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고코로
누마타 마호카루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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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마음에나 살인 의식이 잠들어 있으면서

불려 나갈 조건이 갖추어지기를 내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아버지의 성역과도 같은 서재의 옷장속에서 발견된 상자.

그 속에는 기혼 여성이 들 법한 낡은 흰 핸드백과 어머니의 이름인

'미사코'라고 쓰여진 종이속의 한 묶음의 머리카락,

그리고 4권의 노트가 있었다.

노트에 쓰여진 혼란스러운 내용.

어릴적 어머니가 바뀐것 같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료스케는

아버지가 쓴 살인 보고서라고 생각하면 읽어 나간다.





4권의 노트에 쓰여진 살인 보고서.

작가는 독자의 생각을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이끌어 나가며 독자의 감정까지

쥐락펴락 한다. 이런 류의 미스터리 책을 읽다보면, 작가가 숨겨놓은 트릭이나

마지막 반전을 살짝이나마 눈치를 챌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작가의 이끌림에 반항의 의식 없이 이끌려 나갈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노트에 쓰여진 살인 보고서는 잔인하다.

의식의 안식처가 없는 한 인간의 행위는 잔인하기도 하지만, 이런 살인 행위가

차갑게 느껴지는, 아니 아무런 감정없이 행해지고 있다는 생각에 두려움 마저

느끼게 한다.


분노를 느꼈는지는 잘 모르겠다. 만약 느꼈다 해도 그것은

아버지와 다른 누군가에게라기보다 오히려 자신에게 향하는

분노였던 것 같다.

아무것도 모르고, 알려고 하지 않고, 태평하게 지금까지

살아온 것에 대한 분노, 자신만이 어떤 대가도 치르지 않았다는 분노.

-P242


페이지를 더할 수록 아무런 죄값을 치루지 않는 살인자의 모습과 주위의 행동에

살짝은 의아함과 일본스럽다는 느낌을 갖게 되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울컥해지는 감정이 드는 조금은 상반된 희안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몇 줄 안되는 간단한 문장으로 한 사람이 인생을 어떻게 살아 왔는지,

어떤 고통을 겪었었는지 느끼게 해주는 부분도 있고,

사람은 변하지 않음을 보여주기 위해 조금 과장된 내용이라고

느껴지는 부분도 있지만, 재미있게 읽었다.

정말 책의 두께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한번 잡으면 끝을 봐야 하는,

남아 있는 페이지가 너무나도 아쉬운, 한페이지 한페이지를 읽으면서

'료스케'의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그런 책이었다.

대단한 미스터리도 아니고, 대단한 명작이라고 느껴지는 것은 아니지만

뭔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유리고코로>.

깊은 여운이 남아 기존 미스터리와는 다른 분명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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