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운 최제우 평전 - 민족종교 동학의 교조
김삼웅 지음 / 두레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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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년에 도올 김용옥 선생이 한 TV프로에서 검결(최제우가 쓴 '용담유사'에 수록)과 함께 수운 선생을 소개했던 적이 있다. '시호시호 이내시호 부재래지 이내시호'를 외치며 깨달음의 기쁨을 칼춤으로 풀어냈던 수훈 선생의 모습을 도올의 재치있는 입담과 몸짓을 빌어 머릿 속으로 그려볼 수 있었다. 수훈 최제우 선생의 이야기가 작년에 나올수 있었던 배경은 그 해가 3.1 운동 100주년이었기 때문이다. 3.1 운동의 의의는 실로 대단하다. 3.1 운동이 있었기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될 수 있었고 그것이 지금의 대한민국의 국호와 법통으로 이어졌다. 즉 우리나라가 3.1 운동으로부터 태동하였다는 것은 우리나라 헌법 전문에도 당당히 명기되어 있다. 그런 3.1 운동을 여러 민족지도자들과 수많은 이름없는 민중들이 함께 만들어 낸 결과이지만 특히 천도교가 주도했고 그 중심에는 33인 대표 손병희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의암 손병희는 천도교의 3대 교주로, 1대 수운 최제우, 2대 해월 최시형을 이은 천도교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나는 평소 근현대사에 관심이 있어 책도 보고 드라마나 영화도 즐겨 보았다. 그럼에도 민족종교라는 동학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다. '동학농민운동'이나 '녹두장군 전봉준'만 떠오르다 보니 제대로 알아보고 싶어 책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검색해보니 동학이나 천도교(3대 교주 손병희 때 동학은 이름을 천도교로 개명하므로 둘은 같다.) 교조인 최제우나 최시형에 관한 책이 잘 없었다. 나오는 것들도 내용을 보니 학술논문집 같은 느낌이라 일반인이 교양로서 읽기에는 어렵게 느껴졌다. 아쉬운대로 <망국>, <나라 없는 나라> 같은 동학을 주제로한 소설(소설도 많지 않았다.)이 보여 읽어볼 수 있었다. 그런 경험이 있었는데 한 해가 지난 이번에 <수운 최제우 평전>이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자 기다렸다는 듯 보게 되었다.


수운 선생은 1824년에 태었났다. 그가 살았던 시기의 백성들의 삶은 참으로 암담했다. '태정태세문단세...'라고 외웠던 것을 기억해보자. 그 끝부분 '정순헌철고순', 조선은 사실상 22대 정조가 죽으면서 몰락의 길을 걷는다. 순조가 1800년에 즉위하고 1910년에 나라가 망하니 조선왕조 500년 중 뒷 100년은 심각한 망국의 역사다. 이 시기 안으로는 안동김씨와 풍양조씨의 세도정치로 인해 매관매석의 부정부패가 횡행하며 소수 기득권 양반세력들의 가렴주구가 판을 친다. 밖으로는 세상의 중심으로 알던 중국이 영국에게 쓰러졌다. 나라 안은 부패로 나라 밖은 외세로 혼란스러우니 죽어나는 것은 백성들의 삶이었다. 이 책에서도 나오지만 갓난 아이와 죽음 사람까지 세금을 매기는 세상에서 오죽하면 스스로 생식기를 자르는 백성(애절양)이 생겨나는 판이었다.



수운 선생은 어려서부터 총명하였으나 어머니가 재가녀라는 이유로 과거 길이 막혔고 청백리였던 아버지로 인해 가난을 피하기 어려웠다. 그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장돌뱅이가 된다. 전국을 유랑하며 견문을 넓히고 훌륭한 선각자들을 만나며 교우한다. 어떤 이유에선지 그의 삶은 구도자의 삶과과 닮아 있는데 산에서 49일 수행을 하는 모습들은 출가만 안했지 선승들의 생활을 보는 듯 했다. 그러다 어느날 깊은 깨달음을 얻고는 자신의 사상과 철학을 세상에 전하기 시작한다. 이를 포덕이라 부르는데 종교의 포교에 해당한다.


동학이 훌륭한 사상으로 평가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최제우의 '시천주[侍天主]', 최시형의 '사인여천[事人如天]', 손병희의 '인내천[人乃天]'으로 이어지는 소위 '모든 사람은 존중되어야 하며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가르침이다. 당시 반상의 차별이 강했던 사농공상의 계급사회에서 평등을 말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고 이는 신분질서의 근간을 뒤흔드는 반역행위였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등장하는 위정척사운동이나 개화운동 같은 운동들은 그 핵심 사상이 반외세이다. 그러나 동학은 반외세와 더불어 '반봉건'을 외친다. 바로 이 반봉건이 최제우의 평등사상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최제우의 평등사상은 당시 양반이었던 그가 집에 식모살이하던 두 처녀를 후에 한 명은 며느리로 삼고 한 명은 수양딸로 삼았다는 이야기에서도 드러난다.


수운의 동학사상은 독립운동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민족주의 세력의 뿌리도 동학에서 나왔다. 모두가 아는 백범 김구도 동학에서 지역장에 해당하는 동학'접주'출신이다. 김구 선생이 광복 후 환국했을 때 제일 먼저 한 일이 손병희 선생의 묘에 참배하는 것이라고 하니 일제치하에 많은 독립, 민족운동가들에게 동학이 끼진 영향력을 짐작해볼 수 있다.



천도교에서 가장 근간이 되는 두 경전으로 최제우가 쓴 '용담유사'와 최시형이 쓴 '동경대전'이 있다. 용담유사는 한글로 쓰여졌고 동경대전은 한문으로 쓰여졌다. 수운 선생은 글을 모르는 백성들을 깨우치기 위해 동학을 창시하였으로 그 소의경전에 해당하는 '용담유사'를 한글로 쓴 것이다. <수운 최제우 평전>에서 수운의 철학과 사상이 담겨있는 '용담유사' 원본 사진이 수록되어 실제 내용을 읽어볼 수 있었다. 내용을 떠나 자로 잰듯 아름답게 맞아떨어지는 글배열과 깔끔하면서도 힘이 있는 글자체에서 정성과 혼이 전해졌다. 몰론 옆에 '번역'이 있었지만 200년 전의 옛말이라 원본을 읽어도 상당부분이 이해되지 않아 아쉬웠다. 만약 미래에 타임머신 같은 것이 만들어져 과거 위인들과 만날수 있게 되더라도 원활한 소통은 어렵겠다는 엉뚱한 상상도 해본다.


수운은 안타깝게도 41세의 이른 나이에 동학이 확산되는 것을 두려워한 조정과 양반들에 의해 억지 죄명으로 순교하게 된다. 길지 않았던 삶에 비해 수운 선생이 이 땅에 남기고 간 업적은 실로 대단했다. 그 사상은 철종, 고종 정부의 탄압에도 말로, 글로, 사람들의 마음 속으로 계속 이어졌다. 이러한 방대한 내용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낸 작가의 고충도 헤아려졌다. 이 평전을 쓴 김삼웅 작가는 올해 78세로 적지 않은 연세에도 집필활동을 계속 하고 있어 놀랍다. 그의 과거 활동을 살펴보면 더 놀랍다. 평전전문 작가라고 해야할 정도로 그가 쓴 평전이 많은데, 가까이는 노무현, 김대중, 김영삼, 박정희 같은 현대사에 등장하는 인물들부터 김구, 이승만, 안중근, 박열, 조소항, 여운형 같은 근대사의 인물들까지 그의 평전이 다루는 인물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다. 약력에 독립운동사 및 친일반민족사 연구가로 활동하고 있고 과거에는 독립기념관장도 역임했다 한다. 이런 이력과 활동을 해온 작가이기에 평전 집필이 가능했겠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 천도교는 기독교, 불교, 천주교에 비해 교세는 과거와 같진 않지만 민족종교로서 여전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책에서 언급된 내용 중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다. 예수와 마호메트도 신체험과 계시체험으로 기독교와 이슬람을 창도했다. 세계적인 종교의 창도 과정은 신의 영역으로 종교화 또는 신비화하면서 반면 우리 종교의 창도 과정은 미신이니 신화로 치부하는 경향이 많더라는 이야기다. 서구의 선지자와 사상가의 언행은 경이적, 선구적, 초월적으로 보면서 왜 우리 것의 경우에는 낡고, 고루하고, 비과학적인 것으로 보냐는 것이다. 작가의 예리한 지적에 뜨끔해진다.



근현대사의 사상적 뿌리인 동학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아는 것과 연결된다. 그리고 동학을 알기 위해서는 창시자 수운 최제우를 빼고서는 불가능하다. 과거 100년 넘게 우리는 서양의 것은 훌륭한 것이고 동양의 것은 뒤쳐진 것으로 인식해왔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서 서세동점과 가렴주구의 혼란 속에서 개인의 안위가 아니라 백성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위대한 사상가가 우리에게도 있었다는 것이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책에서 인용된 부분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동학에서 인간사랑은 돈독했다. '사람은 누구나 다 꼭 같이 하눌님을 모시고 있기에[侍天主]' 인간은 서로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 수운 최제우나, '하늘을 섬기듯 사람을 서로 사랑해야 한다[事人如天]'고 말한 해월 최시형의 가르침이나, 그 후 '하늘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요 사람이 곧 하늘이기에[人乃天]' 사람은 서로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 손병희의 마음가짐은 그 시대의 진정한 복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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