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아니 에르노 컬렉션
아니 에르노 지음, 신유진 옮김 / 1984Books / 201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세월>
1941년에서 2006년의 시간을 한 여성의 시각으로,
또 개인의 역사에 공동의 기억을 투영하여 담은 작품

기억은 성적 욕망처럼 결코 멈추는 법이 없다. 그것은 망자와 산자를, 실존하는 존재와 상상의 존재를, 꿈과 역사를 결합한다.
14쪽
<세월>의 초반.
첫 문장을 시작으로 몇장 넘기지 않았다. 그러는 순간 깨달았다. 내가 지금 무슨 책을 읽는 중이었지?
아니 에르노만의 독특한 문체로 새로운 문학 세계를 경험하러 빨려 들어간 때였다.
이 책은 세월의 이야기다. 사라진 것들에 대한 회상이려니 싶다가도 어느새 나의 시간으로 파고들었고, 잊고 있던 애증의 존재들을 하나씩 하나씩 부각시키며, 그들을 기억하고 망각하지 않으려 애써야만 하는 어떤 이유가 있는 듯 나를 설득시키는 이야기다.

끄적인 메모장을 정리하며 중요한 키워드에 별표를 붙여놓은 말들이 글줄이 되어 있다.
분명 이 책은 아니 에르노의 시간이었던, 그리고 프랑스 어느 시골에서 티도 안나게 시작되었던 시절의 기록이었음에도 우리의 1941년은 어땠나 되짚어 보게 된다. 그리고 끄덕인다. 우리도 그랬었지......우리 할머니 세대가 그랬었고, 우리 엄마 세대가 그랬지. 그리고 나는 그 중간 어디엔가 끼어있지.

자신을 더 잘 알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질문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나이마다 자신이 살아온 해를 규명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과거를 어떻게 그릴 것인지를 묻는 것이다.
93쪽

작가는 사진 속에 정지된 인물들과 그들의 사건들을 살려내며 우리의 이야기를 빗대어 하고 있다. 그 안에서 타인의 삶들이었던 것들이 내 안에도 잠식해 있음을 알았다. 특히 그녀가 여성과 성에 관한 바른 서사를 기록할 의지가 담긴 생각을 알았을 때 우리 모두의 목소리가 되어야 하는 일이구나를 깨달았다.
그 세월이 그녀의 쓰기로부터 2006년에 멈췄다.

우리는 여성들의 역사를 돌아봤다. 성적인 자유, 창조의 자유, 남자들을 위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충분히 갖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36쪽

전쟁, 공산주의, 사회주의, 제국주의, 자본주의, 자유주의, 페미니즘.
우리가 딛고 온 시간의 역사가 보였다. 그녀가 쓰다 멈춰선 그 시간부터 또 다른 세월이 흐르고 있고, 그 순간의 포착을 담은 사진 속 이야기를 다시 시작해야 할 날들이 올 것이다.

그녀는 바로 지금, 글로서 미래의 자신의 부재를 형태로 만들어 놓아야 하며, 20년째 자신의 분신이자 동시에 앞으로 점점 더 긴 시간을 보내게 될, 아직 미완성인 수천 개의 메모 상태에 불과한 이 책을 시작해야만 한다.
298쪽

그러므로 내게 남겨진 과제는 이것이다. 기록하는 사람들이 남겨놓은 존재의 서사들을 찾아내서 읽고 나누고를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 이것이 세월을 기억하는 우리들의 방법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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