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다고 말해도 괜찮아요 - '천삼이' 간호사의 병동 일기
한경미 지음 / 북레시피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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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병원 간호사의 직업적 어려움은 나의 상상을 초월했다. <아프다고 말해도 괜찮아요>는 한 대학병원 간호사의 병동일기이다. 여기에 나오는 내용들은 연신 나에게 충격을 주었다. 우리나라 대학병원의 간호사들이 정말 이렇게 일하고 있었나. 내가 너무 모르고 있었나보다. 중노동도 이런 중노동이 없었고 감정노동도 이런 감정노동이 없었다. 의료분야에 종사하시는 분들은 경험으로 혹은 들어서 아는 내용일지 모르겠지만, 나처럼 다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보면 놀랄 것 같다. 이래서 에세이를 읽어야 하나보다. 단순히 겉으로 보여진 것만으로는 알기 힘든 다른 사람이들의 삶에 대해 좀 더 알게되니 말이다.

우선 저자부터 소개해야겠다. 저자의 이름은 '한경미', 그녀의 필명은 '천삼이'이다. 흔히 간호사를 백의의 '천사'라 부른다. 그녀는 스스로 '천사'가 되기엔 부족하다며 '천삼'이라 이름지었다. 처음에는 겸손의 의미로만 생각했는데 그녀가 이 일기장에 적은 반성문과 고해성사 같은 글을 읽으며 이 필명에는 약간의 자조도 섞여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현재 9년차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그 기간동안 전쟁터와 다름없는 병동 내의 산전수전으로 1990년생이라는 젊은 나이지만 고생으로 쌓인 삶의 경륜은 중년의 내공을 넘어 있었다. 이 책에서 드러난 그녀의 성격은 강하면서도 여리고, 인정이 많으면서도 까칠했기에 한마디로 그녀를 설명하기란 참 어렵지만, 그 모든 저변에 있는 그녀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책의 구성은 4개의 장으로 나누어 그녀의 일기를 담고 있다. 내용뿐 아니라 형식에서도 일기답게 상단에는 글 쓴 날짜가 기입되어 있다. 내용과 연관되는 일러스트도 중간마다 그려져 있어 독자들의 공감을 도왔다. 생각나는 대로 그날의 사건을 편하게 쓴 그야말로 일기같은 글도 있었고 제목이 붙은 형식을 갖춘 글도 있었다. 짧은 글 중에는 시처럼 읽히는 글도 있었고 산문같이 긴 글도 있었다. 일기는 2016년 9월 19일에서 시작으로 2020년 4월 10일까지 시간순으로 실려있다. 프롤로그는 있으나 에필로그가 없어, 정신없이 그녀의 일기를 읽어오던 나는 손끝에 더 넘길 뒷장이 없는 것을 감지해서야 책이 끝난 줄 알게 되었다. 묘한 아쉬움을 남기며 책은 그녀의 성격처럼 쿨하게 끝났다.

일단 그녀가 뭘 목격하고 살았는지 언급해야 이야기가 쉬울 것 같아 몇 가지 사건들을 소개한다. 우선 주인공은 9년의 근무기간 동안 병동이동이 있었지만 이 일기에서는 주로 소화기내과 병동에서 근무하던 시기의 이야기가 실려있음을 밝힌다. 5호실이 초토화 된 이야기부터 해보자. 6인실인 5호실에 한 아빠가 알뜰살뜰히 돌보던 아이가 죽었다. 그 옆에서 치료받던 할아버지는 함께 치료받던 어린 아이가 죽는 것을 보고는 희망의 끈을 놓으셨는지 하루가 다르게 앓다가 돌아가신다. 또 다른 환자는 계속되는 수술에 지쳐서일까, 병동의 분위기에 쓸린 건일까. 차라리 수술할 바에는 죽어버리는 게 낫겠다고 목을 맨다. 한 병실, 세 사람의 죽음이 불과 일주일 만에 일어난 것이다. 보통 사람은 평생 살면서 겪을까 말까한 일들을 저자는 자주, 다양하게 경험한다.



모르핀을 맞으며 '치료를 받아도 왜 아프냐'고 따져 물으며 욕하다 이내 눈물을 흘리며 '홧김에 그랬다'고 사과하던 그 암환자는 3일 후 죽는 날까지 억울해하다 간다. '왜 걷지를 못하냐'고 할머니의 암 말기를 부정하고 싶던 할아버지와 죽은 환아를 붙잡고 병실이 떠나가라 서럽게 울던 아버지. '우리가 똑똑하고 더 배웠으면 아빠가 더 살 수 있었을 거'라 아쉬워하던 기름 때 묻은 작업복 입은 모녀의 넋두리. '내 딸 데려갔으면 나보다 오래 살아야지'하고 죽은 사위를 잡아흔들던 장모. '더 이상의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없을 것 같다'라는 최후의 통보를 받은 환자들과 퇴근하고 다시 출근하면 비워져 있던 침대들. 그녀가 마주하는 죽음이 잦아도 너무 잦았다. 본래 병원이 그런 곳이다마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피부로 체감되었다.


죽음도 뒷정리를 해줄 가족들이 있으면 그나마 나으련만, 한 할머니의 죽음은 참 딱했다. 찾아오는 가족도 없던 할머니는 결국 임종을 맞이하고 그제야 아들이란 사람이 병원에 온다. 그런 아들이 한다는 말이 "제가 돈이 없어서 그런데요. 시체를 놔두고 가면 어떻게 되나요..." 하고 묻는 것이다. 딱하다. 죽은 할매도, 살아있는 아들도. 일거리가 없어진 간병인은 그 아들에게 간병비를 요구하고 둘은 옥신각신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살아있었던 할머니의 입가에는 먹다가 뭍은 고춧가루가, 돌아가시며 내놓은 대변에는 아직도 온기가 남아있다. 저자는 모두에게 외면받는 할머니의 말년이 너무도 불쌍하여, 할머니의 머리부터 똥꼬까지 평소보다도 더 깨끗하게 닦아 드리곤 오실 때 입고 오신 옷을 입혀 드린다. 한 인간의 말로가 참 애달프다.


그녀는 참 많은 죽음을 목격한다. 길가던 사람의 죽음이 아니라 방금 전까지 자신이 돌보던 '관계있는' 사람이 죽는 것이다. 환자와 이야기도 하며 인간적인 정도 생겼고, 병이 나을 수도 있다는 희망적인 격려도 나눈 사이라 그 심리적 충격은 더 컸으리라. 하도 환자들의 죽음을 많이 보다보니 저자는 자신 때문에 환자가 죽었다는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자신을 책망하던 저자는 자신이 죽음을 몰고 다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얼마나 답답했으면 점집도 찾아간다. 오비이락... 간호사가 때문이겠는가. 돌아가시는 그 옆에 다만 있었을 뿐. 하지만 간호사는 병원에서 약자이다. 만만한게 간호사라, 여러 이유로 환자나, 환자 가족들에게 간호사는 지탄과 원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딱히 잘못도 없지만 욕은 욕대로 듣고 연신 죄송하다만 되낸다. 마음 약한 사람이라면 버텨내기 힘들 것 같다.


간성혼수나 조현병, 알콜중독, 마약중독 환자들은 그녀를 특히나 힘들게 했다. 나는 이번에 '간성혼수'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 간이 정상적으로 동작하지 못해서 대장에 암모니아 가스가 차서 사람의 정신이 혼미해지는 증상이다. 이때 관장을 해서 가스를 빼주면 정신이 돌아온단다. 간성혼수가 되면 제정신이 아니기에 간호사를 향해 온갖 욕과 모진 말을 해대는 것이다. 그러면 간호사는 그 말을 들으면서 환자에게 관장을 한다. 알콜중독 환자나 마약중독 환자들은 치료시 극도로 예민해져 간호사한테 또 그렇게 욕을 한다. '죽여버리겠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가 하면 맨 바닥에 똥을 싸고 보란듯이 뒤 닦은 휴지를 간호사에게 던진다. 간호사를 때리는 조현병 할머니도 등장한다. 어떤 환자는 범죄자인지 팔다리가 수갑이 차인 상태로 병실에 있었는데 "교도관만 없었으면 싹다 죽여버렸을 건데"라며 위협적인 말을 연발한다. 대학병동 간호사가 정말 극한 직업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간호사 중에는 이직하거나 아예 다른 직종으로 옮기는 일도 생긴다. 씩씩하게 행동하는 그녀지만 많은 내적 갈등과 상처의 흔적이 일기장에 고스란히 있었다. 때로는 그 불똥이 그녀의 가족들에게 튀기도 했다. 어떤 날의 글에서는 우울증도 느껴진다. 사람들은 병원에 올 때 완치를 생각하며 오지 죽음을 생각하며 오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완치가 되면 당연하게 여기지만 잘못되기라도 하면 누구라도 붙잡고 탓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잘 치료받고 퇴원한 환자들도 많을텐데 잘못된 환자들의 원망과 비난의 소리가 더 크기에 그녀들에게는 보람과 자부심보다는 자책과 패배감이 더 각인되고 있는 것 같았다. 너무도 마음이 힘든 나머지 "차라리 길가는 차에 치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스스로를 보잘 것 없고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자기비난적 표현도 있고 "간호사가 쓰레기통 같다"는 말도 있어 안타깝게 했다. 자신을 사람으로 봐주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며 침울해하다가 또 '아프니까 그럴수도 있겠지'하고 스스로 위로도 한다. 오르락 내리락하는 그녀들의 괴롭고 힘든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죽음에 익숙해지다보니 생기는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저자는 참 솔직하다. 읽다가 나라면 이렇게까지 속마음을 '까발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어느 날 환자가 죽었는데 그녀도 모르게 '인수인계 할 게 없어졌네'라는 생각이 들더라는 것이다. 순간 그녀는 엄청난 충격을 받는다. "미쳤다. 나는 사람 새끼도 아니다. 사람이 죽었는데 일거리가 줄었다고 생각을 하다니..." 책에서는 더 적나라하게 자신을 향해 욕한다. 책에서 보이는 그녀는 여리고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폴라포(아이스크림 이름)'를 먹고싶다던 중증환자를 위해 편의점마다 냉장고를 뒤지는가 하면, 보호자들도 치우길 주저하는 환자의 대변, 혈변을 망설임 없이 치우는 모습, 외로운 환자들에게 딸처럼, 손녀처럼 애살있게 대하는 모습에서 그녀가 어떤 마음으로 환자들을 대했는지 추측이 되기에 그녀에게 전혀 비난하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심신이 많이 지치고 죽음에 너무 익숙해지다보니 그런 생각이 '잠깐' 들었겠지. 오히려 진솔한 그녀의 고백에 마음이 짠했다.


얼마전 소위 '태움'이 주요 이슈로 부각되었던 적이 있다. 태움이란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의미로 선배 간호사들이 후배 간호사를 교육할 때 괴롭힘이나 따돌림 같은 '부적절'한 방법으로 길들이는 규율문화를 뜻하는 단어다. 꼭 이런 일에 남녀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군대도 아닌 사회에서, '거친' 남자들만 모여 있는 것도 아닌 여자들이 상당수인 병원에 왜 저런 군대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지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내가 주로 보는 간호사는 대학병원 보다는 동네의원의 '엉덩이 주사 놓아주시는' 분들이다. 친절하고 다소 여유까지 있어 보이는 그분들의 이미지가 내 머릿 속의 '간호사'였기에 왜 그렇게 규율문화가 심한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는 그런 '분위기'가 생기는 상황적 배경은 이해가 되었다.


'태움'이라는 단어에 상처를 받을 분들이 있을 것이기에 글을 쓰면서도 조심스럽다. 분명히 밝히지만 태움을 정당화하고 그것이 옳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조직의 특성에 따라 규율이 강조되어야만 하는 곳이 있으나, 태움은 '규율문화'라는 그 목적보다 '괴롭힘', '따돌림'과 같은 그 방법적 차원에서 잘못된 것은 분명하다. 내가 이해된다고 말한 부분은 상하관념이나 엄격한 질서가 강조되는 그 '규율문화'가 왜 '병원'에서 '간호사들 사이'에서 그렇게 중요한가 하는 것이다. 상명하복의 엄격한 질서, 규율문화를 말할 때 흔히 우리는 군대를 떠올린다. 전시에는 사람이 수시로 죽어나가고 평시라 하더라도 사격, 폭발물을 다루기에 군대에서는 작은 실수나 부주의도 큰 피해를 야기한다. 예를 들면 사격장에서는 착한 선임도 눈빛이 달라진다. 장전된 총을 든 미숙한 신병이 자칫 옆에서 나는 소리에 평소처럼 몸만 돌려도, 당장이라도 실탄이 발사될 수 있는 총을 옆 전우에게 겨냥한 것이 되고, 최악 상황에서 오발이라도 난다면 상상도 하기 싫은 끔찍한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사소한 실수나 늦춰진 긴장에도 생사가 오갈수 있는 위험상황이 생기기 때문에 '군기'와 같은 긴장감을 군대는 필요로 할 것이다.



그것이 이유가 된다면, 지금의 병원은 어쩌면 현재 군대보다도 더 나쁜 조건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전시가 아니기에 군에서 사고가 아닌 이상 사람이 죽을 일은 없다. 생사가 갈리는 다급성, 위험성, 절박함이 적은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나오는 것처럼 늘 사람이 죽어나가는 병원 환경은 적어도 죽음의 양적 측면에서 보자면 '전시상황의 군대'에 가깝다. 미숙한 대처로 사람의 생사가 얼마든 갈릴 수 있기에 군대의 '군기'와 같은 긴장감이 필요할 것이다. 이 책에서도 신참 간호사의 미숙한 대처로 안타까운 일이 생길 뻔하여 저자가 신참에게 '교육'을 한 에피소드가 나온다. 사람은 처음엔 누구나 다 실수를 하고 그 과정을 통해 전문가가 된다. 저자가 신참에게 주의를 주면서 이것도 '태움'인가 되물을 때, 어떤 고참의 적절한 '교육'이 어떤 신입에게는 '태움'으로 비춰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군대에서 적절한 긴장감이 부주의를 줄이고 안전사고를 예방하듯 병원에서의 긴장감도 같은 효과를 낼 것이다. 방법론적인 문제가 있을 뿐이지, 긴장감 있는 분위기 조성의 필요성에 공감이 갔다. 이 책을 보기 전엔 '왜 그렇게 사람을 못살게 굴까'하며 '신입'의 입장만 생각했었다면, 이 책을 보면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는 그 환경적 이유와 '고참'의 고충도 이해가 되었다. 그럼에도 사람을 괴롭히고 따돌리는 것은 잘못된 처사다.


살다보면 주어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잊게 된다. 누구에게는 보고, 듣고, 먹고, 싸고, 걷고, 잡고, 움직이는 '당연한 것'이 누구에게는 '꿈과 같은 소원'일 수 있다. 부정적인 생각에 갇혀 헤어나오기 힘들 때 죽음과 관련된 책이나, 죽음을 기다리는 호스피스 병동의 책을 읽다보면 살아있다는 자체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일어날 힘을 얻을 수 있다. 이 책에서도 많은 죽음에 대한 사연과 혹은 죽지 않았다 하더라도 코와 배에 호스를 꽂고 살거나 병원 밖으로 나는 것이 소원인 환자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대변을 보는 것 같은 기본적인 인간의 행위 조차 남의 도움없이 불가능한 환자의 이야기를 통해 배에 꽂힌 호스로 변을 빼야하고 누군가에게 늘 자신의 변을 보일 수 밖에 없는 생활을 상상해보면 혼자서 화장실 갈수 있는 것만 해도 축복이라는 생각도 든다. 남의 불행을 거울 삼아 자신의 행복을 가늠하는 것이 꺼림칙하게 여져지지만 타인의 경우를 통해 자신을 돌아본다는 타산지석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 책은 기존의 호스피스 병동의 수기와는 다른 점이 있었는데, 바로 살 수 있다는 희망이다. 호스피스 병동의 환자들은 사실상 '적극적인 치료'를 포기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대체로 죽음을 수용하고 있는 분위기다. 하지만 일반 병동은 '적극적인 치료'중인 환자들이기에 생과 사가 아직 결정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들의 이야기에서는 단순히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힘내요', '살수 있을 거야'하는 희망이 있었다. 간혹 어떤 케이스에서는 여러 번의 수술이나 10회가 넘어가는 항암치료로 많이 지친 이들도 있었다. 그래서 그 희망이 어쩌면 '희망고문'이 되어 더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 책에서 눈에 띄었던 부분에는 보호자들의 모습도 있었다. 아픈 사람도 힘들지만 가족들의 고통도 상당하다. "도대체 왜 내가 왜! 내가 왜!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데! 이제 아저씨랑 등산 가려고 옷도 사고 신발도 사고 했는데! 도대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 건데!" 중풍에 걸려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는 남편의 혈변을 치우던 아내가 치쳐 쏟아내는 절규에 마음이 아프다. 오랜 치료로 지친 환자가 "어차피 나는 죽을 건데, 이런게 왜 필요하냐"며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내뱉는 역정에, 그 소리를 듣고 옆에서 서럽게 울던 아내의 모습도 그려져 있었다. 어떤 아내는 유방암과 갑상선암으로 자신의 몸도 성치않은데 알콜중독으로 간이 망가진 남편을 간호하며 자기 간을 떼어주려고 한다. 남편에게는 너무도 고마운 여성임에도 이 남편이 그 아내를 대하는 행동이 참 못됐다. 그럼에도 아줌마는 뭐그리 잘못했는지 남편에게 연신 '죄송하다'만을 반복한다. 가슴도, 갑상선도 뗀 여인이 자신을 구박하는 남편을 위해 이제 간마저 떼어 놓는데도, 고맙다는 소리는커녕 남들 앞에서 '이 년, 저 년' 소리를 듣고 사는 것이다. 이 여인의 삶이 왜 이렇게 불쌍한가. 창가 자리에 대한 매정한 이야기도 있었다. 다인실에서는 창가자리의 선호도가 높다. 그 자리에 있던 환자가 죽었는데, 시신도 치우지 않은 상황에서 침실 이전이 되냐는 문의가 들어와 씁쓸한 감정을 자아낸다. 이 모든 것을 지켜본 간호사의 마음은 어땠을까.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이 책에는 병동 간호사들의 고충, 병마와 싸우는 환자들의 절박함, 뒷바라지 하는 보호자들의 간절함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특히 2016년에서 2020년까지의 기록을 시간순으로 담고 있어 한 간호사가 5년동안 일터에서 점점 성장해가는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의료분야 종사자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공감가는 부분이 많을 것 같다. 그리고 간호사를 장래희망으로 하는 학생들에게도 생생한 현장의 모습을 알수 있기에 직업선택에 참고가 되지 않을까. 그리고 나 처럼 간호사에 대해 참 모르고 있었던 보통 사람들도 이런 책을 통해 간호사들이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볼 수 있으면 좋겠다. 누구도 평생 '간호사'들의 손에 신세질 일 없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얼마전 뉴스에서 코로나 사태로 고생하고 있는 간호사들의 모습이 나왔다. 무겁고 덥고 습한 방역복으로 땀에 찌들고 오랜 마스크 착용으로 피부에 습진이 생겨 고생하는 것을 보았다. 덧붙여 간호인력이 부족하다는 방송도 나왔다. 부족한 인력 속에서도 방역의 최전방에서 최선을 다해 종사하는 그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 책을 통해 그동안 우리를 치료한 그리고 미래에 치료할 간호사들에게 잠시마나 그들의 고충에 공감하고 노고에 고마운 마음을 가져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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