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기도
부시카 에쓰코 지음, 에가시라 미치코 그림, 김숙 옮김 / 북뱅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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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엄마의 기도>는 사랑하는 아이를 향한 부모의 마음을 기도의 형식을 빌어 풀어낸 그림책이다. 아이를 키우며 자연스럽게 그림책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정말 그림책은 아이들만을 위한 책은 아닌 것 같다. 이번 <엄마의 기도>는 특히 더 그랬다. 30대 아빠인 나는 읽다가 눈가가 촉촉해 지는 것을 느꼈다. 이 책에는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나면서 부모가 한번은 느꼈을 감정과 감동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가끔씩 아이가 떼쓰거나 울면서 부모의 혼을 쏙 빼놓을 때면 힘들고 짜증이 나기도 한다. 그럴 때 이 책을 읽으면 '아, 그때 내 마음이 그랬지'하고 잠시 놓쳐버린 마음을 다시 챙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도 이 책을 읽으면서 부모의 마음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부모의 따뜻한 사랑도 느낄수 있을 것이다.


그림책은 아이들이 글에 익숙치 않아 부모가 책을 대신 읽어줘야 하기에 다른 일반 책을 읽을 때와는 달리 소리내어 읽게 된다. 아이에게 <엄마의 기도> 소리내어 읽어 주는데 내가 잔잔한 노래를 부르고 있는 묘한 느낌을 받았다. 딱딱 맞아 떨어지는 운율과 반복, 대구, 나열 등의 표현이 시적인 효과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 그림책에 조금씩은 시적인 느낌이 들어 있긴 하지만 이 책은 뭔가 달랐다. 소리내어 읽어보면 확연히 느껴진다. 이윽고 나는 글을 쓴 작가의 이력에서 그 비밀을 알 수 있었다. 1928년 생으로 현재 나이 93세인 그녀는 동요 창작에 평생 활동 해왔고 수상경력 또한 화려하다. 동요집과 시집을 내고 이렇게 그림책도 쓰는 아동문학계의 거장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섬집 아기'같은 잔잔한 노래를 부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지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시적인 글은 형식적 효과도 중요한 장르이기에 번역을 하다보면 본래 언어의 맛을 살리기 어렵기도 한데 번역가가 이를 잘 살려내기도 했으며, 일본어와 한국어의 어순과 어휘의 유사성도 작가의 시적 감성을 고스란히 살려내는데 한 몫했을 것이다.


책 첫 장에 '사랑스러운 내 아기 / 네가 태어나 / 나는 엄마가 되었구나.'는 부분에서 벌써 짠한 감정이 전해진다. 이 구절은 내가 우리 아이에게 느끼는 감정을 담아내기도 함과 동시에 나의 부모님이 나에 대해 가지셨었을 마음도 느끼게 해준다. 지금의 나는 한 아이의 부모임과 동시에 한 부모의 아이이기도 했었으니까.



'벌레가 얼마나 신비한지 / 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라는 부분에서는 생명의 아름다움을 아이에게 가르쳐주고자 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태어난 아이는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며 세상에 엄청난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 어떤 선입견이나 편견도 없이 오직 있는 그대로 순수한 도화지 같은 마음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그런 아이에게 만물의 아름다움과 생명의 신비를 보여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예쁘고 좋은 것들만 보여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 말이다. 들판으로 나가고 바다를 보고 바람소리를 들어보자는 글도 여러 생각을 떠올리 게한다. 바깥 보다는 집이나 학원에서, 자연을 보고 자연에 귀 기울이기 보다는 TV와 스마트폰에 마음을 뺏긴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르고 반대로 세상살이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데 소홀했던 스스로도 돌아보게 된다.


구름과 별로 슬픔을 위로하고 기쁨을 나눈다는 표현이나 가족, 친구, 마을, 학교, 세계, 지구가 모두 하나로 이어져 사랑으로 가득하다는 표현은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이 오래도록 간직하길 바라는 마음, 험한 세상 사랑에 의지해서 살아가라는 지혜가 담겨있다.


'이 작디작은 손도 / 언젠간 엄마 손을 꽉 잡을 수 있을 만큼 / 크고 강해지겠지.'라는 구절도 감성을 자극한다. 저 문장은 시간의 유한함을 상기시켜준다. 아이 키우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니기에 힘들 때는 언제 빨리 안 크나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어느새 부쩍 커버려 품안의 아이가 자신만의 인간관계를 구축하는 시기가 도래하면 막상 서운하기도 한 것이 부모 마음이다. 우리 아이가 지금보다 더 갓난쟁이 일 때 생각이 난다. 새벽에 아이가 깨서 울면 업고 밖을 걸어줘야 잠이 들곤 했다. 아이 소리에 자다 깨서 시계를 보면 4시다. 피곤하기도 하고 당장 몇 시간 있으면 출근도 해야했지만 그래도 아이를 매고 새벽 밖을 나간다. 뒤로 업으면 울고 앞으로 매야만 안 울던 우리 아이, 내가 앉으면 울고 서야 안 울던 우리 아이는 한참을 생글생글 잠이 들지 않고 알수 없는 소리로 옹알거리다가 집주변을 걸은지 한시간쯤 지나 조용하다 싶어 쳐다보면 어느새 잠들어 있곤 했다. 그렇게 집에 오면 5시, 6시. 몽롱한 정신을 찬물로 씻어 깨우며 출근준비를 했지만 그게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우리 아이를 이렇게 품고 있을 순간이 내 생에 얼마나 되겠나' 하는 생각 덕분이었다.



이야기가 조금 새지만 저 구절과 비슷한 감정의 동요를 하나 소개하고 싶은데, '나도 어른이 되겠지'라는 국악동요다. 이 노래를 들을 때면 위와 같이 품 안의 자식이라는 가장 예쁜 순간이 그렇게 길지 않다는 사실이 떠올라 마음이 짠해지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그런 말은 들은 적이 있다. 부모는 자식의 아이일 때의 예쁜 모습을 밑천으로 평생 자식을 키워간다고. 나만 하더라도 우리 부모님께 무엇하나 제대로 해드린 것 없이 평생 받기만하고 살았다. 해드리긴커녕 속을 썩이고 애태우게 만들었으며, 때로는 부모님 가슴에 못박는 모진 말도 했었다. 그런 경험들만 돌이켜봐도 부모란 자식의 어렸을 때 귀여운 그 모습을 보는 댓가로 평생 속썩임을 감당해야하는 불공평한 거래에 무모하게 뛰어든 사람이란 것에 공감한다. 내가 느끼는 그 짠한 마음에는 나의 자식에 대한 사랑과 애정은 물론 나의 부모님에 대한 죄송함과 감사함도 깔려있고 어느덧 이 모든 것이 이해되는 어른이 되버린 생경함이 뒤섞여 있을 것이다.


책에서 조금 인상적인 것은 '부디 이 손으로 / 총을 겨누는 일이 없기를'이란 문장에서다. 그 곱디 고운 손이 커서 물건을 훔치기도 하고 누군가를 다치게도 하고 생명을 앗아가는 총을 쥐기도 한다. 작가는 부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을 무려 6페이지에 걸쳐 다뤘다. 그 중 한 그림은 매체보도에서 이따금씩 보이는 중동에서 일어나는 전쟁의 한 장면 같기도 하다. 아직도 세상에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전쟁을 수행하는 군인들 또한 누군가의 사랑스러운 자식들이었고 한때는 순수하고 예쁜 아가였을 것이다. 작가의 글에서 전쟁에 대한 안타까움과 동시에 이로 발생되는 수많은 난민과 고아들에 대한 연민도 느껴진다.


더 나아가서 정확히 '총'과 '전쟁'을 언급한 것에 나는 작가의 국적과 나이를 연과지어 생각해본다. '1928년 도쿄 출생'. 그렇다, 그녀는 전쟁 세대다. 그녀가 태어나기 전부터 일본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치뤘고 조선을 침략하였으며 그녀의 유년기에는 1937년 중일전쟁, 1941년 태평양전쟁으로 전쟁이 끊이질 않았다. 그녀는 수많은 어른들이 군인으로, 학생들이 학도병으로 끌려가 죽이고 죽는 것을 목도했을 것이다. 애지중지 키워낸 소중한 누군가의 아들들이 그렇게 허망하게 전쟁으로 희생당하는 것을 경험했던 것이다. 그런 그녀이기에 다시는 그런 참상이 반복되지 않기를 누구보다 간절히 바랬을 것이다. 그 마음이 '새가 지저귀는 환한 아침'을, '엄마가 지어주는 아침밥'을, '창가에서 달을 보는 고즈넉한 저녁'을, '엄마와 나란히 기도하는 밤'을 아이들에게서 빼앗지 말아주길 기도하고 '평화'라는 아이들의 보물을 지켜주길 희망한다는 글에 잘 담겨있다.



후반에는 아이가 잘 성장하여 배우자를 만나고 또 한 아이의 부모가 되어 행복하게 사는 것을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 그려진다. 쑥쑥 자라 어른이 될 때까지 엄마가 지켜주겠노라 약속하며 책은 끝이난다. '지켜준다'는 말에는 어떤 힘이 있다. 우리아이는 안아주면서 '지켜줄게'라고 말해주는 것을 참 좋아한다. 세상 누구라도 지켜준다는 말을 싫어할 이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고 강하기도 하지만 반면 충동적이고 감성적이며 약하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 마음에는 보호받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커갈수록 그 마음을 더 깊숙이 숨기는 것 같다. 책에 나오는 '지켜준다'는 부분은 아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것이다.


책의 첫 장에 노오란 민들레가 나온다. 별 것 아니게 지나갈 수 있지만 마지막에 아이가 다 커서 아빠가 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이 나오는데 그 아래에 다시 민들레 그림이 등장한다. 그런데 차이가 있다. 처음에 나왔던 노란 민들레가 아니라 뒤에는 새하얀 민들레 꽃씨로 그려져 있는 것이다. 샛노란 민들레는 예쁘고 젊던 엄마의 모습을 하얗게 변한 민들레는 이젠 손주를 기다리는 할머니가 된 엄마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할머니의 새어버린 머리 같은 하얀 꽃씨가 청춘의 노란 꽃잎보다도 더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그에 담긴 희생과 사랑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의 기도>는 아이들에게 따뜻한 부모의 사랑을 들려주는 것과 동시에 내가 받은 따뜻한 사랑 또한 떠올리게 하는 한편의 '시'같은 그림책이다. 읽을 때 눈물을 흘릴 각오를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아이를 키우는 우리들도 우리의 부모님께 자주 안부전화도 드리고 찾아뵙는 것도 잊지말고, 잘 안되는 줄 알지만 '사랑한다'고도 말해보고 껴안아 드리기도 해보자. 자식 금방 크는 것을 아쉬워하는 사이 그만큼 내 부모님도 늙어버리실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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