 자신도 자살한다. 다 죽는다. 올버니 공작은 포로가 된 리어왕과 셋째 공주를 살리려 했으나 이미 에드먼드가 자객을 보낸 후였다. 셋째 공주는 죽고 리어왕도 죽는다. 모든 오해와 의혹들이 하나씩 밝혀지고 올버니 공작은 에드거에게 왕국을 맡아줄 것을 부탁하며 이야기는 끝난다.
과거 한 개그맨이 "코미디 보다 정치가 더 웃기다"라며 국민정서와 너무도 동떨어져 있는 현실정치를 비꼬던 것이 기억난다. 정치인들이 보여주는 실망스러운 후안무치의 모습에 국민들은 그저 어이가 없어 웃음 밖에 나오지 않으니, 정치인들의 '웃기는 소리'에 개그맨들이 실직하겠다는 풍자였다. 그런데 16세기 영국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나보다. <리어왕>에서 "광대들이 설 자리가 없다네"(1막4장)라는 대사가 나온다. 재물과 권력을 위해 인륜을 저버리는 귀족들의 모습에 대해 광대는 저렇게 말한다. 위의 개그맨의 대사와 <리어왕>의 광대의 대사가 비슷하게 들린다. 4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정치인들이 국민들에게 큰 웃음을 주는 사실은 똑같은가보다. 부디 그 웃음이 실소나 조소 보다는 박장대소가 되는 경우가 많아지기를 바래본다.
당시 작문 스타일이 그랬던 것 일까, 작품을 읽다보면 수사가 참 거창하다는 것을 느낀다. 4대 비극 전체에 이런 경향이 드러난다. 이런 과한 수사법은 고전에서 드러나는 특징이다. 잠을 잘 때도 단순히 '잔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운명의 여신이여, 안녕히 주무시오. 다시 한번 미소 지으시고, 운명의 수레바퀴를 돌려 주시게"(2장2막)라고 신까지 끌어오면서 길게 표현한다. '아니다', '맞다'도 그냥 심심하게 말하지 않는다. "주피터에 걸고 맹세하건대, 아니다.", "주노에 걸고 맹세하건대, 맞습니다."(2막4장) 무슨, 말 길게 하기 대회라도 하는 것 같다. 시대적인 문학 성향이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점잔 떨고, 품위나 기품을 말하던 시대를 대략 상상해 볼수 있어 재밌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과거에 한자를 섞어 말을 길게 하곤 했었다. 편지나 통신문의 첫 문장에는 항상 "기체후 일향 만강하시고..."라는 어려운 수사를 습관처럼 붙여 썼던 것이 기억난다. 언어에도 효율성이 강조되는 요즘 시대에는 무분별하게 글을 줄여 문제가 되곤 하는데, 과거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늘어뜨려 말하는 것이 대세였다는 게 대조적으로 보여 재밌게 느껴진다.
고전에 나온는 대사들 중에는 심오한 철학이나 삶의 깊은 성찰이 담긴 것들이 있다. "우리가 불행에 처하면 흔히 우리의 행동이 그 원인인데도, 그 재앙을 해와 달, 별의 탓으로 돌린다. 내가 태어날 때 아무리 순진한 처녀별이 반짝였대도, 나는 지금의 내 모습 그대로 여전했을 것이다."(1막2장) 운명론을 철저히 거부하고 주체적이고 진취적인 기상이 느껴지는 대사다. 개인적으로 사주팔자나, 점, 운세, 작명을 신뢰하지 않는다. 년월시로 내 운명이 정해진다면 동해, 동월, 동일, 동시에 태어난 사람은 모두 같은 운명이어야 하지 않을까? 작명에서는 한자로 이름을 풀이하는데 그러면 영어로 이름을 만든 외국사람들은 풀이할 운명조차도 없는 것인가. 조금만 논리적으로 생각해봐도 점과 같은 것은 현실적 모순이 많다는 것을 알수 있다. 물론 단순한 재미나, 위로를 얻고 싶어 찾는다면 괜찮겠지만 너무도 맹신하는 사람들은 좀 걱정도 된다. 400년 전의 사람들도 그런 모순을 생각했던 것 같다. 서양에서는 별자리로 운세를 보는데, 태어난 때에 따라 정해지는 별자리가 운명을 결정한다는 별자리 점을 과감하게 부정하고 있다. 우리가 처한 불행은 운명이 아닌 과거로부터 계속된 우리의 행동에서 기인한다는 대사는 정말 통찰력 있는 말이라 생각하고 깊이 공감한다. 누구라도 바라는 바가 있다면 헛된 미신에 기대기 보다는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라는 가르침이 담겨 있다.
그 외에도 "궁핍이란 놈은 신묘한 재주가 있어 하찮은 것을 소중한 것으로 바꿔주는구나"(3장2막), "더 심각한 병에 걸려 있으면 작은 병은 느껴지지 않는 법이다."(3막4장), "마음이 편하면 육체의 아픔을 느끼기 쉽다."(3막4장), "다 가진 인간은 오만해진다면, 다 잃은 인간은 오히려 얻는 법이라네."(4막1장)과 같은 대사들은 곱씹을수록 삶의 통찰과 깨달음이 느껴진다. 네 가지 대사 모두 고난이 오히려 인생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고, 근심을 덜어주며, 육체를 편하게하고, 모든 것을 얻게 해주는 것이라 말해주고 있다. 즉. 고난이 축복이라는 소리다. 고난이 축복인 줄 아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행복한 사람이다. 이런 문장들이 주는 교훈은 그동안 봐온 마음이나 행복을 주제로 하는 책들의 핵심과 맞닿아 있는 것 같다.
<맥베스>
맥베스는 스코틀랜드의 장군이다. 그는 스코틀랜드의 왕(덩컨)과 사촌지간이다. 노르웨이가 스코틀랜드를 쳐들어왔을 때 장군 맥베스는 용맹하게 싸워 승리하고 국민적인 영웅이 된다. 왕의 총애와 신임은 더 깊어지고, 공을 인정받아 새로운 영지도 하사받는다. 성공가도를 달리며 덕망을 얻던 맥베스에게 어느날 마녀가 나타나 그가 왕이 될 것을 예언한다. 그 예언이 잔잔한 맥베스의 마음에 왕좌를 향한 야망을 불러넣은 것일까, 아니면 원래 맥베스에게 그 야망이 있었던 것일까. 맥베스의 성에서 승리 축하연을 열고 사촌인 던킨 왕이 그 성에 묶게 되었을 때 그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전쟁터를 누비던 맥베스였지만 막상 왕을 살해하려고 하니 인정과 양심에 주저하기 시작한다. 이때 맥베스의 아내가 그를 꾸짖고 부축인다. 보통 작품에서 등장하는 여성들은 악행을 막거나 폭로하고 선을 권하는 역할이라면 <맥베스>에서는 맥베스보다 그의 아내가 더 적극적이다. 왕을 살해한 맥베스가 반쯤 정신이 나가 돌아왔을 때에도 피 묻은 칼을 도로 현장에 가져가 술에 골아 떨어진 호위병들이 그런 것인냥 꾸며 죄를 뒤집어 씌우는 것도 맥베스의 아내 작품이다.
다음 날 왕이 살해된 것이 발견되자 충격적인 역모 상황에 성은 난리가 난다. 막 술에서 깨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는 호위병들은 상황을 파악하고 해명도 하기 전에 맥베스에 의해 처단된다. 맥베스는 그들이 누군가의 사주를 받아 왕을 시해한 것으로 사건을 종결해버린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것을 느낀 첫째 왕자(맬컴)와 둘째 왕자(도널베인)는 각각 잉글랜드와 아일랜드로 피신한다. 왕자들이 자취를 감추자 곧 그들이 모든 혐의를 받게 된다. 맥베스는 왕이 되고 그의 아내도 왕비가 된다. 맥베스가 가장 신경 쓰이는 인물이 있었으니 그와 함께 전쟁터를 누볐던 장군 밴쿠오였다. 맥베스는 연회를 열어 밴쿠오와 그의 아들(플리언스)을 초대하는데, 사실 자객이 준비하고 있는 함정이었다. 결국 자객에게 밴쿠오는 살해당하고 아들만 겨우 도주하여 살아남는다. 억울하게 죽은 밴쿠오의 유령은 맥베스의 주변에 나타나 그를 괴롭힌다. 환영을 향해 소리를 지르며 망가져가는 맥베스의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의심하기 시작한다.
귀족 중에 맥더프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뭔가 낌새를 느끼곤 잉글랜드에 있는 첫째 왕자(맬컴)를 찾아간다. 잉글랜드에서 병사를 일으켜 부왕의 복수와 스코틀랜드의 수복을 권한다. 그러는 사이 맥더프의 배신을 눈치 챈 맥베스는 그의 성에 자객을 보낸다. 다행히 맥더프는 잉글랜드에 있어 화를 면하였으나, 애꿎은 그의 가족들은 처참히 살해당한다. 왕이 되는데 죄 없는 피를 너무도 많이 흘린 탓에 강인하던 맥베스의 아내도 두려움과 죄책감에 서서히 미쳐가기 시작한다. 깨끗한 손에 계속 피가 지워지지 않는다며 몇 번이고 씻는 이상한 행동을 보이다가 결국 자살한다. 잉글랜드에서 왕자 맬컴과 귀족 맥더프가 끌고 온 군대는 맥베스의 군대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 전투 중 맥베스는 맥더프에게 죽는다. 이렇게 맬컴은 아버지의 복수에 성공하고 스코틀랜드의 왕이 되면서 이야기는 끝난다.
민망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하나 할까한다. '음주 후 관계시 발기가 잘 안되는 것'은 비뇨기적 의학 상식에 해당한다. 체질에 따라 조금 다를 수 있겠지만 일반론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갑자기 뜬금없이 '19금' 느낌의 이야기를 꺼내서 놀랐을 것 같다. 이 말을 꺼낸 이유는 이런 언급하기 민망한 증상에 대해 셰익스피어가 너무도 '문학적'으로 표현해 놓았기에 흥미로워 소개하려 한다. "(술은) 색욕을 자극시켰다가 안 했다 합니다요. 욕망은 일으키되, 실행 능력은 빼앗으니 말이죠. 고로, 과음은 색욕에 관해서는 애매한 말로 거짓을 일삼는 놈입니다요. 그것은 그놈을 일으켰다가 쓰러뜨리고, 부추겼다가 힘을 빼고, 설득해 놓고는 실망시키고, 착수시켰다가 꽁무니를 빼 버린답니다."(2막3장) 어쩌면 단순히 지나칠 수 있는 생리적 현상을 400년 전의 세익스피어는 술을 의인화하여 해학적으로 묘사해놓았다. 술은 성욕은 돋우지만 발기는 되게 않게 하는 것을 두고 '거짓을 일삼는 놈'이라고 표현한 것이 재밌다. 웃음이 빵터지는 사람도 있을 것 같고, 무슨 소린가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더 이상 설명하면 글이 이상하게 흐를 것 같아 여기서 멈춘다. 혹시 이해가 안되더라도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 시간이 지나면 다 알게 되니까.
셰익스피어의 비극에서는 친족간의 살인이 많이 등장했다. <햄릿>에서는 왕이 되기 위해 형을 독살한 아우(클로디어스), 의도치 않게 아내를 독살하는 남편(클로디어스), <오셀로>에서는 외도를 의심하여 아내를 목졸라 살해하는 남편(오셀로), 진실을 폭로하는 아내를 막기 위해 칼로 찔러 죽이는 남편(이아고), <리어왕>에서는 유산과 남자 때문에 동생을 독살하는 언니(거너릴), 더 이상 뽑아 먹을 것 없는 아버지를 암살하려는 음모를 짜는 자매, <맥베스>에서는 왕좌를 위해 사촌을 칼로 죽인 장군이 나온다. 가까운 관계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사건은 비극을 더욱 비극적으로 만들고 있다.
또 눈에 띄는 것은 유령이다. 셰익스피어는 유령이라는 장치를 잘 활용했다. <햄릿>에서는 아버지가 독살당한 것을 몰랐던 햄릿에게 아버지의 혼령이 나타나 진실을 알려준다. <맥베스>에서도 암살당한 밴쿠오 장군의 혼령이 나타나 맥베스를 두려움과 공포로 망가뜨린다.
책의 말미에는 옮긴이들이 각 비극에 대해 평한 글이 실려있다. 자신이 작품에서 보았던 것과 옮긴이가 보았던 것을 서로 비교해 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나는 그들의 글을 읽으며 내가 너무 작품을 띄엄띄엄 읽은 것은 아닌가 돌아보았다. 분명 같은 작품을 읽었는데 옮긴이들은 훨씬 더 많은 것을 보고 있었다. 그들의 관점을 가지고 다시 작품을 읽는다면 작품이 또 다르게 느껴지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햄릿>에서는 햄릿에 대해서 뒤틀린 시대를 바로 잡으려는 근대적 인물이라 평했다. 보통 '햄릿'하면 아버지의 복수를 질질끄는 우유부단한 이미지를 떠올리는데 거기에 대해 설득력 있는 논조로 반박하고 있어 참신하게 느껴졌다. <오셀로>에서는 이아고의 내면에 악이 어떻게 진화해갔는가 하는 관점을 제시한다. <리어왕>에서는 'Nothing'이란 키워드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맥베스>에서는 위에서 나도 언급했듯 맥베스 아내의 남성적 세계에 대한 도전을 주목했다. 타인은 어떻게 작품을 보았는가 하는 관점의 공유는 우리가 같은 작품을 보다 더 풍부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인다. 말로만 듣던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직접 읽으며 그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니, 주변에 그의 작품을 공연하는 포스터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분명 포스터들이 내가 이 책을 읽기 기다렸다가 지금에야 '짜잔'하고 나타난 것은 아닐 것이다. 늘 공연은 있어왔고 포스터도 있었을 것인데 내가 작품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그것들이 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본래 극작품은 활자로 읽는 것이 아니라 연출을 보기위해 만들어 진 것 아니던가. 작품을 글로 읽었기에 이제 전반적인 내용은 알고 있다. 하지만 각 장면들을 실제 배우들은 어떻게 살려낼지 궁금해져 공연에 관심이 간다. 책은 이전에는 관심갖기 않았던 것에 관심을 갖게 해주거나,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볼수 있도록 해주기에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고 우리의 시야를 넓혀 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는 한번 읽어봐야지 했던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드디어 읽었다. 이젠 어디선가 셰익스피어에 대해 이야기가 나오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다. 400년 동안 전세계인들에게 사랑받아온 고전 중의 고전을 읽어야 하는 밀린 숙제가 해결된 기분이다. 이 중에도 나와 같이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한번 읽어봐야 할텐데..."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있다면 이 책 한권으로 털어버리면 어떨까. 분명 "사람들이 이래서 고전을 읽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아직 보지 않은 사람들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촌스럽거나, 지루하지 않고, 공감과 재미뿐 아니라 지혜도 배울 수 있는 <초판본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을 이번 기회에 도전해보면 좋겠다. 900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에 처음에는 압도될 수도 있으나, 분명 어느새 마지막 장을 넘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불후의 명작이 그러한 명성을 얻게 된 것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