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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8월
평점 :
일부러 작가는 그렇게 쓰고 싶었나 보다.문체는 간결하고 건조하다.아니,서늘하다.딱히 자신의 군말이나 감상을 더하고 싶지 않다는 식이다.아마 말을 배배꼬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예컨대 이런식이다.<조준선 끝에서 노루가 쓰러졌다.노루는 눈속에서 피를 흘리며 뒹굴었다.안중근은 총을 들고 일어섰다.총구에서 연기가 피어 올랐다.안중근은 다시 서서쏴 자세로 노루를 겨누었다.노루는 일어서지 못하고 허우적였다.안중근은 다시 쏘지 않았다.노루는 옆구리가 관통되어 있었다.사출구의 살점이 경련을 일으켰다.안중근은 노루를 짊어지고 집으로 향했다.걸어서 한나절이 걸렸다.>
문체만큼이나 소설내용은 참 허허롭다.작가는 독자들에게 감상을 허하지 않는다.감동도 기대하지 말라는 식이다.안중근의사가 하얼빈으로 거사를 떠나기전 동료 우덕순에게 준 <장부가>라는 시에서 안중근의사는 이토를 쥐도적으로 보았는데,작가는 이토를 자신의 나라(명시적으로는 일본천황)에 충성한 고위 공직자정도로 그리며, 이토가 조선에서 행한 만행에 대해서는 그냥 제3자의 눈으로 관찰하듯이,마치 신문기사 쓰듯이 무미건조하게 전달한다.그래서 그런가 내 보기에 안중근의사가 이토를 죽이기까지에 이르는 과정에서 어떤 고뇌나 의도가 소설 속에서 딱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또 언제부터 안중근의사가 이토를 죽여야겠다고 마음 먹었는지도 알 수 없다.작가는 책 후기 작가의 말에서는 <안중근의 빛나는 청춘을 소설로 써보려는 것은 내 고단한 청춘의 소망이었다고.>고 토로하지만 소설적 결실은 이에 한참을 못미친다는 게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작가 본인의 포부에 비한다면 작가가 그동안 보여준 역량에서 한참 미달이다.
따라서 이 소설에서 어떤 감상이나 감동을 얻는 건 무리다.이 소설은 안중근에 대한 간단한 보고서랄까, 약전을 그리는 선에서 그치고 있다고 평한다면 너무 인색하고 야박한 평가일까?나는 그렇게 읽었다.안중근이라는 인물에 대해 성인시 활동사항에 대한 하나의 건조한 다이제스트를 맛뵈기식으로 읽은 느낌이다.
옥에 티랄까?소설속 초반에 나와서 초장부터 조금 당황했던 에피소드 하나 지적하고 싶다.그것은 바로 이 소설의 3장인데,3장은 이토가 순종을 모시고(가 아니라 데리고) 1909년초에 조선반도 남북순행을 하는 장면들을 구구절절 그리고 있는데,이 3장이 소설속에 들어간 이유는 이 소설을 끝까지 읽어보면 소설 후반부에 나오는데, 순행에서 찍은 사진으로 안중근의사가 이토의 용모를 특정할수 있었다는 설정으로 삼기위해 삽입한 에피소드로 보인다.그런데 이어지는 4장,5장의 을사의병(1905)과 정미의병(1907)의 묘사와는 시간적 순서에서 생뚱맞을 뿐만 아니라 순행내용 역시나 조금 거북스러웠던건 어찌할수 없다.마치 이토가 순종을 꼭두각시, 하수인처럼 데리고 다니는 것도 그렇고, 시간적 순서에서도 3장은 최소한 4.5장 뒤로 배치하는게 맞다고 본다.
아마 이 소설에 대한 나의 실망은 작가가 이토를 쥐도적놈으로 보지 않고 그냥 일본의 고위 공직자의 한사람으로 보고 소설을 써내려 갔다는 데서 생겨났고,그래서 서로간의 거리가 구만리로 멀어졌는가 보다고 생각하며 씁쓸하면서도 침울한 에필로그성 소회를 마친다.
-쏘러 갈 때 입자.우덕순이 웃었다.우덕순의 웃음을 보면서 안중근이 웃었다. -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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