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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터와 무늬
최영미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3월
평점 :
흉터가 무늬가 되도록 나는 사랑하고 싸웠다
최영미의 흉터는 무늬가 되었을까.
“...오래된 고통을 다루는 법을 아는가?
침묵할 힘이 없으면 잘게 부수어 발설해야 한다.”
세상에서 제일 긴 이야기, 가족에 대한 소설
닮지 않으려 발버둥칠수록 우리는 서로를 닮아갔다.
한 지붕 밑에서 엉겨 덜그덕거리는 가족이라는 낡은 푸대자루,
다 해져 실밥이 뜯어지고 구멍이 뚫린 천막 안에서 우리는 우리에 갇힌 짐승들처럼 서로를 할퀴고 물어뜯었다. (278쪽)
2005년 첫출간 된 작품을 다시 고쳐쓴 소설이다.
2018년 여전히 작가의 흉터들은 무늬가 되지 못했다.
사십 해의 비바람에 상처의 톱날이 무디어졌다.
어느덧 하나둘 늘어난 잔주름에 묻히는 손톱자국이 때로 아쉬우니-감추고 싶었던 흉터가 지금은 뭇 얼굴들 속에서 번쩍, 나를 알아보는 무늬가 되었다.
어디에선가 나를 드러내는 서명처럼.(401쪽)
이혼을 앞둔 스무네살의 방, 폭식과 둘코락스와 줄담배로 서서히 미쳐가던 방에서 '언니. 있었다' 는 아픔이 오열을 토하게 한다.
불치병을 앓다 미국으로 입양되어 죽은 언니는 하경이 오랜 동안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지우려고 애썻던 상처이고 흉터이다.
장례식은 산 자를 위한 의식이다.
살아남은 자들이 스스로를 달래는 절차를 우리는 생략했다.
꽃도 촛불도 없었다.
우리는 언니를 매장하지 못했다.
독한 향이라도 피우고 식구끼리 얼싸안고 눈가가 짓무르도록 울음을 쏟았다면 지금쯤 언니는 희미해졌을 텐데. 우리는 우리를 치유하지 못했다.(261쪽)
소설은 윤경을 떠올리며 과거가 서서히 베일을 벗는 독백의 형식을 띠고 있다.
한국전쟁에 나가 실수로 부하를 사살하고, 평생을 우익의 편에 서서 살아간 아버지와 미국으로 심장병 치료를 위해 입양되었다가 죽은 윤경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최영미는 질곡같은 한국 현대사 속에서 고통받았던 사람들 그리고 여전히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신념과 폭력의 광기가 누군가에게 아물지 않는 상처를 남기는 서로 다른 형태의 칼이라는 것을 일러준다.
"여자는 도마위에 오른 생선이다."
"왜 생선이야"
"글쎄 그렇게 알고 이제 부터 엄마가 하는 말 명심해라 하경아.
"남자는 다 도둑놈이다. 가까이 하면 안 돼."(219쪽)
2017년 작가는 황해문화 12월호에 시 '괴물' 을 싣는다.
함께 올린 시 Mendelssohn 'violin concerto in e minor '지리멸렬한 고통'은 신념과 폭력에 대한 또다른 이야기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