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내 서재 속 고전 - 나를 견디게 해준 책들
서경식 지음, 한승동 옮김 / 나무연필 / 2015년 8월
평점 :
- 서경식 선생님은, 한겨레 신문에 칼럼 연재를 시작하셨을 때 처음 알게 되어 지금까지. 그러니까,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를 읽은 뒤로는 본격적으로 존경하고 좋아하고 있는 분. 영화 <Go>부터 <우리학교>, <가족의 나라>까지... 관심을 갖고 보게 된 이유. 내 머릿속, 그런 시작점에 서 계신 분이다.
- 선생님은 점점 더 절망하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차별, 불관용, 폭력이 세계 각지에서 개가를 올리고" 있기 때문에. 세계 역사에는 새로운 시대에 대한 열망을 품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야만적인 정치폭력"에 희생되었고, 그것을 기억하자고 작가들은 적었다. 후대의 사람들은 그 글을 읽는다. 그런데 그 시절 그 희생이 지금도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으니 사회는 도무지 앞으로 더 나아가고 있다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절망한다.
젊었을 때의 나는 "밤은 길고, 갈 길 또한 멀다"는 것을 비관했다. 하지만 지금은 "설령 내가 아니더라도 언젠가 반드시 그들을 생각해내고 다시 그들에 대해 말할 날이 오리라는 것"이라는 부분을 비관하고 있다. 사람들은 희생자를 기억하지 않는다. 과거에서 배우지 않는다. 무서운 속도로 모든 것이 천박해지고 있다. 루쉰 따위는 읽지 않으며, 설령 읽는다 해도 그 부름의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p.51
- 책을 읽는다. 선생님의 목소리를 듣는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동안 "그대는 침묵으로 살인에 가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묻는다. 일상이 파괴된 채 목숨을 걸고 난민이 되어야만 하는 수만의 사람들이 저기 헤엄치고 있지 않느냐고. 일본 대지진을 겪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목격하고도 원전을 짓겠다는 정부의 새된 소리가 들리지 않느냐고. 아직 찬 바닷바람에 천막 하나 쳐놓고 정부의 세월호 인양 작업을 감시하겠다고 발벗고 나선 아빠들의 거칠어가는 얼굴이 보이지 않느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망을 모르면서 시작도 전에 체념을 배우고 있느냐고.