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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집
라오서 지음, 신진호 옮김 / 지만지고전천줄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라오허의 <찻집>은 아마도 내가 처음 읽은 중국 희곡 작품일 것이다. 라오허라는 작가는 학기 초 토론 작품인 ‘뱀 선생’을 통해 처음 알게 되어, 이후 <낙타샹즈>라는 그의 작품을 재밌게 읽으면서 이 작가의 이름을 내 머릿속에 새겨두게 되었다. 그래서 이 <찻집>이라는 책을 보았을 때 ‘라오허’작가의 이름이 쓰여 있는 것을 보고는 내가 처음 보는 희곡이지만 전혀 부담감 없이 책을 읽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이 작품은 생각했던 대로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작가 라오허의 희곡 창작 시기는 신중국 수립 이전과, 신중국 수립 이후 문화대혁명 시기를 포함하고 있다. 내가 작가 라오허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풍자수법이 신랄하고, 이야기가 읽기도 쉽고 재밌기도 하지만, 이렇게 그의 생애가 중국의 다양한 역사적 시기에 걸쳐져서 그만큼 다양한 역사적 상황을 작품 속에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찻집>은 청나라 말기와 중화민국 초기 및 항일 전쟁 이후 등의 세 역사 시기를 배경으로 하여 각각 1막씩 구성되어 있다. 글의 주인공 왕리파는 베이징에서 찻집을 운영하는 주인이다. 이 찻집은 처음부터 끝까지 작품의 주요 공간적 배경이 되는데, 각기 각층의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일종의 광장 같은 곳이었다. 시간이 흘러 시대적 상황이 조금씩 변하면서 찻집도 조금씩 변해가고 왕리파도 같이 늙어간다. 그의 자식과 손자 세대에 걸칠 만큼 세월이 흐르지만 좀 더 나은 인생을 살아보려고 발버둥 치던 작품 속 모든 등장인물들은, 변하는 역사와 시대의 압박에 견디지 못하고 각자 쓴 결말을 맞게 된다.
희곡이라는 것이 원래 연극 상연을 위한 시나리오라서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나오는데, 처음에 책을 읽기 전에 소개된 등장인물들이 장장 5페이지에 걸칠 정도로 많았다. 이 많은 등장인물들을 어찌 다 기억하고 책을 읽어나갈까 걱정을 했지만 이야기 진행 순서대로 새 등장인물들이 등장해서 책을 읽는 데에는 무리가 없었다. 또한 희곡은 이렇게 주로 등장인물들의 대사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그것만으로도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바가 잘 드러날 수 있을지, 너무 많은 인물들의 등장으로 내용이 산만해지지 않을까 걱정을 했지만 이 책은 라오허의 대표작답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각자의 개성이 두드러지는 인물들을 통해 작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효과적으로 잘 나타낸 것 같다.
이 작품에서는 희극성과 과장법이 특히 두드러지는데, 무대 상연을 전제로 하여 관객들의 웃음을 유발하게 하는 부분은 특히 3막에 자주 나온다. 101쪽에 전기세 수납원과 왕리파와의 대화 장면, 107쪽, 108쪽의 대화 장면 등이 대표적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이 책은 중국 근현대사 50년의 급변하는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중국의 역사적 배경을 알고 작품을 읽으면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작품에서 마지막에 자살을 한 왕리파는 찻집을 꾸려나가면서 이익을 챙기지만 본성이 악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의 가게 안에는 ‘나랏일은 논하지 말 것’이라는 종이가 항상 붙어있다. 많은 사람들이 와서 이것저것 이야기를 꽃피우는 게 중에는 당연히 정치적인 색채를 띤 발언도 있었을 것이다. 당시 시대적 상황이 매우 뒤숭숭했기 때문에 말 한마디 실수로도 얼마든지 피해를 당할 수 있었다. 가게에 걸려있는 종이는 막이 바뀌고 시대적 상황이 바뀔 때 마다 글씨가 더 많이, 더 크게 바뀐다. 아마도 정치적인 발언으로 인해 소동이나 사고가 일어나서 자신의 가게에 피해주는 것을 우려하여 왕리파가 붙여놓은 것이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왕리파는 자기 나름대로 찻집을 개량하며 살아가고자 노력했지만 결국은 죽음을 맞이했고, 재산을 날린 친중이나 애국자인 창대인도 마찬가지였다.
세월이 흘러 등장인물들이 낳은 자식들은 자라서 자신의 부모가 했던 일들을 고스란히 물려받는다. 왕리파의 아들은 찻집에서 일을 하고, 나머지 자식들도 부모님의 가업을 그대로 물려받았는데, 그뿐만 아니라 그들의 인성마저도 그대로 물려받은 듯 했다. 이는 아마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변하지만 여러 세대를 거친 그들 역시도 역사적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이 책의 마지막에 있는 부록 편에는 몇 마디의 노래를 부르면서 동시에 간략하게 글의 내용을 소개하는 부분이 나와 있는데, 원래는 이러한 부분이 막과 막 사이에서 상연된다고 한다. 하지만 연극이 아닌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는 이 부록편이 첫 부분에 나오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