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발된 여자

케이스릴러 시즌 3

김영주 미스터리 스릴


아마추어 연극배우에게 찾아온 은밀한 유혹






현관문이 열려 있었다. 문 앞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안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은 없었다. 발을 들이는데 섬뜩한 기운이 등줄기를 훑었다. 제일 먼저 바닥 위로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내 옷가지들이 보였다. 그것들 외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침대, 냉장고, 식탁 같은 집기에 가려져 있다가 드러난 빈 벽은 곰팡이 얼룩이 올라와 너저분해 보였다.


“뭐야, 아가씨 아직 안 갔어?”


소리에 놀라 돌아서자 나이 든 집주인이 걸레와 빗자루를 가지고 들어서는 게 보였다. 당황한 나머지 목소리가 곧바로 나오지 않아 숨을 한 번 고른 후에 겨우 물었다.


“이거… 어떻게 된 거예요?”


“동생이 말 안 했어요? 두 달 전부터 누나는 이제 여기 안 살아서 정리해야 한다고 그래서 뭔 일 있나 했는데.



연극배우였지만 제대로 된 배역 한번 맡아보지 못한 수완은

무대보다 매표소에 머무는 시간이 더 많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결혼을 약속한 동거남 은호는

수완의 집 보증금을 가지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아르바이트로 하던 필라테스 강사 일마저 잘리면서

수완은 결국 가진 것을 모두 잃고 맙니다.




“괜찮다면 다음 일이 결정될 때까지 여기서 나와 함께 지내 줄래요? 물론 그동안 수완 씨에게 필요한 것들은 모두 제공할게요. 원하는 금액이나 기간을 제시해도 좋고요.”


뜻밖이었지만 지금 내 상황에선 상당히 유혹적인 제안이었다. 그렇기에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그녀가 원한다면 굳이 이런 조건을 내걸지 않아도 아는 동생으로 지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만약 그녀가 정말 나를 순수하게 동정했다면 오늘의 호의만으로도 충분할 것이었다.

문득 예전에 몇 번 일면식도 없는 신부의 결혼식장에 하객 아르바이트로 참석하고 일당을 받은 경험이 떠올랐다. 요즘 인플루언서들 중에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유령 팔로워를 사는 사람들도 많다고 들었다. 그녀 역시 이미 많은 주부 팬들을 보유한 인플루언서였다. 어쩌면 이런 일이 그녀에게는 익숙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다시 묘한 반감이 들었다.


“참 간편하네요.”


살짝 비꼬는 내 말투에 그녀가 웃었다.


“이건 조건이 있으니까요. 내가 부탁하는 거잖아요. 수완 씨에게.”

“설마… 제가 남경 씨 역할이라도 해야 하는 건가요?”

“안 되나요?”

“그건 말이 안 되죠. 혹시나 남경 씨를 아는 사람들이 본다면…….”

“그런 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남경이를 기억하는 사람은 이제 나밖에 없으니까.

적어도 내가 아는 한은 그래요.”


그녀가 원하는 것이 뭔지 이제 알았다.

내가 그리운 그녀의 여동생 대역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때 수완에게 스포츠센터 VIP 고객이었던 경진이 다가옵니다.

그리고 수완을 안아주면서 위로와 함께 자신의 과거를 들려주는데요.

경진의 과거는 현재 수완의 처지보다 몇 배는 지독하고 끔찍했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줄로만 알았던 그녀에게도

이런 고통스러운 과거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면서

수완은 경진에게 동질감을 느낍니다.


그때, 경진이 수완에게 은밀한 제안을 해오는데요.

바로 자신이 과거에 잃어버린 동생 남경이 되어달라는 제안!




저 집의 주인이 된다. 동시에 저 근사한 여자의 동생이 된다.


‘관객을 믿게 하려면 자신이 먼저 믿어야 해.’


아주 오래전 극단 워크숍에서 연출가에게 들었던 충고가 생각났다.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모호하게만 느껴졌던 그 말은 경진의 마지막 말과도 통하는 데가 있는 것 같았다.


‘누가 그랬지? 인생에는 반드시 세 번의 기회가 찾아온다고. 기대를 버려. 그딴 말은 애초에 기회가 주어진 인간들이나 지껄이는 거지. 너하고는 상관없는 일이거든.’


막다른 길에 처할 때마다 저주처럼 떠오르는 선배의 말도 다시 스쳐갔다.


아니요, 내게는 기회가 왔어요. 선배.


나는 저 집의 주인이 된다. 동시에 저 근사한 여자의 동생이 된다. 나는 허남경이 된다.

몇 번이고 되뇌고 난 후 베란다로 통하는 유리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아직 정체를 알 수 없는 설렘으로 생기를 띈 얼굴은 낯설게 보였지만, 입고 있는 옷은 아까보다 잘 어울려 보였다. 그리고 알아차렸다. 이것이 내게 온 진짜 기회라는 걸.



수완은 기꺼이 경진의 동생 역할에 몰입하기로 마음 먹습니다.

스스로를 증발시키고 다시 태어나기로 결심한 수완


수완은 완벽한 남경이 되기 위해 독일어를 배우고 습관을 몸에 익힙니다.

외모와 옷 스타일까지 완벽하게 남경이 되었을 때,


수완은 깨닫게 됩니다.

자신은 지금까지 경진이 연출한 연극무대에 선 배우에 불과했다는 것을!

이 연극은 어마어마한 유산을 상속받기 위한 그녀의 기획극이었단 것을!

그리고 이 연극의 정해진 결말이 바로 자기 자신의 죽음이라는 것을.




이 연극에서 빠져나가야 한다!

내 삶을 완전히 잠식하려는 그녀의 손에서 탈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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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스릴러 시즌 3

김영주 미스터리 스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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