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카의 여행
헤더 모리스 지음, 김은영 옮김 / 북로드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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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카가 죽음의 수용소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를 떠나며

마지막으로 본 것은 ‘노동이 그대를 자유롭게게 하리라’라는 문구가 적힌 쇠 표지판이였을 것이다. 그녀가 보르쿠타에 있는 소련 굴라크에 도착해 처음 본 것은‘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에서 노동은 영광과 존귀함이다’ 라는 표지판이었을 것이다. 또 다른 표지판은 ‘강철 주먹으로 우리는 인류를 행복으로 이끌 것이다’라고 선언한다. 가학적 아이러니는 나치 독일과 스탈린의 소련이 가진 많은 공통점 가운데 하나 였다. 

 

 

체코슬로바키아 바르데요프 출신인 ‘실카 클라인’.

그녀는 열여섯살의 나이에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보내졌고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에서의 3년간의 수감 끝에 살아남았다.

그리고 소련에 의해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는 해방되었지만,

수감 생활중 나치에 협조 했다는 이유로 다시 북극권 한계선 안에 있는

지구상에서 가장 추운곳 ‘보르쿠타’ 에서 10년간 수감되었다.

 

나는 운이 좋게도 소련의 대숙청과 강제 노동 수용소의 실상을 쓴

‘알렉산드로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를 읽던 중 이 책을 만나게 되어,

‘굴라크’에 대한 지식이 조금 있었던 편이라 ‘실카’의 현실에 좀 더 몰입할 수 있었다.

 

열여섯살의 어린 소녀가 나치와 소련에 의해 수용소에서 수감이 되었건 십삼년간의 시간.

독일은 유대인이란 이유로, 소련은 비르케나우 수용소 25구역에서

그녀가 맡았던 역할과 ‘적과의 동침’을 이유로 ‘나치 공모 협의’라는 죄로 그녀를 수감했다.

 

사실 실카에 대한 증언은 엇갈린다고 한다.

그녀가 살아남기 위해 나쁜 짓을 했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같은 마을 출신이라는

것을 알거나 굶어 죽을 지경에 이르면 먹을 것을 몰래 가져다 주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수용소 에서 함께 생활한 사람들의 증언을 무시할 수는 없고,

좋은것만을보기 위해 다른쪽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꼭 집어 보아야 할 것은, 그녀는 겨우 16살의 어린 나이였고

그녀 역시 친위대 장교의 성적 노리개로 전락하며,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였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도 어느 쪽의 편도 들 수 없기에 그녀를 협박하는 ‘한나’와

그런 그녀를 이해하는 같은 막사의 동료로 표현하고 있는 듯 하다.

 

“가스실, 누구나 다 가는, 살아서 들어갔다 나올 때는 연기가 되어

굴뚝으로 나오죠. 저는, 저는 그런 사람들을 매일 봤어요,

매일 매일. 그것은 제 미래였어요, 말을 듣지 않으면…….”

-P309

 

아뭏튼 그녀는 나치의 수용소에서 소련의 수용소로 보내졌다.

그곳에서도 강간과 폭행을 당하며 목숨을 연명하는 생활을 해야만 했다.

놀라운 것은 그녀는 그래도 살아남기 위해 모든것을 했고, 그 와중에 주위를 보살폈다.

 

‘보르쿠타’에서의 삶은 롤러코스트였다.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나락으로 떨어지고,

그와중에 한줄기 동아줄을 잡아내며 간신히 살아남는다.

 

이 책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이기는 하지만, 실제 인물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쓰여져 있기에

현실감이 있고, 책을 덮으면 다른 소설에서 느낄 수 없는

먹먹함을 느끼게 되고, 인간의 잔혹함과 나약함에 울컥하기도 한다.

 

소설의 에필로그가 다음에 ‘실카를 찾아서’, ‘실카의 삶’,

‘보르쿠타, 하얀지옥 - 오언 매슈스의 후기’라는 글이 있다.

<실카의 여행>을 온전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지막까지 꼭 읽어야 한다.

소설의 연결 고리를 다시금 확실하게 하고,

시대적 상황을 좀더 이해하는데 필요하기 때문이다.

음.. 그렇다고 먼저 읽지는 말자. <실카의 여행>의 본래의 의미를 떨어 뜨릴 수도 있다.

 

전편 <아우슈비츠의 문신가>를 읽어보지 못한 독자들도 읽는데 무리가 없도록

책의 중간중간에 전편의 내용을 기술해 놓아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하는 배려를 해놓았다.

 

실제로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많은 유대인들이 수치스러움과 많은 고통속에서 산다고 한다.

먼저 간 자들에 대한 죄스러움일수도 있을테고,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의 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실카’와 같은 경우도 많은 것이고….

 

이 책은 이런 역사를 담고있기에 꼭 존재해야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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