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제1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3판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매혹의 고통은 종종

새의 가벼운 육체를 꿈꾸게 한다

하여 나의 질투는 공기보다 가볍다

난 사랑하고 있으므로, 사라지고 싶은 것이다

        -유하, '휘파람새 둥지를 바라보며' 중에서

 

 "사람은 딱 두 종류야. 다른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사람과 죽일 수 없는 사람. 어느 쪽이 나쁘냐면 죽일 수 없는 사람들이 더 나빠. 그건 K도 마찬가지야. 너희 둘은 달라 보이지만 사실은 같은 종자야. 누군가를 죽일 수 없는 사람들은 아무도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해." -49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채. -53

 

 그를 나락으로 밀어넣은 것들은 언제나 그를 매혹시켰던 존재들이었다는 사실을 그는 잊지 않고 있었다. -102
 
 

 단 한 번도 나를 들여다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어디론가 계속 도망치고 있는 기분으로 나는 평생을 살아왔던 느낌이었어. 여기가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나는 이러저러한 것들로부터 계속 도망치고 있었던 거지. 나는 그 남자에게 그 얘기를 다 했지. 그러자 그 남자는 아무 말 하지 않고 나를 안아주고 내 얘기를 들어주었어. 너무 아늑하고 포근해서 아마 죽음의 냄새를 맡았던가봐. 그 남자를 만나서 나는 내가 무엇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는지 알게 됐어."-125

 

 

 

 고등학교 무렵이었나. 한 친구가 내게 말했다. 고통 없이 죽어가는 법을 알아 냈다고. 나는 진심 궁금했다. 나에게도 알려 달라고, 애절한 눈빛으로 그녀를 보챘지만 그런 건 절대 알려주는 게 아니라고 매정하게 말했다. 아마 그때부터 나는 '죽음'이라는 것에 매혹되었던 것 같다. 지금이야 산다는 것이 때때로 지치고 지루하고 의미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는 건 안다. 그치만 삶을 놓아버리고 싶을 만큼은 아니다. 하지만 그땐, 한 발만 성큼 다가서면 옥상에서 떨어질 때처럼 그렇게 죽음과 가까이 살아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내가 좋아했던 작가 아멜리 노통브는 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누군가를 정말로 사랑하면 죽일 수 있는 거라고. 순수하고 맑은 그 무언가가 사라지는 것이(어른이 되는 것이) 견딜 수 없어서 그 자체로, 젊음 그 자체로 남게 하기 위해 죽이는 거라고. 나는 그녀의 언어에 매혹되었고, 가끔은 죽이고 싶을 만큼의 사랑 혹은 증오를 스스로에게서 발견하기도 한다. 뭐 어쩌다 보니, 그녀와도 꽤나 멀어졌는데 얼마 전에 읽었던 한강의 연작소설 <채식주의자><몽고반점><나무불꽃>을 이어서 보고, 얼마간 잊고 지냈떤 다시 한 번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누군가는 살고 살아서 '사람'이라는데, 왜 사람은 그 삶을 견뎌내지 못하고 '죽음'을 사랑하게 되는 걸까. 자신의 목숨을 끊는 일은 늘 금기시되어 왔고, 나쁜 것이라고 배워왔다. 하지만 그 판단을 과연 인간이 내릴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연결해서, 김영하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읽고, 미미가 물감통에 머리카락을 치렁치렁 집어 넣고 몸으로 표현하는 예술을 보며, 나는 <몽고반점>의 영혜를 떠올렸다. 어느 날, 꿈 때문에 고기를 먹지 않게 되었고,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이혼하게 되었고, 삶이 망가졌다. 그런 영혜에게 찾아온 형부. 형부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영혜의 몽고반점에 매혹되어, 그녀의 온몸에 살아있는 꽃을 그려넣어 작업을 한다. 식물.... 그녀는 나무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사람이 먹는 걸 먹지 않고, 뼈가 앙상해질 때까지 견뎌냈다. 나무가 되는 길이, 죽음과 맞닿아 있다면 기꺼이 그것을 해내고 싶었던 거다. 온몸에 꽃이 활짝 피어날 때의 그 열망과 생기..... 그것은 미미가 마지막으로 온몸을 다해 작업을 한, 생이 꺼지기 전에 행한 어떤 불꽃 같은 거였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가 원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죽음도 그렇다고 배워왔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책이었다. 삶, 그것은 과연 늘 옳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죽음, 그것은 그저 어둠뿐인 통로일까. 이 매혹적인, 알 수 없어서 더 끌리는 죽음에의 손길을 어찌 뿌리칠 수 있을까. 이토록 인생은 무의미하게 반복되기만 하는데, 금기로 가득차 있는데!

 

 

 이 글을 보는 사람들 모두 일생에 한 번쯤은 유디트와 미미처럼 마로니에공원이나 한적한 길모퉁이에서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나는 아무 예고 없이 다가가 물어볼 것이다. 멀리 왔는데도 아무것도 변한 게 없지 않느냐고. 또는, 휴식을 원하지 않느냐고. 그때 내 손을 잡고 따라오라. 그럴 자신이 없는 자들은 절대 뒤돌아보지 말 일이다. 고통스럽고 무료하더라도 그대들 갈 길을 가라. 나는 너무 많은 의뢰인을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는 내가 쉬고 싶어진다. 내 거실 가득히 피어 있는 조화 무더기들처럼 내 인생은 언제나 변함없고 한없이 무료하다. -134
 
멀리 떠나가도 변하는 게 없을까. 인생이란.-134
 
마지막 구절을 읽고 생각했다. 좋은 작품이란 모두가 아는 간결하고도 간단한 진실을 알려주기 위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정말 공감한다. 왜, 멀리 떠나가도 변하는 게 없을까. 인생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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