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개의 초대장 - 죽음이 가르쳐 주는 온전한 삶의 의미
프랭크 오스타세스키 지음, 주민아 옮김 / 판미동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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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죽음은 인간의 가장 큰 두려움이면서 한편으로는 가장 위대한 스승이기도 하다.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들이 보여주는 삶에 마주한 태도에서 우리는 많은 교훈과 지혜를 배울 수 있다. <다섯 개의 초대장>에는 저자 프랭크 오스타세스키가 미국 최초의 불교 호스피스를 창립하여 평생토록 수천명의 죽음을 앞둔 사람들을 돌보면서 깨달은 교훈들이 담겨있다. 비슷한 책으로는 프랭크도 존경한다고 나와있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인생수업>이 있다. 하지만 <다섯 개의 초대장>이 가지는 차이점은 프랭크가 세운 호스피스가 불교 호스피스라는 것과 그가 젠마스터(선사)라는 것이다.


프랭크가 젠마스터인 것은 교훈을 얻는 것에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라 교훈을 어떻게 기술해냈느냐에 영향을 미쳤다. 흔히들 불교하면 절에가서 돈 내고, 등 달고, 복 비는 기복 종교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것은 불교의 한 단면일 뿐이다. 불교가 2천년 넘게 지금까지 전 세계로 퍼져나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붓다의 보편타당하고 뛰어난 가르침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가르침은 고해의 바다에 빠진 인간이 어떻게 자유롭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주었다. 형식보다 실용을 더 중시하는 서양에서는 일찍이 기복보다는 '붓다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불교가 전해졌고 그 사람들에게 불교는 우리가 떠올리는 기복 불교와는 다른 '붓다의 가르침'일 뿐이다. 프랭크는 붓다의 가르침을 통해서 그가 만난 수많은 환자들이 편안한 죽음에 이를수 있도록 안내하고 그 과정에서 붓다의 가르침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한다.


불교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와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불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보편타당한 종교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이라면 '진리에 이를 수록 종교의 벽은 사라진다'는 말에 동의할 것이다. 이것은 예수를 믿고, 부처를 믿고, 알라를 믿는 그런 종교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종교라는 단어는 한자로 으뜸 종(宗), 가르칠 교(敎)를 쓴다. 말그대로 인간이 살아가는 데 가장 으뜸이 되는 가르침, 즉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불교라는 표현에 종교라는 리앙스가 담겨있어 오해하기 쉽지만 <다섯 개의 초대장>에서 말하는 불교는 2500년 전에 살았던 고타마 싯타르타라는 한 뛰어난 사상가의 지혜로운 가르침 정도로 이해하면 무리가 없다.


<다섯 개의 초대장>의 부제는 '죽음이 가르쳐 주는 온전한 삶의 의미'이다. 프랭크는 죽음이 가르쳐 주는 온전한 삶의 의미를 크게 그가 '다섯 개의 초대장'이라고 명명한 5가지 교훈을 가지고 설명한다. '죽음의 순간까지 기다리지 말라', '세상 무엇이든 널리 환영하고 아무것도 밀어내지 말라', '오롯이 온전한 자아로 경험에 부딪히라', '어떤 상황 속에서도 평온한 휴식의 자리를 찾으라', '알지 못함, 초심자의 그 열린 마음을 기르라' 이 5가지는 고스란히 <다섯 개의 초대장>의 각 챕터 제목이 된다.



초대장이라는 말은 그 목적지를 담고 있다. 다섯 개의 초대장이 어디로 향하는 초대장인지 분명하게 기술되지 않음으로서 이것은 메타포가 되어 여러 여지를 남겨준다. 초대장에 따라, 우리가 처한 상황에 따라 사랑, 행복, 휴식 등이 대상이 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그것은 '삶'에 대한 초대장이다. 죽음을 통해 죽음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이게도 죽음을 통해서 우리는 삶을 배우는 것이다.


<다섯 개의 초대장>에는 일시성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죽는다. 하지만 일상속에서 우리는 그것을 잊고 마치 우리가 평생을 살 것처럼 산다. 우리가 인생이 유한하다는 일시성의 진실에 또렷히 깨어있다면 지금처럼 욕심부리고 누군가에게 화내고 상처주며 어리석게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것이다. 죽음을 눈 앞에 둔 사람과 그 주변사람들에게는 저 일시성이 너무나도 '분명한' 현실이 된다. 그렇게 죽음은 우리에게 삶의 소중함과 삶의 방향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참고로 여기서 나오는 일시성은 불교의 제행무상과 같은 말이다.


프랭크는 불교의 관점으로 삶의 기술(art)을 기술(write)하였지만 그 표현은 보편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종교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이 받아들일수 있도록 하였다. 첫 번째 초대장인 '죽음의 순간까지 기다리지 말라'라는 것은 쉽게 말하면 '다음에', '다음에' 거리면서 살지말고 지금 이 순간을 살라는 말이다. 두 번째 초대장인 '세상 무엇이든 널리 환영하고 아무것도 밀어내지 말라'라는 것은 분별하지 말라는 말이다. 세 번째 초대장인 '오롯이 온전한 자아로 경험에 부딪히라'라는 것은 상대를 사랑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이다. 네 번째 초대장인 '어떤 상황 속에서도 평온한 휴식의 자리를 찾으라'라는 것은 참된 휴식이란 호텔이나 휴양지를 가야 가능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쉬게하는 것이니 마음을 쉬게 하는 법을 배우라는 말이다. 다섯 번째 초대장인 '알지 못함, 초심자의 그 열린 마음을 기르라'는 것은 그 어떤 선입견이나 편견 없이 오직 순수한 호기심과 경이로움으로 세상을 보라는 말이다. 다섯 번째 초대장은 숭산 스님의 책 제목 <오직 모를뿐>을 떠올리게 했다. 실제로 <다섯 개의 초대장>에서 숭산 스님의 알지 못함(don't know mind)에 대한 언급도 나온다.


위에서 내가 소개한 내용이 부족할 수 있으나 500페이지가 넘는 내용을 몇 자에 담는다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한 것이기에 탓하지 말기를 바란다. 궁금해졌다면 한 번 꼭 읽어보길 바란다. <다섯 개의 초대장>를 처음 읽을 때 초반에 수 페이지에 걸쳐 나오는 그 긴 찬사에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책이길래, 한 두 명도 아니고 이렇게나 많은 영적 스승들이 앞다투어 찬사를 달아주었나. 그런 찬사가 책에 대한 호기심에 더 불을 지폈고 <다섯 개의 초대장>를 끝까지 읽어낼 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거짓이 아니었다.



불교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다섯 개의 초대장>은 충분히 좋은 불교 안내서가 될 것이고, 불교에 관심 없는 사람일지라도 당신이 지금 '살아있는' 사람이고 앞으로도 '살아 갈' 사람이라면 역시 <다섯 개의 초대장>은 충분히 좋은 인생 안내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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