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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의 시작 ㅣ 오늘의 젊은 작가 6
서유미 지음 / 민음사 / 2015년 1월
평점 :
아무 생각 없이 미용실을 가는 길에 <끝과 시작>을 집어 들었다. 시원한 표지 그림과 적당한 두께감이 가벼운 외출에 동행하기 좋아서
그랬을 거다. 가을에서 겨울의 기미가 언뜻 보이는 날에, 미용실에 앉아 머리를 맡기고 내리 3시간 동안 그렇게 영무와 여진, 소정의 세계로
가라앉아 있었다.
환자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었다. 망자보다 삶 쪽에 가까이 있지만 병원 밖의 사람들보다 죽음에 다가서 있고, 이미 죽은 자들보다
죽음을 강하게 느끼면서 건강하게 활보하는 자들보다 삶에 대한 열망이 더 강했다. 그래서 병원은 무덤으로 가는 정류장인 동시에 삶을 향한 갈망이
치열하게 숨 쉬는 곳이다. 병실에서 바라본 4월의 생명력은 더 빛났다. p.10
삶과 죽음 중에서, 죽음을 먼저 배웠던 영무의 세계는 아무도 없는 실내 수영장에 갇힌 물처럼 고요하다. 행운을 감지하기보다 불행을 더 많이 목격해야 했던 영무는 무던하고 또 말을 아끼는 사람이다. 전 직장 상사가 자신도 모르게 추천해놓은 우편취급국 국장 일을 마다하지 않고, 주어진 일만 말없이 해내는 업무에 만족하는 그런 사람.
적요한 그의 마음에 파장을 일으킨 건
정반대되는 사람, 여진이었다. 그녀가 잡지사 일을 그만두고 난데없이 미용실 원장으로 자리를 잡은 건, 결혼 상대로 영무를 고른 이유와도 비슷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도 자신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한 채 열어놓은 문으로 느닷없이 불어온 바람에 몸을 맡기는 여진.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는
어떤 사랑의 끝이 다른 사랑의 시작과 맞물리는 걸 생각보다 자주 목격한다.
영무는 자신의 삶이나
하루가 묘지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일 자체의 유사성과 상관없이 태도나 심정이 그랬다. 이른 아침 황량한 공동묘지에 가서 밤새 쌓인 쓰레기와
낙엽을 치우고 상석 위로 쓸어 낸다. 하루 종일 기다린 빗자루를 든 채 묘지 안을 유령처럼 맴돈다. 묘지 안에서도 가난한 자와 부자는 자리와
묘비, 상석의 크기와 재질로 구별된다. 그러나 부질없고 쓸쓸하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날이 밝으면 가족이나 친구들의 방문이 띄엄띄엄 이어진다.
그들은 묘비 앞에서 절을 하고 술을 붓고 울면서 서로 끌어안는다. 그리고 사소한 일로 말다툼하거나 고성을 지르며 싸우기도 한다. 영무는 그들의
행태를 묵묵히, 때론 참담한 심정으로 구경한다. 해가 지고 문을 닫으면 영무는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이 놓고 간 꽃다발과 음식, 술병을 천천히
수거했다. 꽃다발은 되팔고 죽은 사람에게 바쳐진 음식 중에서 먹을 만한 것을 골라 배를 채웠다. 그들이 놓고 간 음식은 식거나 굳었고 대체로
간이 심시했다. 일기와 계절, 방문객만 바뀔 뿐 묘지기의 일상은 변하지 않는다. 취급국의 책상에 앉아 있으면 해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기울었고
우편물을 쌓았다가 배출하는 것으로 하루가 저물었다. 적요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일상이었다. p.107-108
미용실은 직장일 뿐만
아니라 삶의 완충지대 역할을 톡톡히 했다. 집 안에 떠도는 무거운 공기, 서로를 향해 방패처럼 세워 둔 완강한 벽을 감지할 때마다 여진은
미용실을 찾았다. 잡지사에서 일했던 10년 동안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을 만나 봤고 다른 직업을 가지면 어떨까, 생각해 봤지만 미용실이 후보에
오른 적은 없었다. 취재나 촬영차 수많은 헤어숍에 가고 헤어 디자이너들을 만나면서도 흥미가 생기지 않았고 완전히 관심 밖의 세상이었다. 그날
정처 없이 걷지 않았다면 이 동네에 오지 않았을 거고 임대 문구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뭔가에 홀린 듯 문을 밀고 들어가서 내부를 둘러보고
원장과 얘기를 나누는 순간에도 여진은 현실에서 살짝 벗어나 있었다. 자신이 지금 무슨 일을 벌이고 어디에 발을 들이는 건지 현실감이 없었다.
그저 결정적인 순간에 뒤에서 바람이 불어와 등을 떠밀었고 거기에 몸을 맡겼을 뿐이었다. 그날 봤던 게 미용실이 아니라 분식집이나
공인중개업소였다고 해도 여진은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을 것이다. 살다 보면 그런 때가 있다. 가장 신중해야 하는 시기, 문제 앞에서, 이것저것
알아보고 비교해보고 실패의 확률을 줄이기 위해 애써야 하는데 난데없이 용감해지고 근거 없는 확신에 차 엉뚱한 길로 접어들어 버리는 때. 어떻게
해도 다 괜찮을 것 같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도 않는 순간. 돌이켜 보면 여진은 그런 쪽으로는 상습범이었다. 진학, 첫 직장,
결혼, 사표 등 인생의 커다란 화살표는 대개 그런 즉흥의 산물과 함께 뻗어 일 앞에서는 이상하게 대범해졌다. 그런 선택이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정신이 드는 건 언제나 상황이 종료된 뒤였다. p.70-71
영무와 취급국에서 같이 일을 하는 계약직
직원 소정을 보면서 자꾸 나의 지난 시절들이 글자 위로 동시에 겹쳐지는 걸 경험했다. 돌이켜보니 우리 가족은 정말 가난했었고, 엄마의 눈물을
자양분 삼아 자랐고, 무시하는 타인의 시선에 무신경하게 노출될 수밖에 없었고, 마음은 아픈데 표현할 말과 행동을 배우기 전이었던 그 시간들.
소정은 씩씩했다. 3개월짜리 직업을 전전하면서도 다른 친구들과 비슷한 생활을 할 수 없음에도, 그냥 열심히 사는 게 몸에 익어 있었다.
그리고 점점 사회생활과 맞물려 멀어지는 20대의 연애, 서툰 이별의 순간은 덜 익은 감처럼 혀 끝이 쓴 떫은 맛이 오래오래 입안을 맴돌게
만든다.
엘리베이터에 탄
다음부터 엄마는 계속 눈물을 훔쳐 냈다. 소리 내어 우는 것도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것도 아닌 눈물만 줄줄 흘러내리는 이상한 울음이었다. 그
눈물은 버스 정류장에 도착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엄마가 빈손으로
돌아온 걸 알고 아빠는 돌아앉아 담배만 피웠다. 부엌에 간 엄마는 쌀을 퍼 놓은 채 수도꼭지에서 흘러내리는 물만 하염없이 쳐다봤고 소정은 동생의
손을 잡고 동네 놀이터에 나갔다. 흙먼지가 이는 그네에 올라서서 멀리, 더 멀리까지 가기 위해 무릎을 열심히 움직여 봤지만 주변의 풍경은 변하지
않고 그네는 매번 제자리로 돌아왔다. 미끄럼틀을 몇 번 탄 동생이 집에 가서 만화영화를 보자고 소리를 질러 댔지만 소정은 못 들은 척했다.
영원히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p.52-53
사랑이 끝난 것에
대해, 이별의 이유에 대해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될수록 설명의 방식이 달라진다는 걸, 주관에서 객관으로 옮겨 간다는 걸
깨닫게 될 뿐이었다. 예전에는 자신의 느낌이나 직관에 맞는 표현을 찾기 위해 애썼다면 이제는 모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틀에 맞추고 통용되는
언어로 말하려 노력하게 된다. 그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노래를 잘 부르는 애, 키가 큰 애, 목소리가 좋고 말을 재미있게 하는 애라고
설명하지 않고, 어디에 살고 어느 회사에 다니며 연봉이 얼마고, 타고 다니는 차가 뭐고, 애인은 뭐 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모두들 그게 더 그 사람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객관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이라고 말하고 그렇게 대답하라고 요구한다. 소정은 이제 자신이 처한
상황이, 진수와의 관계가 그런 식으로 설명되리라는 생각에 씁쓸해졌다. p.138
소설을 덮으면 무엇보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이 시간이라는 위로가 남는다. 삶은 죽음을 향해 부지런히 자리를 움직이고, 계절은 바뀌고, 너와 이별했던 나도 그 시간 틈으로 사라지고.
그렇게 우리는 모두 소멸이 예정된 존재라는 것이 애처롭다.
시간이 이만큼
흘렀다는 게 거짓말 같았다. 엄마가 죽을 때까지 이혼을 미뤄 달라는 영무의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그런 날이 오지 않을 줄 알았다. 그저 유예의
말이라고만 생각했다. 감정이나 의도와 상관없이 가장 정직하고 공평하게 흐르는 게 시간이라는 점이 아이러니했다. 이후의 시간이, 삶이 어떻게
흘러가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어 두려웠지만 그래서 살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4월이 끝나 가고 있었다.
p.171
모든 살아 있는 것이
경이롭고 안쓰럽고 가엽다는 걸 절감했습니다.
- 작가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