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
바네사 스프링고라 지음, 정혜용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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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엘르 여성 독자 대상 수상작
공모의 메커니즘을 냉정하게 해체하여 사회 전체에 질문을 던진
증언 그 이상의 책
프랑스 문단 미투 운동의 신호탄이 된 바로 그 소설

오늘날에는 책을 불신의 눈으로 본다.
책과 나사이에는 우리막이 세워졌다.
이제는 책이 독이 될 수 있음을 안다.
책이 얼마나 많은 양의 유독물질을 품을 수 있는지 안다.

- 서언에서 작가가 쓴 말이 얼마나 충격적인지 모른다.
유명작가라는 신뢰하는 지식인의 아이콘을 힘입어 어린 청소년들을 성적으로 취해 문학적 영감을 얻는다는 것이 얼마나 혐오스러웠는지 모른다. 빠져나올 수 없는 덫을 놓고 끝까지 목표물을 추적해 손아귀에 취하는 그들의 타겟이 되는 일이 이리도 쉽다.

진정한 ‘동의’란 무엇이어야 하는가
아주 빈번하게, 성 착취와 약자 착취, 이 두 가지 경우에서 동일한 현실 부정을 만나게 된다. 즉 스스로를 희생자로 바라보기를 거부한다. 그리고 실제로도, 동의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데 어떻게 자신이 착취당했음을 인정할 수 있겠는가? 이 경우, 상대방 성인에 대해 욕망을 느꼈고 그 성인이 재빨리 그러한 욕망을 이용했다면? 나에게서 희생자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어서, 나 역시 여러 해 동안 그 개념을 붙들고 씨름을 하게 되리라.
_191쪽

윤리적 분야와 법 분야의 동의를 사전적 정의로 읽어보니 우리가 넘어서서 요구해야 할 정당한 권리라는 것이 참 어렵구나 하는 묵직한 생각이 가슴에 자리한다. 평생에 걸쳐 죽는 날까지 짊어지고 가야 할 트라우마와 낙인처럼 찍혀서 꼬리표처럼 붙어다닐 또 다른 이름이 될 무슨 증후군이나 질병이름이 될 것 같은 기억을 이리도 어렵게 고백한다. 어릴적부터 겪은 일들이라 기록하고 표출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 정리가 필요했을까.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납득시키고 정체성을 회복시키고 괜찮음을 증명하기까지 수많은 시간을 같은 자리에서 같은 생각으로 고통받고 상처받았을지 생각하면 이런 용기가 감사할 따름이다.
책띠에 작가 바네사 스프링고라 자신의 사진을 실은 모습을 보니 살짝 웃고 있는 게 안도가 된다.
그럼에도 행복할 수 있다는, 웃을 수 있는 사회이고 어둠에 갇혀 있을 다른 여성들을 대변하는 한 발 내디딘 후의 결과임을 당당히 증명하는 것 같아 마음이 단단해진다.

V는 G를 14살에 만난다.
그녀의 어머니 역시 편집자여서 따라가 참석했던 사교 만찬회에서 G를 처음 만난다. G는 V의 아버지 부재와 그로 인해 생겨난 애정결핍, 가정 불화의 환경에 놓여있던 사춘기의 예민한 심리 상태를 이용해 그녀에게 접근한다.
문제는 G의 문학적 포용과 권위적 관용의 태도였다. 위로와 의지가 되는 조력자의 역할과 성적으로 위안을 주는 성착취의 행동을 동일하게 이행하면서 어린 여자 아이로 하여금 사랑과 성행위의 그것을 분별하지 못하게 만든다.

V의 생모조차도 묵인한 상황 속에서 G의 V를 향한 열렬한 성적 집착은 G의 명성 아래 암묵적으로 동의된 사회적 침묵 속에서 호텔 방에 자리하며 은밀한 관계가 지속된다.
사실 이런 일들이 사회 곳곳에서 자행되기 때문에 쉽게 간과할 수가 없다.
미성숙한 어린 인격체가 상황 판단력과 감정분리가 어려워 쉽사리 자신의 의견을 올바르게 피력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게 있다. 이럼에도 동의라는 제목처럼 어린 인권들의 동의를 저들의 유리한 입지를 위해 사용하기도 한다.
그리고 어린 아이들은 나중에 깨닫게 되겠지. 어떻게 무엇을 혼동하고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못했는지 말이다.

왜 열네 살짜리 여자아이는 자기보다 서른여섯 살이나 많은 아저씨를 사랑할 수 없다는 거지? 백번도 넘게 그러한 질문을 곱씹었다. 그 질문이 처음부터 잘못 제기되었음을 알지 못하고서 말이다. 나의 끌림이 아니라 그의 끌림에 대해 물어야 했던 거다.
_147쪽

우리문단에서처럼 프랑스 문단에서도 미투 운동의 어려운 첫 걸음

지식 사회에서 권위적으로 다가오는 거인은 정말 상대하기 어렵다.
혼자서 감당하기엔 무리일 것이다.
우리도 미투 운동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 아직 갈길이 멀다고 하지 않는가.
약자가 약자의 적이 되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싶어 더 관심을 두고 민감하게 반응해 주는 가이드의 역할 또한 중요한 부분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당당한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더 들렸으면 좋겠고, 피해자들을 비난하는 말들은 점점 더 수그러들고 급기야는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이 동시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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