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꽃처럼 내게 피어났으니
이경선 지음 / 꿈공장 플러스 / 202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그대, 꽃처럼 내게 피어났으니> 서평을 쓴다. 시집이라 시평이라 할까하다, 여러 시들이 모여 만들어 낸 하나의 이야기를 들은지라 서평이 맞겠다. 시를 읽는 방법에 따로 바른 방법이랄 것이 있겠냐 마는 나는 그래도 소리내에 읽는 것이 맞다 하고 싶다. 이 시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소리내어 읽었다. 안에 담긴 시 117. 실은 115편이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또한 시로 쳐야했다.

 

시 모습이 예쁘게 나왔다. 배열에서 느낀다. 시인은 쓸 때 배열에 신경을 썼을까. 아니면 대구와 음률을 맞추려 하다보니 그렇게 정렬이 된 걸까. 내 눈에만 그리 보이는 것인지 '쉼표의 기교'라 할 부분도 보였다. 소리 내 읽고 있으니 아이가 시가 무어냐 묻는다. "노래는 알지? 부르면 노래고 쓰면 시야" 아이에게 그것을 증명해주고 싶은 마음에 그때부터는 생각나는 노래에 시를 가사로 붙여 불러줬다. 장범준 노래에, 권정열 노래에. 잘 어울려 놀랐다. 노래 만드는 사람이 노래 만들 때 이런 방식으로 만드는 건가. 악상을 느껴 음률을 만들고 거기에 정성스레 쓴 시를 올리는 건가. 이야기가 샌다.

 

시집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제목에서 처럼 '그대'''이 주인공이다. 1장에서는 '그대가 피었다', 하지만 2장에서는 '그대가 저문다'. 이 사랑, 아니 만남이라고 하자, 만남은 끝났다. 하지만 1장에 '피었다'라는 과거형과 달리 2장에서 시인은 '저문다'라고 진행형을 쓴다. 끝나지 않은 시인의 마음과 이미 상대가 떠나가버린 현실 사이의 충돌이 '저문다'라는 진행형을 만들어 냈다.


시를 보다보면 몇몇 단어들이 특히 많이 보인다. , , , , 담는다. 이 중 '담는다'는 단어의 쓰임이 눈에 띈다. 담는 다는 것은 마음에 담는 것을 의미한다. 시인은 사랑하는 사람만 마음에 담는 것이 아니라 봄도 꽃도 달도 담는다. 어떤 때는 걸음도 담는다. '생각한다'라는 표현을 '담는다'로 치환해도 말이 되기에 같은 말을 시적으로 표현하려 그랬나보다 하다가 그 차이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본다. 생각은 머리에서 하지만, 담는 것은 마음에 담긴다.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대상을 바라보고 싶어서 그랬다고 짐작해본다.

 

개인적으로는 1장보다 2장의 시들에 내 마음이 동한다. 이 시집의 주제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사랑에 대한 것이다. 1장은 사랑의 정오라면, 2장은 사랑의 노을이다. 한참 사랑하고 그저 좋고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다울 때 시는 필요없다. 사랑보다 아름다운 것이 있을 수 없는 순간일 테니까. 그렇기에 시는 이별 후에 필요한 것이다. 텅 빈 가슴을 위로해 줄 것이 필요 하기에. 2장에서는 시시각각 요동치는 감정이 느껴진다. 떠난다며 세상이 무너져 내린 듯 두려워하다, 영원히 기다리겠다고 했다가, 고맙다고 하다, 다시 돌아오라 소리치다, 예쁜 싯말에 뒤에 숨어 원망도 던지다, 그러다 헤어짐을 점점 받아들이다, 또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을 비추다, 그 사랑의 의미를 정리하며 마친다.

 

내가 이젠 너무 감정이 굳어져버린 걸까, 너무 세상 때에 찌든 걸까. 이미 떠나간 여인을, 그리고 돌아올 가능성도 희박해보이는데도 평생을 기다리겠다고 잠못이루는 화자에게 등짝을 쳐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만 찌질하게 굴어라! 니가 지금 보는 게 다가 아니다. 세상 안 무너졌고, 아직도 니 인생 인연줄에 예약되어 있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사랑들이 번호표 뽑고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함부로 평생 기다린다는 말 하지마라.' 


물론 나도 이해한다, 평생'이라는 말조차도 그 말을 하는 순간의 마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평생을 사랑하겠다' 하지만 우리는 얼마나 많이 목격했던가, 유효기간 끝난 맹세의 끄나풀을 붙잡고 '영원히 사랑한다며...' 울고 있던 모습들을. 그렇더라도 '평생을 사랑하겠다' 나는 그 말이 거짓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진실이었다, 그 순간 만큼은. 그 때 그 사람의 마음은 실제로 그랬으니까. 하지만 우리는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마음은 변할 수 밖에 없다는 진실을. 그렇기에 단지 헤어짐이 그 사랑이 거짓이었음의 증거가 될 수는 없다. 화자도 이를 깨달았기에 에필로그에 '사랑인 네가 떠났다하여, 사랑이 아닐 수 없었으니'라고 했을 것이다.

 


다행히도 화자는 마지막에는 그 감정의 굴곡들을 지나 이별의 의미에 대해 되짚기 시작한다. 그리고 사랑의 수업은 이별까지 포함됨을 깨닫는다. 헤어짐이 있기에 교훈이 완성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말이 있다. "삶이 아름답다면, 죽음도 아름답다. 그 둘은 같은 손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사랑 또한 그렇다. 사랑의 행복도 이별의 절망도 결국은 모두 우리 마음에서 나온다. 우리 마음은 늘 변한다. 영원할 수 없다. 영원은 섭리를 거스르는 것이다. 자연계에 영원한 것이 있던가. 불변의 상징인 다이아몬드도 인간의 시간에서 볼때나 영원한듯 하지 우주의 시간에서 대어보면 탄소 그을음일 뿐이다


하지만 영원한 것이 없다고 해서 무의미하고 허무한 것으로 치부한다면 잘못하는 것이다. 헤어짐이 있기에 사랑했던 순간은 더 아름답고 더 소중한 것이다. 이별은 잘 잊어버리고 어리숙한 우리에게 영원한 것은 없음을 상기시켜 아름다운 순간들을 가벼이 여기지 않도록 한. 매 이별마다 순간을 최대한으로 살라고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화자가 '이별의 의미'에서 누군가를 떠나보내며 배웠다는 것 또한 이것이라 생각한다. 화자가 그토록 좋아하는 달도 시간에 따라 사라지고 날에 따라 모습이 변한다. 바뀌고 변하는 것이 사랑이다.

 

다 읽고 나서 접어 놓았던 페이지들을 다시 한번 더 읽었다. 드라마 한 편 본 것 같다. 아까 떠나간 연인을 못보내 핸드폰 붙잡고 잠 못 이루어 울던 화자의 등짝을 후려 갈기고 싶었던 것은 그 속에서 과거의 내 찌질했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고 부끄러이 고백한다. 정신차리라며 과거의 내 등짝을, 아니 얼굴을 갈겨주고 싶다. 그땐 왜 그렇게 그 사람만 사랑인줄 알았을까. 떠난 마음에 대한 일방적이고 궁상맞고 지고지순한 기다림도 사랑인 줄 알았다. 그땐 왜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했을까. 가버린 사람에 대한 미련과 내 바램대로 되어야 한다는 집착의 환상인 줄 진작에 알았더라면 그 시절 다른 아름다운 인연들을 그리 헛되이 놓치지는 않았을 텐데. 에휴, 또 봐라, 정신차리자. 글을 마쳐야 할 때가 와서 마치긴 한다만, 뭔가 다 못 내어놓은 게 있는 듯 씁쓸한데 그게 뭔지 잘몰라 또 씁쓸해하며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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