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산요수
김지서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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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정의 스릴 넘치는 위기를 이토록 몰입해서 침 삼키며 봐도 되는 걸까?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걸작, <안나 카레리나>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그리고 여기, 독보적인 불행함을 지닌 가족이 있습니다.

바로 김지서 작가님의 <요산요수>에 등장하는 박 씨네 가족이죠.


“돈도 못 벌어, 밤일도 못해, 산도 못 타.”는 남편 재수 씨.

산악회에서 “어린 창석이”와 놀아나는 아내 희선 씨.

종일 퍼질러 자다가 “어미 얼굴에 대고 방귀를 뿡” 뀌는 것이 일과인 아들 준희.

“운명의 소산” 혹은 “단순 피임의 실패” 정도로 여겨지는 딸 정희.


이들에게 가족이란 원수요, 짐덩어리요,

차라리 물건이었다면 하루빨리 당근마켓에 팔아치우는 게 나을 애물단지에 불과하죠.

헐값에라도 사갈 사람이 있다면 말이에요.


이렇듯 소생 가능성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박 씨네 가족.

언제나 인자한 미소와 함께 쪽집게 같은 솔루션을 제시하는 오은영 박사님도,

이들 가족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을까요?





그래요.

도저히 답이 보이지 않으니 차라리 이혼이 차선책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서로를 위해서라도 멀리 떼어놓는 게 나을 이 가족이,

“남한산성”을 중심으로 한데 모이기 시작합니다.


남편 재수 씨는 산악회 여성 회원들과 “멈출 줄 모르는 한 마리 야생마”가 되어보기 위해.

아내 희선 씨는 산악회에서 만난 불륜남과 “21년 만의 섹스”를 즐기기 위해.

아들 준희 씨는 호스트바에서 만난 “자기 딸 옷을 몰래 입고 나온” 여자와 데이트를 하기 위해.

딸 정희 씨는 자신을 “꽃뱀”으로 의심하는 남친과 “가성비” 좋은 모텔에 가기 위해.


...환장하겠네요, 정말.



과연 박 씨네 일가족의 운명은, 어떤 파국을 맞이할까요?






그전에 잠깐!

<요산요수>가 어떤 소설인지, 그 세 가지 매력 포인트를 한번 짚고 넘어가야겠죠?






1.

이 작가, 바이브가 대단하다!



불륜과 바람질을 들키는 때는 바로 당사자가 배우자한테 죄책감을 느낄 때이다.


20대의 남성이 50대 중년 여성의 심리를 속속들이 꿰뚫어볼 수 있을까요?

혹은 50대의 남성이 20대 여성의 삶을 세세하게 묘사할 수 있을까요?

그들을 옆에 앉혀놓은 채 그들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받아적는다고 해도 쉽지 않을 텐데요?


하지만 이토록 어려운 일을, 김지서 작가님은 해냅니다.


직접 50대 여성이 되어 인생의 환멸 끝에 불륜을 저지른 것처럼,

직접 20대 남성이 되어 대책없는 일탈을 감행해본 것처럼,

그야말로 “짬”이 있어야 느낄 수 있는 “바이브”를 김지서 작가님은 놀라울 정도로 생생하게 그려낸 것이죠.


인생의 쓴 맛과 쓰라린 맛을 골라 모아놓은 듯한, 한 편의 다큐멘터리 같은 소설.

여러분이 지금 당장 <요산요수>를 읽어야 하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2.

이 작가, 통찰력이 대단하다!



그렇다면 부부란 어떤 의미인가. 그건 그 사람이랑만 섹스해야 한다는 뜻이다. 영원히.


<요산요수> 속 인물들을 바라보는 김지서 작가님의 시선은 늘상 삐딱합니다.

그 어떤 긍정연민도 찾아볼 수 없죠.

때로는 삶의 민낯을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낸 탓에 불쾌함마저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좀처럼 <요산요수>를 내려놓을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책에서 한 순간도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며,

이토록 지질한 인물들을 보며 한껏 키득거리게 만드는 힘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요?


그것은 바로 김지서 작가님의 통찰력이 빛나고 있기 때문이죠.


가족이라는 환상, 부부라는 허울, 부모자식이라는 빈 껍데기.

그리고 해부실의 메스처럼 그 너머의 실체를 예리하게 파헤치는 김지서 작가님의 통찰력.


따라서 <요산요수>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혹은 알면서도 모른 척했던,

삶의 진실들을 잔인할 정도로 익살맞게 풍자하고 있습니다.






3.

이 작가, 촌철살인이 대단하다!



그리하여 산은 우리네 인생과도 같다. 뱀이 나오면 지그재그로.


남다른 바이브와 뛰어난 통찰력을 지녔어도 그걸 글로 전달하는 건 별개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김지서 작가님이 펼쳐보이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문장들은, 소설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질 않죠.

마치 명치에 꽂힌 주먹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진짜 주먹과 차이가 있다면 억 소리 대신 웃음이 피식피식 새어나온다는 거죠.


왜 우리는 불행이 다가오는 걸 빤히 보고도 피하지 않는 걸까요?

왜 우리는 최악의 상황을 피한답시고 차악을 택하고 마는 걸까요?

왜 우리는 매번 욕심에 눈이 멀어 어리석은 선택을 반복하는 걸까요?


이와 같은 의문 앞에서 김지서 작가는 불필요한 말을 늘어놓지 않습니다.

그저 박 씨네 일가족의 촌극을 보여주며 연이은 촌철살인을 날릴 뿐이죠.


“어쩜 이렇게 세상 남자들은 하나같이 전부 다 남자 같고

세상 여자들은 하나같이 전부 다 여자 같을까?”








오은영 박사님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을 보고 있으면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이 느껴집니다.


결혼생활에 충실하지 못한 부부나 자식에게 무책임한 부모를 지켜볼 때의 분노.

그리고 내 가족이 저렇게 불행한 가족이 아니라는 점에서 비롯된 안도감.


하지만 우리는 마냥 안심할 수 있을까요?

그들과 달리, 우리의 가족은 정말 괜찮은 걸까요?


그저 소설 속 대환장 파티를 지켜보며 낄낄거리다가도,

마지막 장에 이르러서는 “어쩌면 우리 가족도?”라는 의문과 함께 섬찟해지는 소설.



오은영 박사님조차도 해결하지 못할 희대의 가족 블랙 코미디.

김지서 작가님의 <요산요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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