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깊은 바다
파비오 제노베시 지음, 최정윤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1월
평점 :
절판


 

 

물이 깊은 바다

 

"파비오, 명심해라!

마흔 살이 되기 전에 결혼해야

미치지 않는단다!

결혼이 답이야, 파비오!"

 

파비오 제노베시 장편소설 / 현대문학

 

 

 

어쩌면 세상 한 가운데서 우리 가족은

어수선하고 소란스럽기 그지없고

미치광이들로 가득할지 모른다.

그러나 내 생각엔,

주변 세상이 존재하지 않고 외부에서 우리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사람들만 없다면

그야말로 멋지고 놀라운 것들이 넘치는 가족일 것이다.

- '나는야 텔레비전'

 

 

성장 소설이 좋은 이유는 읽을 때마다 잔잔한 깨달음을 넉넉하게 주기도 하지만

그뿐 아니라 나의 발자취를 돌아보며 내가 그리워 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어루만질 수 있도록 잠들어 있던 모든 기억을 흔들어 놓기도 하기 때문이다.

 

파비오 작가의 글 중에서 제일 마음에 와 닿았던 문장이다.

좁고 작은 동네일 수록 더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이유는

이웃간의 일들을 너무 소상히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과장들이 덧대어지기 태문도 될것이다.

내 기억 속의 동네는 그랬다.

책 속의 주인공 파비오는 작가의 어릴적 투영이다.

파비오가 성장하면서 겪는 일들은 너무 소중해 보인다.

 

여섯 살 파비오가 처음으로 학교에 등교한 날,

남들은 결코 가질 수 없을 인생 수업을 열명의 할아버지들과 부모로부터 받았다는

사실은 또래 아이들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차원이기 때문이다.

교과서엔 절대 없을 연륜이 느껴지는 경험들....

그렇지만 파비오는 또래들이 즐겨하는 놀이도 너무 좋다.

무리에 든다라는 느낌이 그럴테니까.

 

제목이 가져다 주는 사색이 깊은 느낌이 포근했다.

다분히 철학적인 질문도 던져주어 생각하고, 상상하기를 마냥 즐겨했다.

파비오가 수영을 배우는 장면에서 한참을 머물기도 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건 나도, 그 누구도 모르는 것이지만 우리가 과거에 한 일은 알고 있다. 매일매일 우리가 해온 일, 우리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에 대한 위대한 이야기는 알고 있다. 우리는 매일 아침 일어나서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며, 우리의 이야기는 이런 짧고 바보같은 발걸음을 거대한 것으로 전환시켜 주는 마법이자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이다. 어디로 가는지 분명치 않지만 일단은 나아간다. 이 마법은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를 뒤에서 밀어주고 있다.

- 432~433 p.

 

 

물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이 밑으로 빨려들어 가는 공포.

폐 속에 차오르는 바다의 거대한 물기둥은 파비오를 간절하게 만든다.

가물거리는 정신 속에 파비오가 할 수 있던 것은 오직 물 위로 떠오르는 꿈을 꾸는 일. 파비오는 그 순간 수면 위로 떠올라 삶이 무엇인지 알기도 전에 벌써 소중한 삶을 깨닫는 순간을 만난다. '아무도 당신의 물고기를 잡아가지 않는다. 이상하게 헤엄치고 마구잡이로 헤엄쳐도 결국은 당신에게로 온다.' 삶은 그런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이런 마법의 순간을 기다린다. 알 수 없는 미지에 상상을 그리고 희망을 배팅하는 인생말이다. 매주 한 권씩 책을 사서 마법같은 인생을 염탐하는 파비오.

 

청소년으로 성장하면서 파비오가 자신과 세상과의 간극을 어떻게 좁혀 나가는지 함께 동행하다 보면 나의 지난 시절 기록과 지금 걷고 있는 물 위를 동시에 바라보게 된다. 절름발이처럼 두려움의 무게를 짊어지고 뒤틀린 엇박자를 파도 속에 남기는 나의 성장을 파비오에 투영해 보며 '나도 잘 하고 있는게 맞네~' 안도를 얻는다.

 

제노베시 작가의 문장 하나 하나를 통해 이탈리아의 문학과 그들의 감성에 흠뻑 젖어 보았던 시간들이었다. 가족, 사랑, 인생을 동시에 성찰해 보는 감동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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