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위로 - 누구도, 무엇도 위로가 되지 않을 때
이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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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도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다. 회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 몸과 마음을 누군가 짓누르는 듯 갑갑했던 겨울날이었다. 온몸에 있던 기운이 쑤욱 빠져나갔고 어떤 의욕도 생겨나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다가 골목 구석에 불빛 하나가 보여 그냥 아무생각없이 버스에서 내려버렸다. 불빛을 따라가보니 그곳엔 이제 막 준비에 들어간 포장마차 하나가 있었다. 주황색 천막을 깨끗하게 털어내고 테이블을 정리하고 여러 개의 알전구의 빛을 확인하는 남자 분의 눈과 손이 부산스러웠다. 함께 있는 여자 분은 그 분의 아내인 듯 보였는데 앞치마를 둘러매고 갖가지 야채들을 썰고 있었다. 내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오픈 준비에 바빴던 두 분은 나를 보고 화들짝 놀라더니 금세 환하게 웃으며 자리에 안내했다. 춥지 않도록 전기난로를 켜 주었고, 투명한 막도 둘러쳐주었다. 나는 자리에 앉아 주문을 하지도 않은 채 한참을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쿵짝쿵짝, 리듬감 있는 소리로 울려퍼지는 야채 써는 소리, 눈빛으로 교환하며 서로의 동태를 살피는 부부의 모습, 새로운 시작을 알리듯 반짝 빛이 들어와 주변을 비추는 노란 알전구, 그 사이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뜨거운 국물의 입김..... 모든 게 너무도 따뜻해서 순간 움츠러들었던 내 마음이 사르르 녹아드는 것 같았다.

 

 

 손님을 위해 정성을 다해 만드는 음식. 자신의 부푼 사랑을 녹여 누군가에게 내어주는 음식. 그것은 분명 우리가 때로 길을 잃고 헤매거나 빠져나올 수 없는 깊은 늪에 빠졌을 때 아주 간단히 우리를 구원해줄 수 있음에 틀림없다는 걸 아마 그때 알았던 것 같다.

 

 이유석 세프의 '맛있는 위로'. 이 책은 바로 답답했던 마음을 위로 받고 싶었던 그날 보았던 한줄기 빛처럼,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국물의 입김처럼 따뜻하고 환했다. 얼마 간 침울해 있던 나에게 다시 힘을 실어준 그런 기특한 책이기도 했다.

 이유석 셰프는 압구정에 있는 '루이쌍끄'라는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오너 셰프다. 이 프렌치 레스토랑은 점심 때는 운영하지 않는 심야식당이다. 그는 와인과 함께 즐길 수 있는 프랑스 요리들을 손님들에게 대접한다. 때론 친구처럼 때론 연인처럼 혹은 가족처럼.

 

 

 각 챕터별로 들려주는 그가 만난 사람들과 그 속에 녹아든 이야기와 맛있는 음식들은 그 속으로 푸욱 빠져들게 만들어 급기야는 마치 그 음식을 그에게 대접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가 소개하는 음식들은 이야기 말미에 레서피가 함께 제공되어 있다. 금방이라도 후라이팬이나 오븐을 들고 조리를 해야할 것 같은 유혹에 빠진다. 그러면서 한 장 한 장 넘기며 군침을 꼴깍 삼키다보면 발끝에서부터 머리 끝까지 허기가 밀려오는 것만 같았다. 허전한 마음에는 온기를 불어넣는 책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거짓말하지 않는 뱃속은 배고픔을 느끼게 하는 기이한 책이었다.

 

 

나이는 많지 않은 서른 초반의 훈남 이유석 셰프 또한 이 자리에 오기까지 험난한 여정들을 많이 겪었다. 외로움에 허덕이기도 했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과 싸우기도 했고, 사랑했던 연인과 헤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은 단 하나. 누군가에게 맛있는 요리를 해주고, 그들이 자신처럼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는 것. 그래서 결국 그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들을 위해 언제나 온 정성을 쏟아부어 요리를 했으며 자신과 꼭 맞는 새로운 사랑도 찾게 되었다.

외롭던 시절, 자신의 주위에 아무도 없더 여겼을 때 동료가 끓여준 마늘 수프. 뜨끈하고 얼큰한 국물 덕에 감기도 낫고 외로운 마음도 치유받았다는 이유석 셰프. 결국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건 따뜻한 관심이었을까.
요리사 지망생이라는 한 청년이 레스토랑을 방문하여 셰프에게 후라이팬으로 스테이크를 굽는 방법을 물어본다. 꿈을 이룬 누군가가 꿈을 꾸는 누군가에게 힘을 실어주는 역할 또한 음식이란 기특한 녀석이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 사랑하는 연인과 늘 함께 먹었던 달콤한 수플레. 듬뿍 떠먹고 한없이 달콤한 수플레가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순간 모든 게 사라지는 것처럼 가끔은 불현듯 찾아오는 이별. 그래도 늘 달콤함을 꿈꾸며 우리는 음식을 통해 황홀함의 세계를 먼저 느끼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달콤한 쇼콜라. 낙방을 거듭하는 취업 준비생에게 건네는 음식.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멈추지만 않는다면 분명 네가 찾는 달콤함은 여기, 이곳에 있다는 걸 당당히 보여주기라도 하듯.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겠다는 듯 진하고 달달한 이 맛!  

 

가끔은 아무 말 없이 건네는 따뜻한 차 한 잔이 큰 위로가 될 때가 있다. 그건 마치 '나는 너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지만 방법을 모르겠다'는 말이 생략된 침묵의 대화인지도. 음식에는 분명 그런 힘이 있다. 누군가와 친해지려면 '밥'을 함께 먹으라는 얘기가 있듯이. 함께 식사를 한 사람과는 친밀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친밀함이 쌓이면 서로의 취향을 알게 되고, 그러다보면 추억이 쌓이는 것 같다. 아, 이 음식! 엄마가 참 좋아할 텐데... 누군가를 떠올리게 되고 추억하게 되는 것. 이 책을 읽으며 정말 수많은 추억을 떠올렸다. 그 속에 내가 모르는 수많은 사람을 이유석 셰프와 함께 만났고 함께 공감했고, 내 속에 녹아든 음식과 함께 떠오르는 소중한 사람들을 많이 떠올리고 마음으로 만났다. 그래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어쩌면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최상의 행복이 아닐까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서 가장 심각하게 고민하는 이야기가 바로 무얼 먹을지에 대한 갈등인 것처럼. 그 선택에 대한 갈등도 어찌 보면 행복한 고민인 것 같다. 서로의 취향을 조합해서 가장 만족할만한 음식을 골라 먹는 것!

 

 

이유석 셰프는 비록 단 한 번을 찾더라도 자신의 가게를 진심으로 좋아한다면 그 분이 바로 '단골 손님'이라고 정의 내렸다. 아, 이 분 정말 책을 읽는 내내 너무 멋져서 이 가게에 가서 꼭 맛있는 음식을 먹어보고 싶어졌다.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고, 행복하게 요리하는 이유석 셰프.

 

그는 마지막으로 개인적이면서도 수줍은 고백을 하고 이 책을 끝낸다. 아름다운 연인이 생겼다고. 새로운 사랑을 하고 있다고. 두 분은 정말 천생연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 마지막을 연인의 이야기로 장식한, 그만큼 사랑받고 있는 이유석 셰프의 연인이 한없이 부러워졌다. 맛있는 요리처럼 멋진 사랑하시기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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