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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긋난 휴가
김경미 지음 / 로코코 / 2009년 11월
평점 :
세상만사 모든일에 이상할 정도로 무심하고 초연해서 자신을 내던지듯 사는 여자 스파이와 어려서부터 집안의 후계자로 훈련받으며 성장해서 이제 세계 시장을 아우르는 거대 그룹의 총수가 된 냉혹하지만 힘있고 소유욕강한 남자의 사랑이야기.
중국에서 위험한 임무를 끝내고 휴식기에 들어간 대한민국 특무국 비밀 요원 하빈과 중국의 유명한 삼합회 중 가장 힘있는 가문인 류柳가문의 가주이자 화롄그룹의 총수 인 류산의 첫 만남은 어두침침한 지하실에서였다.
간덩이도 큰 납치범들은 의뢰한 자들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평소에는 감히 상상도 못할 '류가의 수장 납치'계획을 세웠고, 성공했다며 기뻐했다. 그것이 다 숨어있는 적을 뿌리채 뽑기위한 산의 계획이었다는 것도 모르고 앞으로 다가올 커다란 댓가만을 생각하며 행복해했다. 덤으로 자신의 약혼자의 혼을 뺏어갔다며 여자 하나를 납치해달라는 건도 같이 처리했다. 그 결과로 현재 의자에 묶여있는 산의 곁에는 정신을 잃고 아무렇게나 던져져있는 하빈이 있었다. 곧 자신의 수하들이 이곳을 급습할 거라는 걸 알고 있던 류는 태평하면서도, 쓰러져있는 여자의 얼굴을 알아보곤 묘한 호기심이 생겼다.
그녀를 3개월전 처음으로 클럽에서 봤을때 뭇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자신 역시 그녀에게서 눈을 뗄수가 없었다. 뛰어난 미인이 아닌데도 작은키의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묘한 성적매력과 무심한듯한 눈동자는 사내들에게 최면을 걸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산은 결국 미련없이 돌아섰었다.그때 그녀는 한 남자의 무릎위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낯뜨거운 애무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그녀가 자신의 잘 짜여진 계획 안으로 불쑥 들어와 버린것이다. 더 황당한 것은 급습한 자신의 수하들에 의해 난자된 납치범 일당들의 처참한 모습과 그 험한 소란을 겪고도 그녀는 비명은 물론, 조금의 동요도 없었다는 점이다. 그저 한 말이라곤 상황이 끝났으면 돌아가도 좋으냐는 것과 그렇치 않으면 원치 않는 목격자는 죽일거냐는 물음뿐이었다. 산 역시 중간에 깨어난 그녀가 비명을 지르거나 시끄럽게 굴까봐 잠깐이지만 그런 마음도 먹었었다. 하지만 막상 그녀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오니 흥미가 생겼다. 쇼크인지, 이것도 일종의 쇼인지 몰라도 곁에 두고 싶어진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집으로 하빈을 데려간다.
그것이 두사람 인연의 출발이었다. 하빈은 평소와 다름없이 두려움이나 계획도 없이-어차피 휴가이니- 생판 낯선 그의 집에 머물게 된다. 자신의 일을 뒤에서 도와주는 보좌관 세진에게는 며칠 후 연락하면 되리라 생각하며. 오히려 신경을 바짝 쓰고 있는 것은 익숙한 자신의 집에 머물며 하빈의 행동을 살피는 산이었다.
그녀는 은근히 산의 신경을 붙잡았다. 그녀가 특별히 수다스럽거나 말썽을 부리거나 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나 조용하게 자신의 방에서 꼼짝을 하지 않아서.
그녀가 이 집에서 원한것은 단 두가지. 창이 보이는 방과 담배 뿐이었다. 식사도 챙겨주면 먹고, 그렇지 않으면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고 담배만 피웠다. 어떤날은 하루종일 창밖을 쳐다보며 바닥에 누워있기만 했다.
무료함,무심함,...그녀는 '비움' 그 자체였다.
그럼에도 산은 그녀의 감정없는 눈과 몸짓에서 눈을 뗄수가 없었고, 언제 돌아갈수 있냐는 그녀의 물음에 공연히 심술이 나서 안전을 핑계로 한달정도 자신의 집에 머물라고 말한다. 하빈은 실랑이를 하기 싫었다. 짙은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산의 눈빛이 여느 사내의 눈빛과 다르지 않다고 여기며 그 역시 자신에게 자연스레 흥미가 떨어질 기간을 주는것도 나쁘지 않다 생각한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하빈의 섣부른 판단이었다. 그녀의 호텔에서 짐을 찾아오던날 약혼녀까지 있으면서도 하빈의 뒤를 쫒았던 남자가 하빈에게 달려드는것을 본 산의 분노는 어마어마했다. 그때부터 산은 자신에게도 세상에게도 하빈이 자신의 여자임을 말한다.
덕분에 그녀 주위를 흘끔대는 남자들과 그녀의 과거-조사결과 그녀는 대단한 플레이걸로 소문나 있었다.- 때문에 벌주듯이 시작한 강압적인 키스가 하빈의 잠자는 악몽을 깨웠고 산은 처음으로 하빈의 흐느낌을 보았다. 구석으로 파고드는 겁에 질린 몸짓과 허옇게 질린 얼굴, 텅빈 눈...부들부들 떠는 입술....이 반응은 뭐지?
산은 끝내 기절한 하빈을 안아들고 복잡한 심경이 되야했다.
그리고 집으로 찾아온 하빈의 보좌관 세진을 통해서 그녀가 웬만한 수면제나 안정제가 들지 않는 체질이고, 불면증이 있으며 누군가 챙겨주지 않으면 먹는것도 자는것도 무감하다는걸 알게된다. 산은 그녀의 악몽의 원인을 듣고 싶었지만, 세진 역시 더 이상은 알지 못했고 안다해도 말해주지 않을 거란걸 알고있었다. 산은 자신과 그녀 사이에는 없는 익숙함과 편안함이 존재하는 세진이 못마땅했고, 세진 역시 4년 넘게 모셔온 상관이 원치않는 상황에 묶여버린 것이 불편했다. 그러면서도 미묘하게 평소와 다른 상관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했다. 모든것에 무심하고 반응하지 않으며 아무리 험한 상황에서도 감정의 동요는 커녕 죽으려고 작정한 사람처럼 무감해서 오히려 주변사람을 더 당황하게 하는 그녀가 몸을 빼려 하는것도, 미세하게 불안해 보이는것도 신경쓰였다. 이것이 공기를 밟고 사는 듯이 보이는 그녀를 땅 위로 끌어내릴수 있는 기회가 될수 있을까 생각하며 산을 바라보는 세진이었다.
얼마 뒤,안전을 보장한다는 구실로 하빈을 데리고 있던 산의 곁에 있다가 어처구니 없게도 하빈이 총을 맞는 일이 발생한다. 다행히 빗나간 총상이었지만 그 밤 상처와 불면증으로 잠 못 이루던 두 사람은 마침내 서로의 품에 잠들게 된다. 그리고 두번째로 보게된 그녀의 악몽의 후유증. 그것은 인정하기 싫지만 성폭행의 후유증같아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상하이에서 유명한 플레이 걸이 아닌가... 매일밤 그녀는 온몸이 땀에 젖도록 신음을 하던가, 온밤 내내 조용히 흐느끼곤 했다. 산은 그녀의 과거를 알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의 악몽을 없애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과거는 백지상태였다. 표면상으로 그녀는 서울에 사무실이 있는 수입상이었지만, 그뿐이었다. 답답했지만, 본인이 말을 하지 않는 이상 알수 없었다. 하빈 역시 속내가 시끄럽긴 마찬가지였다. 다른 사내들과 마찬가지일거라 여겼던 산의 진심이 느껴지자 그녀는 당황하기 시작하지만 겉으로 내색하진 않는다.인정하기 시작하면 기대하게 된다는걸 알기에, 그럼 또 상처입게 될까봐.
한편, 자신의 여자를 향해서 겁도 없이 총구를 들이댄 자들이 바로 얼마전 자신을 납치할 계획을 세웠다가 실패했던 라이벌 가문인 리家와 진家라는걸 알게된 산은 철저하게 두 가문을 옥죄기 시작한다. 손대고 있는 모든 사업의 자금을 막아버린것이다. 그래서 결국은 자신의 앞에 두발로 용서를 구하러 오게끔. 덕분에 직접 그 일을 지시한 수장들의 핏줄이 제3자의 압력에 의해 영원히 가문에서 제명되는 모욕을 받게된다.
이즈음 계속해서 하빈의 과거를 알아보라는 산의 명령대로 그녀에 대한 정보를 추적하던 산의 비서 리강은 마침내 그녀가 대한민국에서 파견된 스파이라는걸 알게된다. 산에게 충성스런 리강은 스파이인 하빈이 불순한 목적을 갖고 산에게 접근을했거나, 그렇지 않다해도 그녀가 산 곁에 있어서 좋을것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자신의 독단으로 그녀를 비행기표와 함께 공항에 내려준다.
하빈은 공항에 내려선 순간 평소와 다르게 머뭇거린다. 이렇게 떠나는것이 깔끔하고 오히려 잘 된 일이라 생각해야 했지만, 그가 있는 이곳을 떠나기가 싫어졌다. 그렇게 방심하는 사이 그녀는 남자들에게 붙잡히고 말았고, 납치를 당했다. 납치야 이런일을 하는 그녀로서는 드문일도 아니었지만, 중간에 또 납치를 당한경우는 처음이었다. 이번엔 제대로 걸렸다. 바로 그녀가 3개월전 감옥에 집어 넣었던 무기밀매상이 탈출을 했고 그녀에게 앙심을 품고 납치를 해간 것이었다.
리강의 독단에의해 하빈이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을때 불같이 폭발했던 산은, 공항에서 짓밟힌 그녀의 여권과 항공권을 찾아냈을때 차갑게 식어가기 시작했다. 뒤이어 세진을 통해 하빈이 잔인한 무기밀매상에 의해 납치되었음을 알게되자 정보력을 총 동원해 행적을 뒤지기 시작한다. 그때서야 산은 유일하게 하빈의 과거를 알고있는 특무국의 국장을 만나게 되고, 직접 만나본 산이 하빈을 진심으로 사랑하고있음을 확인한 국장이 그녀의 얘기를 시작한다. 불행하고 끔찍한 그녀의 과거를....왜 그녀가 그렇게 밤마다 악몽을 꾸는지, 왜 그녀가 세상에서 유일하게 바라는 것이 죽음이 됬는지.....
드디어 그녀의 위치가 파악된 산이 급하게 이동하는 도중 중국 대륙을 울리는 커다란 지진이 발생하고, 그 위치는 바로 지진의 진앙지. 쓰촨성.
바로 그녀가 납치되어 있는곳이었다.....
음....김경미님의 <화잠>을 얼마전에 읽었을때만 해도 기대가 아주 컸던 작품이다.
게다가 여주의 <대한민국 특무국 비밀 요원>이라는 직업도 내가 이책에 확~하고 흥미를 느꼈던 요인중의 하나였건만...
늘 그렇듯이 김경미님 여주들의 특징인 말없고, 차갑고, 약간은 몽환적이지만 <강한 여자>일거라 생각했다. 헌데....여태까지 나왔던 모든 여주들의 몽환과 무료함과 답답함을 한데 뭉친듯한 최고봉을 보여주시는 여주때문에 실망이 컸다.
대한민국 특무국의 비밀 요원 하빈의 주된 활동 방법이 '미인계'라니, 아무리 대의를 위한다고 해도 ....참....첩보물까지는 아니어도, 로설에 잘 짜여진 작전과 스릴이 첨가된 정도는 기대했었는데...이건 첩보물도 아니고,,...만난지 얼마나 됬다고 소유욕을 번뜩이며 무조건 여주만을 향하는 남주도 감정이입이 잘 안됬다.
첨부터 끝까지 일편단심인 소유욕 강한 남주를 좋아한다면 그거 하나로 참아낼 수 있을지도. 산의 하빈에 대한 사랑은 결혼후에 더 진해져서 그런 부분은 미소짓게 했으니까.
아, 물론 작가님도 후기에 첩보물이 아닌 휴가를 맞은 하빈의 심경변화와 산이라는 남자를 만나 치유되는 과정을 그렸다고 했지만, 그랬다면 책의 선전을 '첩보물'처럼 하면 안되는거 아닌가?
누구의 책임인가? 속은 나인가? 아님,<로코코>란 출판사의 책임인가?
웅~~~~~~ 내 기대값을 돌리도~~~~~~!!!!
"제가 고른 제 사람입니다. 할아버지가 끝까지 반대하셔도 그녀와 헤어지는 일은 없을 겁니다."
"할아버지는 어머니 때도 반대하셨죠. 하지만 아버지가 어머니와 헤어지셨던가요?"
"적어도 네 어머니는 창녀가 아니었다!"
"할아버지 손자인 저도 그녀만큼 많은 여자들을 만나고 다녔습니다. 그 여자들과 손만 잡고 말았을 것 같습니까? 숫자로 따진다면 제가 그녀보다 더 많을 겁니다."
"그건..... 남자와 여자가 같을 수야 없지."
*****그래, 뭐....류산이 .....멋있긴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