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설워할 봄이라도 있었겠지만 - 제주4.3, 당신에게 건네는 일흔한 번째의 봄
허영선 지음 / 마음의숲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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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설워할 봄이라도 있었겠지만'

 

 이 책을 읽기 전 예전에 제주도에 갔었던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어렸을 적 한 번 가본 제주도의 기억은 바람이 세차게 불었지만 따뜻했고 오름과 햇살이 비취어서 보이는 광경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사진을 찍고 기록을 남겼으며 나에게는 휴식처 같은 느낌을 주었던 장소였다. 제주도 4/3 사건은 경험을 해보지 못한 입장에서 관찰자의 시각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관찰자로서의 시각은 나서서 말을 하지도 못하고 그저 아픔을 이해하고 기억하는 것이냐는 생각이 든다. '당신은 설워할 봄이라도 있었겠지만' 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가 좀 더 그들의 입장을 들어보고 싶었다. 역사는 찾아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고, 진실을 알지 못하면 무지에 쌓인 존재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잘못된 역사를 배워왔다. 껍데기 형식인 채로 말이다. 속은 들여다보지도 못한 채 그렇게 살아왔다. 그래서 더욱 이 책에 애정을 더하고 싶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증언과 말 한마디가 역사가 되고 기록이 되며 잊을 수 없게 상기를 시켜준다. 책을 읽다가 도중에 책을 덮어버렸다. 어렸을 적 제주도의 기억과는 정반대의 모습들이 보이기 때문이었다. 예전에 보았던 제주도는 햇살에 아른거리는 풍경들과 파도가 치는 바다와 관광지로서의 이미지가 강했지만, 그 속에서 아픔과 비애 고통의 역사가 한순간에 밀려 들어오니 슬픔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 제주도 하면 동백꽃을 떠올리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꽃이 역사의 상징물이 될 수도 있다는 것. 동백꽃은 아름답고 쨍한 색깔이 돋보이지만, 그 당시 사건의 아픔과 사람들이 흘리는 눈물의 상징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오키나와 전이 있었을 때 제주도를 떠난 사람들이 다른 나라에서 목숨을 잃던 것이나, 양하밭에 숨어 있었지만 그것이 한 뼘만 더 자라서 머리카락을 가려줬으면 들키지 않았을텐데 라는 것의 장면들이 나올 때마다 서글프고 관찰자 입장이지만 미안하고 잠시만이라도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그 수많은 사람들은 죄가 없는데 죄가 있는 것 처럼 살아야했다. 아무런 이유없이 죽음을 당하고 이별을 해야했으며 어딘지도 모를 곳에 끌려가서 폭행을 당해야 했다. 그리고 그 당시 인권이 바닥을 내리쳤던 순간을 산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 우리가 기억하지 못 하면 누가 기억을 하겠는가.



 1장에 나오는 난 찐빵을 안 먹습니다. 난 고사리를 먹지 않습니다의 내용을 읽고 나서 누군가에게는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이 트라우마의 기억으로 남겨지는 것임을 느꼈다. 1분 1초라도 빨랐으면 어땠을까 그래도 찐빵을 주고 나서 서러움의 감정은 들지 않았을 것이다. 꼭 다시 돌아온다는 말 한마디만 남겨놓고 떠나버린 그대를 기다리는 남은 사람의 심정은 어떠하리. 그렇게 좋아하던 고사리를 이제는 먹지 않을 정도로 싫어하게 될 정도로 고사리만 봐도 살려달라라는 목소리가 상기되어 버리리게 되는 순간.


 제주도는 슬픔과 비애를 가지고 있지만, 비바람을 뚫고 탄생한 또 다른 아픔을 가지고 있다. 바람, 오름, 동굴 모든 것이 역사의 아픔을 가지고 있다. 제주도는 길의 섬이라고 불릴 정도로 수많은 길이 있다. 하지만 그 이면을 생각해봐야 한다. 길, 밭, 오름에서 사람들은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죽은 듯이 있어야만 했다. 순경의 발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제주국제공항은 겉으로는 속으로는 아픔을 가지고 있다. 활주로에는 보이지 않는 무덤들이 많이 있다. 

  

 기록되지 못하는 역사는 살아남은 사람의 증언과 기억을 통해서 메꾼다. 하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는 트라우마다. 제주섬 자체가 트라우마일 것이다. 또 유품을 태워버리면 기억에서 사라진다. 우리에게 진정한 봄날은 무엇인가. 봄이 다가오고 꽃이 한둘 씩 피게 되면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는 트라우마를 상기시키게 된다. 따뜻하고 시작을 알리는 봄이 아니라 죽음과 비명 고통을 머금고 있는 얼굴들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죄 없는 게 죄였던 시절. 그때 언론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역사적인 사건을 나열해봐도 기자와 카메라가 사건의 진실을 알린 것이 많았다. 언론이 질문하지 못하면 나라가 망하는 시절이었다. 속 솜 하지 말라는 책의 내용에서 지금 시대가 떠오른다. 그때 당시에는 말 한마디 올바르게 하지 못 하면(피해를 받은 사람의 올바른 입장 말고 피해를 가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올바름)고문과 죽임을 당하는 시대였다. 지금에서야 속솜하지 않고 있고 시대가 많이 변했다는 생각도 든다.


 

 지금에서야 여성의 지위와 인권이 인정을 받고 넓혀져 가고 있다고 하지만, 그때 당시에는 여성의 인권이 바닥이었다. 끌려가서 폭행을 당하고 아이가 가지고 있는데도 끌려가기 일쑤였다. 그런 여성들에게 그때 자식만큼이나 소중한 것은 없었다. 여성들이 살고자 했던 것 또한 자식이었다. 부모들도 마찬가지다. 저기 멀리서 순경들이 달려오고 있어도 아이한테 밑으로 먼저 가라고 말하는 부모들의 말에서 자식들을 지켜주고 싶었고 죽지 말라는 의미가 들어있다. 이러한 과거사의 진실이 밝혀져야 하고 현재의 역사로 사람들이 알아줘야 하는데 말이다. 특히 제주도에서 조금만 돌아서 생각을 해보면 지금 밟고 있는 땅도 역사가 깃들어져 있을 텐데. 제주도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일렁이는 파도와 오름들 화산으로 인해 생겨난 지형들, 동굴의 풍경은 비극적인 면모도 가지고 있다. 관광지로 생각을 해도 제주도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또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점은 중간에 노란색으로 물들은 것이다. 작은 희망이 보이는 듯 하면서 희망을 바래왔던 사람들의 소망이었을 수도 있다. 


 제주국제공항은 누군가에겐 그렇게 아픈 공간이다. 43 70년 동백꽃 배지 하나씩 가슴에 달고 비행기에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어여쁘지만 하얀 눈 위에 뚝뚝 지던 동백꽃 목숨들처럼 아리다. 비행기는 여전히 굉음을 내며 오르락내리락 분주하고, 햇살은 찬란하다. 하지만 한 귀퉁이에선 아픈 비명을 듣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여기뿐이겠는가 p41

동굴 속에는 어떤 희망이 있었을까. 아주 낮은 오리걸음으로 들어간 그들은 허리를 펴지도 못한 채 저만의 구들 한켠처럼 어둠 속에서 서로의 등을 부볐을 것이다. 단 한 번만이라도 하늘을 볼 수 있다면. 그것이 소원이었던 사람들의 동굴 밖에서 나는 오랬동안 서성거렸다. 그 내부를 품고 사는 기억에게 굴은 피난지이지만 밖으로 통하는 한 문이기도 했다. 다랑쉬굴, 빌레못굴,큰넓궤, 목시물 어느 굴이든 역사의 공간을 살았던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그 이름들은 현재성이다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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