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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이 안 나와요 ㅣ 아이노리 세계 그림책 5
장스라이 지음, 핑자오자오 그림, 김영미 옮김, 유진상 감수 / 아이노리 / 2020년 3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른이 된 우리에게는 이젠 너무 익숙해진 배변이라 당연한듯 살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배변도 교육이 필요한 것임을 상기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다른 것은 잘 기억 안이 안나고 어렸을 때 외갓집에 잠시 살았던 적이 있었는데 똥누고 나서 외숙모를 부르면 숙모가 오셔서 똥을 닦아주셨던 기억이 난다. 왜 어머니가 닦아 주신 기억은 없는데 숙모가 닦아 주신 기억만 있는걸까. 그리고 나는 언제부터 나 스스로 배변 뒷 처리를 할 수 있었을까. 지금은 너무도 당연하게 스스로 잘 해결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그 당연한 모든 것들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던 것임을 새삼 배우고 감사하게 된다. <똥이 안 나와요>에서 아이가 용변을 끝내고 바닥에 엎드려 있으면 엄마가 와서 닦아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걸 보고 잠시 옛날 생각을 해봤다.
<똥이 안 나와요>는 배변교육을 위한 동화다. 작가는 중국인 소아과 의사다. 소아과 의사로 현장에서 습득한 전문지식을 아이를 기르는 부모들에게 공유하고자 공익 강연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두 명의 외손주를 둔 할머니인 작가는 손주들을 키우며 그림책을 읽어주다가 문득 아동 건강 관련 지식을 그림책으로 전달하면 효과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고 실천으로 옮겨 그림책을 쓰기 시작했다 한다. <똥이 안 나와요>는 그림책이지만 배변과 관련된 의학지식이 포함되어 있다보니 번역하면서 국내 내과전문의의 감수까지 받아 전문 정보를 재차 검증한 것이 눈에 띈다.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지만 아이들의 편식은 어떻게 할 방도가 딱히 없다. 고문 하듯 입을 잡고 야채를 넣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고기는 좋아하고 야채는 안 먹는다. 늘 밥상 앞에서 아이와 실랑이를 벌이기 일쑤다. <똥이 안 나와요>에서는 변비의 원인 중 하나로 고기는 좋아고 야채는 먹지 않는 식습관을 지적한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가끔 느끼는 건데 아이가 우리가 말하는 것보다 책이나 TV에서 나오는 말이 더 잘 먹히는 것 같아 살짝 씁쓸한데, <똥이 안 나와요>에서 고기나 튀김 같은 음식은 적당히 먹고 야채를 많이 먹어야 한다고 읽어주자 아이가 쉽게 수긍해서 좋으면서도 섭섭했다.
그리고 변비의 또 다른 하나의 원인으로는 변의를 참는 것이다. 아이들은 TV보기를 좋아한다. 요즘은 TV보다 유튜브가 대세다. 일방적인 시간에 따라 방영되는 TV와는 달리 유튜브는 아이가 보고 싶은 것을 언제든 선택하여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만화영화를 보여주다 보면 분명 화장실 가고싶어 하는 것 같은데 참는 것이 보인다. 오줌의 경우는 오줌통을 TV까지 가지고 와서 누기도 한다. TV에 확 빠져버리다 보니 화장실을 제때 가지 않고 참거나 대충 볼 일을 보는 것이다. 이런 행동이 변비를 야기한다고 <똥이 안 나와요>에 나온다. 똥을 참은 주인공이 변비에 걸린 것을 읽어주자 뜨끔했는지 아이는 자기는 아닌데 옆에 있는 인형이 그러는 걸 봤다면서 인형을 핑계댄다. 시미치 떼지만 일단 잘 알아 들은 것 같아 만족했다.
변비로 항문에서 피가나고 무서운 병원까지 갔다온 주인공은 앞으로는 과일과 채소를 골고루 먹고 물도 자주마시고, 언제든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참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그림책은 끝난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라 뒷부분에는 '의사 선생님이 부모님께 드리는 편지'라는 코너가 있어 아이들 변비의 원인, 치료 방법 같은 알아두면 유용한 내용들이 수록되어 있어 참고하기 좋다.

아이에게 <똥이 안 나와요>에서 제일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 어디냐고 물었다. 아이는 주인공 장 속을 꽉 채운 똥이 인사하는 장면과 똥이 변기통 속에서 구해 달라며 울고 있는 장면을 꼽았다. 배변교육이니 의학정보니 우리는 많은 것을 아이에게 전해주고 싶지만 정작 아이의 기억에는 똥이 '안녕'하고 '도와줘'하는 것만 남는 게 아닌가 살짝 걱정스럽기도 했다. 그래, 뭐니뭐니해도 아이들은 똥과 방귀를 제일 재밌어하고 좋아한다. 그래, 재밌으면 됐다. 아이가 야채는 싫어하고 기름진 음식만 좋아한다면, 물은 잘 안마시고 똥을 참는 것 같다면, 혹은 변비가 생겼거나 생길 것이 걱정된다면 <똥이 안 나와요>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