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 제14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은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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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편지를 쓰다_

                                                                     장은진,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 늘 편지가 쓰고 싶어진다. 아직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가지게 되는 궁금증과 설렘을 전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뻔한 말도 편지로 옮겨쓰고 나면 뭔가 그럴 듯해 보이기도 하고, 내 마음을 더 투명하게 반영하는 것도 같다.  

 

 

#1. 살아있다는 건 길 위에 서 있다는 것_ 삶

 

'나'는 모텔을 전전하는 길 위 생활 여행자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와조'라는 개와 동반하는 여행이라는 사실. 그들은 벌써 여행 자체가 일상이 되어 버렸다. 오다가다 사람들을 만나고 기억에 남는 사람들은 이름 대신 숫자로 그에게 기억된다. 그리고 매일 그는 모텔에서 누군가에게 편지를 쓴다. 편지를 우체통에 텅, 하고 넣을 때마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집에 편지가 왔는지 묻는다. 늘 대답은 한결같다.

 

오늘, 아무도 나에게 편지하지 않았다.  P.39

 

자신의 집에 한통의 편지라도 도착하는 날이 그에겐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 될 것이었다. 하지만 친구의 대답은 반복되는 녹음 테이프처럼 같았고, 그에게 집으로 돌아갈 날은 영영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2. 죽음은 예고된 순간조차 갑작스러운 것_ 삶과 죽음 사이

 

모텔을 전전하는 '나'와 와조에게 관심을 보이는 751. 751은 『치약과 비누』라는 소설을 쓴 작가이고, 자신의 책을 어디서든 판매하고 다니는 여성이다. 처음엔 '나'는 자신을 귀찮게만 하던 751이 왠지 모르게 싫고 피하고 싶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가장 많이 털어놓게 되는 사람이 바로 751이고, 어느새 함께라는 것이 편안해지기 시작한다. 혼자서 생활하는 데 익숙한 두 사람이 만나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유대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는 751의 책을 낭독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고, 751은 하모니카를 연주하며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그리고 '나'를 혼란에 빠뜨린, 편지 한통만을 남긴 채 떠나버린 옛 애인과 마주친다. 자신의 기억 속에서 도려내야만 했던 옛 애인과의 조우는 지난 시간들을 다시금 기억하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분명한 건 옛날에 내가 느꼈던 그런 둘의 느낌은 아니란 거야."

"어떤 느낌인데요?"

"그냥 혼자인 느낌."   P.159

 

 

늦은 시각, 꽉 들어찬 모텔에 빈 방이 없는 관계로 예외적으로 가게 된 고시원에서 화재가 발생한다. 골아 떨어진 '나'를 와조는 급히 깨우고, 751과 '나', 와조는 그곳을 빠져나오는 데 성공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방음도 잘 되지 않는 방 한 칸 사이사이에서 삶과 죽음은 이렇게 우리 사이를 오가고 있는 것이다.

 

잠속을 헤매고 있는 '나'를 깨워 화재로부터 구한 것은 그의 동반자 와조였다. 와조는 끝까지 '나'를 지키려고 애를 썼지만 점차 에너지는 소진되어 가고 있었다.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이 더 많아지는 순간이었다.

 

 

#3. 편지를 입에 넣지 못한 차갑고 딱딱한 텅 빈 우편함 _ 죽음

 

'나'는 당연하게도 집에 편지가 오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도 여행을 중단하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물론 병든 와조 때문이었다. 나이를 제법 먹은 데다 길 위에서의 생활이 녹록치 않았을 것이 분명한 와조에게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모든 게 자신의 탓인 것만 같다. 삶은 그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조부의 장례를 치르러 가는 날 한 줄짜리 이별 편지를 받은 것처럼. 편지를 기다리는 그에게 아무도 편지하지 않는 것처럼. 와조가 아픈만큼 자신도 여행을 지속시킬 힘이 더이상 남아있지 않았다는 것을 그는 알게 되었다.

 

죽음은 그랬다. 정작 죽음이 필요한 사람에겐 더 큰 고통을 주고서 삶을 선물했다.

 

 

 

#4. 절벽 뿐인 낭떠러지 앞에서 뒤를 돌아보면 삶은 반전처럼 환히 웃고 있다 _ 삶

 

집으로 돌아온 '나'. 화장실 문을 열자 똑.똑.똑. 수도꼭지에 물이 새고 있다. 약 3년 간 이렇게 물은 홀로 묵묵히 새어 나가고 있었다. 집에 돌아온 지 하루만에 기다렸다는 듯 와조는 죽음을 맞이한다. 집에서 편히 눈을 감은 와조를 얕은 곳에 잘 묻는다. 3년 간의 여행을 지속할 수 있었던 힘. 버텨낼 수 있었던 힘. 그 힘은 와조와 함께 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리라.

 

옆집 아주머니의 부산스런 발걸음과 수다가 들려온다. 그는 들려오는 소리를 의미로 해석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것처럼 멍하다. 그리고 아차, 하며 옆집 아주머니가 나갔다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온다. '나'에게 내미는 커다란 박스 하나. 그속엔 그동안 오지 않았다고 믿었던 편지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펑펑 쏟아져 내리는 함박눈처럼 축복처럼 자신에게 내려앉은 편지들을 보며 3년 간의 시간들이 눈물처럼 터져나왔다.

 

이 편지 속에 다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다 들어 있다. 이 사람들이 보내준 편지에 답장만 쓰고 지내도 평생을 충분히 살아낼 수 있을 것 같다. 신기한 건 편지를 읽고 나서부터 발작이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앞으로 내게 오는 편지만 있다면 발작 같은 건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편지를 받을 사람이 있고 또 답장을 보내줄 사람이 있다면, 생은 견딜 수 있는 것이다. 그게 단 한 사람뿐이라 하더라도. P.277

 

 

#5. 마주해야 할 삶의 진실은 결국엔 자신의 몫이다 _ 죽음

 

3년 간 외면했던, 받아들일 수 없었던, 믿고 싶지 않은 그 진실을 이야기할 시간이다. 길 위에서 그 삶의 진실을 마주하기 위해 그는 걷고 또 걷고, 편지를 쓰고 또 쓰고, 사람들을 만나고 또 만나고를 반복했는지도 모른다. 우리에겐 언제나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니까.

 

'나'에겐 가족이 없다.

 

그가 돌아온 곳은 북적대는, 일상에 바쁜 가족들이 귀가하여 돌아오는 집이 아니라 텅 비어있는 집이다. 가족들의 죽음. 너무나 가까이 있어서, 공기처럼 익숙한 것이어서 소중한지 잘 몰랐던 가족들의 죽음. 그것을 받아들이려면 피부처럼 살갗처럼 붙어있는 것을 떼어내는 고통이 뒤따랐으리라.

 

조부의 장례를 치르러 장지로 떠나던 날, 등기 우편으로 날아온 사랑하는 연인의 이별통보편지를 받는다.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편지에도 일방통행이 있다는 것을. P.211 때론 단 한 줄의 문장이 날카로운 칼보다 더 깊고 아프게 다가올 때가 있다. 살아있는 사람을 잃는 것은 죽은 사람을 잃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다. 그래서 가족들이 모두 함께 탑승한 자동차에서 내려 '나'는 여자친구를 찾기 위해 헤맨다.

 

그리고 그 날. 가족으로부터 벗어나 다른 이를 찾아 헤매던 그 시각. 가족들은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다. 저 멀리, 저 높은 곳으로 흩날리듯 먼저처럼 사라지고 만다.

 

 

#6. 나는 오늘도 너에게 편지를 쓴다 _ 삶과 죽음을 잇는 '기억' 으로부터

 

우리는 각기 다른 길 위에 서 있다. 다른 곳을 바라 보거나 다른 곳을 향해 가기도 한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우리가 죽음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삶을 이끌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누구에게나 피할 수 없는 진실이다. 그 진실을 마주하며 우리는 이 시간과 공간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선택해야만 한다.

 

'나'는 자신의 기억 속에서 살아있는 누군가에게 매일 편지를 쓰기로 선택했다. 그 행위는 삶과 죽음을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가 될 것이다. 그 통로에서 때론 빛을, 때론 어둠을 발견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다 알록달록 다른 색으로 물들어진 자신의 삶의 광채를 보며 가슴이 벅차오르기도 할 것이다. 그가 기억하는 한 그 사람들은 오래오래 죽지 않고 그의 가슴 속에 살아 있으리라 믿는다. 그가 숫자로 명명한 사람들은 숫자의 특징처럼 끝없이 계속 더해져 갈 것이고, 반복되거나 겹쳐지는 일 없이 명확하고 개성있게 기억될 것이다. 기억하는 한, 그들은 영원히 살아 있다. 기억을 불러오는 순간 우리는 보고 싶은 사람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그래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들에게 마치 내일이라도 당장 볼 수 있을 것처럼 일상을 이야기하고 편지를 쓴다.   

 

 

#7. 삶과 맞바꾸듯 편지에 집어 넣는 일상 속에서 내게 남겨지는 것_ 새콤달콤한 여운

 

나는 줄곧 누군가에게 편지를 써왔다. 홀로 있는 시간이면 늘 누군가가 떠올랐고, 그 시간 속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에게 나의 가장 소중한 시간을 내어주었다. 내 시간을 곱게 말아 우체통 속에 툭, 하고 집어 넣으면 그 날의 공기와 바람, 햇살이 어느 날 나의 수신인에게 반짝 가닿으리라 믿으면서.

 

 

편지란 어쩌면 내 속에 있는 무언가를 떠나 보내기 위한 것일까. 내 안에 혹은 내 곁에 나인듯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것들을 언어라는 형식으로 내보내는 일. 슬픔, 기쁨, 아픔, 설렘, 고통, 즐거움… 모든 감정들을 편지 속에 털어 놓고 나면 묘하게도 내용 대신 어떤 느낌만이 내 속에 잔잔히 남겨진다. 무거운 진실들도 그렇게 언어의 옷을 입혀 내보내면 늘 가볍게 털고 일어설 수 있었던 것 같다.

 

한 자 한 자 써내려간 편지지에 장 마다 번호를 매기고 봉투 크기에 맞게 고이 접어 봉투 속에 쏘옥 집어 넣는다. 풀로 깨끗하게 봉하고 우표를 오른쪽 상단에 붙여 넣는다. 편지를 가슴에 한 번 가득 안고 행운을 빌며 빨간 우체통에 퐁당 집어 넣는다. 편지가 도착할 때 즈음엔 내용은 모두 잊혀지고 보내는 순간의 기억만 남는다. 그 여운으로, 그 기억으로 새로운 바람을 느끼는 오늘을 맞이한다.

 

 

 

책을 다 읽고 나는 '아무도 편지 하지 않다'의 제목을 마음으로 '모두가 편지 하다'라고 바꾸어 불러 본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우편함에 대롱대롱 줄지어 편지들이 늘어져 있는 모습을 상상하게 되는 지금. 느리게 가지만 아주 오랫동안 마음 속을 차지하게 되는 손편지로 풍성한 11월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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