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난단티 - 16세기와 17세기의 마법과 농경 의식 교유서가 어제의책
카를로 긴즈부르그 지음, 조한욱 옮김 / 교유서가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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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마녀와 베난단티의 밤의 전투>라는 제목으로 처음 출간되었다. 그렇게 책이 출간된 50년이 지나도 여전히 논란이 많았던 '베난단티' 관한 연구는 새로운 해석도 난무했다. 그래서 역사에 대한 내용을 끊임없이 증명해 가는 것이 역사가의 운명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계속된 연구를 진행해 나간다. 그렇게 재탄생한 <베난단티> 역사학자 카를로 긴즈부르그의 반복적인 탐구를 통해 완결되지 않은 역사를 조금씩 채워가고 있다. 마녀와 비슷해 보여 마녀와 베난단티가 구분되지 않는 순간도 존재했으나 다른 모습을 하는 민간 신앙, 샤머니즘인 베난단티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더욱더 중요한 문제를 파헤치기 위해 과정과 역사를 자세히 다루고 있어 베난단티에 대해서 더욱 자세히 있다.


연구할수록 흥미로운 요소들로 가득한 베난단티는 여전히 그곳에 살아 쉬고 있었다. 마녀라고 알려진 베난단티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기록' 근거로 역사의 재구성이 필요했다. 베난단티란 기독교가 들어오기 , 유럽 전역에 퍼진 민속신앙이다. 하지만, 마녀사냥에 의해 축소되었고 여러 요건에 의해 기독교화되었다고 전해져오고 있다. 계절이 바뀌는 축일마다 마녀들과 전투를 벌여 전투에서 농민들이 이기면 그해는 풍년이 되고, 마녀들이 이기면 흉년이 된다고 한다. 스스로 베난단티라고 부르며 악마를 숭배하는 마녀와 싸우며 가톨릭을 수호한다고 믿었던 그들은 이전과는 다른 생활을 해야 했다. 그렇게 교구 성직자에 의해 갖은 고문과 유도신문을 겪으며 자백하게 되었고 그들은 악마를 숭배하는 마녀라는 멸칭을 반강제적으로 얻게 된다.

전쟁과 탄압의 역사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지만, 기독교가 중심이 유럽 사회에서는 이야기에 대해 언급조차 없게 만들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균일하게 보이는 신앙의 이면으로 침투하여 신앙에 따라 살아갔던 다양한 태도를 파악하고 그것이 민중과 이단, 심문소를 통해 달라지는 어떤 종교의 형태를 마주하게 된다. 마녀사냥의 중심이 되었던 베난단티는 신앙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의 기독교에 동화되어 가는 다른 형태의 종교로 변해갔다. 결국엔 이교도에 대한 지나친 억압과 지배층의 태도는 베난단티가 굉장히 이상한 형태로 변하는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기존의 기독교가 추구했던 것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던 베난단티는 순수한 기독교인보다는 마녀에 가까운 모습이었기 때문에 마녀사냥에 적합한 사냥감이었다.


베난단티는 주술을 통해 죽은 자와 산 자를 연결해 주고, 악마와 싸우며,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 주는 활동을 했다. 마녀와 다르지만, 이교도 의식을 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했다. 그렇게 초창기 베난단티는 상당한 반발심으로 그들의 입맛에 맞춰 말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이 어색한 결합으로 인한 의구심이 금방 사라지지 않았으며 오랜 세월 동안 진행된 베난단티에 대한 검증은 베난단티의 굴복으로 끝난다. 베난단티의 굴복과 함께 마법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며 마법을 바탕으로 하는 베난단티에 대한 관심도 희미해져갔다.


베난단티에 대한 단어와 그에 관한 내용이 생소했기 때문에 책을 읽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우리가 판단할 문제는 아니라고 보았기 때문에 더욱 관찰자적 입장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베난단티. 그에 대한 관심은 그 자리에서 멈췄지만, 여전히 베난단티에 대한 연구는 지속되고 있었다. 사건에 대한 진실과 가까워지는 인류학과 역사학의 대화는 상당히 복합적이지만 정말 다양한 요소들에 의해 많은 변화를 겪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마녀와 다를 바 없는 베난단티를 이해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단정 지을 수 없었다. 설령 그들에 대해 안다고 할지라도 편향된 시선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기록의 흔적을 통해 자세히 알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하지만 다양한 관점과 희생자들의 태도와 신앙을 이해하고자 하는 결심은 베난단티에 대한 '이해' '존중'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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