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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뱀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옥희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평점 :
요시모토 바나나를 처음 보았을 때, 이것이 진짜 이름인 건지 아니면 책을 낼 때만 사용한다는 필명인지 고민하게 만드는 작가였습니다. 앞의 요시모토는 분명 일본인의 이름 아니면 성인게 확실한데, 정작 바나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과일 이름만 떠오를 뿐, 일본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기 때문이었죠. 그렇다보니, 그녀의 책을 읽게 된 것은 내 환경이 최악의 상황이었기 때문이었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 국방부의 시간이 일반 사회의 시간과 같인 돌아갔었다면, 저린 이상한 이름의 작가 책을, 그것도 연애 소설을 썼을 법한 책을 봤을 일은 없었을 테니 말이죠.
사실 그 당시 어떤 책을 읽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어쩌면 다른 작가의 책을 본 것을 바나나양이 작가인 것으로 착각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다만 그 당시 읽었던 책이 나름대로 재미있게 다가왔기에, 그저 아무 생각 없이 가볍게 읽을 마음으로 '도마뱀'이라는 책을 고르게 되었습니다.
처음 이 책을 구입할 때만 해도 한가지 이야기로 진행이 될 줄 알았었는데, 정작 사고보니 6개의 단편으로 되어있고, 그 중 한 단편의 제목이 도마뱀이었습니다. 안그래도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인데 6개나 들어가 있기에 괜히 골랐나 싶었지만, 다시 환불할 수도 없는 상황이니 그냥 읽기로 했죠.
이런 단편을 읽게 되면, 내 마음에 들어오는 이야기가 있는 반면, 아무리 읽어도 그저 그런 감상 외에는 지나가 버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렇기에 6개의 단편들 중 제 마음에 남는 것들을 <신혼부부>, <나선>, <오카와바타 기담>의 세가지로, 그 중 <오카와바타 기담>은... 소재가 워낙 걸쩍지근 하다보니 아마 읽는 사람이라면 어떤 형태로든 기억에 남게 되지 않을까 싶은 작품이더군요. 그런 의미에서 <신혼부부>와 <나선>, 이 두개가 저의 인상에 남았다고 할 수 있겠죠.
<신혼부부>는 이제 막 결혼한 평범한 직장인이 지하철 안에서 꿈을 꾸는 듯한 경험을 체함한 이야기입니다. 가까이 가기에도 힘든 노숙자가 자신의 이상형으로 변하는 것을 목격, 변신한 그녀와 여러 이야기를 나누는 내용이다. 집과 직장 오직 두 장소만을 번갈아 가는 직장인이라면, 이런 현실에서 벗어나 좀 더 자신이 꿈꾸던 이상향으로 가고 싶어 하는 주인공의 모습에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죠. 특히 마지막 장면은 어떤 의미로 너무 평범한 결말이기에 더 인상에 남았던 작품입니다.
<나선>의 경우 내용 자체는 그리 깊게 생각은 안나지만 정작 그 소설의 분위기만 가슴 속에 남는 듯한 느낌입니다. 내용 자체는 항상 가던 장소가 단지 불을 키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낮설어 지는 이상한 체험을 하게 되지요. <신혼부부>보다는 그리 인상적이지는 않았지만, 정작 내용의 향기 만큼은 더 진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저 두 소설의 공통점은, 다른 4 작품보다 인물들이 구체적이고, 공감이 가며, 무엇보다도 약간 외로우면서도 희망이 있는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분명 이상향을 포기함에도 불구하고 돌아갈 곳이 있다는 안도감을 주는 <신혼부부>와, 낮선 분위기에서 마주치는 행복한 느낌의 <나선>은 제가 좋아하는 주제니까요. (어쩌면 최근 심숭생숭한 마음을 대변해 주는 책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