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의 정치학 도란스 기획 총서 4
정희진 외 지음 / 교양인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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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폭력은 이미 체제를 이루는 일부이며, 동시에 그것은 특정한 젠더 규범을 (자신이) 체화하는 동시에 (당신에게) 강요하는 행위다. 모든 사람은 자기 삶의 모양을 주체적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어야 하지만, 어떤 이들은 이러한 권리를 존중받지 못한다. 자신의 섹슈얼리티가 자기 통제 바깥에 있는 경험, 그리고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통제한 바로 그 권력에 인정을 호소하는 경험. 왜 누군가의 삶은 통제와 저항과 좌절로 채워져 있는가?
이 책은 안희정 재판을 중심으로 가부장제 사회로, 그리고 그 속에서 성적 자기결정권이 갖는 의미로 나아간다. 그리고 이 안에서 반복된 “주인의 도구로는 주인의 집을 무너뜨릴 수 없다”는 오드리 로드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이는 ‘젠더 폭력’을 젠더 규범의 강요라는 권력의 작동으로 재해석함으로써, 주인의 도구를 버리고 우리만의 도구를 만들려는 마지막 장의 시도를 암시하는 일종의 복선이 아니었을까.
핵심은 ‘성욕’이 아니라는 내용은 평소에 내가 갖고 있던 생각과도 맞아떨어졌다. 캐롤 페이트먼의 논문 “What’s Wrong with Prostitution?”를 읽은 뒤에 나는 “왜 남성은 여성의 신체에 대한 접근권을 획득하려고 그렇게 애쓰는가?”를 끊임없이 물을 수밖에 없었다. 성차별적 사회에서 남성은 성욕이 아닌 여성의 몸을 추구하게 된다. ‘성욕’은 단지 그 접근권의 추구를 자연적인 질서인 것처럼 본질화하기 위한 수사일 뿐이다. 그리고 이 접근권은 자신을 특정 젠더 혹은 위치에 기입하기 위한 도구다.
안희정 재판이 이 책의 가장 핵심 줄기로 위치한 건 단지 그 재판이 언론에서 많이 다루어져서도 아니고, 안희정이 ‘잠룡’이었기 때문도 아니다. 이는 위력에 의한 성폭력이 이성애-이원 젠더 규범을 기반으로 굴러가는 이 사회에서 어떻게 지배 권력이 섹슈얼리티를 통제하고 수많은 삶을 압도하는지 가장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일 것이다.
미투 운동의 배경, 역사, 전개, 지금의 현실과 변화, 그 속에서의 절망과 현실의 재해석, 그리고 우리의 새로운 무기로서의 인식론까지. 지금의 한국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고 폭력을 더 정확하게 인식하기 위해 모두가 반드시 읽어야만 하는 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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