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물망초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12
요시야 노부코 지음, 정수윤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5월
평점 :
• 일본의 어느 여자 고등학교에는 마키코라는 수수하고 존재감 없는 학생이 다닌다. 이런 수수함이 오히려 화려한 이들에게는 눈에 띄었을까. 마키코는 어느 순간부터, 굉장히 외향적이고 사업가인 아버지를 둔 요코에게 적극적인 친구 제안을 받는다. 다른 학우들과의 관계도 중요하다는 아버지의 권유도 있었고, 원하지는 않았지만 요코의 파티에 참석한 마키코. 그 파티에서 마키코는 요코가 가즈에라는 친구에게 함부로 대하는 모습을 보게 되고, 당황과 실망 섞인 마음에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후에 마키코는 요코의 화려한 삶과 친구를 대하는 모습 등, 자신과는 다른 세상에서 사는 사람이니, 요코와 거리를 두려고 한다. 결국 요코에게 절교 편지까지 써가며 친구 관계를 정리한 마키코. 그 사이에 가즈에와는 동생 간에 교류를 통해 금세 가까워지게 된다. 그렇게 맞이 한 방학. 요코는 자신이 마키코를 너무 몰아붙이면서 친해지려고 했다고 후회하는 내용의 편지를 가즈에에게 보내고, 가즈에의 중재로 마키코는 요코와 다시 만나 서로의 마음과 사과를 전하고 우정을 확인한다.
• 일본 애니메이션을 많이 봐서 그런 걸까. 청춘을 생각하면 학생들이 떠오르고, 학생들을 떠올리면 한국의 학원을 다니는 학생들보다는 일본의 동아리를 즐기는 학생들이 떠오른다. 그만큼 내게 청춘과 학생의 조합은 한국보다는 일본의 이미지가 더욱 강하게 각인되었는데, 이 소설이 딱 그런 느낌으로 다가왔다. 질투라는 감정으로 다투고 뒤엉키며 절교까지 감행하지만, 속은 결국 친해지고 싶었다는 순수한 마음. 학생이라는 이유로, 감정의 격류라는 이유로 그 표현방식이 잘못되었을 뿐인, 지나가서 생각해보면 “우리 그래서 그때 왜 그렇게 싸웠지?”라며 스스로도 어이없을 정도인, 이 책은 그런 사춘기 학생들의 이야기다. 그런데, 책의 제목인 물망초의 꽃말을 아는가? [나를 잊지 마세요]이다. 소설 속에서 찾아보면, 마키코에게 집착하고 질투했던 요코가 떠오른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 앞서 얘기한 사춘기와 청춘 등의 이미지를 결합하면, ‘나’는 결국 ‘청춘’ 혹은 ‘추억’ 아니었을까. 소설을 읽으며, 섬세하게 표현된 소녀들의 우정에 주목하고, 자신의 학생 때의 추억을 회상하고, 제목은 그런 우리에게 그 추억을 잊지 말라고 하는 것 같다.
• 초반에 살짝 오글거리는 부분이긴 했는데, 소녀마다 학교-포지션이 있다는 내용이 독특했다. 평소에는 잘 놀지만, 시험 기간이 되면 공부에 집중하는 ‘자유주의파(개인주의파)’-마키코. 공부보다는 영화나 문화생활에 빠져든 ‘온건파’-요코. 오로지 공부에만 몰두하는 ‘강경파’-가즈에. 또한 요코의 아버지는 사업가이고, 마키코는 가부장적인 아버지를 뒀으며 가즈에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가난하지만 가족들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인물 설정이 각 성격을 파악하는 데에 도움을 주기도 했지만, 사회적인 이면을 내포하고 있다는 생각 또한 든다. 마키코의 아버지가 파티에 가라고 강압적인 태도를 드러내는 장면에서는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자란 여성의 시각을 보여주고, 소녀들의 우정 이야기라곤 하지만 세밀하게 자리 잡은 동성애에 대한 작가의 태도도 보인다.
번외로, 책의 해설 부분이 3, 40쪽 정도 할당되었는데, 이 책에 대한 번역가의 애정이 아주 느껴진다. 한산해지는 날씨에 춘추복으로 갈아입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또, 자신의 옛 학교생활에 빠져들며 읽기 아주 좋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