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 - 장애인의 성과 사랑 이야기
천자오루 지음, 강영희 옮김 / 사계절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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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s://brunch.co.kr/@dheejeh/28

장애인의 성의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지만, 깊이 고민하거나 공부해 본 적은 없었다. 장애인이 욕망의 주체로 등장하는 글은 여전히 많지 않다. 김원영 변호사님의 <희망 대신 욕망>,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에서 이런 주제들을 사실상 처음 접한 것이나 다름 없고, 최근 나온 책 중에서는 장애여성공감의 구성원들이 모여서 말하고 쓴 <어쩌면 이상한 몸>에서 장애 여성의 구체적인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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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한 책들과는 달리, 내가 리뷰하고자 하는 이 책은 당사자가 쓴 글은 아니다. 저자인 천자오루는 인류학을 공부하고 기자로 활동하며 세상의 이야기를 담아내려고 노력하는 비장애인 여성이다. 하지만 책에는 당사자들의 아주 솔직한 이야기가 가감없이, 풍부하게 담겨 있다. 그럼에도,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해석하거나 자신이 목격한 장면들을 묘사할 때 드러나는 한계들이 있었다. 어떤 장애인의 모습을 묘사할 때 '그럼에도' 혹은 '장애인 치고'와 같은 느낌을 주는 지점들이 있기도 했고, 여성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 어딘가 이야기가 진행되다 말아서 오해가 생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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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이런 안내를 미리 하면서 이 책을 꼭 추천하고자 한다. 추천사부터 옮긴이의 말까지,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면서 저자의 그러한 말투가 오해나 몰지각함에서 비롯된 것이 결코 아니고, 인터뷰이들과 너무 가까워졌고, 그들의 개인적 서사를 이해하며 그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쓴 글이라 그렇다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거리를 두고 장애인을 바라보며 삶을 쉽게 단정하는 비장애인의 시선이 아닌, 장애인의 삶들 안으로 깊이 들어가서 그들의 이야기를 함께 적어 나가는 '공저자'의 시선이 느껴졌다. 처음 읽을 때는 시혜적이라거나 동정적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은 부분들이 있었지만, 책 전체의 깊이와 시선은 내가 오해의 속도전을 펼치고 있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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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장애인의 성을 이야기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장애인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크론병이라는 질병을 갖고 살아가는 만성질환자이고, 일찍 병을 발견하여 항문주위농양 제거 수술 외에 다른 수술은 받은 적이 없다. 그래서 따로 사용하는 보조 기구도 없다. 이는 지금 사회에서 성적인 매력의 주요 구성 요소인 몸의 움직임이나 형태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물론 중요한 순간에 배가 아프거나 속에 가스가 차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특히 성의 문제에서 당사자가 아닐 때는 더욱 말하기가 어렵다. 내밀하고 사적인 문제라고 여겨지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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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장애인의 성을 이야기할 때 등장하는 다수의 성 서비스는 이 책에서도 나오듯 대부분 이용자는 장애 남성이고, 제공자는 비장애 여성이다. 성 산업의 성별 위계가 여기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이 책에는 성욕을 '해소'하지 못하여 난폭한 행동을 보인다는 이들도 나오는데, 그들의 성별 역시 남성이었다. 여기서 많은 고민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 고민은 이전에 <어쩌다 암살클럽(Kills on Wheels)>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가졌던 것과 거의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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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영화의 주인공은 세 명의 장애 남성이다. 한 명은 소방관으로 일하다가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사람, 한 명은 선천적 근육병 때문에 계속 의료적 조치를 받아야 하는 사람, 한 명은 뇌병변 장애로 인해 직립이 가능하긴 하나 대체로 스쿠터를 타는 사람이었다. 장애인이 등장인물에 포함된 영화들은 보통 유명 배우에게 장애를 잘 연기하도록 주문하곤 하는데, 이때 강조되는 것은 '그토록 어려운 연기를 잘해낸 명배우'뿐이지 장애인의 삶이 아니다. 그러나 이 영화에는 당사자가 등장하고, 근육병을 가진 사람의 신체가 그대로 드러나는 장면들도 있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었다. 장애인이 킬러가 된다는 설정도 상당히 전복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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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나는 그 영화에서 비장애인 여성이 다루어지는 방식이 내내 불편했다. 우선, 책에서도 나오듯, 장애인의 몸을 만지게 되는 사회복지사나 활동지원사, 의사나 간호사는 그 몸을 성적인 대상이 아닌 오직 치료나 처치의 대상, 사람의 몸보다는 하나의 물건으로 대하곤 한다. Tobin Siebers가 <장애 이론>(학지사, 2019)에서 언급하는 "의료화에 따르는 비인간화"가 바로 이런 문제일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장애인의 신체는 소외되고, 장애인은 탈성애화(desexualization)된다. 이 책은 대만에서 나왔고, 저 영화는 헝가리에서 나왔지만, 이러한 문제는 한국에서도 비슷하다. 한국에서 장애인 화장실에 성별 구분이 생긴 지는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는 장애인이 성적인 존재일 수 있다는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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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러한 강제된 무성성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어쩌다 암살클럽>의 주인공들은 "여자를 안아야 한다"거나 성매매를 하게 해 달라고 말한다. 자신들의 재활과 치료를 돕는 여성 간호사들이 자신들을 '남자'로 봐주지 않는다며 욕을 하기도 한다. 그런 장면들을 보면서 나는 적잖이 난감했지만, 내가 아는 이야기도, 경험한 삶도 아니라서 쉽게 말할 수 없었다. 단지, '아무리 그래도 그러면 안 되지'라고 말할 뿐이었다. 바로 그런 고민이 이 책에서도 똑같이 생겼지만, 그때보다는 나의 고민이 이 책 덕분에 조금은 발전한 것 같다. 이는 정말 복잡한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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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이원제, 이성애 중심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지금의 사회에서 성과 사랑은 신성한 것으로까지 여겨지곤 한다. 성은 신성하므로 지켜야 한다는 사고방식은 결혼 제도로 법제화되고, 여기서 성은 언제나 여성의 성이었다. 그러면서도, 캐롤 페이트먼이 "What's Wrong with Prostitution?"에서 언급하듯 남성이 여성의 몸에 접근할 권리를 가진다는 사고방식이 존재하여 성매매와 성폭력이 발생하고 있다. 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전자의 사고방식이 자연화되기도 하는데, 그 때문에 여성에 대한 보호주의가 다시금 등장하기도 한다. 장애여성이 탈성애화되는 동시에 과잉 성애화된다는 모순도 이런 문제들과 연결되어 있고, 책에서도 나오듯 이는 장애여성의 결정권을 박탈하게 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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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성은 장애인 차별과 성차별이 긴밀히 결합한 문제이며, 동시에 '정상적인 성행위'를 규정하는 섹슈얼리티 규범에 의해서도 제약을 받게 된다. 퀴어 이론과 페미니즘, 장애 이론이 모두 함께 논의해야 할 문제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문제가 정말 복잡하다. 혼자 이런저런 책을 읽어 보기도 했지만, 고민이 진전되는 느낌을 받은 적은 드물었다. 그런데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나의 고민이 정체되었던 이유는 내가 실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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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서비스를 바라는 장애여성도 있으며, 아주 극소수지만 이용한 여성도 있다. 이러한 서비스를 이용한 이들의 이야기 속에는 행복과 기쁨이 있었고, 자신이 가치 있다는 감각, 사랑받는다는 감각이 있었다. 사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세상에는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에게 사랑은 삶을 완전히 바꾸고, 존엄하게도 만들어 주는 요소다. 사랑은 나에게도 소중한 감정이자 관계이기에 그런 마음을 이해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분명 사회적인 장벽으로 인해 사랑에 접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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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에서 '해소'로서의 성욕이 아닌, '만족' 혹은 '충족'으로서의 성욕을 보았다. '해소'로 성욕을 여길 때 그 결과는 파괴적일 때들이 있지만, '만족' 혹은 '충족'은 그와는 결이 조금 다른 것 같다. 이 책에 나온 묘사 중에는 기존 사회에서 성관계의 핵심으로 제시하는 성기 환원적 시각이 없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눈빛과 표정, 피부가 닿는 감각 자체에서 얻는 욕망의 긍정과 행복이었다. 자신의 몸을 새롭게 탐구하고, 다른 몸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이런 논의에 접근할 때, 나야말로 '성'을 너무나 얄팍하게 이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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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에서도 나오듯, 이 책의 저자는 어떤 주장을 강하게 내세우지 않는다. 워낙 복잡한 이야기니까 당연하기도 하다. 하지만 정말 확실히 느낄 수 있는 하나는, 성과 사랑의 이야기가 지금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정말로 중요한 주제라는 점이었다. 한편으로 나는 어떤 당위들에만 너무 집중해서, 정작 사람들이 어떤 생각과 욕망을 갖고 살아가는지를 외면해 오지는 않았는지 깊이 고민하게 된다. 이전에 노들장애학궁리소의 강의를 들을 때, 같은 책상에 있던 사람이 자기랑 밥을 같이 먹은 사람이 너무 고마워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장애가 옮을까 봐 자신을 피했는데, 이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자신과 밥을 먹어 ‘주었다’는 이유로 그렇게 고마워했다는 것이었다. 생각도 못 해 본 일이었다. 그런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피부의 접촉과 친밀성이 주는 감정을 우리는 쉽게 상상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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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이야기만이 아니더라도, 나는 3장에서 나오는 지적장애인 부부와 사회복지사의 관계가 정말 인상적이었다. 지금 한국에서 사회복지사와 활동지원사는 어떤 존재일까. 내가 본 활동지원사 선생님들은 나의 친구들과 친구 같기도, 가족 같기도 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들도 많다고 하지만. 활동지원사도 여성의 비율이 80%가 넘는다는 점에서 돌봄의 여성화와도 엮여 있는 주제이지만, 나는 그들이 공과 사 사이의 애매한 지점에 있다는 점에 집중하고 싶다. 이는 양측의 사생활을 박탈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문제이기도 하지만, 사실 돌봄이 공적인 생활영역에 국한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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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기존의 '가족' 관념에 질문을 던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공적인 지원의 문제가 가족의 사적인 케어와 반복적으로 부딪히는 이유는, 사실은 애초에 그 둘이 그렇게 뚝 잘라서 구분될 수 없고, 둘을 분리하면서 생기는 거칠게 뜯긴 틈이 어떤 문제들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페미니즘과 퀴어 이론의 논의에서도 많이 등장했지만, 장애 이론의 관점에서도 새로운 가족 혹은 생활공동체의 형태를 정말 많이 고민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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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글은 이 책의 극히 일부에서 이어지는 문제의식과 감상일 뿐이다. 이 책은 정말 풍부하다. 이론의 틀보다 사람의 이야기가 먼저라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 준다. 그것도 아주 일상적인 용어와 이야기들로. 솔직하고, 풍성하고, 쉬운 언어로 적혀 있으면서도, 결코 쉽지는 않은 책이다. 그런데 바로 그게 사람의 이야기가 가지는 힘이 아닐까. 나는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성과 사랑, 관계에 대한 고민에 정말 좋은 자료가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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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께 이 책을 꼭 읽으시라고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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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국가의 탄생 - 베트남 전쟁부터 아프가니스탄 전쟁까지, 고삐 풀린 미국의 전쟁사
레이첼 매도 지음, 박중서 옮김 / 갈라파고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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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출판사는 신간 나올 때마다 챙겨 보는데 이번에는 특히 재밌어 보이는 책이 나왔네요!! 너무 기대됩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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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쉼표, 이분법 앞에서 청년이 짜는 판 룰디스 (Rule This)
정경직 외 지음, 바꿈청년네트워크 기획 / 들녘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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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대한민국 페미니스트들 사이의 논쟁을 조금은 쉬운 언어로 사람들에게 풀어서 전달해 주는 책이 필요하다고 항상 생각해 왔는데,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바로 지금-여기의 페미니즘을 접하는 하나의 유용한 안내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은 단지 지금의 논쟁에 대한 안내서에서 끝나지 않고, 그 이후를 생각하는 문제의식을 모두 공통적으로 담고 있기 때문에, 수많은 사건들과 논쟁들 속에 갈피를 못 잡고 흔들리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잠깐 거리를 두고 이후를 생각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이분법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거기에 포획되고, 그 안에서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의 저자들은 그 이분법에서 잠시나마 빠져나와서, 한 번 숨을 고르고 이분법의 앞에서, 이분법을 바라보며 차분한 논조로 논쟁이 벌어지는 지형 자체를 다시 생각하도록 만든다.

첫 글인 “속도와 페미니즘을 재사유하다”에서 등장한 ‘속도의 페미니즘’은 여러 면에서 빠른 지금의 페미니즘을 포착하기에 적절한 용어인 것 같다. 페미니스트들의 속도마저도 동질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논 페미니스트들의 속도를 동질적으로 규정하고 적으로 규정하는 건 한편으로 근대 국가가 국경을 긋고 적을 규정함으로써 나를 정의하는, 즉 네거티브한 방식의 정의일 것이다. 모두의 속도를 고려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은 수전 웬델의 <거부당한 몸>에서 등장하는 ‘삶의 속도’ 개념과, 박종주의 “혐오의 시간, 민주주의의 시간”에서 등장하는 시간 개념과도 이어질 수 있는 것 같다. 속도는 언제나 (누구의) 속도라는 걸 생각하며, 나는 너무나 빠르게 횡단보도를 건너서, 내 곁에 있을 수 있는 사람을 건너편에 두고 온 것은 아닐까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사실 다음 글인 “정치적 올바름을 생각하다”에도 이어진다. 이 글은 구체적인 사례들을 통해서, 정치적 올바름이 어떻게 도덕주의화되고 기존의 이분법을 강화하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는지 차분하고 꼼꼼히 논증해 나간다. 사실 이 글을 읽으면서 스스로를 아주 많이 돌아보게 되었다. 때로 나는 단지 내가 어떤 말을 보고 싶지 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발화자를 악인으로 규정하고 처단하려 들지는 않았나. 물론 내가 정말 신경 써서 조심스럽게 설명했을 때에도 상대방이 똑같은 말만 반복한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나는 내 곁에 있던 사람조차 ‘혐오러’로 낙인 찍어 버리지는 않았을까. 특히 ‘무맥락적 PC’에 대한 내용과 그 이후 ‘속죄 페미니즘’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공격이 성찰보다 앞서곤 하는 나에게 가장 와닿았다.

“모두의 페미니즘을 위한 정치윤리학”은 저자가 격렬한 포함과 배제의 싸움 속에서 사람들과 직접 부딪치며 고민한 바를 풀어낸다. ‘생물학적 몸’과 몸의 경험은 어떠한 간극도 없이 이어진 연속체처럼 여겨지곤 하지만, 이 글은 그러한 직선적인 사고 방식에 질문을 던진다. 페미니즘 이론, 특히 (이 책에서는 포스트 페미니즘이라고 언급된)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은 학계에서만 통용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아니냐고 많이 비판을 받았다. 이 글은 그러한 이론적 이야기를 통해 지금-여기의 구체적인 논쟁들을 해석하고 비판하면서 ‘어려운 페미니즘’을 보다 간결하고 쉽게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도 타자가 주체에 선행한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 ‘나’에서 ‘너’로의 전환을 통해 용서와 화해의 단초를 던지는 마지막 부분은 버틀러가 <윤리적 폭력 비판>에서 이야기하는 바를 아주 쉽고 명료하게 풀어주는 것 같았다. 그런 이론적인 이야기가 우리 삶에서 동떨어진 것이 아닌, 우리 삶 깊숙이 언제나 자리하고 있음을 다시금 상기시켜 주는 글이었다.

마지막 “지배하는 말들에 지지 않는 법”은 자신의 삶에서 시작해서 ‘아주 친밀한 폭력’을 사유하고, 폭력이 발생하는 관계의 구조를 파악한다. 아주 가까운 관계에서, ‘사생활’에서 발생하는 폭력을 섬세하게 밝혀내는 이 작업은 정말 모든 유형의 가까운 관계에서 다 필요하다. 피해자가 가해자로, 가해자가 피해자로 둔갑하는 극단적이고 일방적인 책임 전가의 강황은 폭력이 상처로, 상처가 폭력으로 오해되는 것과 상당히 유사하다. 가해자는 자신의 위치를 선택적으로 지움으로써 폭력을 흐린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폭력은 다툼이나 갈등으로 오인되고, 어떤 이들은 이를 악용하여 폭력을 지속하고 책임을 회피하기도 한다. 이 글은 자신이 직접 경험한 가정 안에서의 이야기를 통해 이 고통 속에서 어떻게 피해자의 곁에 가서 설 수 있는지 고민한다. 저자가 어머니에게 말을 건네는 그 순간(책을 읽은 이는 어딘지 알 것이다)은 곁에 서는 아주 구체적인 장면이 아닐까. 그런 구체적인 장면들에서 나는 내 삶의 또 다른 구체적인 장면을 만들어나갈 수 있게 될지 모른다.

나는 얇고 가벼운 책을 들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데, 이 책의 크기와 무게가 나에게는 딱 적당하다. 그리고 지금-여기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페미니즘 논쟁들을 좀 더 많은 사람들과 고민할 수 있도록, 더 나은 논쟁을 할 수 있도록 풀어서 설명하는 책이라서 정말 좋았다. 뿐만 아니라 열심히 싸우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잠깐 잊고 있던 것들을 다시 상기시켜 줄 수 있을 것 같다. 제목처럼, 쉼표다.

공통의 문제의식과 더 나은 논쟁, 더 넓은 연대를 위한 살아 있는 이야기들로 연결된 책.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지금-여기의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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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의 정치학 도란스 기획 총서 4
정희진 외 지음 / 교양인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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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은 이미 체제를 이루는 일부이며, 동시에 그것은 특정한 젠더 규범을 (자신이) 체화하는 동시에 (당신에게) 강요하는 행위다. 모든 사람은 자기 삶의 모양을 주체적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어야 하지만, 어떤 이들은 이러한 권리를 존중받지 못한다. 자신의 섹슈얼리티가 자기 통제 바깥에 있는 경험, 그리고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통제한 바로 그 권력에 인정을 호소하는 경험. 왜 누군가의 삶은 통제와 저항과 좌절로 채워져 있는가?
이 책은 안희정 재판을 중심으로 가부장제 사회로, 그리고 그 속에서 성적 자기결정권이 갖는 의미로 나아간다. 그리고 이 안에서 반복된 “주인의 도구로는 주인의 집을 무너뜨릴 수 없다”는 오드리 로드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이는 ‘젠더 폭력’을 젠더 규범의 강요라는 권력의 작동으로 재해석함으로써, 주인의 도구를 버리고 우리만의 도구를 만들려는 마지막 장의 시도를 암시하는 일종의 복선이 아니었을까.
핵심은 ‘성욕’이 아니라는 내용은 평소에 내가 갖고 있던 생각과도 맞아떨어졌다. 캐롤 페이트먼의 논문 “What’s Wrong with Prostitution?”를 읽은 뒤에 나는 “왜 남성은 여성의 신체에 대한 접근권을 획득하려고 그렇게 애쓰는가?”를 끊임없이 물을 수밖에 없었다. 성차별적 사회에서 남성은 성욕이 아닌 여성의 몸을 추구하게 된다. ‘성욕’은 단지 그 접근권의 추구를 자연적인 질서인 것처럼 본질화하기 위한 수사일 뿐이다. 그리고 이 접근권은 자신을 특정 젠더 혹은 위치에 기입하기 위한 도구다.
안희정 재판이 이 책의 가장 핵심 줄기로 위치한 건 단지 그 재판이 언론에서 많이 다루어져서도 아니고, 안희정이 ‘잠룡’이었기 때문도 아니다. 이는 위력에 의한 성폭력이 이성애-이원 젠더 규범을 기반으로 굴러가는 이 사회에서 어떻게 지배 권력이 섹슈얼리티를 통제하고 수많은 삶을 압도하는지 가장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일 것이다.
미투 운동의 배경, 역사, 전개, 지금의 현실과 변화, 그 속에서의 절망과 현실의 재해석, 그리고 우리의 새로운 무기로서의 인식론까지. 지금의 한국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고 폭력을 더 정확하게 인식하기 위해 모두가 반드시 읽어야만 하는 책이 아닐까.

#도란스기획총서
#도란스총서
#미투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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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의 정치학 도란스 기획 총서 4
정희진 외 지음 / 교양인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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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현장감 있고 치밀하게 고민한 흔적이 보입니다. 지금 이 시점에, 한국의 모든 공동체에 필요한 고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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