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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친일파 - 반일 종족주의 거짓을 파헤친다
호사카 유지 지음 / 봄이아트북스 / 2020년 3월
평점 :
품절
2019년 한국의 정치, 경제, 외교, 사회를 통틀어 가장 큰 이슈를 꼽으라면 일본의 경제 보복일 것이다. 이 사건은 모두가 잘 알듯 2018년 한국 대법원이 전범기업인 신일본제철에게 과거 강제징용에 대한 배상 판결 선고에 일본 정부가 반발한 것이다. 판결 당시 신일본제철도 이를 수용하여 이행하고자 했으나 극우 성향의 아베 정부가 이를 가로 막았으며, 되려 나온 조치가 바로 2019년 7월 1일, 한국을 상대로 한 수출 규제 발표인 것이다. 우리정부와 여러 통상 전문가들은 이는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라 밝혔으나 일본은 북한을 걸고 넘어지며 누가봐도 정치적 이유의 경제 보복을 안보상 이유라고 우기는 지록위마를 시전했다. 한국 법원의 판결을 한국 정부에 대한 경제 보복으로 뒤엎고자하는 아베 정부의 태도는 대한민국의 삼권분립을 무시하고 사법권의 판결을 인정하지 않으며 과거 일제 만행에 대한 반성이 전혀 없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묘하게 그 시기에 함께 발행된 책이 있었으니 이영훈 교수를 대표저자로 한 <반일 종족주의>라는 책이었다. 이 책은 한국과 일본간 역사적, 정치적 갈등을 철저히 일본 극우의 논리로 대변하고 있다. 대표적인 한일간의 이슈인 강제징용, 일본군 위안부, 독도 영유권 문제에 대한 그들의 주장은 어떻게 같은 한국인으로서 저렇게까지 자국과 자국 민족에 대해 비관적이고 패배주의적 인식을 가질 수 있는지 놀랍다. 그는 위안부는 매춘부로서 돈을 벌기위해 자원한 것이고, 강제징용 또한 고임금의 일자리를 위해 자발적인 의사로 참여했고 그 과정에서 민족적 차별도 없었다 주장한다. 심지어는 독도 조차도 일본의 영토라고 서슴치않고 주장하며 우리 학자들이 밝혀 놓은 많은 사료와 논증은 도외시하고 일본의 주장과 논리는 적극적으로 수용, 대변한다.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인 '서울대' 교수라는 학문적 권위를 누린 그이기에 더욱 충격은 컸다.
그렇기 때문에 <반일 종족주의>라는 책이 등장했을 때 많은 국민들은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책의 내용이 너무도 황당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상식을 너무나 벗어난 주장이었지만 세세한 사료와 학술적 근거에 익숙치 않은 일반 국민들은 들끓어 오르는 감정을 이성적으로 풀어 반박하는데 어려움을 느껴 답답한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다행히 상식적인 학자들도 많았기에 그들을 책, 언론, 방송 등의 매체를 통해 사료를 바탕으로 논리적으로 반박하여 국민들의 충격을 달래주었다.
개인적으로 이런 한일간의 이슈가 뜨거울 때 자연스럽게 찾게 되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이번 서평 책, <신친일파>의 저자 '호사카 유지' 교수다. 내가 그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을 과거 독도 영유권 문제가 불거질 때 그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는 명실상부 우리나라 독도 영유권 전문가로 그의 독도사랑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그는 귀화까지하여 법률상으로도 한국인이다. 그는 독도 문제뿐 아니라 위안부, 강제징용 같은 한일간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도 구체적 사료와 논증을 제시하며 일본의 왜곡과 억지에 품격있게 맞섰으며 일반 대중들이 관련 내용들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설해주는 활동을 해왔다. 앞서 언급한 일본의 경제 보복 사태 때에도 한국인으로는 파악하기 힘든 일본 내부의 상황을 한국 대중들에게 알려 대중의 관심과 이해도를 높이고 현대판 독립운동이라 불리는 일본에 대한 불매운동을 효과적으로 이끄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과거 한 방송에서 호사카 유지 교수에게 '귀화를 했는데도 왜 이름을 한국식으로 왜 바꾸지 않는가'는 질문에 '독도가 한국의 영토인 것에 대해 학자로서 국제사회에 증명하고 동의를 이끌어내는 일에 일본식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 같아서'라고 답했다. 그의 마음씀이 한국인으로서 고맙고 감사하다. 그는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다운 한국인이었다.
<신친일파>는 호사카 유지 교수가 이영훈 교수를 대표저자로 한 <반일 종족주의>의 거짓과 왜곡을 낱낱히 파헤치고 그에 대해 객관적인 사료와 합리적인 논리로 반박한 책이다. 책을 읽다보면 호사카 유지 교수의 예리한 반박에 통쾌함도 느끼지만 과거 조상들이 당했던 아픔과 그것이 지금도 '신친일파'들에 의해 청산되지 못한채 이어져 오는 안타깝다 못해 슬프기까지한 현실에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알아야 한다. 알아야 그런 일이 미래에 재발되지 않는다.
책의 구성은 3부분으로 나뉜다. 한일간의 갈등이 다양하게 상존하지만 그 중 대표적인 세 가지, 강제징용, 일본군 위안부, 독도 문제에 대해 호사카 유지 교수는 <반일 종족주의>가 주장한 내용을 반박하고 은폐된 내용들은 보충하여 소개하고 있다.
우선 강제징용 문제를 살펴보자. 일전에 개봉했던 <군함도>가 바로 대표적인 일제의 강제징용 문제의 현실을 보여준다. 그 영화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일본으로 가는 배에 올라 탄다. 하지만 그들이 속아서 최종적으로 도착한 곳은 일본 나가사키 근처 감옥섬이라고도 불렸던 하시마(군함도)의 탄광이었다. 거기서 남자는 탄광노동자로 끌려가고 여자는 매춘을 강요받는다. 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에는 분명한 차별이 존재하였으며 조선인들은 가장 위험한 장소에서 가장 열악한 조건으로 일하게 된다. 수시로 매질을 당하며 탄광이 무너지거나 가스로 인한 폭발로 죽는다. 제대로 된 치료나 보상은 기대하기 어렵다. 지옥같은 노예생활에 도망도 시도하지만 섬이라 바다에 쉽쓸려 죽고 일본군에게 잡혀서 죽어나갔다. 영화의 내용이 사실이었음을 책에 실린 여러 증언과 행정 사료들을 통해 보여준다.
강제징용에 대해 <반일 종족주의>에서는 자발적이었고 고임금의 좋은 일자리였으며 민족적 차별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일본인에 비해 조선인은 임금도 적었을 뿐더러 일본인은 통장을 직접관리한 것에 비해 조선인들은 전범기업이 일괄관리했다. 그리고 임금은 당장 쓸 정해진 '용돈'만 지급하고 나머지는 강제저축을 하여 도망가지 못하게 하였다. 그리고 저축된 돈들도 상당부는 여러 이유로 피자들에게 최종 지급되지 않은 것이 적지 않았다. 특히 남자들이 끌려온 경우 조선에 있는 가족들은 생사가 막막해진다. 실제 이것이 사회적 문제가 되어 총독부에서도 이를 우려하는 문서도 나온다. 이에 조선에 있는 가족들에게 송금을 할수도 있었으나 전범기업의 관련 지침에 따르면 '조선의 아내들은 생활을 잘 하지 못한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를 들어 송금액도 일정 소액으로 제한한다. 그리고 송금액도 일부 또는 전부 떼먹기까지한다.
일제가 강요한 탄광 노동이 얼마나 가혹하고 힘들었는지 참고할 만한 부분이 있다. 일제가 조선인을 탄광에 도입하기 전에도 탄광산업은 존재했다. 그 당시 일이 너무 위험하고 고되어 사람이 잘 구해지지 않자 일제는 이른바 죄수 노동, 죄수들을 동원하는 것이다. 일의 강도는 세고 위험은 산재되어 있으며 제대로 된 식사도 기대하기 어려우니 죄수들 중에는 자살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그래서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 '벨트' 지급을 금지했다한다. 노예에게는 자의적 죽음 마저도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일을 조선인들을 강제동원한 것이 강제징용인 것이다. 그 당시 선조들의 참혹함은 이루어 말할 수가 없다. 이것은 산 지옥이었다.
작년에 일본의 경제 보복이 심화되어 한국 기업 경영이 위협받고 한국 경제가 흔들리는 것을 보자 강제징용 소송을 제기한 피해자 할아버지가 괜히 폐를 끼친것 같다며 죄송해 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정작 사과하고 미안해야 할 사람들은 당당하고 큰 소리치는데 생사를 오고가는 끔찍한 일을 당한 피해자가 죄송해야 하는가. 정말 안타까웠다.
위안부 문제 또한 참 슬프다. <신친일파>의 사료에서 가장 어린 위안부 소녀의 나이는 '15세'로 나온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세는 나이'로 기록된 것이라 만 나이로 따지면 13세~14세로 추정한다. 그 어린 소녀들을 취업 시켜준다고 속이거나 납치해서 어딘지도 모르는 인도차이나 반도의 어느 최전방 전선으로 끌고가 하루에 20~30명의 군인들을 상대해야 했다. 볼수록 말이 안나온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날마다 월요일은 공병대, 화요일은 수송대, 이런 식으로 요일마다 부대가 정해져 있었고 하루 일과도 몇시부터 몇시까지는 병사, 또 몇시부터는 부사관, 그 이후는 장교 이런 식으로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위안부를 운영한 자료가 나온다. 한 사람당 30분씩 할당되었다고 하니 20~30명이면 오로지 위안부 역할 수행만 10~15시간이다. 지금으로 치면 여중생 쯤되는 아이가 전장의 최전방, 총알과 폭탄에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공포 속에서 전쟁으로 반은 미쳐버린 군인들을 하루에 20~30명씩 상대해야 하는 비극을 생각해본다. 이것은 인간의 육체적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다.
위안부 소녀들은 적의 공격에도 죽고 일본군의 총칼에도 죽었으며 인생을 비관한 나머지 목을 매거나 강물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그들을 향해 이영훈 교수는 자발적으로 돈을 벌기위해 간 '매춘부'라 하니 언어도단을 느낀다. 남의 나라, 남의 민족이 이런 일을 당해도 공분을 느낄 것인데 어떻게 같은 나라, 같은 민족이 그런 일을 당했는데 사실을 왜곡하면서까지 반대의 편을 들수 있을까. 그들은 일본은 그동안 충분히 사과를 했다고 말하며 위안부 할머니들이 벌이는 문제 제기와 사과 및 배상 촉구 운동을 그저 한 몫 벌기위한 것인냥 비하한다. 하지만 당장 그런 생각이 든다. 진실로 일본정부가 사과했다면 왜 각 재외 공관을 통해 타국에서의 위안부 소녀상 건립을 방해하고 철거에 압력을 넣는가. 작년 일본국제예술제에 출품된 소녀상이 3일만에 강제 중단시키는 것이 사과한 정부의 태도인가. 더 서글픈 것은 해외도 아니고 '대한민국 영토' 안에서 조차 소녀상 건립이 일부 세력에 의해 저지당하고 어떤 자치단체는 불허했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아픔을 우리 국민이 품어주지 못한다면 누가 품어준단 말인가. 그들은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들인가.
실제로 일제시대 일본군으로 활동했었던 만화가가 과거 경험을 그린 만화를 보면 그 광경이 더 피부로 다가온다. 동남아 전선 어느 정글 속에서 허름한 오두막 3채가 있다. 그 안에는 위안부 여성이 1명씩 있고 각 오두막 앞에는 80~100명의 군인이 줄서 있다. 군인들 중에는 오늘은 공쳤네하고 발길을 돌리려는 이도 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끝까지 기다리는 이도 있다. 이걸 돈을 벌기 위해 자발적으로 했다고 말하는 것인가. 과거 일본군 출신의 일본인이 양심선언을 하고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거기 이런 말이 나온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세상의 일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이제부터 80명 정도의 병사들을 상대해야 한다. 병사들도 지옥이었겠지만 '위안부'들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지옥이지 않았을까." 아, 증거가 있는데도 없다고 할 것인가.
특히 위안부 할머니 중 '문옥주'할머니의 이야기가 자세히 나와 있다. 문옥주 할머니는 이미 돌아가셨으나 그분이 살아계실 때 다행이 증언집을 남겨놓았다. 책에 인용되어 있는 부분만 보더라도 위안부의 고통과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임을 알수 있다. 일본판이 발행되고 9년 후 한국어판이 발행되었다고 한다. 기회가 되면 찾아 읽어 봐야겠다. 문옥주 할머니는 강한 분이셨고 너무도 힘들고 괴로웠지만 차마 죽을 수 없어 적응하는 쪽으로 마음을 돌려 살아남을수 있었으나 그 중에는 성격상, 체질상 적응하지 못해 죽거나 자살하는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그런 분들을 위로하고 함께해주지 못할 망정 손가락질하고 폄하하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받은 이들에게 다시금 큰 상처를 안기는 것이다.
독도 문제도 마찬가지로 대표저자 이영훈 교수는 <반일 종족주의>에서 일본의 정부 및 극우의 논리를 적극 반영하여 독도가 일본 영토임을 주장한 것을 <신친일파>에서 호사카 유지 교수는 정면으로 반박한다. 호사카 유지 교수는 독도 연구에 평생을 바친 독도 전문가 중의 전문가이다. 그가 이미 저술한 책이며 기고한 글이나 각종 매체, 학교 강연에서 밝힌 내용만 해도 상당하다. 하지만 대표저자 이영훈 교수는 이를 보지 않는 것인지 못본채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독도는 실효적으로 대한민국이 점유하고 있으며 역사적으로도 한국의 영토임을 밝히는 많은 사료들이 많이 제시되어 있음에도 일본측 주장과 사료 근거삼아 일본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현재 일본은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명칭)의 날'을 제정하여 운영중이며 일본 국민들에게 독도가 일본의 영토임을 교육하고 있다. 얼마전 방송인 김구라씨가 나와서 다케시마의 날을 주최하는 시네마현과 일본 영토전시관을 방문하는 방송을 보았다. 거기서 독도는 쌀농사를 짓는 곳도 아닌데 버젓히 '일본 다케시마(독도) 쌀'이라고 이름 붙여 팔고 있고 독도 모양의 빵이 있었는데 빵과 함께 들어있는 일본 깃발을 빵 위에 꽂아 먹는 것이었다. 일본 극우들은 합법적으로 신고하고 취재하는 제작진 일행에게 한국에서 온 것을 알고는 고성과 욕설, 심지어 밀치는 등 폭력적인 행동도 보여 현지 경찰이 제재하는 장면도 나왔다. 일본인들에게 제작진이 물었다. 독도가 어느 나라 영토이냐고. 모두들 일본의 영토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연이어 이런 질문을 했다. 독도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지만 이에 대답하는 일본인은 아무도 없다. 나는 안다. 독도가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200리(80km)"에 있다는 것을. 씁쓸하다. 알아야 한다. 정말 알아야 한다.
작년 일본의 경제 보복 당시 잘못한 것은 일본 정부인데 우리 정부의 합법적인 대응은 비난하고 국제법까지 어겨가며 불법적은 대응을 하는 일본 정부는 비호한 세력이 있었다. 21세기, 독립운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친일파는 100년전에만 존재했던 것이 아니다. <신친일파>의 제목처럼 친일파는 '신친일파'로서 여전히 존재하고 계승되고 있다. 역사를 제대로 알고 관심을 가지자. 그래서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신친일파들이 더 이상 거짓선동을 하지 못하도록 함과 동시에 다시는 과거의 슬픈 역사가 반복되게 해서는 안될 것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불우한 역사는 반복되고 미래는 없는 법이니까.
P.S.
이영훈 교수의 <반일 종족주의>라는 책에 충격받으신 분들은
호사카 유지 교수의 <신친일파>로 놀란 가슴을 달래주자.
가만히 위의 문장을 들여다 보니 참 모순적인 인상을 받는다.
일본 입장에서 일본 극우의 논리를 비호하고
과거사 왜곡에 앞장 선 사람의 이름은 한국 이름이고
한국 입장에서 이에 맞서 거짓에 대항하고
진실을 알리고자 앞장 선 사람의 이름은 일본 이름이니 말이다.
한쪽은 이름은 한국인데 한국인 같지가 않고,
한쪽은 이름은 일본인데 너무도 한국인 같다.
다시한번 <신친일파>라는 이번 책의 제목을 떠올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