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 : 두 번째 아이는 사라진다 문학동네 청소년 13
방미진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두 번째 아이는 사라진다, 라는 부제를 지닌『괴담』책의 첫 표지는 욕망을 집어 삼켜버릴 태세를 갖춘 한 우울한 눈의 여자 아이가 왕관을 쓰고 있다. 그걸 올려다 보는 두려움에 가득한 한 소녀. 마치 그녀의 내면 같다. 그리고 뒷표지에는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두 사람 중 한 명의 입으로 사람이 빨려들어간다. 어지러운 빨간색으로 휘갈겨진 그림 속에는 뒤틀린 욕망의 색채와 혼돈이 담겨져 있는 듯 하다.

 

 학교 가는 길. 하나의 거대한 언덕이 나온다. 그 언덕을 올라 정점을 찍은 뒤, 내려오면 바로 학교가 나온다. 어느 날, 언덕배기 뒷산 연못에서 갑자기 자살한 한 아이. 그 주변에 돌고 도는 괴담.

 

ㅡ연못 위에서 형제가 사진을 찍으면 둘째가 사라진다.

ㅡ연못 위에서 일 등과 이 등이 사진을 찍으면 이 등이 사라진다.

ㅡ연못 위에서 첫 번째 아이와 두 번째 아이가 사진이 찍히면 두 번째 아이가 사라진다.(p.40)

 

 끝까지 살아남는다는 것은 과연 행복한 일일까. 사람은 가치있기 때문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기 때문에 가치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과연 적용될 수 있는 말인가를 이 책을 통해 곰곰 생각해 보게 되었다.

 

 경쟁사회. 누군가가 1등을 하면 반드시 누군가는 꼴등을 하게 되는 서열화된 사회다. 그렇게 우리는 명확하고 선명한 숫자의 세계 속에 살고 있다. 협동도 좋지만 좋은 말로 '선의의 경쟁'이 중요하다며 우리의 행동을 부추긴다. 서로가 자극제가 되어 더 높이 더 멀리 날아오를 수 있도록 끊임없이 몰아붙이는 것이다. 가만히 서 있거나 잠시 뒤를 돌아볼 새도 없이, 사색이라도 할라치면 어느샌가 뒤처진 자기 자신을 한탄하게 만드는. 여유없는 사회. 그곳이 바로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자신의 일그러진 욕망, 뒤틀린 집착이 다른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라지길 바랄 때, 그때 고개를 내미는 이 괴담. 실로 그것이 책밖의 현실에서도 일어나고 있을 것만 같아 나는 무섭고 두려웠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들의 차가운 시선과 냉정한 행동들이 오히려 아프게 다가오는 건 왜일까.

 

 같은 반 친구, 서인주의 자살. 기술적이진 않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영혼의 목소리를 지닌 인주. 성악을 전공하는 친구들을 자극시키고 살아남으려고 기를 쓰는 경쟁자들의 마음에 화를 불러일으킨 인주. 남겨진 연두와 지연은 친구가 죽었다는 슬픔보다는 경쟁자 한 명이 사라졌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함께 했던 공간에서 아무렇지 않게 연습을 하며 또다른 경쟁을 벌여야만 하는 서글픔 속에서 각자의 뒤틀린 욕망만 커져갔다.

 

 많은 사람들의 박수갈채 속에서 화려하게 남을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마지막의 남겨질 주인공인 자신만 중요한 지연과 연두.  타인의 시선없는, 홀로 남겨진 화려함은 과연 그들에게 행복이라는 걸 안겨주게 될까. 속이 비어버린 강정처럼, 태엽을 돌리면 춤을 추는 인형처럼 같은 자리에서 맴도는 기계와 무엇이 다를까.

 

 마지막 장을 덮자 감수성이 최고조로 달했던, 예민하고 섬세했던 고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위로받고 싶었고, 이해받고 싶었고, 공부보다는 더 소중한 것들을 나누고 싶었던 시간들. 입시라는 목표 아래, 같은 학급에 모여 있는 우리들은 친한 듯 웃고 있었지만 사실은 서로를 공격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진짜 마음 속 얘기를 꺼내기 보다는 등수화된 친구들과 내 자신을 비교하기에 바빴다. 그래서 솔직하지 못했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시험 답안의 정답을 맞춰보며 틀린 개수만큼 상처 받고 있었던 거다.

 

 나도 그 속에서 아마 한 번쯤은 누군가 사라지길 간절히 바랐던 적이 있었을까. 공부를 썩 잘 하지 못했던 나도 질투와 시기는 대단했었다. 그런데 1등을 지켜야 했던, 학교라는 무대에서 꼭 주인공이 되어야 했던 이들은 두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학교를 졸업하고도 여전히 공부가 아닌 다른 것들로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비교하며 누군가를 짓밟아야만 자신이 살아남는 형태가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이 푹푹찌는 여름밤, 이 아찔한 『괴담』

을 함께 읽으며 한 번도 꺼내어 보지 않았던 자신의 속내를 누군가와 나누어 보는 건 어떨까.또 모르지. 뒤쫓아가기에도 바쁜 이 세상에 뒷걸음 치고 있는 내 외롭고 지친 마음에 한 줄기 시원한 소나기가 되어 줄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