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향인 - 발췌 지만지 고전선집 647
중리허 지음, 고운선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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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으로 읽은 타이완 작품 원향인’. 우리가 흔히 대만이라고 부르는 중화권 국가 타이완은 내가 교환학생을 목표로 할 정도로 특히 관심이 많다. 꽤 오래전부터 대만 드라마를 즐겨 봐왔고 대만 연예인에 눈을 들인 까닭이다. 내가 알고 있는 대만이란, 중국보다 더 깔끔하고 풍요롭고 여유로운 선진국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중국에속하는 같은 중화권 국가이지만 생활 모습이나 사람들 등을 보면 우리나라와 더 유사한 것 같았다. 항상 대만 연예인들은 예쁘고 멋있고 화려했고 드라마 속에는 낭만과 자유로움이 항상 담겨있어서 대만이 참 살기 좋고 평화로운 나라인 줄 알았는데 )(물론 이것이 현재의 모습이기는 하지만) 기나긴 이민의 역사와 일제 식민지의 아픔을 가진, 그저 속편한 나라가 아니었다는 걸 몰랐었다.

비록 이 작품속의 배경이 모두 타이완은 아니었지만, 작가가 타이완 사람 중 한명으로서 타이완인이 느끼는 여러 감정들을 작품 속에서 잘 그려내고 있다. 이 책은 원향인, 협죽도, 도망 3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원향인은 굉장히 짧은 분량에 속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를 책 제목으로 정한 이유는 아마 작가 중리허가 가장 말하고 싶었던 주제, 즉 타이완인의 정체성에 대해 가장 가까이 다루고 있어서가 아닌가 싶다.

작가 중리허는 타이완이 일제 치하에 있을 때 태어나서 자라는 가운데에서도 많은 다양한 작품들을 창작해왔고 병으로 몸져 누워있는 상황에서도 이런 작가 정신을 버리지 않았다. 이 작품도 작가가 생을 마감하기 바로 그 전해에 창작되었다고 한다. 중리허는 일본의 식민 통치로 인해 일분어로 사고하고 작품 활동을 하는 세대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상황과 처지에 상관없이 자신과 국가의 정체성과 같은 심도 있는 고민을 하고 작품들을 써내려갔다는 게 정말 대단하다.

문학은 그 시대상황을 반영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는데, 특히 이 작품은 장가 중리허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서 타이완의 과거 역사를 이해하면 작품 속에 잘 녹아들 수 있다. 원향인에 나오는 주인공은 할머니와 아버지, 둘째 형을 통해서 알게 된 원향’, 즉 중국 대륙에 대한 막연한 환상과 동경 등을 품게 된다. 하지만 이런 긍정적인 측면만 품고 있지는 않다. ‘그들의 손이 닿으면 깨진 물건은 금세 좋아졌다(33p)’는 부분이나, 열심히 일하는 쟁기 주조공들에게처럼 원향 사람을 긍정적으로 품고 있는 부분도 있지만, 개고기를 좋아하여 온 망르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개를 잔인하게 때려잡는 장면이나 원향인들을 염치 있는 사람들은 아니었다(32p)’라고 평가하는 부분을 보면 부정적으로 원향인을 인식하는 장면도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글의 끝에서 주인공은 그 중국 대륙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에 마지못해 둘째 형을 뒤따라 타이완을 결국 떠나게 되지만 그 동경과 환상은 실망이라는 감정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협죽도에서는 베이징을 대표하는, 혹은 중국을 대표하는 주택 사합원의 모습이 잘 묘사되고 있다. 작가가 타이완이 아닌 중국의 전통가옥 사합원을 제재로 하여 그 곳 인물들의 부정적인 모습을 묘사하는 것은 아마 작가가 타이완을 떠나 베이징으로 갔을 때 느낀 원향에 대한 상실감으로 인한 것이었을 것이다. 당시 하층 소시민들의 물질적인 빈곤과, 인간을 인간답게 해 주는 이성과 도덕을 상실한 채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은 작가가 어릴 적 마을에서 본 힘차고 빛나는 원향인의 모습이 아니었다. 따라서 원향인에서 원향이라는 단어는 대만 사람들에게 있어 다층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근원, 원류, 본질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대만 사람들이 중국 대륙에 대해 가지고 있는 혈연적문화적 유대감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글자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대륙에 대한 유대감과 자부심뿐만 아니라 실망경멸이라는 부정적인 정서가 들어있기도 하다. 막연한 애환이나 그리움 때문에 원향을 찾아가지만 직접 겪어 본 원향은 자신이 꿈꾸던 곳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안타까움도 담겨있는 것이다.

어쨌든 책 안에서 가장 스토리가 길었던 협죽도는 빈곤과 삶의 무게에 찌들린 소시민들이 겪는 외면적내면적 갈등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척박한 자갈과 그늘진 잡초와 같은 곳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햇빛의 따스함을 맛볼 수 없었다. 하루하루를 그저 쥐꼬리만 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마지못해 살았고 이런 그들에게는 도덕과 법률이란 참으로 우스운 것이었다.

작품에 등장하는 노부인은 정신상태가 이상해져 사합원 내에서 이웃 사람과 마주칠 때마다 곧장 쫓아가 당신은 어째서 나를 거들떠보지 않나, 우리는 모두 사이좋은 이웃이잖아(76p)’ 라고 하소연한다. 사합원이라는 공동 생활공간 안에서 그들은 함께 살아가지만 공동의식을 갖기는커녕 남의 집 문 앞에다 우리 집 똥물을 냅다 버리고 계모가 전처의 자식을 학대하여 굶겨 죽이고 워워터우 두 개 때문에 어미와 아들 사이가 냉혹해지고 형제가 서로 다투는 일들이 일어난다. 이러한 모습들이 보이는 중국 대륙에게 회환을 느낀 나머지 작가는 다시 중일전쟁이 끝나자마자 타이완으로 영구 귀국을 했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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