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토머스 머튼의 영적 일기 - 요나의 표징
토마스 머튼 지음, 오지영 옮김 / 바오로딸(성바오로딸) / 2009년 2월
평점 :
The Sign of Jonas
종종 책 하나를 읽다보면 결국 관련 된 다른 책들을 읽어야만이 겨우 마무리가 되는 책이 있다.
'칠층산' ,'요나의 표징', '죄 많은 방관자의 억측' 은 20세기 한 위대한 영성가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엿볼 수 있는 여행의 기록이다.
"어떤 의미로 우리는 항상 여행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 여행은 목적지를 알 수 없는 긴 여행이다. 다른 의미로 우리는 이미 도착하였다.
우리는 현세에서 하느님께 완전히 소유되는 지점에 도달할 수 없다. 그러기에 우리는 암흑 중에 여행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은총에 의해서 하느님을 이미 소유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미 빛 속에 도착하여 그 안에 살고 있다. "(칠층산 중에서)
칠층산에서 철저히 자기 내면을 향하고 있던 그의 시선은 요나의 표징을 지나 죄 많은 방관자의 억측에서 세상을 향해 심화되고 있다.
삶의 의미를 찾아 세상을 등지고 떠난 그의 여정은 수도원을 거쳐 마침내 다시 세상에 이르고 있다.
1958년 3월 18일 머튼은 켄터키 루이스 빌에서 치과 진료 약속이 있었다.
4번가와 월낫가의 교차로 모퉁이에 서 있는 동안, 그는 갑자기 모든 사람들과 그가 연결됨을 알게 되었다.
“나는 갑자기 이 모든 사람들을 사랑한다는 깨달음으로 압도되었다. 그들은 나의 것이고 나는 그들의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우리가 완전히 낯선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서로에게 이방인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길거리 모퉁이에 서 있으면서 머튼은 거룩함이 침묵, 고립, 세계로부터의 이탈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관상적 생활이 점차로 다른 사람들의 생활에 의해 영향을 받아야 하고 또한 그들의 삶에 영향을 미쳐야 함을 알았다.
이제 일상 속에서 대면하는 모든 사람들은 더 이상 낯선 타자가 아니었다.
모든 사람들은 이제 또다른 '나' 가 된다
그들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 함께 하는 것 바로 그것이 거룩한 삶의 입구요 진정한 고독의 시작임을 그는 절감했다
머튼은 베트남 전쟁을 반대했고 다른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을 더해갔다.
이제 그는 이 일치를 위한 열정적인 고투가 그를 형제 자매들 사이에서 평화와 평등을 위해 일하도록 불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1968년 12월 10일, 머튼은 사고로 죽기전 방콕 회의에서 마지막 강의를 했다.
그 연설 제목은 “마르크스주의와 수도적 관점”이었다.
그 연설에서 그는 마르크스주의와 수도주의는 모두 세상의 변화를 촉구한다고 설명했다.
이날 어느 프랑스 학생혁명 지도자가 "우리도 역시 수도자"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이에 머튼은 "수도자는 본질적으로 현실세계와 그 구성체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사람을 뜻한다"고 동의했다.
이하 머튼의 글 중에서
나의 새로운 사막은 무엇인가?
그것은 연민(compassion)이다.
연민 또는 동정의 황무지만큼 지독하고 아름답고 무미건조하고 결실이 풍부한 사막은 없다.
연민은 백합처럼 번성하는 유일한 사막이다.
연민은 작은 못이 될 것이다.
이곳에서 싹이 돋아나 꽃을 피우고 기쁨으로 충만할 것이다.
바로 이 사막에서 메마른 땅이 샘으로 변하고 가난한 사람이 모든 것을 소유하게 된다.
결과에 대한 기대에 얽매이지 마십시오
그런 개인적인 만족 위에 우리 삶을 세워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런 짓은 우리를 부인할지도 모르고 또 결국 중요하지도 않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살아가는 것이지 미신에 인생을 쏟아붓는 것이 아닙니다.
즉, 최선의 것들을 미신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대가 인과관계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고 바로 그리스도의 진리를 위해서만 헌신한다면, 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을 것이며 불가피한 실망에 덜 짓눌릴 것입니다.
진정한 희망은 우리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어떤 것에 있지 않고 우리가 볼 수 없는 어떤 모양으로 좋은 것을 끄집어내시는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