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는 매일 밥을 먹습니다 - 강릉에서 제주까지 정성으로 차린 밥상 ㅣ 지식이 잘잘잘
허정윤 지음, 이승원 그림 / 한솔수북 / 2020년 3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아이와 밥을 먹을 때 종종 한톨의 밥이 우리에게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의 땀을 필요로 하는지 이야기해준다. 아이가 밥을 잘 남기기 때문이다. 나는 신을 믿는 것은 아니나 그런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으려는 뜻에서 밥 먹기전에 기도를 한다. 밥을 남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아이게 말로 설명하는 것에 한계가 있었다. 그러던 차에 <나는 매일 밥을 먹습니다>을 만났다.
<나는 매일 밥을 먹습니다>의 작가는 '밥상 안에 담긴 많은 사람들의 수고를 생각하며 이 책의 글을 썼다'고 하니 내가 아이에게 가르쳐주고 싶었던 딱 그 마음이다. <나는 매일 밥을 먹습니다>는 식사교육에 관한 책이기에 음식이 많이 등장한다. 작가의 의도가 아무리 그렇다 한들 시각에 민감한 아이들의 구미가 당길 정도로 맛깔나는 그림이 아니라면 본래 뜻을 이루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매일 밥을 먹습니다>의 그림작가는 작가의 본래 의도를 충분히 살려냈다. '밥상을 차리듯 정성껏 그림을 그렸다'는 말처럼 그는 정말로 그림으로 밥상을 차려 놓았다.
<나는 매일 밥을 먹습니다>에는 부록이 있는데 스티커와 스티커를 붙일 수 있는 판이 그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아이들이 스티커에 엄청 열광한다는 것을. 나는 가끔 퇴근길에 문방구에서 아이가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스티커를 사간다. 2천원 짜리 그 스티커에 엄청 행복해 하는 아이의 모습을 볼 때 내가 어디서 저 돈으로 이렇게 만족스러운 기분을 느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다시 돌아와서, 스티커 판에는 우리나라 지도와 지역명이 쓰여져 있고 스티커는 각 지역의 특산물이 그려져 있다. <나는 매일 밥을 먹습니다>를 읽으면서 소개되는 지역과 특산품을 배우며 붙여나가면 된다. 아이에게 판과 스티커를 주자 아이의 숨소리가 가빠지는 것이 느껴진다. 한편으로는 읽어주면서 이야기 자체보다는 '이번엔 어디에 어떤 스티커를 붙여야 하나'에만 꽂혀 있는 것 같아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다. 아이는 아이다.

<나는 매일 밥을 먹습니다>에서는 각 페이지 마다 지역의 이름과 특산품이 나온다. 그리고 짤막한 에피소드가 있다. 지역마도 사투리가 나와 재밌다. 웬만한 데는 느낌을 살려서 읽어지는데 제주도 사투리는 어려웠다. 경상도 사람인 나는 군시절 전국 팔도의 사투리를 다 경험했기에 다른 지역 사투리 모사에 자신이 있었지만, 제주도 사투리를 흉내내는 경지는 아직 가야할 길이 먼듯했다. 우리 아이는 특히 전라도 사투리에 반응했다. 전남 광양에서 나오는 "아따, 영규야! 매실짠지랑 매실엑기스 잊아뿔지 말고 택배로 부치고 와라 잉~"에서 빵터졌다. 전라도 사투리 끝 부분 "잉~"하는 소리가 재밌었나보다. 아이가 더 이상 안 웃을 때까지 반복해서 읽어주다 내가 먼저 지쳤다.
읽어주는 도중에 아이가 그런다. "아저씨 너무 힘들겠다. 내가 가서 도와주고 싶어." 별것 아닌 말인데, 아이의 진심이 묻어나 뭉클하다. 인간이 본래 선하다는 성선설은 이럴 때 보면 참 맞는 말이다. 남의 어려움을 보고 반사적으로 도와주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는 아이의 착한 마음씨에서 순수함이 느껴진다. 세상의 풍파에 너무 때 묻지 말고 남을 돕고 배려하는 마음을 오래 지켜나가길 잠깐이나마 기도해본다. 아이가 아저씨 힘들겠다고 말할 때 한편으로는 속으로 '성공이다'를 외쳤다. 그 새를 놓치지 않고 아이에게 말해줬다. "아저씨가 이렇게 힘들게 일해서 키운 쌀이 우리 한테 밥으로 오는거야. 하나도 남기면 안되겠지?" 눈뜨면 밥이 식탁 위에 있으니 밥은 당연히 있는 것처럼 알았을텐데 이렇게 농사짓고, 수확하고, 배송되는 과정들이 그림으로 잘 나와있어 아이가 음식이 식탁까지 오는 과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되어있어 좋았다.
그렇게 전국 팔도 많은 분들의 노고로 식재료들은 예준이 집으로 오고 아빠가 요리해주는 장면이 나온다. 요리를 아빠가 하느냐 엄마가 하느냐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겠지만 아마도 작가는 주방에서 엄마가 아닌 아빠가 요리해주는 장면을 넣음으로써 앞 세대까지 존재했던 부엌에서의 성역할 구분이 이젠 박물관에서나 볼 수있는 지나간 유물이 되었음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확실히 나의 부모님 세대만 하더라도 남자가 밥하는 것은 보기 드문 광경이였지만 나만 하더라도 자취를 오래했던 나의 부엌 점유도가 높은 것을 보면 시대가 달라진 것은 분명하다.

<나는 매일 밥을 먹습니다> 마지막에는 아빠가 정성스레 준비해 준 맛있는 식사를 예준이가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하고 먹는다. 참 잘 짜여진 책이다. 아이들이 <나는 매일 밥을 먹습니다>을 본다면 그 마음이 오래 가지는 않을 지라도 분명 '음식 남기지 말아야지'하고 잠깐이라도 생각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다 읽어주고 났는데 책은 뒷전이고 아이는 스티커 붙은 판을 들고 엄마한테 설명해주고 있다. 우리가 볼 땐 책이 메인이고 스티커가 사이드인데, 아이에게는 스티커가 메인인듯 하여 재밌다. 아이가 밥을 잘 안먹어서 걱정이라면 <나는 매일 밥을 먹습니다>이 도움이 될 것이다. 적어도 5살짜리 남자아이에게는 통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