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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의 땅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김희진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8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연은 옳고 그름을 따짐 없이 제 창조물들의 존재에 덧붙임을 한다’
공중을 날고(박쥐) 땅을 파고들며(두더지) 헤엄치는(돌고래) 새로운 인류를 탄생시킬 ‘변신’ 프로젝트가 세상에 알려진다. 인간과 박쥐, 돌고래, 두더지의 혼종인 키메라의 탄생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목숨까지 위협당한 프로젝트의 창시자 알리스는 국제우주정거장으로 보내진다. 그리고 알리스가 우주로 보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3차대전이 발발한다. 온 세상이 초토화되고 인간이 멸종해가는 시점, 신인류 출현의 적기이다.
알리스는 우주에서 세 키메라 에어리얼, 디거, 노틱의 배아와 뱃 속 아이를 품고 지구로 돌아온다. 그리고 폐허가 된 지구에서 살아남기 위한 여정이 시작된다. 전쟁에서도 살아남은 인간 공동체를 찾아 그들과 함께 혼종들의 수를 늘리고 키우며 공존하고 다투고 멀어졌다 재회도 한다.
‘나쁜 것에서 좋은 것이 나올 수도 있지.’
이미 현 인류세에서 인간은 전체 생물 종들의 지배자 역할을 하며 환경을 파괴하고 결국 전쟁까지 일으켰다. 이 시기를 헤쳐나갈 대안이었던 혼종들은 어렸을 땐 마냥 순수하게만 보였으나 점점 머리가 커가며 각자의 길을 가기 시작한다. 신인류들은 인간과 동물의 혼종이기에 각 동물의 고유한 습성에 더해 인간의 여러 측면들을 보인다. 과연 혼종들은 인류보다 더 나은 길을 갈 수 있을까? 나쁜 것에서 좋은 것이 나올 수 있다는 문장은 미묘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보면 그것도 딱히... 그냥 똑같은 금쪽이의 탄생이었나 싶은 순간이 많다😭
⍤⃝구인류 대 신인류
처음 혼종들이 창조되었을 땐 인간들이 우리의 기원을 궁금해하고 종교에 몸 담으며 신을 믿는 것처럼, 신인류들도 창조자 알리스를 믿고 그녀에게 인정받으려 노력한다. 다른 뿌리인 동물에게도 관심을 가지고 숭배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점점 세대가 교체될수록 창조자를 신격화했던 옛날의 모습은 사라지고 인간에 대해 우월감을 갖느냐, 열등감을 갖느냐에 따라 우호적, 중립적, 파괴적인 세 가지 관계양상이 나타난다. 책의 후반부, 돌고래 혼종들은 인간들을 마구 죽이고, 인간들의 동물원처럼 인간을 박물관 안에 가두고 구경거리로 만든다. 읽으면서 참 찝찝했다. 인간의 공격적이고 호전적인 본성과 오래 전부터 쌓인 서로에 대한 증오, 극에 달한 경쟁의식은 사피엔스의 DNA에 내재되어 혼종들에게로 유전된 것일까. 혼종들을 보며 이 파국은 어디까지 치달을 것인지 무서워지기도 한다.
⍤⃝구세대 대 신세대
세대 간의 갈등 또한 도드라진다. 알리스가 창조해낸 세상에서 딸 오펠리가 알리스에게 엄마는 이미 시대에 뒤처졌다고 말하는 장면이나 포세이돈의 아들이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내용 등 이야기가 진행할수록 세대가 교체되고 젊은이들의 불만은 커진다. 난 알리스에게 몰입해 읽어서 그런지 책을 읽으면서 ‘아… 저 금쪽이들… 어떡하지? 왜 자꾸 사고치고 다니지? 어쩔려고 저래?‘란 생각이 자꾸 들었다😂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던 알리스가 부모가 되고 나이가 들어가는 모습은 매우 현실적이다. 알리스는 처음 세 혼종들이 말썽을 일으키기 시작할 때 주위의 조언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무마하려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오늘날 여느 부모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오로지 절망만 보여주진 않는다. 본인이 벌여놓은 일을 어떻게 해서든 해결하려는 알리스의 마지막 선택. 생각지도 못했던 전개와 마냥 희망만 주지도 절망만 주지도 않는 결말이라 좋았다.
그리고 일단 책이 술술 잘 읽힌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을 읽는 것은 처음인데, 이래서 유명한가? 싶었다. 1, 2권 합쳐 600페이지에 달하는 양에도 페이지가 술술 넘어간다. 신인류 에어리얼, 디거, 노틱과 그들이 세상을 대하는 방식을 보며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했다. 특히 책의 후반부 세대교체 시점으로 갈수록 더 각자만의 길을 걷는 신인류들의 행태는 매우 흥미롭다. 쉽게 읽히지만 여러 생각할 거리들을 남기는, 마냥 쉽지만은 않은 책이었다.
이 리뷰는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