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의 꼴 - 물건의 진화론 Essays On Design 5
사카이 나오키 지음, 정영희 옮김, 후카사와 진 그림 / 디자인하우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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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물건의 꼴 - 20세기 디자인의 진화론

카메라,시계,오토바이, 맥주병 캔, 아이스크림 박스, 향수병, 캠코더, 평면 LCD, 일본술병 등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물건들의 형태가 어디에서 연유하여 어떻게 진화해 갔는지 그 역사를 따라가는 물건의 계보학.

이 책을 만들면서 얻은 수확이라고 한다면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기 전 면면히 이어질 프로덕트 디자인의 계보를 뒤져보며 20세기의 문화유전자를 내 나름대로 발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5쪽)

1998년 ..20년 전에 쓴 책인데도 20세기를 상징하는 제품 디자인의 계보를 읽어내면서 예측한 미래가 오늘날의 디자인과 많은 부분 일치한다.

최근 100년간 자동차는 '상자형-> 유선형-> 쐐기형-> 생체형' 순으로 변해왔다. 
디자인할 때 '보다 빨리'라는 목표를 항상 염두에 두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요즘의 소비자는 자동차에 '스피드'가 아닌 '스페이스'를 요구하고 있는 듯하다. 
전화나 네비게이션은 물론, 인터넷까지 결합하고자 하는 시도를 보면 지금부터는 자동차를 '이동 정보 공간'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66쪽)

디자인은 눈에 보이지 않는 상품의 가치를 보여주면서 소유의 욕망과 충동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 디자인의 역할중 하나이다.

향기에 형태를 제공하는 것이 향수병의 역할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향기를 비주얼화 한 후 여성 고객에게 프레젠테하기 위한 미디어로서의 기능하고 있다.(35쪽)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새로운 장르의 제품이 시장에 등장하면 제일 먼저 '기능 경쟁'이 시작된다. 
각 회사의 기능이 평준화되면 다음에는 '가격 경쟁'이 벌어진다. 
성능에 차이가 없으면 당연히 제일 저렴한 제품이 팔린다. 
그러나 제조사의 자살행위라는 측면 때문에 가격 경쟁은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그러면 이제 겉모양에서 차별화를 꾀하는 '디자인 경쟁'이 시작된다.
그런 점에서 컴퓨터 업계도 성숙기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105쪽)

책 내용도 즐거웠지만 후카사와 진의 일러스트가 더 눈에 들어왔다.

따라그리기를 시도했으나 선 하나하나가 이렇게 다를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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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 대하여 오늘의 젊은 작가 17
김혜진 지음 / 민음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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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닌 누군가를 향해 가는, 포기하지 않는 어떤 마음들에 관한 이야기

누구보다 딸을 이해하고 싶고 딸의 평범한 행복을 바라지만 뛰어넘지 못하는 이해의 벽 앞에서 절망하고 분노하고 체념하는 엄마..

어쩌면 딸애는 공부를 지나치게 많이 했는지도 모른다. 
배우고 배우다가 배울 필요가 없는 것, 배우지 말아야 할 것까지 배워 버린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세계를 거부하는 법. 세계와 불화하는 법.(32쪽)

자신의 살아가는 방식은 이해해주지 않는 엄마에게 섭섭함을 넘어 단절의 길을 선택했지만 아쉽고 필요할 때 가장 먼저 엄마를 찾는 딸..

이건 이해하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에요. 
이해해 달라고 사정해야 할 문제도 아니고요. 
이건 그냥 권리잖아요.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갖는 거요.(156쪽)

표면적으로는 레즈비언 딸과 그의 나이든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같지만 삶과 사람이 버겁고 힘든 모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손발이 묶인 채 어디로 보내질지도 모르고 누워 있는 저 여자가 왜 나로 여겨지는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너무나도 분명한 그런 예감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기댈 데도 의지할 데도 없는 게 저 여자의 탓일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나는 이제 딸애에게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고 단념해 버린 걸까. 
어쩌면 나도, 딸애도 저 여자처럼 길고 긴 삶의 끝에 처박히다시피 하며 죽음을 기다리는 벌을 받게 될까. 
어떻게든 그것만은 피하고 싶은 걸까.'(129쪽)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받아들임에 대한 아픔과 훼손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아프게 깨달았다. 
이대로 딸애를 계속 당기기만 하면 결국 이 팽팽하고 위태로운 끈이 끊어지고 말겠구나. 
이대로 딸을 잃고 말겠구나. 
그러나 그게 이해를 뜻하는 건 아니다. 
동의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다만 내가 쥐고 있던 끈을 느슨하게 푼 것뿐이다. 
딸애가 조금 더 멀리까지 움직일 수 있도록 양보한 것뿐이다. 
기대를 버리고, 욕심을 버리고, 또 무언가를 버리고 계속 버리면서 물러선 것뿐이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딸애는 정말 모르는 걸까. 모른 척하는 걸까. 모르고 싶은 걸까.” (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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캣츠 갤러리 - 교양 있는 고양이 그림집
수잔 허버트 지음, 박선영 옮김 / 시그마북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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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태초에 고양이의 시대가 있었다.
물질문명의 허무함을 깨달은 고양이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유유자적한 삶을 선택하고 오늘날에 이르렀다....ㅇ.ㅇ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하여 미술, 연극, 오페라와 영화의 유명한 장면들을 유쾌하게 재창조한 수잔 허버트의 그림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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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터와 무늬
최영미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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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터가 무늬가 되도록 나는 사랑하고 싸웠다
최영미의 흉터는 무늬가 되었을까.

“...오래된 고통을 다루는 법을 아는가? 
침묵할 힘이 없으면 잘게 부수어 발설해야 한다.”

세상에서 제일 긴 이야기, 가족에 대한 소설

닮지 않으려 발버둥칠수록 우리는 서로를 닮아갔다. 
한 지붕 밑에서 엉겨 덜그덕거리는 가족이라는 낡은 푸대자루, 
다 해져 실밥이 뜯어지고 구멍이 뚫린 천막 안에서 우리는 우리에 갇힌 짐승들처럼 서로를 할퀴고 물어뜯었다. (278쪽)

2005년 첫출간 된 작품을 다시 고쳐쓴 소설이다.
2018년 여전히 작가의 흉터들은 무늬가 되지 못했다.

사십 해의 비바람에 상처의 톱날이 무디어졌다.
어느덧 하나둘 늘어난 잔주름에 묻히는 손톱자국이 때로 아쉬우니-감추고 싶었던 흉터가 지금은 뭇 얼굴들 속에서 번쩍, 나를 알아보는 무늬가 되었다. 
어디에선가 나를 드러내는 서명처럼.(401쪽)

이혼을 앞둔 스무네살의 방, 폭식과 둘코락스와 줄담배로 서서히 미쳐가던 방에서 '언니. 있었다' 는 아픔이 오열을 토하게 한다. 
불치병을 앓다 미국으로 입양되어 죽은 언니는 하경이 오랜 동안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지우려고 애썻던 상처이고 흉터이다.

장례식은 산 자를 위한 의식이다. 
살아남은 자들이 스스로를 달래는 절차를 우리는 생략했다. 
꽃도 촛불도 없었다. 
우리는 언니를 매장하지 못했다. 
독한 향이라도 피우고 식구끼리 얼싸안고 눈가가 짓무르도록 울음을 쏟았다면 지금쯤 언니는 희미해졌을 텐데. 우리는 우리를 치유하지 못했다.(261쪽)

소설은 윤경을 떠올리며 과거가 서서히 베일을 벗는 독백의 형식을 띠고 있다.

한국전쟁에 나가 실수로 부하를 사살하고, 평생을 우익의 편에 서서 살아간 아버지와 미국으로 심장병 치료를 위해 입양되었다가 죽은 윤경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최영미는 질곡같은 한국 현대사 속에서 고통받았던 사람들 그리고 여전히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신념과 폭력의 광기가 누군가에게 아물지 않는 상처를 남기는 서로 다른 형태의 칼이라는 것을 일러준다.

"여자는 도마위에 오른 생선이다."
"왜 생선이야"
"글쎄 그렇게 알고 이제 부터 엄마가 하는 말 명심해라 하경아.
"남자는 다 도둑놈이다. 가까이 하면 안 돼."(219쪽)

2017년 작가는 황해문화 12월호에 시 '괴물' 을 싣는다.
함께 올린 시 Mendelssohn 'violin concerto in e minor '지리멸렬한 고통'은 신념과 폭력에 대한 또다른 이야기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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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하는 삶 -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초 로완 윌리엄스 선집 (비아)
로완 윌리엄스 지음, 김병준.민경찬 옮김 / 비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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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는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쌓아가는 사람들의 긴 여정의 고백이다.

'신뢰하는 삶'은 신학자이자 영성가이며 캔터베리의 대주교였던 로완 윌리엄스가 저술한 사도신조와 니케아 신조 해설서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모든 내용의 기본 전제는 그리스도교 신앙이란 진정으로 누구를, 그리고 무엇을 신뢰할 것인가에 관한 앎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여러분에게 제도에 이름을 등록하라고 요구하기 이전에 그리스도교가 말하는 하느님을 신뢰할 것을 요구합니다. 
실천적인 가르침, 교리의 원천은 일단 한번 신뢰의 발걸음을 내딛는 것입니다." (17쪽)

예수와 신앙에 대한 가짜뉴스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믿으면 부자가 된다거나 인생이 필거라는 거짓된 소식들은 신앙의 가치를 무너뜨리고 하느님을 신뢰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하느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어떠한 만남도 없이 일어나는 막연한 믿음이나 특정 대상을 향한 맹목적 믿음이 아니다.
신뢰는 어떤 존재가 아무런 조건도 제약도 없이 내 삶의 모든 국면에서 이미 나를 지탱해오고 있음을 자각하는 것이다.

'나는 믿습니다'는 고백은 어디서 나의 근본, 본향을 찾을 것인지에 대한 선언의 출발이다.존재의 이유를 묻는 이 질문에 대해 저자는 ‘성서가 고백하는 하느님’이라고 답한다. 
하느님은 평화와 찬미를 이루기를 바라고 계시며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은 화해를 이루어지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에베소서의 말씀은 하느님을 향한 신뢰의 근거가 된다.

성서는 하느님과 인간이 갈등을 빚는 순간들, 하느님을 향한 인간의 분노, 하느님의 목적에 대한 인간의 회의, 하느님의 존재를 실제로 느낄 수 없을 때 겪는 인간의 고통과 상실의 시간속에서 경함하고 만나는 하느님을 보여준다.
그 순간들 속에서 성서의 인물들은 하느님을 믿으며 자기만족이 아닌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 책임을 지는삶을 선택하고 그 길을 걷는다.

로완에게 있어 기독교의 믿음은 이러한 길을 걷는 사람들의 세계에 들어가 사는 것, 그들과 같은 것을 아는 것, 그들이 마시는 물을 함께 마시는 것이다. 즉, 신뢰의 대상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우리 아버지'라고 말할 때, 그저 안전하고 편안한 느낌에 안주하게 하는 그 모든 것을 우리 자신에게서 단호히 몰아내는 가운데 예수의 말을 우리의 입술에 담아, 우리 존재의 깊은 곳에 예수의 영을 모시고 하느님께 나아올 때, 진리를 향해 한 발 더 내디딜 때, 그리하여 '나는 믿습니다'가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게 될 때, 그때 우리는 18세기 시인 헨리 본이 하느님의 '빛나는 어둠'이라 불렀던, 그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까지 고양된 온전한 인간이 되는 도정에 들어섭니다. 
이 길은 온 생애에 걸쳐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지만 우리 힘으로 얻은 것이 아니며 결코 얻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은총으로, 이 길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졌습니다." (214~215쪽)

책속에서 저자는 이런 신뢰의 개인적인 실천으로 기도를 말한다. 진정으로 ‘우리 아버지’를 고백하며 “예수의 말을 입술에 담아 존재의 깊은 곳에 예수의 영을 모시고 하느님께 나아오는” 순간이 ‘나는 믿습니다’를 이해하는 순간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도한다는 것은, 다른 모든 일에 우선해서 예수의 기도가 그들 자신 안에 일어나게 하는 것이며 자신의 이기적인 생각과 희망을 점차 그분의 영원한 사역에 일치시켜 가는 길고도 힘겨운 과정을 시작하는 것이다.

로완의 영성은 개인의 경건과 신앙을 정치․사회적인 사안과 분리하지 않는다.

사랑의 하느님은 우리를 환대하시고, 우리는 그러한 하나님에 대한 신뢰의 고백을 하며 하나님이 우리를 환대하셨듯 우리의 이웃을 환대한다. 
신앙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가까이 가며(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시며), 또한 이웃을 향해 나아간다(그를 나에게로 받아들인다).

믿는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나도 그들이 있는 그 세계에 들어가 살기를 원합니다. 그들이 아는 것을 나도 알기를 원합니다. 그들이 마시는 샘에서 같은 샘물을 마시기를 원합니다"라고 결단하는 것이다. 
이때 우리는 진정으로 말할 수 있다. 
"나는 믿습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나는 귀의합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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