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픔이 길이 되려면 -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9월
평점 :
물고기 비늘에 바다가 스미는 것처럼 인간의 몸에는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시간이 새겨집니다. (13쪽)
제목만 보고 유행하는 힐링서적이나 대중심리치료서인줄 알고 관심을 두지 않았었는데 책이 회자된 후에야 사회역학 서적인걸 알고 다시 집어든 책이다.
사회역학이란 질병의 사회구조적 원인을 찾고 질병의 원인이 되는 역사와 권력과 정치의 그물망을 풀어내는 학문이다.
저자는 고용불안,혐오,차별,재난의 경험이 어떻게 우리 몸을 병들게 하는가를 실증적으로 밝히고 질병의 원인을 개인에게 넘긴 채 외면하는 한국사회의 구조적 질병을 밝히고 있다.
개개인이 무장을 해서 스스로를 지키는 방식은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사회적 원인을 가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해결책이 필요하니까요.(277쪽)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삼성반도체 직업병 피해자, 세월호 생존 학생, 성소수자 ... 양적인 자료와 통계적 분석을 위해 만나고 경험했던 사회의 폭력과 무례함 그리고 희생자의 아픔과 상처를 보여준다.
“저는 그들(세월호 생존 학생들)을 친구가 아니라 연구자로서 만나고 있었고, 제게는 그 마음을 표현하는 게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울컥울컥 올라오는 감정을 꾹꾹 누르고, 머리를 차갑게 하고 귀를 계속 열고 준비한 질문을 말해야 했습니다.
저는 기록해야 했으니까요. 그 기록은 무겁고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165쪽)
책은 이러한 만남과 조사를 기반으로 인간의 몸에 상처를 남기는 것은 트라우마를 초래한 사건 자체만이 아니라 그 이후에 사건의 의미가 해석되고 재생산되는 사회적 환경이 외상의 핵심요소라고 이야기 한다.
고통은 근본적으로 개인적인 것이다. 하지만 그 고통이 사회구조적 폭력에서 기인했을 때, 공동체는 그 고통의 원인을 해부하고 사회적 고통을 사회적으로 치유해야 한다.
트라우마에 대한 사회적 인식 공유를 통해, 명예회복-보상-처벌을 거쳐 사회관계 회복개선으로 나아가는 사회적 치유작업이 함께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기억해야 합니다.
5.18 광주민주화 항쟁 사망자의 유가족이, 77일 옥쇄파업에 참여했던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가, 세월호 유가족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고 아프고 괴로워한다고 해서, 그러한 진단과 의학적 치료만으로 그들의 상처 입은 몸이 겪는 고통을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요.
'빨갱이' 낙인으로 인해 오랜 기간 죽음에 대해 말할 수조차 없었던 그 사회적 낙인이, 회계조작에 따른 폭력적인 정리해고가, 풀리지 않는 의문들로 가득 찬 가족의 죽음과 은폐된 진실이 그들의 고통을 이루는 핵심이니까요.(177쪽)
사회적 치유의 시작은 공감과 연대의 행동에서 출발한다.
어떤 공동체에서 우리가 건강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개인이 맞닥뜨린 위기에 함께 대응하는 공동체, 타인의 슬픔에 깊게 공감하고 행동하는 공동체의 힘이 얼마나 거대하고 또 중요한지에 대해서요. (296쪽)
아름다운 사회는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예민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 그래서 열심히 정직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자신의 자존을 지킬 수 없을 때 그 좌절에 함께 분노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회라고 생각해요(303쪽).
그리고 그 사회로 가는 희망은 상처받은 사람들에게서 온다.
상처를 받은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자꾸 되새김질을 하고 자신이 왜 상처받았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해야 하잖아요.
아프니까. 그래서 희망은 항상 상처를 받은 사람들에게 있어요(40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