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위화 지음, 백원담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인생이라는 작품의 작가는 책 서문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사람은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위해 살아가지, 그 이외의 어떤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라고. 이 작품은 한바탕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주인공 푸구이의 이야기를 통해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넌지시 제시한다. 그 답은 방금 말한 대로 그저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란 것이다.

소설 속 는 어느 한 농촌마을에 민요를 수집하는 일을 하러 왔다가, 푸구이라는 노인을 만나서 그의 기구한 인생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렇게 작품은 전체적으로 푸구이가 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푸구이는 젊었을 때부터 조상이 대대로 물려진 유산덕분에 비교적 풍요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늘 부잣집 도련님들은 철이 없는 것처럼, 그는 결혼을 하고 나서도 여전히 계집질이나 도박을 일삼았으며, 아이를 밴 아내까지도 구박하기 일쑤였다. 그런 그가 도박꾼 룽얼에게 자기 집안 전 재산을 빼앗기게 되면서 그의 삶은 180도 달라지게된다. 재산 탕진으로 인한 충격으로 아버지가 먼저 세상을 떠나서 그는 어머니와 아내와 아들을 부양하기 위해 눈코 뜰 새 없이 일을 해야 했다. 그러다 몸이 약해진 어머니를 위해 약을 구하러 가다 국민당군들에게 잡혔는데 겨우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오니, 아내가 낳은 딸 펑샤는 열병을 앓다 그만 농아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둘째로 낳은 아들 유칭은 헌혈을 하다가 어처구니없게 목숨을 잃고, 딸 펑샤는 완얼시라는 사위를 겨우 얻어 혼례를 치렀으나 아이를 낳다가 사망한다. 뒤이어 자신과 고된 나날을 늘 함께 해왔던 아내 자전도 잃게 되고, 사위 얼시도 공사장에서 일하던 도중 시멘트에 깔려 목숨을 잃었으며, 마지막에는 딸이 남긴 아들이자 자신의 조카인 쿠건도 콩을 너무 많이 먹어 죽게 된다.

이렇게 그는 자신의 곁에 있던 소중한 사람들을 단 한명도 빠지지 않고 잃게 되고, 결국 끝에는 자기 자신만 덩그러니 남아 이렇게 자신의 인생이야기를 남에게 들려준다. 그의 삶은 객관적으로 봤을 때 더 이상 비극적일 수 없을 만큼 가련했다. 이토록 인생이 밑을 달리기도 힘든데 그는 이러한 삶을 고스란히 수용하여 자랑스럽게 여기기까지 한다. 자기가 살아온 날들에 애정을 품고 있는 듯 그는 과거를 회상하기 좋아했고 자기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렇게 고생스럽고 가난한 생활을 한 것을 운명이라 여기며, 아직까지 홀로 살아남아있는 자신을 뿌듯하게 여기기도 했다. 이것은 아마 작가 위화가 말하고자 했던 그 인생과 일치하는 것이다. 비록 삶에 고난과 고통이 있어도 좌절하기보다는 끈질긴 생명력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저 살아있기에 묵묵히 앞을 보고 살아가는 것……

상처와 고통을 끌어안고 묵묵히 소와 밭을 갈며 노인이 된 푸구이의 인생도 작가의 말대로라면 의미가 있다고 할 수도 있다. 작가는 서문에서 이 작품의 원제 살아간다는 것(活着)‘은 매우 힘이 넘치는 말이며, 그 힘은 인내, 즉 생명이 우리에게 부여한 책임과 현실이 우리에게 준 행복과 고통, 무료함과 평범함을 견뎌내는 데서 나온다고 밝혔다. 하지만 나는 인생을 이보다 좀 더 적극적인 것으로 여기고 싶다. 자신의 삶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일들을 받아들이고 인내하고 견뎌내는 것과 같은 수동적인 자세들보다는, 자신이 자기 삶의 주체자로서 인생을 좀 더 가치 있게 살려고 노력하고 개척하고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능동적인 자세를 가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푸구이는 이미 머리가 하얗게 샌 노인이 되었지만, 악덕했던 그의 젊은 시절을 보았을 때 그는 분면 개과천선한 케이스이다. 어떻게 보면 자신의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세상을 떠나게 된 것도 사실 따지고 보면 그의 잘못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살아남은 푸구이를 우리는 구차한 삶에 대한 집착을 가진 사람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는데, 오히려 이렇게 살아있는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푸구이가 조금은 얄밉기도 하다.

이 책의 제목인 인생이라는 것에 대해 깊게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푸구이의 기구한 인생이야기를 읽어나가면서 (비록 그가 가상인물이긴 하지만) 나는 지금의 내 인생, 적어도 푸구이보다는 행복한 내 인생에 감사하게 되었다. 때로는 죽음보다 더한 고통과 고난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생명은 그 자체로서 소중한 것이기에, 살아있다는 것은 하나의 특권일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이렇게 살아있는 우리 자신과 우리 곁에 있는 이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하며, 인생을 좀 더 가치 있게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또 한 번 거론하고 싶은 것은 바로 가족의 소중함과 사랑이다. 푸구이와 그의 가족들은 힘겨운 인생을 겪었지만 그나마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들 간의 사랑 때문이 아닌가 한다. 푸구이의 아내 자전는 남편이 어떠한 상황 앞에 놓여있더라도 항상 그를 바라보고 함께 곁에 있어주었다. 철없는 남편에게 무시당하고 맞아가면서도 남편을 사랑하고, 다음 생에서도 함께 하고 싶다고도 말한다. 펑샤와 얼시도 그들 서로의 단점을 감싸주며 예쁘게 사랑했고, 펑샤가 아이를 낳을 때 목숨이 위협되자, 자식과 부인 둘 중에 선택하라는 의사의 말에 망설임 없이 아내를 택한 얼시에게는 정말 감동받았다. 이들의 사랑은 요즘 같은 세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랑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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