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우리가 죽음을 정복했습니다.” 모든 규제가 면제되고 첨단 기술의 개발과 시험이 허용되는 평택, 일명 ‘샌드박스’를 배경으로 한 근미래. 총소리에 한 남자가 눈을 뜬다.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기억과 함께 갑자기 자신을 어딘가로 데려가려는 사람들. 그리고 다리가… 없다? 몸이 기계가 되어버린 남자, 초거대기업 트라이플래닛의 회장 ‘석진환’이다. 유언장을 남기지 않고 돌아가신 아버지, 트라이플래닛의 선대회장 때문에 진환과 동생 미진, 일곱 삼촌들은 미묘한 힘의 균형을 겨루며 아슬아슬한 권력 다툼을 이어가고 있었다. 차명 지분이 진환의 소유가 된 그날,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한 진환의 신체 모든 부분은 (심지어 뇌까지도) 기계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사라진 차명 지분의 접근 권한이 담긴 태블릿을 찾기 위한 질주가 시작된다. 그리고 마주하게 된 또다른 나. ‘진짜’ 석진환은 누구인가. “죽지 않는 것과 죽었다 되살아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야.” 인공장기, 기계화된 신체, 나노로봇 모두 환상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초래할 세상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그저 열광할 뿐인 것은 아닐까. 자본에 잠식당한 채 마구잡이로 사용되는 기술이 초래하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인간은 어디까지 강화될 수 있을까?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남을 것인가? 온갖 기계로 치장한 혼종이 될 것인가? 인간임을 판단하는 것은 누구이고 그 기준은 무엇인가? 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매우 재미있다. 여러 신기술로 화려하게 치장한 책 속의 거대한 세계에 발만 담가볼까 했더니 어느새 흠뻑 젖어 고민하는 날 발견했다. 거기다가 누구나 흥미로워할 재벌가의 권력 다툼, 비겁한 짓도 서스름없이 행하는 인간의 본성과 욕망까지. 5년 전 SF어워드 대상을 받았던 이 소설이 새 옷을 입고 돌아왔는데 역시 대상작이라 그런가? 5년 전의 소설이어도 여전히 환상적이고 감각적인 내용이다. 도파민 냄새~ 이 소설을 시작으로 뻗어나가는 ‘샌드박스 시리즈’의 세계관과 <모래도시 속 인형들> 이 궁금해진다. 이 리뷰는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